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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만 송이 백만 송이 꽃은 피고
김진영 연세대 노어노문학과 교수
입력 2024.04.29. 23:58
“미워하는 미워하는 미워하는 마음 없이
아낌없이 아낌없이 사랑을 주기만 할 때
수백만 송이 백만 송이 백만 송이 꽃은 피고
그립고 아름다운 내 별나라로 갈 수 있다네.”
https://youtu.be/0KlpBqgcEII?si=4dCRpo7LyVNGCpbL
심수봉의 ‘백만 송이 장미’는 번안곡이다. 알라 푸가초바(A. Pugacheva)가 부른 소련 시대 최고 인기곡 ‘백만 송이 붉은 장미’가 원작으로, 가사에 얽힌 실제 이야기는 이렇다.
https://youtu.be/ufH4Hp9Ywfo?si=l33_StRdILSESvW0
피로스마니(N. Pirosmani·1862~1918)라는 그루지야(현 조지아) 시골 화가가 순회공연 온 프랑스 여배우와 사랑에 빠졌다. 도도한 그녀 마음을 얻기 위해 가난한 화가는 가진 전부를 팔아(집까지) 그녀가 묵고 있던 호텔 앞 광장을 하룻밤 새 ‘꽃의 바다’로 만들어버렸다. 아침에 일어나 꿈같은 광경을 본 여배우가 단 한 번 열정적 키스를 선사한 후 밤 기차로 떠나버렸다는 설도 있고, 화가 자신이 꽃만 가득 쌓아놓고 사라져버렸다는 설도 있다.
그녀를 향한 그리움은 대표작 ‘여배우 마르가리타’로 남았다. 물감이 없어 제대로 색도 입히지 못한 원시주의풍 그림이다. 살아생전 줄곧 가난했던 무명의 피로스마니는 사후에야 유명해져 1968년에 루브르에서 회고전을 열었는데, 그때 80 넘은 마르가리타가 자신의 초상화 앞에 나타나 눈물 흘렸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도 전해진다.
“만남은 짧았고/
밤 기차는 그녀를 데려갔다네/
그러나 그녀의 삶에는/
격렬한 장미의 노래가 있었다네.//
화가는 홀로 남아/
많은 불행을 견뎌냈다네/
그러나 그의 삶에는/
장미로 가득 찬 광장이 있었다네.”
러시아어 가사는 시인 보즈네센스키(A. Voznesensky)가 썼다. 우리말 가사는 심수봉이 썼다. 원곡 가사가 한국 정서와 맞지 않아 고민하던 끝에 ‘아가페적 사랑’을 찾았다 했다. 그녀 노래에서 꽃은 아낌없는 사랑의 은유이자, 해탈의 기호다. 백만 송이 꽃이 피어나는 날, ‘나’는 마침내 별나라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한국 정서의 ‘꽃=사랑’에는 장기적이고 분명한 목적이 있다. 그 면에서 실용적이다. 러시아말 노래에는 그런 목적성이 없다. 가난한 예술가가 모든 것 바쳐 꽃을 샀다. 내일이면 시들고 말 꽃을 사서, 삶의 아주 짧은 한순간을 꽃으로 뒤바꿔 놓았다. 그뿐이다. 사랑을 정복할 생각도 없었고, 집 없는 빈털터리가 된다는 계산도 하지 않았다. 러시아 노래 ‘백만 송이 붉은 장미’는 무모함의 찬가다. 순간이 곧 영원이라는, 사고의 대전환이다. 그 점에서 우리말 노래와 정반대다.
러시아 정서는 극과 극을 넘나든다. 중용이나 황금률보다 양극단의 모순이 더 자연스러우며, ‘전부 아니면 전무’(all or nothing)의 자기 파괴적 과감함도 낯설지 않다. 이게 다 도스토옙스키 때문에 생긴 선입견일 수 있겠는데, ‘카라마조프 형제들’ 중 ‘열렬한 마음의 고백’에는 인간이 소돔과 마돈나, 즉 추함과 아름다움 사이에 걸쳐진 너무도 광대한 존재라서 차라리 좁히고 싶다는 말이 나온다. “소돔에도 아름다움이 있는가?” 도스토옙스키의 핵심 질문이다.
피로스마니의 무모함이 러시아 정서에는 별 무리 없이 용인된다. 그 정서는 도스토옙스키가 말한 어둠 속의 빛, 궁핍과 저열과 굴욕 속 아름다움에 대한 절대 의식으로 무장되어 있다. 무의식에 자리 잡은 종교(러시아정교)적 영향도 분명 있을 터, 단 한순간 구원을 위해 영원마저 포기하겠다는 태세로 일상의 아름다움에 집착한다. 뒤집어 보면, 일상이 그만큼 아름답지 않다는 말이다. 러시아인의 광적인 꽃 사랑은 현실에 대한 역설이다. 독재자가 된 푸틴 손에도, 전투복 입은 군인 손에도, 폐허 속 학교 가는 우크라이나 학생 손에도 꽃다발은 어김없이 들려 있다. 그것이 ‘소돔에도 아름다움이 있다’고 한 도스토옙스키식 러시아 전통이다. 러시아에는 지하철역마다 꽃가게가 있고, 심지어 24시간 꽃 키오스크도 있다. 봄·여름철이면 수줍은 미소 띤 할머니들이 작고 소박한 들꽃 부케를 만들어 와 도시인에게 판다.
도스토옙스키 문단 데뷔작 ‘가난한 사람들’의 주인공 하급 관리는 찢어지게 가난한 가운데서도 사랑하는 먼 친척 처녀를 위해 꽃 선물 공세를 한다. 봉선화 화분, 제라늄 화분, 게다가 분에 넘치는 장미까지. 주인공 처녀는 비싼 꽃은 왜 사냐면서도 기뻐 말한다. “내 방이 낙원 같아졌어요!” 가난한 사람들의 슬픈 이야기 안에서 꽃은 지상 낙원의 꿈을 상기시킨다.
한국 정서 얘기로 돌아와, 김동인이 재미있는 말을 했다. “역사적으로 많은 학대와 냉시 앞에 고통을 겪어온 조선 사람은 (...) 모든 탓을 팔자라 하는 무형물에게 넘겨 버리고 명일(明日)의 조반을 준비한다.” 언젠가 글에 인용했더니, 러시아인이 흥미로워한 대목이다. 삶의 고통 속에서 러시아인은 꽃을 사고, 한국인은 내일의 아침밥을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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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esocialtimes.com/news/articleViewAmp.html?idxno=2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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