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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과 미술

BAC, 베토벤 피아노협주곡

by 문촌수기 2024. 7. 14.

손민수의 베토벤 피아노협주곡 전곡 연주시리즈 II,
피아노협주곡 4, 5번
2024. 7. 14. 17시
부천아트센터 콘서트홀

"그 제자에 그 스승!
임윤찬은 그의 스승, 손민수를 닮았구나."

베토벤 피아노협주곡 제4번 연주를 보고 인터미션 시간에 아내한테 한 말이다. 아내도 맞다면서 공감했다.
작년에 다큐멘터리 영화, <크레센토>를 보고 2022년 반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우승한 임윤찬을 알았다. 임윤찬은 우승 직후 수많은 학교에서 유학에 대한 러브콜이 들어왔었고, 어떤 결정을 내릴 지 기자가 물었을 때,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너무 좋은 교육의 기회들에 대해 저에게 얘기해주시고, 모든 곳이 익히 명문 학교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에게는 이미 한국에 훌륭하고 좋은 스승님이 있습니다. 앞으로의 공부 방향이나 모든 것들을 선생님과 상의하고 결정해 나가겠습니다.”

도대체 그의 스승은 누구일까? 그 스승은 얼마나 보람될까? 그 제자를 알고 난 후에 그의 스승인 손민수를 알게되었다.

임윤찬과 스승 손민수

피아노 협주곡 4번
https://youtu.be/rD7aAq6yvJo?si=a9zYloOkEWMciYuM

가장 우아한 혁신의 순간,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4번
              
ㅡ 글, 음악평론가 신예슬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4번에서 가장 부드러우면서도 혁신적인 부분은 바로 1악장의 첫 프레이즈(phrase, 소절)다. 피아노는 고요 속에서 단정한 화음에 얹힌 선율을 연주한다. 이 사색적인 도입부는 이전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에서 결코 쓰인 적 없는 형태였다. 베토벤은 오케스트라의 풍성한 음향으로 피아노의 등장을 멋지게 예비하는 대신, 피아노 소나타에서 들을 수 있을 것만 같은 프레이즈로 협주곡 4번을 시작한다. 오케스트라는 그 흐름을 깨지 않고 거기에 이야기를 덧붙여 나가며 점점 그 세계를 넓혀나간다. 오케스트라가 아닌, 피아노로부터 시작하는 혁신적인 도입부였다.
이 작품이 초연된 것은 1808년 12월의 어느 날이었다. 베토벤은 장장 네 시간에 걸친 공연을 기획했다. 운명 교향곡과 전원 교향곡, 그리고 합창 환상곡을 비롯해 피아노 협주곡 4번까지, 엄청난 대작들을 한자리에서 초연하는 날이었다. 그날 한자리에서 이 작품들을 들은 청중들은 운명 교향곡과 피아노 협주곡 4번 1악장에서 지배적으로 쓰인 리듬이 같지만, 전혀 다른 효과를 만들어낸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을 것이다. 운명이 방문을 노크하는 것만 같았던 그 리듬은 이 곡에서 훨씬 낙관적이면서도 느긋한 움직임을 만들어낸다. 건반을 망치처럼 거칠게 두들겨대거나, 변덕스럽게 느껴질 정도로 급격하게 흐름을 바꾸는 순간은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그보다는 정교한 기교, 레가토와 트릴 등, 피아니스트의 섬세한 터치와 표현이 요구되는 프레이즈가 곳곳에 가득했고, 이 1악장에서 피아니스트는 오케스트라를 이끄는 영웅적인 협주자가 아닌, 부드럽게 노래하듯 연주하는 이에 가까웠다.
그런 면모는 2악장에서 더욱더 강조된다. 피아노는 1악장에서보다 더욱 서정적이고 평화로운 프레이즈를 연주한다. 오케스트라는 여기에 격렬하게 반발하듯, 거친 음향을 만들어낸다. 다시 피아노는 한치의 혼들림도 없이 부드러운 연주를 이어간다. 오케스트라는 계속 저항하려 하지만 평온함을 잃지 않는 피아노의 흐름에 따라 결국 한껏 누그러진다. 오페라의 한 장면 같은 이 2악장에서 어떤 이들은 신화 속한 장면, 음악으로 야생의 짐승들을 길들였던 오르페우스의 이야기를 떠올렸다.
3악장은 2악장의 끝점에서 바로 쉼 없이 이어지는 론도 악장으로, 3악장에서만큼은 통상적인 론도처럼 가뿐한 흐름을 이어간다. 리드미컬한 주제로 이루어진 간단한 구조의 론도지만, 베토벤의 음악이 무르익을 대로 무르익은 시점에 쓰인 만큼 베토벤 협주곡의 피날레 중 손꼽힐 정도로 우아하고 세련된 움직임을 만들어간다.
피아노 협주곡 4번은 여러 측면에서 독창적인 작품이다. 협주곡의 전형에서 벗어난 도입부, 오페라 속 극적인 대화처럼 구성된 느린 악장, 독주자와 오케스트라의 더욱 다채로워진 관계까지 이 작품에서 피아니스트는 오케스트라와 대화를 주고받고, 팽팽한 긴장감을 형성하다가도 마치 한 몸인 것처럼 상대의 프레이즈에 아름답게 뒤섞여 들어가야 한다. 한껏 화려하게 도드라져야 하는 협주자로서의 매력을 살리는 동시에, 마치 실내악에서처럼 내밀한 감정을 섬세히 표현해야 한다. 초연 이후, 멘델스존에 의해 재발견되기 전까지 이 작품이 한동안 연주되지 못했던 것은 바로 이러한 혁신적이면서도 까다로운 면모 때문이었을 것이다.
앞선 세 곡의 피아노 협주곡과 마찬가지로 이 작품의 초연 당시 피아노 협연 또한 베토벤이 직접 맡았다. 이미 그의 청력이 심각한 수준으로 손상된 상태였던 만큼, 이 곡은 베토벤이 직접 초연한 자신의 마지막 협주곡이자, 뛰어난 피아니스트이기도 했던 베토벤 인생의 마지막 협연곡이 됐다.

피아노 협주곡 5번
https://youtu.be/mRoTR5ta9e4?si=_eLgfADRB0vdSkpJ

가장 화려하고 영웅적인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

ㅡ 글, 음악평론가 신예슬

한때 베토벤은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얼렬한 추종자였다. 그가 교향곡 3번을 쓰던 당시, 악보 표지에 '보나파르트'라는 이름을 써두었으나 나폴레웅이 왕위에 올랐다는 소식을 듣고 크게 실망해 그 이름을 지우고 '영웅'으로 바꿔썼다는 일화가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런 탓에, 어떤 이들은 시기가 다름에도 불구하고 황제라는 별명을 지닌 피아노 협주곡 5번 또한 나폴레옹을 염두에 둔 것으로 오해하곤 한다. 하지만 작품의 배경을 보다 자세히 살펴보면 정반대의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베토벤이 한창 이 협주곡을 쓰던 당시, 오스트리아는 프랑스와 전쟁 중이었고 나폴레옹의 군대는 빈을 포위하고 있었다. 그의 제자와 친구, 후원자(루돌프 대공)들이 모두 도시를 떠났고, 베토벤을 비롯한 남은 이들은 지하실에 피난처를 마련해 웅크리고 있었다. 베토벤은 얼마 남지 않은 청력을 보호하기 위해 베개로 귀를 막았다. 그는 출판사에 이런 전언을 보냈다.
"북, 대포, 온갖 종류의 인간적 불행 외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포격은 마침내 오스트리아군이 항복한 이후에야 비로소 멈추었다.
하지만 그 전쟁의 불행을 딛고, 베토벤은 다시 창작에 매진했다. 그런 과정을 겪고 완성된 이 곡이 '황제'라 불리게 된 데에는 여러 이유가 거론되는데, 하나는 출판사에서 그런 이름을 붙였기 때문이라는 추측, 그리고 다른 하나는 초연날 있었던 엄청난 반응 때문이라는 추측이다. 이 작품은 1812년 2월, 빈에서 칼 체르니의 연주로 초연됐는데 당시 빈에 주둔하던 프랑스군 장교가 그 초연을 듣고 큰 감명을 받아 이렇게 크게 외쳤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C'est I'Empereur!"(황제다)

1악장은 그야말로 피아노에 스포트라이트를 비추는 듯한 화려한 음향으로 시작된다.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묵직한 화음 위에서 피아니스트는 건반을 오르내리며 등장해 앞으로 펼쳐질 대서사시의 서막을 연다. 이후 행진곡풍의 주제가 연주되고 여기에 금관이 가세하며 웅장한 분위기가 형성되지만, 베토벤은 이를 그저 군대풍의 이야기로 머무르게 두지 않고 '부드럽게(dolce)' 연주되는 달콤한 선율들을 들려주며 강인함과 부드러움을 절묘하게 교차한다. 아름다운 피아노 선율과 음형은 협연자의 연주에 한껏 귀기울이게 하며, 그에 맞물리는 탁월한 오케스트레이션은 교향악적 합주를 듣는 즐거움까지 선사한다
2악장은 지극히 아름답게 노래하는 듯한 악장이다. 오케스트라는 낮고 풍성한 화음들을 연주하고, 피아노는 그 화성 위에서 얇고 고운 음색으로 미끄러지듯 노래한다. 어떤 순간엔 단정한 피아노 반주에 맞추어 노래하던 이의 모습이 떠오를 정도다. 충분히 노래한 뒤, 피아노는 다시 오케스트라와 자리를 바꾸어 현악기와 목관악기들의 솔로 파트를 반주한다. 고요한 밤중에 노래와 반주를 주고받는 것 같았던 이 2악장은 어둠 속으로 사그라들다가 서서히 밝은 해를 맞이하는 것처럼 3악장으로 곧장 이어진다. 밤이 낮으로 변하는 것 같은 그 신비로운 순간은 부드러운 호른의 지속음으로 이어진다. 기분 좋은 상승의 움직임을 가득 담은 이 마지막 론도 피날레에서는 승전보를 물리는 것 같은 오케스트라의 강렬한 프레이즈, 그리고 피아노의 우아하면서도 화려한 움직임이 특히 돋보인다.
초연이 끝난뒤 누군가 '황제다!'라고 외쳤다는 이야기를 온전히 믿을 수는 없지만, 이 작품이 황제라는 이름을 가질만한 음악이라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 어떤 앞선 협주곡보다도 위엄있고 영웅적이면서도 근사한 이 곡은 그 뛰어난 작품성으로 오늘날까지도 독보적인 존재로 자리하고 있다.

커튼콜 장면

손민수와 윌슨 응
코리안챔버오케스트라
손민수앵콜-포레.mp3
2.14MB

손민수는 앵콜곡으로 포레(Gabriel Faure)의 Romance sans parloles,
Op.17 No3 (무언가 작품 17번 중 3번)가 연주하였다.

+ 손민수의 베토벤 피아노협주곡3번
https://youtu.be/4Snqj_pSDoI?si=twKAf1oeb22njXxI

            글 | 음악평론가 신예슬
새로운 길로,
피아노 협주곡 3번


1800년대 초, 베토벤을 사로잡은 생각은 바로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전보다 더 장엄하고 극적인 세계를 담아내기 위해서는 앞선 작곡가들이 가지 않은 길을 개척해야했다. 더욱 풍성해진 화음과 더 무게감 있는 오케스트레이션, 고전적인 틀에서 벗어나는 대담한 진행 등, 베토벤이 자신의 음악을 확장하며 찾으러 했던 새로운 길은 고전주의를 떠나 '낭만주의'라 불리는 세계로 항하는 길이기도 했다.
그 길을 찾는 여정에 작곡된 작품 중 하나가 바로 이 피아노 협주곡 3번이다. 베토벤의 중기 스타일을 예고하는 큰 작품이지만, 흥미롭게 이 곡에서도 모차르트의 영향이 엿보인다. 모차르트의 후기작에 속하는 피아노 협주곡 24번은 드물게 c단조로 이루어진 곡으로, 우울과 절망의 감정을 담은 동시에 피아노와 오케스트라가 더욱 변화무쌍한 관계를 맺는 작품이었다.
소나타 형식에 기반하지만, 주제 선율 뿐 아니라 그 선율을 잇는 연결구 또한 아름답게 그려져 있었고, 고전주의의 단정함을 넘어서는 풍요로운 표현들이 곳곳에서 피어올랐다. 베토벤은 이 작품에 깊은 경의를 표했고, 이 곡에서 받은 인상은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3번, 특히 1악장에 반영됐다.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3번 1악장은 비애와 절박함이 감도는 c단조의 모티브로 시작된다.
현악 파트와 관악 파트가 서로 선율을 주고 받으며 긴장감을 쌓아올리고, 피아노 독주는 오케스트라가 이어질 음악에 대한 기대감을 충분히 증폭시킨 후에야 시작된다. 피아노는 앞서 형성된 분위기를 그대로 이어가며 오케스트라의 반주 위에서 노래하다가 때론 오케스트라
연주하는 주제를 더욱 화려하게 변주한다. 2악장 라르고는 극적인 면모가 강하게 드러났던 1악장과 달리, 한층 평온한 분위기를 이어간다. 바이올린의 서정적 선율, 피아노의 섬세한 움직임이 돋보이는 악장이다. 마지막 3악장은 론도 악장으로, 원조성인 c단조로 돌아가지만 1악장과는 사뭇 다르게 통통 튀는 리듬으로 활기찬 진행을 이어가고, 밝은 곳으로 나아가는 것처럼 힘찬 분위기로 바뀌어가며 장대하게 끝맺는다
이 곡을 작곡할 당시, 베토벤은 서서히 청력을 잃어가고 있었다. 그로 인해 유서를 쓸 정도로 깊이 절망했지만 동시에 그 운명에 굴복하지 않겠다고 굳게 마음먹은 시기이기도 했다. 베토벤은 더 깊은 침묵 속에서 음악 세계를 확장해 나갔고, 그의 음악은 자연스레 더욱 복합적인 감정과 악상들을 담아냈다. 그리고 이 작품의 조성이기도 한 c단조는 베토벤의 음악에서 '절망에서 환희로' 항하는 여정을 기장 선명하게 드러내주는 조성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베토벤이 그 시기에 찾았던 새로운 길은 두 가지 의미로 다가온다. 이는 고전주의로부터 낭만주의로 향하는 길이었겠지만, 훗날 그의 대작에서 계속 이어지듯이, 고통을 딛고 환희에 이르는 길이기도 했을 것이다.

+ 손민수의 베토벤 피아노협주곡2번
https://youtu.be/16untS9XOxI?si=BxsRqQNvhAadY1a6

              글 | 음악평론가 신예슬
베토벤이 오래 가꿔온 악상,
피아노 협주곡 2번


베토벤이 그 악상을 처음 따올린 것은 그가 십대였을 때였다. 자신만의 피아노 협주곡을 제대로 작곡하기 이전, 모차르트 등 앞선 세대의 작품을 탐구하며 피아노 협주곡의 여러 형태와 구조를 익히던 시절이었다. 베토벤은 훗날 자신의 첫 피아노 협주곡의 토대가 될지도 모르는 어떤 악상을 간단히 스케치했다. 1788년 경의 일이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6년 뒤, 베토벤은 그의 첫 피아노 협주곡을 완성한다. 그 이듬해에 열릴 공연에 맞추어 작품을 거우 완성한 것이었다. 정식으로 그의 첫 피아노 협주곡을 세상에 공개하는 것이었던 만큼 작곡 자체에도 긴 시간이 걸렸지만, 베토벤은 초연 후에도 그 첫 버전에 만족하지 못했다. 그는 이 곡을 연주할 때마다 계속 수정했고, 1798년의 프라하 공연을 앞두고 특히 대대적인 수정을 거쳤으며, 이후 1801년에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최종 버전의 악보를 마침내 출판했다. 첫 스케치부터 최종 완성까지, 20년이 꼬박 걸린 것이다
작품 출판 직전까지 다듬어졌던 만큼 보다 섬세해진 베토벤의 필체가 곳곳에 반영되어 있지만, 그래도 이 곡에서는 초기작 특유의 고전주의적 스타일이 두드러진다. 우선 1악장에서는 서로 다른 성격을 지닌 두 주제가 빠르게 교대하며, 명확하고 뚜렷한 대조를 형성한다. 이어지는 2악장은 느리고 서정적인 분위기 안에서 오케스트리와 피아노가 유려한 선율들을 그려
나기는 악장이다. 특히 2악장은 베토벤이 즉흥으로 연주해 왔을 것으로 추정되는 부분으로, 훗날 악보로 정리한 최종 버전에서도 그 즉흥연주의 뉘양스를 일부 느낄 수 있다, 마지막 론도는 롬바드(Lombard)리듬, 또는 스카치 스냅이라 불리는 리듬으로 시작하는 악장으로, 경쾌한 분위기로 곡을 끝맺는다.

+ 손민수의 베토벤 피아노협주곡1번
https://youtu.be/hImRyXoJwRU?si=NylXdb7WdKQj5vUL


글 | 음악평론가 신예슬

베토벤이 선택한 첫 협주곡
피아노 협주곡1번

“저는 그의 힘 있고 뛰어난 연주에 감탄했습니다. 하지만 유기적이고 점진적인 악상의 전개를 제쳐두고, 한 선율에서 다른 선율로 대담하게 자주 바꾸어가는 진행들이 눈에 띄었습니다. 이러한 점은 그의 뛰어난 구성을 약화시키는데, 이는 너무 풍부한 악상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 그의 가장 중요한 목표는 특이함과 독창성이었던 것 같습니다." 베토벤이 피아노 협주곡 1번과 2번을 한자리에서 연주했을 때 그 자리에 있던 젊은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 바출라프 토마섹은 훗날 그 작품을 이렇게 회고했다.
익히 알려진 것치럼 베토벤의 초기작들에는 고전주의 작곡가들의 영향이 짙게 배어 있었다. 하지만 당시 공연 리뷰를 보면 베토벤의 초기 피아노 협주곡은 이미 고전주의적 질서에서 살짝 벗어나 있던 듯하다. 특히 저평가는 협주곡 1번에 조금 더 적절하게 맞아 떨어지는 것처럼 보인다. 작품 번호와 달리, 실제로 피아노 협주곡 1번은 두 번째로 작곡된 곡이기 때문이다
여러 면에서 피아노 협주곡 1번은 2번보다 더 큰 규모와 다채로운 악상을 자랑한다. 호른과 트럼펫, 팀파니가 활약하는 이 협주곡에서는 풍성한 음향의 대조가 나타나며, 선율들의 흐름이 차근차근 이어지는 와중에 때로 흥미로운 도약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소나타 형식의 조성 구조를 조금씩 비틀어 사용하는 동시에, 이따금 이질적인 도입부가 불쑥 끼어들기도 한다. 이 초기작에도 이미 크고 작은 혁신의 씨앗들이 숨어있던 것이다.
피아노 협주곡 1번은 총 세 악장으로 구성된다. C장조로 시작되는 이 1악장은 경쾌한 노크
소리를 닮은 모티브로 시작된다. 오케스트라가 힘차고 강렬한 베토벤 특유의 리듬을 선보인 뒤, 곧 피아노가 이를 보다 길고 유려한 흐름으로 확장한다. 이어서 서정적이고 부드러운 선율을 피아노와 오케스트라가 주고받으며, 이후 피아노는 화려한 카덴차를 선보인다. 2악장은 클라리넷과 바순, 호른이 차분하고 중후한 분위기를 잡아주는 느린 악장으로, 특히 클라리넷의 활약이 돋보이며 피아노의 섬세한 터치와 표현력이 더욱 선명히 드러난다. 3악장이자 마지막 악장인 론도는 경쾌하고도 유머러스한 곡으로, 화려한 피날레로 마무리된다.
이 작품은 모차르트와 하이든의 스타일을 의식적으로 모방했던 시기를 지나, 점차 대담해지는 베토벤의 작풍이 드러나는 곡이다. 이 작품을 베토벤이 1번으로 채택한 이유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확언할 수 없겠지만, 어쩌면 그 이유는 이 피아노 협주곡이 모방의 시기를 지나 '자신의 시작점'으로 여길만한 작품이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