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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들

아버지 - (0) 아부지, 다시 살아나시소.

by 문촌수기 2013. 1. 2.

아부지, 다시 살아나시소.

햇님이 다시 살아나듯, 아부지 다시 살아나시소.

오늘은 동지입니다.
저녁 아내는 찹쌀가루에 물을 붇고 새알심을 만들 준비를 합니다.
"내가 내가" 하며 부엌일이 신기해하는 딸아이는 엄마일에 참견하며 달려듭니다.
옹시래미 만드는 일에 온 식구가 달려듭니다.
온 식구라 해봤자 나와 아내 딸아이 셋 뿐입니다.
어릴 적, 큰 밥상판을 펼쳐놓고 엄마랑 우리 다섯형제들 그리고 어린 아기랑 다 함께 옹시래미 만들때가 그리움으로 밀려듭니다. 가난했지만 행복했던 때 였습니다.

딸아이에게 말해줍니다.
"동지는 일년중 가장 밤이 길 날이란다. 그러나 동지를 지나고나면 내일부터 낮이 점점 길어지지. 햇님이 다시 살아나는 거야. 햇님이 죽었다가 부활하는거야.
그리고 며칠 지나면 크리스마스되는 거지. 아기 예수님이 태어나신 크리스마스는 햇님이 다시 태어나는 동지랑 무척 관계가 깊단다. 아마도 햇님이 다시 살아나는 것은 아기 예수님이 태어나신 것과 같은 일이라고 옛날 사람들이 믿었던 모양이야.
동지날 팥죽을 쑤어 그 안에다 찹쌀로 빚은 옹시래미, 이 새알처럼 생긴 새알심을 옹시래미라고도 하지. 재미있는 이름이지?
이 옹시래미를 넣어 먹었는데, 자기 나이만큼 먹어야 된데.
소헌이는 이제 9살이니까 아홉개만 먹어야겠구나. "

꼭 그렇게 먹진 않겠지요. 아흔 노인이 어떻게 아흔개의 옹시래미를 다 드시겠습니까? 단지, 동지날 팥죽을 먹어야 진짜 나이 한 살 더먹는다는 속설이 이렇게 저렇게 전해지면서 재미삼아 하는 얘기겠지요.

"싫어. 많이 먹을꺼야. 근데 아빠, 왜 동지날 팥죽을 먹어요?"

"팥죽의 색은 붉단다. 붉은 색은 햇님의 색깔이야. 나쁜 귀신은 햇님을 무서워하지. 그래서 나쁜 귀신을 다 쫓아내기 위해 햇님의 색깔을 가진 붉은 팥죽을 쑤어 먹는단다. 집안에 몸안에 못된 귀신을 쫓아내고, 햇님처럼 건강하기를 빌기 위해서야.
근데 팥죽을 쑤어 곧장 먹어면 안된데. 부엌에 계신 조왕신에게 한 그릇 바치고, 또 문앞에 팥죽의 붉은 물을 뿌려 귀신을 쫓아낸 다음 먹어야 한단다."

마치 울 할매, 울 엄마 천지신명님께 비나이다 비나이다 하며 합장 기원드릴 때 처럼 찹쌀 반죽을 손가락 한마디 쯤 때내어 손바닥에 놓고 둥글게 둥글게 '비나이다 비나이다'라며 비비면 예쁜 새알이 됩니다. 울 형제 다 모여 새알심 만들때 엄마는 깨끗한 동전을 넣은 가장 큰 새알심을 하나 만드셨습니다. 행운의 동전은 누구에게 갈까? 다들 기대에 부풀어 팥죽을 먹습니다.

그 때처럼 오늘은 새알심 속에 잣을 넣었습니다.
딸아이는 새알 옹시래미를 만들다가 피카츄 옹시래미도 만듭니다. 음식을 갖고 장난치면 안된다 했는데..... 그래도 재미있는 추억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으로 포켓몬 옹시래미를 몇개 더 만들었습니다.

오늘 같은 팥죽을 먹는 동지날 저녁이 되면, 시끌벅쩍 둘러앉자 큰 양푼이 한그릇에 담긴 팥죽을 함께 나누어 먹던 고향의 울 형제, 울엄마, 울아부지가 생각납니다.

지금은 다들 떠나 보내고 외로우신 울 엄마,
지금은 늙고 병드시어 누워 계신 울 아부지.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반포보은하는 까마귀 만도 못한 자식이 되어 저 홀로 동지날 팥죽을 먹습니다.

다행히 큰 형수님께서 팥죽을 쑤어 울엄마 울아부지 외롭지 않게 드렸다 합니다.
그래도 시끌벅쩍. 자식을 위해 직접 팥죽을 쑤던 그때의 엄마가 그립습니다.
엄마도 그때가 그리우실 겁니다.

햇님이 다시 살아나듯 아부지 다시 일어나시소.
내일부터 다시 살아나시소.
아부지.

2000. 12. 22 동짓날 저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