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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들

아버지 - (1) 아버지의 손

by 문촌수기 2013. 1. 2.

아버지 - (1) 아버지의 손

2001년 3월 6일 오후 5시 30분.
학년,학기초라 일이 바쁩니다. 퇴근을 미루고 학교일을 챙기고 있었습니다.
평소 걸려오지도 않던 휴대폰이 걸려 오기에 반갑게 받았습니다.
동생이었습니다. 아버지가 우릴 찾으신다는 겁니다.

"아버지가! 아버지가.................."

지난 설날이후 거의 매주마다 아버지를 찾아 뵙습니다. 바로 그저께에도 뵙고 올라왔습니다. 차마 발걸음을 돌리기 힘들었지만 어쩔 수 없이 아버지를 떠나 삶의 현장으로 돌아왔습니다.

"아버지 또 올께요."라며 아버지 손을 잡았습니다. 아버지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드시며 오지 말라는 의사표현을 하셨습니다. 서울에서 대구로 대구에서 서울로 비행기타고 열차타고 매주 마다 당신을 뵈러 오는 자식들이 얼마나 힘들까 생각하시어 오지 말라 하신 것이겠지요. 아닐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시들어가고 꺼져 가는 당신의 초라한 모습을 자식들에게 보이기 민망해서 그러하셨는지 모릅니다. 그렇게 오지 말라 하신 분이 우릴 지금 찾으시다니...........

'아마 마지막이 되실 줄 모른다. 아마 이제 가실지도 모른다. 어쩌나어쩌나..... 그렇지 않으면 왜 부르셨을까?...... 이제 말씀도 거의 못하시는데 어떻게 우리를 부르셨을까? 어쩌나어쩌나.....'

동생과 만나 착잡한 마음으로 아버지가 계신 대구 경북대 병원으로 날아갔습니다.

"아버지, 저희들 왔습니다."

아버지의 손이 저의 손을 찾는 듯 소리나는 쪽으로 흔들리며 다가왔습니다.
아버지의 손을 잡았습니다.
순간 가슴이 뭉클해지며 눈물이 쏟아질 뻔했습니다.

아버지의 손. 아버지의 손.
30여년 전 초등학교 입학식 날.
곱게 한복을 입으신 어머님의 손을 잡은 다른 아이들과는 달리 키가 작은 저는, 키 크시고 잘 생긴 우리 아버지 손을 잡고 학교에 갔습니다. 아버지는 우리 동네에서 아니 이 세상에서 제일 키가 크시고 제일 잘 생기셨습니다.
제 손을 따뜻하게 잡아주시는 아버지의 커다란 손을 잡고 저는 씩씩하고 당당하게 학교로 갔습니다.
교실에서 담임선생님이 어린 입학생들을 하나하나 호명하실 적에 아버지는 제게 이렇게 말하셨습니다. "큰소리로 대답하거라." 그러시면서 절 한 팔로 들어 가슴에 안았습니다. 전 그 때 참 작은 아이였습니다.
'황보근영' 선생님의 호명소리에 큰소리로 "예!"라고 하였습니다.
"참 잘했다"라며 아버지께서 작은 목소리로 제 귀에 대고 말씀하셨습니다. 많은 아이들과 엄마들이 고개를 돌려 저를 쳐다봤습니다. 그 순간 저는 가장 높은 곳에 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렇게 기분 좋은 입학식을 마치고 다시 학교 갈 때처럼 아버지의 손을 잡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당당하시고 포근하신 아버지의 크-은 손을 잡고 돌아왔습니다.

2001. 3. 23 一如 황보근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