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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들

아버지 - (3) 안녕히 가세요.: 임종(臨終)

by 문촌수기 2013. 1. 2.

아버지 - (3) 안녕히 가세요.: 임종(臨終)

"오늘 밤을 넘기시지 못하겠다. 마음 단단히 먹고 절대 소란스럽게 울지말거라. 조용히 조용히 일을 처리해라. 그래도 느그 아부지, 참 욕심많은 사람이재. 참 희얀체? 한 번도 찾아오지 않던 사람들이 오늘따라 다 찾아오고, 이제사 보고싶은 사람 다 보시고 자식들 다 불러놓고 가실라카네. 참말로 사람욕심 많은 사람이제."

오랫동안 입원실에서 아버지 병 수발을 하시며 지칠대로 지치신 어머니는 자식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올해 어머니 칠순이신데..... 한 평생을 같이 사셨던 사랑하는 사람을 저 세상으로 보내시는 분치고 너무나 덤덤하십니다.

고통은 살아있는 자의 빚이였던지 아버지에게는 이제 고통마저도 사라졌습니다.
다만 남아있는 이승에서의 아름다운 추억과 고통의 기억들을 모두 버리시기 위해 가프게 가프게 숨만 몰아쉬십니다. 이제 우리 형제 그리고 엄마, 아부지 그렇게 옛날같이 시집장가 가지않고 가난했지만 행복하게 한자리에서 살았던 우리 식구들만 다 모여있습니다. 며느리도 사위도 손주도 다 집에 보내시고, 매일같이 형님곁을 떠나지 않고 말동무되시고 간호하시던 아우, 작은아버지도 댁으로 보내시고, 그렇게 옛날로 돌아가 큰아들 둘째아들 세째아들 네째아들 막내딸 그리고 아내만을 당신 곁에 남기시고 이제 숨가프게 마지막으로 이승의 추억들을 지우고 계십니다.

[어버이 살아신제 섬길 일란 다하여라.
지나간 후이면 애닯다 어찌하랴.
평생에 고쳐 못할 일이 이뿐인가 하노라.]

어찌해야합니까? 그 옛날 선비님의 말씀이 다 옳거늘, 새삼 다시 깨닫거늘, 이제 무슨 소용있습니까? 다만 어릴적부터 꿈꾸던 선생님이 되기 위해 당신 곁을 떠날 적에 제게 가르쳐주신 그 말씀 잊지않고 충실하겠습니다.

10여 년전, 큰절을 올리고 나서는 저를, 당신께서는 필을 드시어 하얀 종이에 글을 써시어 건내주시면서 '무슨 말인지 읽어봐라.'고 하십니다.

"학-불-염, 교-불-권(學不厭 敎不倦)"
"그래, 공자님은 '배우기를 싫어하지 아니하시고, 가르치기를 게을리 아니하셨다'한다. 너도 그렇게 하거라."

아버지의 큰 가르침이라 잊지않고 명심하며 그렇게 하겠습니다.

아버지는 마치 손님을 맞이하듯 병실 문을 열어라 손짓하십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 딸들을 찬찬히 살피시더니 눈을 감고 숨결을 잔잔하게 고르십니다. 큰형님은 아버지의 머리를 쓰다듬어 이승의 고통을 어루만져 드리며 귓속말로 말씀드립니다.

"아부지 걱정하지 마시소.
제가 어무이 잘 모시고 동생들 잘 보살필께요.
다른 이들에게 아부지 하신 일, 거두신 일, 명예를 소중히 지킬께요.
주변 사람들로부터 칭찬받게 동생들 키우고 가르칠께요.
걱정하지 마시고 이제 자알 가시소.
걱정하지 마시고 아무 걱정하지 마시고 잘 가시소."

숨결은 사라지듯 조용히 멈추었습니다.

"아부지 이제 가셨나봐요."
"아부지, 잘 가세요."
"아부지, 안녕히 가세요."
"아부지, 나중에 찾아 뵐께요."
"자-알 가시소. 아무 걱정마시고요."

아무도 울지 않았습니다. 속으로만 울었습니다. 너무 조용했습니다.
창밖의 찬 바람만은 슬프게 우웅 울고 있습니다.
향년 73세. 더 노시다 가셔도 되는데 한참이나 노시다 가셔도 되는데......
그때가 신사년 음력 2월 신유 12일, 양력으로 3월 7일 오전 2시 10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