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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들

아버지 - (4) 돌아오소서 : 고복(皐復)

by 문촌수기 2013. 1. 2.

아버지 - (4) 돌아오소서 : 고복(皐復)

Category: 사랑하는 사람들, Tag: 여가,여가생활
09/19/2004 12:28 am
아버지 - (4) 돌아오소서 : 고복(皐復)

아버지가 이세상을 떠나셨는데도 곡읍(哭泣)을 참아야만 하였습니다.
어머니께서 그렇게 하라셨기에 그렇게 했습니다. 아버지를 모시러 오신 저승 손님들께, 건강을 회복하고자 입원하신 병원의 환자와 보호자분, 이승에 남아계신 여러분들께 경망스럽게 결례를 해서는 안된다시며 미리 당부하신 까닭입니다.
최명희의 <혼불>에서 읽은 적이 있습니다. 임종(臨終)의 자리에서 후손들이 너무 애통하여 울부짖으면, 떠나시는 망인의 넋을 소란스럽게 괴롭히는 일이되고 또 망인의 발이 눈물에 젖어 무거운 탓에 가볍고 좋은 곳으로 못 간다고요. 그래도 그래도 쏟아지는 눈물을 참을 길없어, 속으로만 받아내어 내 속은 눈물로 퉁퉁불어 무겁기만 합니다.

아버지 계시던 곳으로 얼른 모셔야 되는데, 할머니랑 사셨던 아버지의 방으로 얼른 모시고 갔어야 했는데 이렇게 병원에서 당신을 떠나보내드리는 저희를 용서하소서. 각오한 일이었건만 그래도 당신을 막상 떠나보내려니 앞뒤가 감감하고 경황이 없습니다. 당신을 모시러오신 사자(使者)님들께 누가 사자밥을 챙겨드렸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행여 아버지의 영혼은 이제 육신을 떠나 당신 계셨던 곳으로 가셨을까 그 혼백을 따라 고향으로 달려갑니다.

당신께서 사랑하는 어머니를 모시고 같이 사셨던 그 고향집 지붕위에 제가 올라갑니다. 그래도 행여나 돌아오실려나, 행여나 길을 잃고 헤매시고 계실지 모를 아버지의 혼불을 다시 불러봅니다.
아버지 평소 입으시어 체백(體魄)이 깃든 웃옷을 들고 지붕에 올라가, 왼손으로는 옷깃을 잡고 오른손으로 옷허리를 잡고서 중천허공에다가 흔들며 외쳐 불러 봅니다.
'아버지 혼백이시여 당신께서 입으시던 이 옷 속으로 다시 돌아오시소'라며 크게 흔들며 크게 외치며 당신을 부릅니다.

"사바세계 남선부주 해동국 대한민국
경상북도 포항시 구룡포읍 성동삼리
영천후인 황보진오 복(復)-복(復)-복(復)-"


[산산히 부서진 이름이여!
허공 중에 헤여진 이름이여!
불러도 주인없는 이름이여!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중략).................................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부르는 소리는 비껴 가지만
하늘과 땅 사이가 너무 넓구나.
...........(하략)................................]
-김소월, <초혼(招魂)>중에서

고복(皐復)하는 이는 망인의 혼백과 정이 지극히 깊은 사람이어야만 떠나시던 발걸음을 돌이켜 다시 돌아오신다는데 당신께서는 저와의 정이 깊지 않았는지 어찌 돌아오지 않으십니까? 이 불효를 어찌하오리까? 이 불효를 어찌하오리까?
'돌아오시라, 돌아오시라, 돌아오시라'라며 목 터지게 고복(皐復)하는 소리에 학전댁 작은 할머니께서만 달려오시어 서럽게 서럽게 곡(哭)을 하십니다. 일찍이 청상과부로 서럽게 사셨던 작은 할머니에게는 크게 의지되신 장조카님이셨으니 어찌 서럽지 않으시겠습니까?

당신의 혼백이 당신의 체백이 깃든 이 옷속에 다시 계실 것이라며 믿으며 지붕위에서 내려옵니다. 아버지 계시는 중천(中天)의 지붕에서 사람사는 세상 땅으로 서럽게 서럽게 내려옵니다. 당신계신 하늘과 내 발딛는 땅 사이가 너무나 넓습니다.

먹을 갈고 큰 붓으로 찍어 내 가슴만한 한지에다 까맣게 멍든 글씨를 써 담벽에다 붙입니다.






이 남녘 반도에서 가장 먼저 떠오른다는 동해의 여명(黎明)이 앞산으로 스미어 드는 찬 새벽입니다.
2001. 3. 26 一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