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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들

아버지 - (6) 불꽃타고 가리라.

by 문촌수기 2013. 1. 2.

아버지 - (6) 불꽃타고 가리라.

아버지는 청빈하신 선비로 한평생을 사시면서 유림(儒林)의 예법과 종문(宗門)의 영예를 소중히 여기시어 헌신하셨건만, 막상 당신 떠나실 적에는 화장(火葬)하실 것을 유언하셨습니다.

"나의 일은 내가 알아 할 터이니 다른 생각은 말아라. 그동안 도와주신 분들에게 은혜를 다 갚지 못한 것이 송구스럽다. 다만 작금 현실은 산사람보다 죽은 자의 터가 너무도 많은 것이 안타까우니 나부터 장묘에 대하여 모범을 보일터이니 너희들도 섭섭하게 생각 말아라. 거듭 당부하니 매사에 소홀히 하지 말라"

종문의 여러 어르신들께는 황당한 결정이었지만 당신의 숭고하신 뜻대로 다비를 올립니다. 고운 옷 갈아입으시고 꽃마차에 오르시어 이 세상 소풍 끝내고 생사윤회 없는 열반의 세계로 돌아가시려 다비장으로 향하십니다.

스님의 요령소리를 따라 천수경이 낭독되고 당신은 저희 곁을 떠나 하늘로 돌아가시고자 불을 타고 오르십니다. 3년 전 당신의 어린 손녀딸이 먼저 타고 오른 저 불꽃으로 당신을 보내드립니다.
'행여나 돌아오시려나, 뜨거운 저 불길에 놀라시어 깨어나시려나' 간절한 마음으로 큰형님은 목이 터지게 절규하며 당신을 불러봅니다.

"아부지요- 집에 불났심더!"
"아부지요- 집에 불났심더!"
"아부지요- 집에 불났심더!"

하여도하여도 당신은 돌아오시지 않으시고 불꽃을 타고 하늘로 돌아가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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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며는,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
------- 천상병 [귀천(歸天)]

"아부지 죄송합니더. 아부지 죄송합니더. 아부지요 증말로 죄송합니더.
이 죄를 어찌 합니꺼? 이 죄를 어찌 합니꺼?
저희를 불쌍히 여기시어 용서하시소.
못난 이 자식의 불효를 원망치 마시고,
그저 '잘 놀다가 간다'시며 마음 편히 가시소.
저희들 달래시며 돌아가시소.

저 하늘에 가시거던
제 딸 주헌이를 찾아 데리고 노시소.
제 갈 때까지 잘 데리고 노시소.
얼마나 컸을까? 얼마나 컸을까?
제 할아버지를 알아보지 못하고 놀라서 울더라도 잘 달래어 안아주시소.
이 죄 많은 애비가 눈물로 널 그리워하더라고 전해 주시소.
아부지요. 아부지요."

2001. 3. 28 一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