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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들

아버지 - (5) 당신의 청춘을 제가 마십니다.

by 문촌수기 2013. 1. 2.

아버지 - (5) 당신의 청춘을 제가 마십니다.

고향집 꽃밭의 동백꽃 붉은 봉오리는 아버지께서 건강하게 돌아오실 때를 고대하면서 제 몸치장에 여념이 없습니다. 사람 좋아하시고 꽃을 좋아하시던 당신에게 예쁜 제 모양새를 자랑하려고 잔뜩 분주한 그 동백꽃 봉오리 앞에서 저는 아버지 혼백을 목 터지게 불렀습니다. 불러도 불러도 돌아오시지 않는 당신이기에 저 동백의 붉은 꽃봉오리는 사랑하는 주인의 열정과 청춘을 보담아 숨기고 있습니다.
어머니와 함께 꽃밭 가꾸시며 자식처럼 아껴주던 저 동백이기에 그 누구보다도 애절하게 당신의 생명을 보담아 숨기고 있습니다.

아버지 혼백께 식상을 올리고 이 죄인들은 아버지 없이 동백꽃처럼 붉은 팥죽을 먹습니다.
어릴 적 동짓날 엄마 곁에 우리형제들 옹기종기 둘러앉아 야단맞아 가면서 새알심 만드는 일을 거들고 팥죽을 먹던 행복하던 때를 떠올립니다. 그 때 아버지께서도 행복하셨겠지요. 그 새알심속에 동전을 감추어두시어 붉은 팥죽 속에 가장 큰 새알심을 찾으려고, 행복을 찾으려고 뒤적이던 때를 떠올립니다.
그때는 우리 아부지, 우리 엄마, 그리고 우리큰 시아, 둘째 시아, 세째 시아, 그리고 나, 동생, 막내아기 그렇게 다 모여 시끌벅쩍 행복했었는데...........지금은 세째 시아, 아버지 없이 우리끼리만 팥죽을 먹습니다.
당신은 살아 생전 세째 아들먼저 잃으시고, 사형제중 둘째와 막내 아우 분들 먼저 세상 보내시고, 그리고 부모님 다 보내시고 그렇게 서럽게 아프게 사셨건만 항시 자애롭고 웃으시며 시끌벅쩍하게 사람 붐비시는 걸 좋아하시더니 오늘 이렇게 많이 모였는데, 울 아부지는 어디 재미난 곳에 가시고 아니 계십니까?
고례에 상중에는 불식(不食)이라 하여 장례 치를 때까지 죄인된 상주는 먹지를 않았다는데, 어찌 죄많은 자식들이 목구멍으로 음식을 삼키겠습니까? 그러나 행여 당신 보내드리는 일에 행여 마구니 끼어 들까 염려하는 마음에 축귀(逐鬼)하는 염원으로 붉은 색의 팥죽을 먹습니다. 당신의 붉은 생명과 청춘을 닮은 그 팥죽을 먹습니다.

아버지 생명 대신 제가 살려고,
아버지 청춘 대신 제가 살려고,
당신의 피를 제가 마십니다.
당신의 혼불을 제가 마십니다.

2001. 3. 27 일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