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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들

아버지 - (8) 나비 되셨습니다.

by 문촌수기 2013. 1. 2.

아버지 - (8) 나비 되셨습니다.

 

다시 일상의 삶으로 돌아왔습니다.
돌아가신 아버지 곁에 머물며 100일 동안이나마 상복을 벗지않고 곡(哭)을 멈춤없이 애통해야만 자식의 도리이건만 세상사 이 죄인을 그렇게 허용치 않아 당신 곁을 떠나 일상으로 돌아옵니다.
상복(喪服)대신 상장(喪章)을 가슴에 달고 돌아옵니다.
망인이 되신 어머니는 상복의 삼베조각으로 상장(喪章)을 만드십니다. 나비모양으로 만들어 제 가슴에 달아주십니다. 적어도 사십구일재까지 만이라도 가무를 삼가며 애비를 여윈 죄 많은 상주되라며 표식으로 달아주십니다.
그렇게 부끄럽게 죄인이 되어 제자들 앞에 서서 감히 가르칩니다.

"각오한 일이었건만 이렇게 아버지를 보내고 나니 참으로 참담하기 그지없구나. 내 너희들에게 꼭 당부하고 싶은 말 있으니, 옛말에 '어버이 살아신 제 섬길 일란 다하여라. 지나간 후이면 애닯다 어찌하랴. 평생에 고쳐 못할 일이 이뿐인가 하노라'하였는데 그 말하나 틀림없구나. 공부하느라 효를 미루지 말고, 지금 너희가 할 수 있는 효를 찾아서 게을리 말며 실천하거라. 건강하고 공대하며 부모 욕되게 하지 말며, 행여 언짢은 일, 고단한 일 있어도 얼굴에 나타내어 걱정 끼쳐드리지 말며, 본분에 충실하며 ....."

참으로 아이들은 사랑스럽게 제 말을 잘 들어 주었습니다. 숙연히 눈물을 글썽거리며 애통한 내 마음을 위로해 주었습니다. "선생님 말씀대로 따르겠습니다. 그렇게 효도하겠습니다." 라는 눈빛을 보내주었습니다. 참 고맙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참으로 보람이 있습니다.

그렇게 일주일쯤 지났습니다.
교탁 앞에 서서 인사를 받으려 하는데 한 학생이 밝은 얼굴로 이렇게 말을 합니다.

"선생님, 리본이 참 멋있어요."

제 가슴에 단 삼베리본을 보고 한 말입니다. 죄인된 상주라는 표식의 상장(喪章)더러 멋있다고 했습니다. 순간 다른 아이들이 미안해하며 어쩔 줄 모르는 듯 했습니다. 저도 당황하여 무슨 말을 해야할까 망설였습니다.

"네가 내 수업을 빠진 적 있니?"라고 물으니 밝게 대답합니다. "아뇨, 한 번도 안 빠졌는데요?"
밝은 아이의 짝궁이 귓속말로 친구에게 무어라 일러줍니다. 그제서야 밝은 아이는 송구스런 얼굴로 당황해 했습니다.

"괜찮다. 공부하느라 세상일을 몰랐구나. 그러나 참다운 공부는 세상공부 아니겠는가? 대학 들어가기 위해 학교공부 교과서공부 충실하지만 어차피 대학에 들어가도 세상 잘살기 위해 공부하는 것 아니겠는가? 잘살기 위한 공부는 학교에서만 배우고 이 앞에 선 선생님에게서만 배우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 배우는 것이 오히려 참된 것이란다. 조금만 여유를 갖고 마음을 열고 눈을 떠서 세상사람들 살아가는 모습을 보도록 하거라. 이 세상이 모두 교실이고, 너희가 보고 만나는 모든 이가 모두 너희들의 스승이란다. 그렇게 가르치지 못한 내가 되레 미안하구나."

며칠이 지났습니다. 평소 밝게 인사하던 여자아이가 오랜만에 만났다며 다가와 인사합니다. 하면서 제 가슴의 리본을 보고 말을 건넵니다.

"선생님, 리본이 참 예뻐요."

옆에 친구가 뭐라 일러주니 어찌할 바를 모르며 "죄송해요. 선생님, 정말 죄송해요"라며 쩔쩔맵니다.

"그래, 괜찮단다. 내가 봐도 예쁘단다.
아버지가 돌아가시어 나비가 되어 내 가슴에 내려앉았지.
내가 봐도 꼭 나비처럼 생겼더구나."라며 달래주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영혼은 죽어 나비로 화(化)한다더니
정말 당신은 나비가 되시어 제 가슴에 내려앉아 계십니다.
노란 나비가 되시어 제 가슴을 떠나지 않고 저와 함께 계십니다.

엄마는 참 재주도 좋으시지. 어쩜 아버지를 이렇게 고운 나비로 만드셨을까?

2001. 4. 8 一如 황보근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