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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들

요즘 아이들. 요즘 어른들.

by 문촌수기 2013. 1. 2.

요즘 아이들. 요즘 어른들.

딸아이 생일이 가까워오는지도 몰랐습니다.
며칠전 저녁밥을 먹은 딸아이가 친구에게 전화를 합니다.
언제부턴가 집 전화기는 딸아이와 아내의 것이 되어 있었습니다.

"■■이야? 나, 쇼니야. 나 생일파티를 열꺼야.
토요일 내가 3만원으로 롯데리아에서 한번 쏠꺼야.
나랑 같이 꼭 가. 으응. 끊어."

"어잉? 이 무슨 소린고? 뭐 쏜다구? 그것도 3만원으로.
그리고 누가 돈을 준댔나?"

아내랑 눈을 휘둥거리며 서로 마주보았습니다.
딸아이의 아홉째 돌이 가까워오는지 그래서 알았습니다.
이런 말을 어디서 배웠는지 요즘 아이들 참 기가 찹니다.

오늘 토요일. 출근한 아내에게서 교무실로 전화가 왔습니다.
딸아이 파티자금(?) 3만원을 식탁 위에 놓고 와야 했는데 깜빡 잊었답니다.
토요일 수업을 마친 후, 사랑하는 딸아이가 '쏜다'는 파티 자금을 식탁에 놓기 위해 잠시 짬을 내어 집으로 왔습니다. 학교 마당 앞에 집이 있으니 복(福) 중에도 큰 복(福)입니다.

쪽지도 하나 남겼지요.
"사랑하는 우리 딸. 생일 축하해요.
오늘 하루 유쾌한 파티 되세요. - 아빠가 -"

행여 딸아이와 하객들을 마주칠까봐 가슴이 괜시리 두근거리며 계단을 내려옵니다.
1층 다 내려 왔는데.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꼬맹이들 소리가 요란합니다.
대여섯 살쯤 보이는 귀여운 꼬맹이들, 유치원 갔다가 엄마께로 오는 길인가 봅니다.

그런데 이게 또 웬일입니까? 이게 무슨 소립니까?

한 머슴아이가 소리칩니다.
"죽을래?"

작은 계집아이가 똑똑한 말솜씨로 나무랍니다.
"그런 건 아빠들이 쓰는 말이야."

지지 않으려는 머슴아이 대꾸합니다.
"아빠만 쓰는 건 아니야."

어떡합니까?
키를 낮추어 그 말싸움에 끼어 들었습니다.

"그런 말 쓰면 나쁜 아이예요. 그죠?"

요즘 아이들을 생각하며 웃음 지어봅니다.
요즘 어른들을 생각하며 또다른 웃음 지어봅니다.
유치원을 가로질러 학교로 다시 돌아갑니다.
가을바람이 유쾌한 토요일 오후의 일이었습니다.

-2001. 11. 3 유쾌한 토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