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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들

우리 잘 사는 거 맞아?

by 문촌수기 2013. 1. 2.

우리 잘 사는 거 맞아?

아침밥을 먹는 식탁에서 아내가 난데 없이 이렇게 말을 건넵니다.

"여보, 우리 잘 살아?"

어잉? 이 무슨 소리고 싶어 숟가락을 입에 물고 멍하니 아내를 바라봅니다.

"우리 지금 잘 사느냐구요?"

이때 뭐라고 말해야 합니까? 만약 당신이라면.

"난데없이 무슨 소리냐? 잘 살다니?" 라며 꽁무니를 빼듯 나무라듯 되물었습니다. 아내의 인상을 훔쳐보니 다행히도 그렇게 슬픈 얼굴은 아니었습니다. 엷은 미소지으며 아내가 말합니다.

"남들 흔히 가는 제주도 여행도 못가보고....이게 뭐야?"

오늘따라 왠 푸념일까 궁금도 하면서 달랩니다.

"가자 언제든지 가자. 당신이 가자면 언제든지 가지."

하긴 그렇네요. 이건 제주도가 아니라 어디든간에 오붓하게 아내와 함께 여행가본 기억이 나질 않으니.....뭐 땜에 이렇게 바쁘게 살았는지 참 미안했습니다. 이게 못살아서가 아닐텐데 말입니다.

이렇게 화두는 던져지고 온 종일 내 귓전엔 아내의 음성이 맴돕니다.

"우리, 잘 살아?"

뭐가 잘사는 건지? 돈이 많아야 잘 사는 걸까? 아니 마음이 편해야 잘 사는 걸까? 이렇게 사는 것이 진짜 잘사는 걸까? 혼자서는 감당하기도 어려운 화두라 수업시간에 아이들에게도 물어봅니다.

"너 잘 사니?"
"뭐가 잘 사는 거니?"
"어떻게 살아야 잘 산다고 하는 거니?"

늦은 퇴근후 저녁밥 먹고 신문을 보는 데 아내가 다가와 앉습니다. 오늘 따라 유별나게 무릎 앞에 바짝 다가앉지 뭡니까?

"여보. 우리 진짜 잘 사는 거 맞아?"

들려있던 신문지가 반으로 꺾입니다. 기가 막힌 듯, 야단을 치듯, 또 치사하게 되물었습니다.

"대체 뭐가 잘 사는건데? 이만하면 잘 사는 거지."

생활고에 찌달려 푸념을 늘어놓는 것이 아니라는 듯 아내는 밝은 얼굴로 날 달래며 말을 잇습니다.

"아니, 지금 우리가 이렇게 사는 것이 제대로 살고 있는 건지 잘 모르겠어."

'잘 사는 것'이 드디어 '제대로 살고 있는 것'으로 바뀌었습니다.
갑자기 쑥스럽고 숙연한 분위기로 바뀌었습니다.
그렇네요. 지금 우리가 이렇게 사는 것이 제대로 사는 건지, 바르게 사는 건지, 잘 사는 건지를 한 번쯤 물어보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네요. 아내가 던진 화두는 오랫동안 내 생각의 여행을 자유롭게 했습니다.
나른한 토요일 퇴근길. 세화유치원 미끄럼틀 위에 어린 꼬맹이들이 신나게 노래를 부릅니다. 대여섯살, 신비로운 나이 때의 공주님들이지요. GOD노랜가 봅니다. 잠시 멈추었을 때 꼬맹이들에게 큰 소리로 물어봅니다.

"얘들아! 너 잘 사니?"
'어라, 유괴범들이 이렇게 묻는 거 아닌가? 말해놓고 보니 나도 이상하네.'

당돌차게도 앙징맞게도 꼬맹이들은 이렇게 되받아치며 말합니다.

"몰라요!"

그러고는 또 목청터져라 노래부릅니다.
참 싱겁게 되었죠. 그렇지만 유쾌합니다. 그런거 모르는 것이 진짜로 잘 사는 것 아닐까요.
여러분들은 지금 잘 사세요?

05월 04일 (03: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