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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들

생명은 두렵습니다.

by 문촌수기 2013. 1. 2.

생명은 두렵습니다.

갑자기 식구 하나가 더 늘었습니다.
딸아이가 오늘 태어난 아기라며 병아리를 데려왔습니다.
부리로 쪼고 다리를 뻗어 알을 깨고 태어나는 것을 다 지켜보았다합니다.
줄탁동시(口卒啄同時)라 하여 병아리가 알 안에서 알껍질 깨뜨리고 나오려 할 적에 어미닭이 밖에서 쪼아 깨뜨리는 것을 도와주는 것을 물었습니다. 어린 딸아이는 말합니다.

"누가 도와주면 안돼. 혼자서 깨고 나와야 돼. 그리고 엄마닭도 없어."

좋은 걸 배웠다 싶어서 대견스럽습니다.
그러고는 바쁘게 학원에 간다며 아빠더러 집을 만들어 주고, 모래를 담아주고, 따뜻한 방에 놓아두고, 운다고 야단치지 말며, 먹이는 아직 주지말라며....쫑알쫑알 주문을 늘어놓고 갔습니다. 무얼 먼저 해야 할지 당황스럽습니다.
잠시도 쉬지 않고, "삐약삐약"웁니다.
어린 것들은 걱정스럽기만 합니다.
이걸 어떻게 키우나? 잘먹고 잘자란다면야 무슨 걱정이겠습니까만, 엄마도 없이 이 어린 것이 어떻게 자랄 지 두려운 생각도 듭니다.
기가 찹니다. 금새 태어난 것이 들리기도 하고 보이기도 한 모양입니다. 움직이는 손가락을 따라와 쪼기도 합니다.
우선 종이박스에 담아놓고 적당한 집을 찾아봅니다.
마침 아이 곤충채집 플라스틱 통을 찾았습니다.
아파트 화단에 내려가 고운 흙을 담아봅니다. 개미가 섞여 있어 한마리 한마리씩 집어 냅니다. 병아리 귀하다고 개미집을 허물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병아리가 개미를 먹을까? 아님, 개미가 병아리를 물까?'
이것도 고민입니다.
개미 섞인 흙을 도로 붓고 어린이 놀이터의 고운 모래를 담았습니다. 저렇게 목이 쉬라 지저귀는데 물이라도 줄까 생각하다가도 딸아이의 주문이 생각나 참았습니다.
새로운 세상이 낯설고 두려워 우는지, 어미 닭을 찾는지, 배고파 우는지 도무지 알 길이 없습니다.
제법 뛰기도 합니다. 제 발에 걸려 넘어졌다 금방 일어납니다.
고참, 신기하기 그지없습니다. 서서 꼬박 졸다가 떨어지는 제 고개에 깜짝 놀라 깨어납니다. 심심해서일까 배고파서 일까? 눈 밑에 제 발가락을 쪼기도 합니다.
손바닥으로 머리위를 살짝 보담아주니 금새 고개를 숙이며 눈을 감습니다. 어미 닭의 날개품으로 생각하는가 봅니다. 그렇게 라도 잠시 두려움 없이 잠들 수 있다면 엄마날개가 되어 줘야겠습니다. 그러기를 40분 이상이 지나서야 잠이 들었습니다.
"휴우~, 이제 자는 구나." 저도 잠시 조심스레 눈을 붙입니다.
딸아이가 돌아오면, 물어봐야겠습니다.

"네가 병아리의 언니가 되는지, 엄마가 되는지..."

살아있는 것은 두렵습니다. 어린 생명은 더더욱 두렵습니다. 새 생명에 기쁨과 두려움이 교차하는 스승의 날 오후입니다.

05월 16일 (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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