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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들

어머니, 조금만 기다리세요.

by 문촌수기 2013. 1. 2.

어머니, 조금만 기다리세요.

추석입니다.

벌써 마음은 외로운 어머니께 가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하는 일이 손에 잡히지 않고 들떠 있습니다. 그래서 이 가을 저녁, 어머니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추석을 되새겨 봅니다. 사랑하는 우리 아이들에게도 이를 가르쳐 주어야겠다며 추석 글을 써 봅니다.

추석(秋夕)!, "가을(추) 저녁(석)" 이 말은 [예기(禮記)]의 '조춘일(朝春日) 추석월(秋夕月)'이란 말에서 비롯되었다는데, 직역하면 "아침 봄 햇살, 가을 저녁 달"이 됩니다. 추석을 중추절이라고 말하는 까닭은 음력 8월 15일이 바로 가을의 한 가운데 있어 붙여진 이름이고 또 추석을 "한가위"라고도 하는데, 이는 신라 때부터 비롯되었던 '가윗날'에서 유래했습니다.

한가위든, 중추절이든, 설날과 더불어 우리민족 최대의 명절인 추석은 가을 한 가운데에서 한해의 결실에 대해 조상님께 감사함을 올리는 '추수감사제'입니다.

추석이 가까워지면 전 아이들에게 과제를 냅니다. 자기의 뿌리를 알 것을 요구합니다. 본관(本貫)은 어디이며, 어떤 문화와 자랑거리를 갖고 있는 지방인지를. 그리고 시조(始祖)는 누구이시며, 어느 때 무엇을 하신 분인지. 자랑스런 선조는 누구이시며, 부모 조부모 외조부모님의 생신 또는 기일과 한자 존함을 알아오도록 과제를 냅니다. 매시간 마다 검사하여 혼을 냅니다. 손바닥도 맞습니다. 목청 높여 가르칩니다.

"제 뿌리도 모르고 무얼 먼저 배우겠다는 거야?
시조(始祖)와 조상 바로 아는 일이 역사공부의 시작이고,
본관(本貫) 제대로 아는 것이 지리공부의 시작이며,
제 부모와 부모님의 부모를 제대로 알고 공경하는 일이
도덕공부 뿐 아니라, 모든 공부의 시작이 아니더냐!"

아이들도 기특하게 제 말을 받아들입니다. 돌아서면 손바닥 맞을 놈 또 나타나지만.

오늘은 새로운 화두(話頭)를 내 주었습니다. 칠판에 큰 글씨로 써 놓았습니다.

"보름달 추석에 웬 반달 송편인가?"

그리고 말했습니다.

"추석 세고 돌아와 한마디씩 말하도록 해라."

보름달이 뜨는 추석에 반달모양의 송편을 먹는 것에 대해 각별한 의미를 붙인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나하나 만이면 반달송편이지만, 나와 네가 같이 만나, 우리가 되어 먹으면 온달이 된다고 말입니다. 이번 추석은 개체로서 존재하는 '나'보다는, 가족과 이웃으로서 존재하는 '우리'를 다시 새겨보아야 할 때입니다.

지난 수해로 전국의 많은 농촌이 힘들고 어려운 추석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한해 농사를 모두 잃고, 집도 잃고, 하물며 사랑하는 가족도 잃어버린 이웃들이 많습니다. 어려운 이웃을 생각해서라도 검소하고 차분하게 추석을 지냈으면 합니다.

어머니, 지겨우시죠? 아들 손주 기다리시느라 많이 지겨우시죠?
아들 줄 고추는 안방에서 말리시고 어머니는 찬 마루에 누워 계시진 않으신지요? 조그만 기다리세요. 곧 갈께요.
어머니, 어쩜 저흴 기다리시는 것이 더 행복하실지도 몰라요.
만나면 곧 떠나보내셔야 하는 그 마음도 이젠 제가 헤아릴 줄도 알게 되었습니다.

2002년 09월 17일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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