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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들

엘리베이터

by 문촌수기 2013. 1. 2.

엘리베이터

이사 온 지 2달.
복도형 아파트에 엘리베이터는 한 개라서 이 놈이 여간 바쁘지 않다. 내려올 적엔 이놈에게 미안하고 운동도 할 겸해서 걸어 내려온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 이렇게 계단 헤아리기를 18번하면 1층에 내려와 있다. 어제나 오늘이나 계단 수는 틀림없을 텐데 내려올 적마다 헤아려 본다.
그러나 올라가기에는 힘에 많이 부친다. 운동부족이라 여겨 운동 삼아 스스로를 달래가서 억지로 10층을 올라본다. 숨이 차고 허벅지가 저린다. 이럴 때 엘리베이터는 참 고맙다.

도회지 사람의 아파트 생활에는 이웃이 없는데 그나마 이웃과 한 자리에 있게 만들어주는 것이 엘리베이터이다. 하지만 좁은 엘리베이터 안에 낯선 사람과 함께 있으면, 그것도 단 둘이 있으면 참으로 서먹하다. 아가씨와 함께 타면 아가씨가 돌아서서 거울을 바라보고, 아줌마와 함께 타면 내가 돌아서서 거울을 바라본다. 다행히 어린아이라도 같이 있으면 자연스럽다. 아이들은 인사를 잘 받아준다.

퇴근하여 집으로 올라가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잡았다. 다행히 나 같은 중년의 남성이 기다려 주었다. 희미한 미소와 인사를 전하고 10층 단추를 눌렀다. 이 분은 11층에 내리시나 보다. 11층 단추에 먼저 불이 들어와 있다. 난 돌아서서 거울을 바라보며 며칠 전 자건거타다 넘어져 다친 턱 밑의 상처 딱지를 만지고 있다.

"땡~". 엘리베이터가 멈추고 문이 열렸다. 함께 있던 중년의 남성이 내리고 문은 다시 닫혔다. 잠시 후, "땡~". 이제 내가 내렸다. 그런데 아뿔샤! 이게 웬일인가? 11층이다.

'이런 일이 있나? ....아니, 그 양반은 뭐가 그리 바빠?'

계단을 내려온다. 10.5층 그러니깐 계단 중간에서 방금 전에 내린 그 신사를 만난다. 둘은 처음보다 조금은 밝게 그러나 민망하게 서로에게 웃음을 전하며 스쳐 오갔다.

'그 참 싱거운 분이네. 왜 내가 내릴 10층에 자기가 내렸담? 먼저 탔으니 먼저 내렸나? 난 뭐냐? 왜 11층에 내렸지? 애당초 같이 내릴 작정이 아니라서 그랬던가?'

아내에게 얘길 했더니 다정한 눈빛과 동정의 미소로 전하는 말.

"덤 앤 더미"
"....................."

아무튼 다음에 다시 만나면 보다 더 반갑게 인사 나눌 수 있게 되겠다. 그렇게라도 이웃끼리 미소지으며 인사 나눌 수 있다면 조금은 바보가 되어도 좋겠다.
<문촌 2003. 8.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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