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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들

사춘기는 브레지어에서부터 오는가보다.

by 문촌수기 2013. 1. 2.

사춘기는 브레지어에서부터 오는가보다.

오학년 딸아이는 요즘 들어 키가 많이 자랐다. 갓난아기 때부터 '롱다리되라 롱다리되라'며 아빠가 주문을 외며 쭉쭉 주물러 주었던 때문일까? 이제 제법 여자(?)가 되어 가는 모습이다. 하긴 브레지어를 차기도 하니깐.

몇달 전 토요일. 그 날짜를 기억해 두었어야 하는데. 방과후 돌아오자마자 딸아이가 친구랑 찜질방에 가게 해달라며 조른다. '어린아이들이 무슨 찜질방이람?' 달래어도 떼를 쓴다. 못 이긴 체하며, 떠들지 말고 물장구 치지 말고 뛰어다니지 말며 어른들께 실례되지 않게 쉬었다 오라며 입욕비와 용돈을 주어 보냈다.

저녁에 돌아온 딸 아이가 찜질방에 다녀온 일을 늘어놓는다.

"누구는 브레지어 찼더라. 참 예뻐. 근데 가슴이 내보다 작아. 엄마! 나도 브레지어 사 줘."

순간 눈이 휘둥그레지며 아내와 눈이 마주쳤다. 아내도 눈을 동그랗게 뜨고 웃으며 바라본다. '아니, 우리 딸이 벌써 이렇게 자랐나? 웃기지도 않네. 아직 어린아인데 웬 브레지어?'

"니가 브레지어를 알어?" TV광고에서 본 멘트를 흉내내어 놀려본다.

"알지~ 근데 엄마꺼 같은 거 말고, 운동선수들 입는 것 같은 거 말야."

'스포츠 브라를 말하는가 보다. 찜질방에 간다는 것부터 요상하더니, 그~참 브레지어까지..'

다시 놀려본다.

"아빠가 함 보자. 얼마나 큰지."
"아잉~ 아빤, 변탠가 봐."
"으앗! 아빨 변태라니?"

한바탕 웃음꽃이 피어난다. 이번엔 아내에게 물어본다.

"당신은 몇 살 때 브레지어 찼어?"
"글쎄~ 기억에 안 나는데. 언니꺼 얻어 차고 다녔는가......"

그러면서 말은 잇는다.

"우리 소헌이 만큼은 브레지어 처음 차는 날을 오랫동안 기억나게 해줄꺼야. 추억으로 만들자. 어떻게 할까? 엄마 아빠랑 모두 나가 브레지어 사고 외식할까?"

"앗싸!" 딸아이가 신났다.

며칠 후, 드디어 날을 잡았다. 딸아이 브레지어 사러 온 식구가 나섰다. 백화점 이 매장 저 매장 몇 군데를 들러서야 어린이용 스포츠 브레지어를 찾았다. 한 개 5천 원. 만화 주인공 캐릭터가 그려져 있고 예쁜 꽃무늬가 수놓아져 있는 브레지어 두 개를 샀다. 탈의실에서 하나를 챙겨 입고 나온 아이에게 엄마 아빠가 참 예쁘다며 박수를 쳐주었다. 딸아이는 외식에 벌써 마음이 가 있다.

"엄마, 중국 코스 음식이란 거 먹어 봤어?"

이건 또 무슨 소린가? 가관이다. 어디서 코스 음식 소릴 들었을까? 요새 아이들의 대화 수준을 종잡을 수 없다. 그래서 결정 본 것이 소문난 중화요리 전문점의 코스음식이다. 썩 내키지 않는 메뉴이지만 딸아이의 '브레지어 추억 만들기'를 위해 엄마 아빠는 맛있게 먹었다.

그 날 이후, 딸아이는 정말 사춘기가 되었나 보다. 가끔은 엄마 야단에 대꾸도 한다. 삐치면 제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고 홀짝거리며 눈물을 흘리고 나온다. 엄마 아빠 따라 나서기보다 친구랑 놀기 더 좋아한다. 제 옷은 제가 고른다며 고집을 피운다. 조금씩 엄마 아빠 곁에서 떨어지려 한다. 정말 사춘기는 브레지어에서부터 오는가보다.

그래도 잠자리만큼은 엄마 품에 안겨 자고 싶은가 보다. 밤이 되면 애교와 어리광을 부려 엄마를 뺏으려 한다. 아동긴지 사춘긴지 몰라도 지금같이 예쁘게 아빠 곁에 늘 있었으면 참 좋겠다.
<문촌 2003. 9. 1>

 

황보근영
at 03/31/2006 10:42 am comment

지금 중학교 2학년. 갈수록 엄마를 닮아 가네요. 사랑하는 사람을 닮아가니 더더욱 예쁩니다.

주향 at 03/18/2006 04:19 pm comment

그 따님 정말 귀엽겟네요.,.. 그런데 그 따님이 아빠 있는데에서 그런 말을 하는게 ㅁ어린 가봐요??

계숙 at 11/22/2004 08:44 am comment

정말 예쁜 따님이네요. 우린 아들만 있어서그런지 애교떠는 거 잘 못 봐요 아빠에겐 딸이 최고라는데 저도 아빠에게 전화라도 해야 겠어요 브래지어 사줄 딸 하나 있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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