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성에도 태종대가 있다.
횡성에도 대학교가 있나?
검색하니, 있었다.
송호대학교라는 전문대학이 있고, 골프 관련 특성화 대학인 한국골프대학교도 횡성 알프스대영CC 내에 있다.
그러나 태종대는 대학교가 아니다.
농담이다.
한겨울, 횡성에 전원주택이 있다는 친구가 놀러가자고 해서 같이왔다.
가는 길에 강원도 눈구경이나 하자해서 치악산국립공원 횡성 부곡탐방지원센터로 들어왔다가 내려가는 길이다.
조선조 3대 태종왕 이방원의 스승인 운곡(耘谷) 원천석(元天錫)은 고려의 멸망에 상심하여 관직을 거부하고 개성(開城)을 떠나 이곳 강림리에 은거하였다. 이방원이 조선조 3대 태종으로 등극하여 왕위에 오르기 전에 스승으로 섬겼던 운곡을 찾기 위해 이곳으로 왔으나, 운곡이 태종과 만나기를 꺼려 태종은 끝내 운곡을 만나지 못하고 돌아갈 수 밖에 없었다. 그 후, 태종이 이 바위에서 스승을 기다리며 머물렀다하여 이곳을 '태종대'라 하였으며 '주필대(駐蹕臺)' 라는 비석을 세워 누각안에 보호하고 있다.









■ 태종대(太宗臺)
Taejongdae
강원특별자치도 문화유산자료
소재지 : 강원특별자치도 횡성군 강림면 강림 2리
태종대는 운곡(耘谷)원천석(元天錫)과 조선왕조 3대 임금인 배종에 관계되는 유적이다.
이 곳은 태종이 운곡을 찾아왔을 때 머물던 곳이라고 하여 '주필대(駐蹕)' 라고 불러오다가 후대에 '태종대 (太宗臺)'라 고쳐 부르게 되었다. 절벽 위의 비각 안에 '주필대(駐蹕臺)' 라고 새긴 비석이 있고 절벽 아래쪽 바위 벽면에는 1723년(경종 3)에 새긴 태종대(太宗臺) 등의 글자가 있다. 근처에 운곡 이야기와 관련된 노구소(老嫗沼)와 횡지암(橫指岩)이 있으며, 치악산에는 운곡이 은거하던 곳이라 전해지는 번암(弁岩)과 누졸재(陋拙齋) 터가 있다.

■ 운곡 원천석(1330-?)
“흥망이 유수하니, 만월대도 추초로다. 오백 년 왕업이 목적에 부쳤으니, 석양에 지나는 객(客)이 눈물겨워하노라” 시조를 남긴,
고려 말 조선 초의 문인으로 당시 혼란한 정계를 개탄하며 개성을 떠나 치악산에 들어가 은거했다고 전한다. 농사를 지어 부모를 봉양하고 이색(李穡) 등과 교유하며 지냈다. 그는 어린 이방원의 스승이었고, 즉위한 태종이 여러 차례 벼슬을 내리고 불렀으나 끝내 응하지 않았다고 한다.
■ 번암(弁岩)과 누졸재(陋拙齋) 터
누졸재는 고려 말의 학자 운곡 원천석 선생이 치악산 변암 아래에 지은 초가집 이름으로, '좁고 누추한 집'이라는 뜻이며, 원천석 선생이 고려 말 망해가는 나라를 보고 은거하며 지낸 장소로 알려져 있다. 현재는 치악산 일대의 유적지로, 원천석 선생과 관련된 장소로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 노구소(老嫗沼)
급기야 태종은 그를 직접 찾아가 설득하려고 하였으나, 이를 미리 눈치 챈 원천석은 한 노파에게 자신이 간 방향과 반대로 가르쳐 줄 것을 부탁하고 떠났다. 그에 태종은 천석을 만나지 못했지만 계석(溪石)에 올라 노파에게 선물을 주고 또 그 아들에게 관직도 주었다고 한다. 자신이 속인 사람이 임금인 것을 안 노파는 그 죄책감으로 인근 소에 투신해 버리고 말았다고 한다.
태종이 올랐던 계석은 태종대(太宗臺)로 노파가 몸을 던진 소는 노구소로 불린다. 예버덩에서 약 6km 떨어진 치악산국립공원 입구에 있다. 아직 초봄인데도 소는 여전히 사람을 잡아먹을 만큼 물이 많았고, 태종대는 기암절벽 위에 기품 있게 서 있었다. 지난해부터 강림면과 주민들이 힘을 모아 노구문화제를 연다고 하니 이곳 사람들에게 원천석과 노구소는 이미 중요한 문화콘텐츠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신진사대부로 성리학 보급에 기여했다는 원천석이야 두 왕조를 섬기지 않는다는 불사이군의 정치적 신념을 지키는 게 한편 정당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임금인지 모르고 속인 일을 두고, 그것도 지엄하신 선비님이 시켜서 한 일을 두고 목숨까지 걸어야 했는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예버덩을 다녀간 문인들은 노파의 죽음은 죄책감이 아니라 두려움이 원인이었을 것이라 말했다고 한다. 지엄하신 선비도 단칼에 처단할 수 있는 게 절대군주이니 일리 있는 추론이다. 고사에 따르면 이 노파는 왕으로부터 선물도 받았고 아들은 현감 자리까지 얻었으니 거짓이 탄로 난다면 죽음을 면키 어려울 수도 있었다.


■ 횡지암(橫指岩)
가래골 북쪽 골짜기에 있는 바위를 가리키는 것으로 ①운곡 원천석 선생이 이바위에 앉아서 제자인 태종 을 잘못 가르쳐 왕자의 난을 일으켰음을 한탄하였다고 하여 빗길로 횡(橫)자와 가르칠 지(指)를 써서 횡지암이라고 한다.
②태종이 스승을 만나러 왔을 때, 노구소에서 만난 노파가 원천석이 간 방향을 “빗 가리켰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