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인 조르바》저자로 잘 알려진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청년 알렉산더》에서 이렇게 적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아시아를 정복하겠다는 알렉산더에게 그것이 “너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라고 물었는데, 알렉산더는 “도시를 정복하고 요새를 만들어 스스로 왕임을 선포하는 것”이라고 말했답니다. 이에 스승인 아리스토텔레스는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들의 ‘정신을 정복’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마음을 얻어 자발적인 복종을 이끌어내지 못하면 아무 소용없다는 뜻이죠. 알렉산더는 그제서야 “아시아인들에게 그리스의 문명을 알리고, 그들에게 야만적인 힘을 절제할 수 있는 통제력과 지고한 선인 자유에 대한 지식을 가르쳐 계몽하겠다”고 말했답니다.
두 명의 마케도니아인, 스승 아리스토텔레스는 사상으로 세계를 통일하였으며, 제자 알렉산더는 정치적 역량으로서 세계를 통일하게 됩니다. 그러나 야만적인 마케도니아에게 정복당한 아테네인들은 알렉산더를 미워하였으며, 당연히 아리스토텔레스도 미워하게 됩니다.
[알렉산더의 죽음과 아리스토텔레스의 망명]
불행하게도 제국의 황제 알렉산더는 일찍 죽고 맙니다(323 B.C). 독재자의 죽음으로 마케도니아는 몰락하고 아테네는 환희의 독립을 맞이하게 됩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기도와 제사를 무용지물이라고 가르친 혐의]로 고발되고, 위대한 현인(賢人) 소크라테스를 죽인 군중들보다 더 강한 적의에 찬 이들에게서 재판을 받고 사형에 당하게 될 운명에 처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는 현명하게도 아테네로 하여금 두번 다시 철학에 대해 씻을 수 없는 죄를 범하지 않게 하기 위해 망명을 선택합니다. 두 번의 죄라니? 첫 번째가 바로 소크라테스를 죽인 죄이며, 두 번째는 바로 자신마저도 죽이는 죄를 말하는 것입니다. 당시 아테네에서는 피고인은 언제나 추방을 선택할 권리를 갖고 있었다합니다. 아마 소크라테스 때에도 그러했을 것입니다. 친구 크리톤의 탈옥 권유마저도 마다하고 “악법도 법이다”며 망명을 선택하지 않고 소크라테스는 당당하게 독배를 마시고 죽었습니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는 그렇게 당당하지 못했습니다. '아테네를 위한다.'는 변명으로 아테네를 떠나게 됩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살과 그리스의 몰락]
사형 선고는 피하였지만 운명은 이미 그를 불렀습니다. 아테네를 떠난 지 2, 3개월 후에 그는 쓸쓸히 죽었습니다(322 B. C). 일설에 의하면 이 늙은 철학자는 급변한 사정에 절망한 나머지 독약을 마시고 자살을 했다고 합니다. 사형은 아니지만 결국 소크라테스처럼 그렇게 제 운명을 다하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같은 해에 아리스토텔레스와 알렉산더를 신랄히 비판하며 아테네 군중들을 흥분시킨 웅변가 데모스테네스도 독약을 마시고 따라 죽었습니다. 그리스는 최대의 지배자, 최대의 철학자, 최대의 웅변가를 모두 잃고 영광의 불꽃을 로마로 전해주면서 역사의 무대를 아쉬워하며 꺼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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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대지성 아리스토텔레스를 욕되게 하는 전설도 있지요.
바로 알렉산더 왕자에게 '여자를 멀리하라'는 가르침을 전하자 이에 앙심을 품은 파리스가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앙갚음을 하면서 제자와 스승을 떼놓기로 작정하며 아리스토텔레스를 유혹하는 이야기랍니다. 그러나 그 이야기는 여기서 생략하기로 합니다. 다만, 그 야담은 확대 재생산되다시피 많이 그려졌으며 그 중 하나를 소개합니다.
작가불명, 아쿠아마닐, '아리스토텔레스와 파리스'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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