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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죽음 이야기

부처님 오신 까닭은?(3)-무상보리도 공양 후

by 문촌수기 2013. 1. 4.

부처님 오신 까닭은?(3)-무상보리도 공양 후

Category: 삶과 죽음에 대하여, Tag: 여가,여가생활
05/15/2005 01:48 pm

부처님 오신 까닭은?(3)-무상보리도 공양후

아버지로부터 제왕의 학을 배우며 성장하던 고타마 싯다르타 왕자는 생로병사의 고통과 뿐만아니고, 사랑하는 이와 헤어져야하는 애별리고(愛別離苦), 미운 사람과 함께 만나야 하는 원증회고(怨憎會苦), 구하려 애쓰지만 얻지 못하는 구부득고(求不得苦), 우리의 오감으로 들어와 쌓여있는 모든 고통인 오취온고(五取蘊苦) 등 수많은 고통을 어떻게 해결할까 명상에 젖어 사색적으로만 변해갑니다.
슛도다나 왕과 왕비의 고민은 이만 저만이 아니었습니다. 궁궐에서는 왕자의 슬픈 번민을 씻어주기 위해 매일같이 즐거운 잔치가 벌어졌습니다. 그래도 왕자의 명상은 끊이지 않습니다.

이제 왕위를 계승할 자격을 가진 싯다르타 태자는 16세가 되어 야소다라를 맞이하여 결혼을 하였으며 아들도 갖게 되었습니다. 아들이 태어났다는 말에 태자는 이렇게 말했답니다.

"라훌라가 생겼구나."

이 말은 장애(障碍)란 뜻입니다. 이 세상에서 그 무엇보다도 소중한 어여쁜 자식이 '장애'라니 이 무슨 말입니까? 고타마 태자에게 있어서는 사랑으로 맺어지는 인연은 수행생활에 장애가 되었는가 봅니다.

그러나 그 어떤 장애(라훌라)도 싯다르타 태자의 출가 결심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싯다르타'라는 이름 자체가 '자기 소원을 모두 이루어주는 사람'이라는 뜻이니, 자기 소원인 출가의 뜻을 어느 라훌라인들 막을 수 있겠습니까?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궁궐 파수꾼들이 태자의 출가를 막고자 궁궐 문을 굳게 지키고 있었지만 태자는 애마 칸타카를 올라타고 훌쩍 궁궐 높은 담장을 넘었습니다. 마부 찬다카만이 칸타카의 고삐를 잡고 함께 날아갔습니다.
사랑하는 아들과 아내를 저버리고, 어머니와 아버지의 사랑과 기대를 일순간에 끊어버리고 한나라의 군왕 될 자리를 내팽개치고 그는 이세상 모든 중생들의 고통을 해방시키리라는 구도의 염원으로 출가를 결행하였습니다.
그때 나이가 스무 아홉살입니다.

그후 구도자 보살(菩薩)로서의 싯다르타 삶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행의 삶이었습니다. 29년동안의 쾌락에서 얻지 못한 진리를 짧은 동안이나마 극도의 고행으로서 '위없는 깨달음'[무상보리]을 얻으려 무진장 애를 썼습니다. 그러나 6년이 되도록 깨달음을 얻지 못하였습니다.

싯다르타 보살은 6년 금식고행의 수행생활을 청산하고 수자타의 우유죽 공양을 받아먹게 됩니다. 수자타가 이 우유죽을 끓이고 있을 때 죽 위에 '만(卍)'자와 같은 상서로운 표적이 나타났답니다. 오른손으로 주걱을 잡고 시계방향으로 돌리면 분명 만(卍)자 비슷한 모양이 생길 것입니다만 그후, '만(卍)'자는 불교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수자타의 우유 죽 공양을 드신 보살은 '위없는 깨달음(무상보리)'를 얻고자 보리수 나무 밑에 자리를 잡고 명상에 들어가셨습니다.


극도의 쾌락과 극도의 고행은 결코 우리들에게 깨달음을 가져다 줄 수 없음을 보살은 가르쳤습니다. 깨달음에 이르는 길은 바로 중도(中道)에 있음을 수자타의 공양으로 가르치십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더니
'무상보리도 공양후(無上菩提 供養後)'인가봅니다.

2001. 5. 1 일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