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이들 ㅡ 브릿지맵과 픽토리텔링 모둠 결과물입니다.
중1 아이들, 진정한 행복이란 무엇인가? 공부하고

[꽃들에게 희망을] 동영상을 보았답니다.

나비 이야기를 나의 이야기로 유추하여 해석하는 브릿지 맵

그리고 '생생하게 상상하며 나의 꿈'을 나비와 같이 예쁘게 그릴 것을 주문 했죠.

<유추하기 = 은유하기 = 의미부여하기>

 

 

 

 

 

 

 

 

 

 

참고> 의미부여 - 스크랩

현상학사전

의미부여 [ , Sinngebung ]

'의미부여'(Sinngebung)란 후설에서는 (1) 언어 표현을 이해할 때에 수행되는 <의미작용>(bedeuten)을 말하는 경우와, (2) 일반적으로 인식작용의 핵을 이루는 지향적 계기를 가리키는 경우가 있다. 전자는 오로지 『논리연구』에서의 한정적 용법으로서 '의미부여() 작용'(bedeutungsverleihender Akt)이라고 바꿔 말하는 쪽이 더 좋은 용례이다. 후자의 용법은 『이념들 Ⅰ』 이후 우리의 인식작용 일반의 본질적 계기로서 추출된 작용을 가리키는 것으로서, 그 후에 부연되어 '의미형성'(Sinnbildung)이라는 용어도 사용되기에 이른다. 이하에서는 (2)의 의미에서의 '의미부여' 작용을 설명한다.

'의미부여'(Sinngebung)란 문자 그대로 '의미'(Sinn)와 '부여'(Gebung)의 두 요소로 성립하지만, 우선 문제로 되는 것이 이 '준다'라는 표현으로서 <준다-주어진다>라는 맞짝개념은 후설이 즐겨 사용한 <은유적>인 표현이다. 후설은 '준다'(geben)라는 하나의 동사의 '능동태-수동태', 요컨대 <준다-주어진다>라는 맞짝을 이루는 표현을 가지고서 우리의 인식 과정에서의 능동-수동의 양 계기를 언표하고자 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지각과 같은 인식작용은 감각을 통해 '감각소여'('감각적 질료')가 '주어지는' 수동적 과정과, 주관의 인식작용이 그 감각소여에 '의미'를 '주어' 하나의 통일체로 형성해가는 능동적 과정으로 이루어진다. '부여', 즉 '준다'라는 표현에서 후설이 표현하고자 했던 것은 <우리의 인식에는 '주어진'(라틴어로는 datum) 요소 이외에 오히려 '주는'(dare) 계기가 있으며, 그것이야말로 인식의 본질적 계기를 이룬다>고 하는 것이었다.

'의미부여'라는 개념을 구성하는 또 하나의 요소, 즉 '의미'는 후설 현상학의 중심 개념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 '지향성'과 불가분의 관계에 놓여 있다. 사실 후설 자신이 지향성이란 대상을 "의미에서 소유하는" 것이라고 말한다[Ideen Ⅰ 185]. 또한 그는 세계존재 자체가 의미부여의 활동을 수행하는 '절대적 의식'('초월론적 주관')을 전제하는 하나의 의미형성체라고도 말한다[Ideen Ⅰ 107 참조].

(2)의 의미에서의 '의미부여'라는 용법은 『논리연구』에서는 그리 많이 보이지 않지만, 이 개념의 원형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 것이 '파악' 내지는 '파악의미'(Auffassungssinn)라는 개념이다. 『논리연구』에서의 지향성 이론에 따르면 지향적 인식작용은 지각, 기억, 원망, 상상과 같은 작용 성격을 규정하는 계기와, 오로지 지향적인 대상관계를 보존하고 있는 계기로 이루어진다고 한다. 같은 대상에 대해 지각, 상기, 의심 등의 다양한 작용이 향해질 수 있다. 그러나 같은 대상이라고 하는 '동일한 대상관계'는 그 경우에도 보존될 수 있다. 그것은 어떤 지향작용에서도 같은 "대상적 파악의 의미"인 '질료'(Materie)가 내재하며, 그것이 작용 성질과 일체가 되어 지향성의 본질을 이루기 때문이다. 요컨대,

의미부여 본문 이미지 1

 

이러한 '파악의미'가 『이념들 Ⅰ』에서의 노에시스-노에마론에서는 '대상적 의미' 내지는 '노에마적 의미'로서 다시 파악되는 것이다. '완전한 노에마'와 같은 의미에서 '대상적 의미'가 말해지는 경우도 있으며, 그 '완전한 노에마'의 비독립적 계기인 '노에마의 핵'이 '의미'라고 불리는 경우도 있다. 후자의 좁은 의미에서의 '의미', 요컨대 '노에마의 핵'으로서의 '의미'는 『논리연구』에서와 마찬가지로 지향작용의 대상관계를 보존하는 계기로서 생각되고 있다.

더 나아가 후설은 그 대상관계의 동일성의 보존을 순수하게 형식적 동일성과 내용적 동일성으로 나누어 생각한다. 요컨대 '대상적 의미'로서의 '완전한 노에마의 핵'은 우선은 구체적인 의미 내용을 지닌 '무엇'(Was)으로서 규정됨과 동시에, 더 나아가서는 그와 같은 '대상적 의미'에는 '중심점'으로서, 요컨대 대상의 동일성을 보존하는 계기로서 <모든 술어 규정을 사상해도 남는 순수한 X>가 바로 동일적인 관계점으로서 갖춰져 있다고 여겨지는 것이다. '의미' 개념에 주목하여 노에마의 구조를 도식화하면 다음과 같다.

<완전한 노에마>='인식된 사물(사태) 그 자체'

(1) '의미'(Sinn) : '노에마적 의미'='노에마의 핵'
① '그때마다의 규정성들'(die jeweiligen Bestimmtheiten) ······ 대상을 나타내는 구체적인 의미 규정
② '순수한 X'(das pure X in Abstraktion von allen Prädikationen)
[① + ②='완전한 의미' : '규정된 양태에서의 대상'(der Gegenstand im Wie seiner Bestimmtheiten)]

(2) '존재'(Sein)
'정립 성격'(die thetischen Charaktere) : '소여방식의 양태에서의 대상'(der Gegenstand im Wie seiner Gegebenheitsweise)
시간 양태
② 존재 양태

이상과 같은 노에마 측에서의 구조에 대응하여 지향작용의 구조 자체도 다음과 같이 분절화된다. 노에시스의 활동을 핵으로 한 인식작용은 <감각에서 주어지는 감각적 휠레(질료)에, 즉 그것 자체는 아직 무정형한(amorphous, 형상을 지니지 않는) 다양성에 모르페(형상)를 주는, 요컨대 어떤 형상에 의해 다양성을 종합적으로 통일하고 그리하여 대상의 통일체를 성립시키는> 일이다. 감각에서 수동적으로 주어지는 휠레에 모르페를 주는 것, 이것이야말로 '의미부여'의 기능이다. 그에 의해 비로소 지향적 대상관계가 성립한다고 한다.

결국 후설에서는 구체적인 인식 내용인 노에마가 형성되는 데는 노에시스 측에서의 능동적인 '의미부여'의 활동이 관여한다는 것이 강조되고 있는 것이다. 그에 더하여 『이념들 Ⅰ』 시기에서의 '의미' 개념에는 '다양-통일' 도식과 '질료-형상' 도식(Hylomorphismus)이 전제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우리의 지향작용을 '의미부여' 내지는 '의미형성'으로 간주한다는 것은 상관적 시점()에서 보면, 현출하는 개개의 대상과 세계 그 자체도 '의미적인 것'으로서 파악한다는 것인바, 후설이 주창한 전대미문의 철학적 방법인 '현상학적 환원'이라는 것도 사실은 개개의 대상이나 세계 자체의 현출이 지니는 그와 같은 '의미성'을 드러내 보이는 하나의 조작이었다고까지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미야하라 이사무( )

참고문헌D. Welton, The Origins of Meaning, The Hague, 1983년.

연관목차

현상학사전 368/983 [네이버 지식백과] 의미부여 [意味附與, Sinngebung] (현상학사전, 2011. 12. 24., 노에 게이이치, 무라타 준이치, 와시다 기요카즈, 기다 겐, 이신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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