밝은 아이, 밝은 성격을 좋아하는데도 빗소리가 좋다.
빗소리에 세상소리가 묻혀서 그런걸까?
조용해서 좋다.
봄이 되면 먼저 꽃을 찾는다.
아이들을 꽃같이 본다.
꽃을 찾다 시를 얻었다.
꽃보다 예쁜 시다.
위로하고 희망을 주는 시다.
비와 바람의 월츠를 본다.
꽃을 피우는 사랑을 본다.
ᆞᆞᆞᆞᆞᆞᆞ
[최영미와 함께 읽는 세계의 명시] 3월의 바람과 5월의 꽃
올해처럼 봄이 기다려지는 해도 없었다. 우리 모두에게 길고도 초조했던 겨울이 드디어 끝났다. 탄핵이 인용되고 처음 맞은 주말. 미세먼지 날리는 3월의 거리에 서서, 들뜬 마음은 벌써 4월을 지나 5월을 기다린다. 수영장을 나와 젖은 머리로 거리를 활보하다 감기에 걸렸다. 몸에 차오르는 봄기운을 누르고 방에 틀어박혀 3월의 노래를 듣는다.
*
3월의 바람과 4월의 비가
어여쁜 5월의 꽃을 데려오지요.
그리고 6월이, 달빛 아래 당신이 오지요
3월의 바람과 4월의 비가 내리면
로맨스가 곧 시작되고,
두 사람을 위한 야외의 천국이 열리지요
3월의 바람과 4월의 비가
사랑스런 5월의 꽃을 데려오지요.
그리고 6월이, 달빛 아래 당신이 내게 오지요
3월의 바람과 4월의 비가
행복한 시간들에 길을 열어주고
그리고 5월, 6월, 사랑의 시간 그리고 당신.
…(후략)
March winds and April showers
Make way for sweet May flowers
And then comes June, a moon and you
March winds and April showers
Romance will soon be ours
An outdoor paradise for two
March winds and April showers
Make way for sweet May flowers
And then comes June, a moon and you
March winds and April showers
Make way for the happy hours
And the May time, June time, love time and you
3월의 시를 찾다가 우연히 발견한 옛날 노래다. 1930년대에 유행하던 노래라는데 작사자도 작곡자도 누군지 모르겠다. “3월의 바람과 4월의 비가 5월의 꽃을 피게 한다”는 영국 속담이 있는데, 오래전부터 전해 내려온 속담을 토대로 만들어진 민요일 수도 있겠다. 밥 딜런이 노벨상을 받는 세상인데, 영국인만 아니라 미국인들도 사랑하는 노래를 세계의 명시로 소개해도 크게 나무랄 사람은 없으리라. 시국 때문인지 요즘의 내 기분은 무거운 시를 읽고 번역하기 싫다. 한가로이 노래나 듣고 흥겨운 리듬에 맞춰 춤이라도 추고픈데…몸이 받쳐주지 못해 아쉽다.
3월의 바람과 4월의 비. 그리고 5월의 꽃. 길게 주절주절 설명하지 않고 짧게 찌르는, 단순 명쾌한 가사가 마음에 와 닿았다. 영국에서는 4월에 비가 많이 온다. 대서양으로부터 불어오는 강한 제트기류 때문이라는데 날씨가 얼마나 변화무쌍한지. 햇볕이 화사한 봄날인 것 같다가 갑자기 비를 뿌리더니, 차디찬 비가 눈으로 변하기도 한다.
영국에 가본 이들은 다 알겠지만, 4월만 아니라 한여름에도 날씨가 고약하다. 런던올림픽이 열리던 해 7월 초에 런던에 며칠 있었는데 정말 날씨가 지랄 같았다(말투가 곱지 않음을 용서하시길). 하루에도 여름과 겨울이 오락가락해 외출할 때 우산과 외투를 챙겨야 한다. 호텔을 나서며 바람막이 재킷을 손가방에 넣고 다니다 필요하면 걸쳤다. 나처럼 어쩌다 며칠 있는 여행자가 아니라 붙박여 살아야 하는 영국인들은 변덕스러운 기후에 익숙해서인지 웬만한 비에는 우산을 꺼내지도 않아, 이슬비에 젖기 싫어 우산을 펼쳐든 내가 무안할 정도였다.
사나운 비와 바람을 맞은 뒤에 꽃이 개화한다. 역경을 겪어본 사람만이 축제를 제대로 즐길 수 있다. 촛불과 태극기가 난무하는 3월을 지나, 4월을 지나 5월에 활짝 웃고 싶다. 유럽의 6월은 춥지도 덥지도 않고, 사랑하기 딱 좋은 아름다운 계절. 최선을 원하지만 최악에도 대비하는 나는, 탄핵이 인용되지 않으면 한국을 떠나겠다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리고 런던행 비행기표를 예약했다. 구매를 하지 않아 예약이 취소됐을 텐데. 세상이 바뀌어 좋기는 한데, 이제 무슨 핑계로 이 나라를 떠나나.
‘March winds and April showers’를 검색하면 비슷비슷한 가사에 편곡을 달리한 곡들이 여럿 뜬다. 미국의 가수이자 배우인 루스 에딩의 아주 느린 발라드는 감칠맛이 나고, 1935년에 아베 리만의 캘리포니아 오케스트라의 반주에 맞춘 남자 가수의 노래는 빠르고 신났다. 영국의 아이들이 입을 맞춰 낭송하는 동시도 들었는데, 가사는 애들의 시가 더 심오하다.
*
3월의 바람과 4월의 비가
5월의 꽃을 피게 하지요.
밤에 붉게 물든 하늘은
양치기의 기쁨이고,
아침에 붉은 하늘은
양치기에게 경고하지요.
비, 비, 저리 가버려.
다른 날에 다시 오렴.
비야, 비야, 어서 가버려.
꼬마 조니는 놀고 싶어;
비야, 비야, 스페인으로 가서,
다시는 네 얼굴을 비추지도 마
March winds and April showers
bring forth May flowers.
Red sky at night,
shepherd’s delight;
Red sky at morning,
shepherd’s warning.
Rain, rain, go away,
come again another day.
Rain, rain, go away,
Little Johnny wants to play;
Rain, rain, go to Spain,
never show your face again
지겨운 비야, 스페인으로나 가버리라는 영국 아이들의 애국심이 귀엽지 않나.
ㅡㅡㅡㅡ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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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t9AoFSJR_f8
3월의 바람과 4월의 비
https://youtu.be/TpvX1SM4aeo
빗소리에 세상소리가 묻혀서 그런걸까?
조용해서 좋다.
봄이 되면 먼저 꽃을 찾는다.
아이들을 꽃같이 본다.
꽃을 찾다 시를 얻었다.
꽃보다 예쁜 시다.
위로하고 희망을 주는 시다.
비와 바람의 월츠를 본다.
꽃을 피우는 사랑을 본다.
ᆞᆞᆞᆞᆞᆞᆞ
[최영미와 함께 읽는 세계의 명시] 3월의 바람과 5월의 꽃
어려서는 봄이 좋은지도 몰랐다. 내가 봄이었으니까. 1980년에 대학생이 돼 서울의 봄을 지나 잔인한 5월을 맞은 뒤, 나는 봄이 싫어졌다. 4월이면 피어나던 최루탄 냄새를 잊고, 나이가 들어 봄이 좋아졌다.
올해처럼 봄이 기다려지는 해도 없었다. 우리 모두에게 길고도 초조했던 겨울이 드디어 끝났다. 탄핵이 인용되고 처음 맞은 주말. 미세먼지 날리는 3월의 거리에 서서, 들뜬 마음은 벌써 4월을 지나 5월을 기다린다. 수영장을 나와 젖은 머리로 거리를 활보하다 감기에 걸렸다. 몸에 차오르는 봄기운을 누르고 방에 틀어박혀 3월의 노래를 듣는다.
*
3월의 바람과 4월의 비가
어여쁜 5월의 꽃을 데려오지요.
그리고 6월이, 달빛 아래 당신이 오지요
3월의 바람과 4월의 비가 내리면
로맨스가 곧 시작되고,
두 사람을 위한 야외의 천국이 열리지요
3월의 바람과 4월의 비가
사랑스런 5월의 꽃을 데려오지요.
그리고 6월이, 달빛 아래 당신이 내게 오지요
3월의 바람과 4월의 비가
행복한 시간들에 길을 열어주고
그리고 5월, 6월, 사랑의 시간 그리고 당신.
…(후략)
March winds and April showers
Make way for sweet May flowers
And then comes June, a moon and you
March winds and April showers
Romance will soon be ours
An outdoor paradise for two
March winds and April showers
Make way for sweet May flowers
And then comes June, a moon and you
March winds and April showers
Make way for the happy hours
And the May time, June time, love time and you
3월의 시를 찾다가 우연히 발견한 옛날 노래다. 1930년대에 유행하던 노래라는데 작사자도 작곡자도 누군지 모르겠다. “3월의 바람과 4월의 비가 5월의 꽃을 피게 한다”는 영국 속담이 있는데, 오래전부터 전해 내려온 속담을 토대로 만들어진 민요일 수도 있겠다. 밥 딜런이 노벨상을 받는 세상인데, 영국인만 아니라 미국인들도 사랑하는 노래를 세계의 명시로 소개해도 크게 나무랄 사람은 없으리라. 시국 때문인지 요즘의 내 기분은 무거운 시를 읽고 번역하기 싫다. 한가로이 노래나 듣고 흥겨운 리듬에 맞춰 춤이라도 추고픈데…몸이 받쳐주지 못해 아쉽다.
3월의 바람과 4월의 비. 그리고 5월의 꽃. 길게 주절주절 설명하지 않고 짧게 찌르는, 단순 명쾌한 가사가 마음에 와 닿았다. 영국에서는 4월에 비가 많이 온다. 대서양으로부터 불어오는 강한 제트기류 때문이라는데 날씨가 얼마나 변화무쌍한지. 햇볕이 화사한 봄날인 것 같다가 갑자기 비를 뿌리더니, 차디찬 비가 눈으로 변하기도 한다.
영국에 가본 이들은 다 알겠지만, 4월만 아니라 한여름에도 날씨가 고약하다. 런던올림픽이 열리던 해 7월 초에 런던에 며칠 있었는데 정말 날씨가 지랄 같았다(말투가 곱지 않음을 용서하시길). 하루에도 여름과 겨울이 오락가락해 외출할 때 우산과 외투를 챙겨야 한다. 호텔을 나서며 바람막이 재킷을 손가방에 넣고 다니다 필요하면 걸쳤다. 나처럼 어쩌다 며칠 있는 여행자가 아니라 붙박여 살아야 하는 영국인들은 변덕스러운 기후에 익숙해서인지 웬만한 비에는 우산을 꺼내지도 않아, 이슬비에 젖기 싫어 우산을 펼쳐든 내가 무안할 정도였다.
사나운 비와 바람을 맞은 뒤에 꽃이 개화한다. 역경을 겪어본 사람만이 축제를 제대로 즐길 수 있다. 촛불과 태극기가 난무하는 3월을 지나, 4월을 지나 5월에 활짝 웃고 싶다. 유럽의 6월은 춥지도 덥지도 않고, 사랑하기 딱 좋은 아름다운 계절. 최선을 원하지만 최악에도 대비하는 나는, 탄핵이 인용되지 않으면 한국을 떠나겠다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리고 런던행 비행기표를 예약했다. 구매를 하지 않아 예약이 취소됐을 텐데. 세상이 바뀌어 좋기는 한데, 이제 무슨 핑계로 이 나라를 떠나나.
‘March winds and April showers’를 검색하면 비슷비슷한 가사에 편곡을 달리한 곡들이 여럿 뜬다. 미국의 가수이자 배우인 루스 에딩의 아주 느린 발라드는 감칠맛이 나고, 1935년에 아베 리만의 캘리포니아 오케스트라의 반주에 맞춘 남자 가수의 노래는 빠르고 신났다. 영국의 아이들이 입을 맞춰 낭송하는 동시도 들었는데, 가사는 애들의 시가 더 심오하다.
*
3월의 바람과 4월의 비가
5월의 꽃을 피게 하지요.
밤에 붉게 물든 하늘은
양치기의 기쁨이고,
아침에 붉은 하늘은
양치기에게 경고하지요.
비, 비, 저리 가버려.
다른 날에 다시 오렴.
비야, 비야, 어서 가버려.
꼬마 조니는 놀고 싶어;
비야, 비야, 스페인으로 가서,
다시는 네 얼굴을 비추지도 마
March winds and April showers
bring forth May flowers.
Red sky at night,
shepherd’s delight;
Red sky at morning,
shepherd’s warning.
Rain, rain, go away,
come again another day.
Rain, rain, go away,
Little Johnny wants to play;
Rain, rain, go to Spain,
never show your face again
지겨운 비야, 스페인으로나 가버리라는 영국 아이들의 애국심이 귀엽지 않나.
ㅡㅡㅡㅡ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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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의 바람과 4월의 비
https://youtu.be/TpvX1SM4a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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