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n't think twice, it's all right.

커피여과지 노래그림 2021. 10. 29. 22:13 Posted by 문촌수기

https://youtu.be/u-Y3KfJs6T0 E key

커피여과지 노래그림,Don't Think Twice, It's All Right 파스텔과 수채물감

2016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밥 딜런이 선정되었을 때 세상은 신선한 충격에 빠졌었다. 각종 매체와 SNS에서는 찬반의 논란이 일어났다. 나는 반겼다. 특히 미국 CNN 방송의 평가에 크게 공감하였다. CNN은 ‘밥 딜런의 노벨상 수상을 둘러싼 논란’을 소개하면서, '페이지(page, 책을 지칭)가 아닌 무대(stage)에서 더 잘 알려진 사람에게 노벨상이 돌아갔다'고 전했다. 문학의 지평이 종이 밖으로도 열려있다는 것을 선언한 것이다.

<Don't Think Twice, It's All Right>은 밥 딜런(Bob Dylan)이 1963년 발표한 두 번째 스튜디오 앨범 <The Freewheelin' Bob Dylan>에 수록된 곡이다. 같은 해 피터 폴 앤 메리(Peter, Paul And Mary)가 커버해 미국 차트 9위에 올랐다. 국내에선 1974년 양병집이 <역(逆)>이란 제목으로 개사해 불렀고, 김광석은 1995년 리메이크 앨범에서 양병집의 버전을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란 제목으로 일부 개사하여 발표했다.

나의 노래그림에서 화자인 기타맨(Guitar Man)은 아이를 무등 태우고 연인으로부터 떠난다. 그러나 그것은 연인들의 진부한 이별의  장면이 아니다. CNN의 논평대로 갇혀있던 책장을 열어 제치고 무대로 떠나고 있다. 나를 구속하는 방에서 벗어나 열린 세상으로 여행하고 있다. 수탉이 우는 새벽은 새로운 시대의 개막이다. 무등을 태운 아이는 결코 빼앗길 수 없는 나의 자유로운 영혼이다. 머뭇거릴 까닭이 없다. 주저할 이유가 없다. 내 이름을 불러봐도 소용없다. 새로운 세상에서 이름 따위가 무슨 소용있어? "그냥 나야(Just Me). 다시 생각할 필요가 없어. 그저 다 좋은거야.(Don't Think Twice, It's All Right)" 행복한 발걸음이다.
밥 딜런(Bob Dylan)의 본명은 로버트 앨런 짐머만이다. 조상에게도 구속되지 않는 바람인지, 평소 동경하던 시인 딜런 토마스의 이름을 성(姓)으로 삼으면서 개명하였다.
하모니카를 불고 있는 딜런의 옆모습은 밀턴 글레이저의 포스터를 빌려왔다. 나의 그림 속의 머리카락에는 'Dylan' 철자로 그의 머리카락을 그렸다.
본래의 포스터 속에는 사이키델릭한 패턴으로 표현된 'Elvis' 철자가 숨겨져 있다. 딜런은 이렇게 말했다. "엘비스의 노래를 듣는 순간 나는 감옥에서 풀려난 기분이었다." 할 정도로 엘비스 프레슬리의 광팬이었으며, 엘비스 프레슬리가 되고 싶어했다.



<Don't think twice, it's all right>
1절
It is no use to sit and wonder why, babe it don’t matter, anyhow
앉아서 왜일까 고민하는 건 소용없어, 어쨌든 중요치 않아, 그대
Babe it don’t matter, anyhow and it is no use to sit and wonder why, babe
그대, 어쨌든 중요치 않아, 앉아서 왜 일까 고민하는 건
If you don’t know by now
지금까지 알지 못했다면
When your rooster crows at the break of dawn
새벽에 네 수탉이 울면
Look out your window and I’ll be gone
창문을 봐 난 갈 테니
You’re the reason I’m traveling on
넌 계속 내가 여행하는 이유
Don’t think twice, it’s all right
더 고민하지 마, 괜찮으니까

2절
It is no use in turning on your light, babe that light I never know
불을 켜야 소용없어, 그건 내가 전혀 몰랐던 빛이야
And it is no use in turning on your light, babe
그래서 불을 켜야 소용없어
I’m on the dark side of the road
난 거리의 어두운 편에 있어
Still I wish there was something
여전히 뭔가 있기를 바라
You would do or say to try and make me change my mind and stay
넌 내 맘을 바꾸고 머물게 하기 위해 뭔가를 하거나 말하겠지
We never did too much talking anyway
어쨌든 우린 너무 말을 하지 않았어
So don’t think twice, it’s all right
그러니 너무 많이 생각하지 마, 괜찮아

3절
It is no use in calling out my name, girl
내 이름을 불러야 소용없어
Like you never did before
전에 네가 한 번도 그러지 않은 것처럼
It is no use in calling out my name, girl
내 이름을 불러봐야 소용없어
I can’t hear you anymore
네 소리가 더 이상 들리지 않아
I’m a-thinking and a-wondering all the way down the road
길을 가면서 생각하고 고민해
I once loved a woman, a child I’m told
한때 한 여자를, 한 아이를 사랑했는데
I give her my heart but she wanted my soul
그녀에게 내 마음을 주었지만 그녀는 내 영혼을 원했지
But don’t think twice, it’s all right
하지만 고민하지 마, 괜찮아

4절
So long, honey babe
안녕, 자기
Where I’m bound, I can’t tell but goodbye’s too good a word, babe
어디 가는 지 말할 순 없지만 굿바이는 참 좋은 말이야
So I’ll just say fare thee well
모두들 잘 있으라고 인사할게
I'm not saying you treated me unkind
네가 나한테 불친절했던 건 말하지 않을게
You could have done better but I don’t mind
넌 더 잘해줄 수 있었지만 난 신경 안 써
You just kind of wasted my precious time
넌 내 소중한 시간을 낭비한 것뿐이니까
But don’t think twice, it’s all right
하지만 심각하게 생각하지 마, 괜찮아

밥 딜런과 친구 수지 로톨로(Suze Rotolo)

 

<아래는, 스크랩>
그 자체로 아이콘이 된 앨범 커버다. 음악평론가 겸 영화감독 카메론 크로우가 자신의 영화 <바닐라 스카이>에서 톰 크루즈와 페넬로페 크루즈를 등장시킨 장면으로 오마주하기도 했다. CBS 레코드의 사진가 돈 허스타인이 1960년대 초 뉴욕 그리니치빌리지의 골목길에서 밥 딜런이 당시 실제 연인인 수지 로톨로(Suzie Rotolo)와 걷고 있는 모습을 찍었다. 행복해 보이는 이 연인은 안타깝게도 3년 후 결별했다. 미국 파슨스 디자인 스쿨에서 강의하고 디자인 서적을 출판하는 등 아티스트로서 활발하게 활동하던 수지 로톨로는 폐암으로 인해 2011년 67세 나이로 자택에서 숨을 거두었다.

곡은 앨범의 표지 모델로 밥과 함께 등장했던 여자 친구 수지 로톨로가 이탈리아에 유학 가면서 헤어져 있을 때 만들었다. 하지만 밥은 이 곡을 단순히 사랑노래로 보는 것에 대해 한 인터뷰에서 “많은 사람들이 이 곡을 러브 송으로 여기는 데, 러브송은 아니예요. 자신의 기분을 더 좋아지게 하기 위해 뭔가를 말할 때 나오는 것들 이예요. 혼잣말하는 것처럼요”라고 말했다.

미국의 역사학자 냇 헨토프(Nat Hentoff)는 “이 곡이 미국의 민속 음악인 Who's Gonna Buy Your Chickens When I'm Gone (내가 없을 때는 누가 너에게 치킨을 사줄까?)에서 멜로디와 가사 몇 소절을 가져온 것이며 포크 가수인 폴 클레이튼(Paul Clayton)이 밥에게 가르쳐 주었다”고 주장했다.

<Who's Gonna Buy Your Chickens When I'm Gone> https://youtu.be/lQBiGzr8bCA

가사는 떠나는 사람이 남아 있는 사람에게 전하는 메시지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유학을 떠난 수지의 입장을 자신으로 대체해서 그린 것이 아닌가 싶다. 버려진 걸 인정하기 힘들어 자신을 위로하기 위해 만든 곡이 아닐까. 가사에는 떠나는 자와 남는 자 서로의 모습이 섞여 있을 것이다.

 

<그레이티스트 히트>와 함께 증정된 밀튼 글레이저의 포스터, 1967

앨범 커버보다 더 먼저 소개하고 싶은 것이 포스터다. 1966년, 의문의 오토바이 사고로 큰 부상을 당한 밥 딜런은 은둔하다시피 모습을 감추었다.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죽어간다는 등 고약한 소문도 떠돌았다. 밥 딜런의 인기곡을 모은 앨범 <그레이티스트 히트> 출시를 앞둔 CBS레코드는 분위기를 반전시키기 위해 뉴욕의 그래픽 디자이너 (로서 10년 후 그 유명한 I ❤NY 캠페인을 탄생시킨) 밀튼 글레이저(Milton Glaser) 에게 앨범과 함께 증정할 포스터 디자인을 의뢰했다. 글레이저는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의 '자화상'에서 영감을 받아 딜런의 옆모습을 검은 실루엣으로, 부시시한 머리카락을 사이키델릭한 패턴으로 표현했다. 자세히 보면 머리카락 사이 엘비스Elvis 철자가 숨겨져 있는데, 딜런은 어린 시절 엘비스 프레슬리의 광팬이었으며, '엘비스 프레슬리'가 되고 싶어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엘비스의 노래를 듣는 순간 나는 감옥에서 풀려난 기분이었다."

나의 노래그림에서는 Getty이미지에 글레이저 그림을 모방하면서, 딜런(DYLAN) 철자를 넣었다.

一而二話 一而二畵, <Don't Think Twice, It's All Right>(좌) &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 노래그림


김광석의 두바퀴로 가는 자동차
https://munchon.tistory.com/m/1522

 

두바퀴로 가는 자동차

2,600년 전의 일이다. 노자께서는 제자들에게 노자를 만난 다음 이렇게 전했다. 그 모습이 어떠했을까? 지금 상상해도 극적인 장면이다. "나는 새는 잘 난다는 것을 알고, 물고기는 헤엄을 잘 친다

munchon.tistory.com


참고> 밀턴 글레이저 I♡NY


세계적인 범죄도시, 파산 직전에 빠진 뉴욕시의 오명을 구하고자 'I♡NY' 디자인(1977년)하여 무상으로 양도한 것으로 유명한 밀턴 글레이저의 디자인

http://www.newstof.com/news/articleView.html?idxno=11051

 

'I♥NY' 밀턴 글레이저의 사망, 그리고 디자이너의 인지도 - 뉴스톱

미국의 세계적인 그래픽 디자이너인 밀턴 글레이저가 지난 6월 26일 91번 째 생일날 세상을 떠났다. 그가 세상을 떠나자 디자이너 치고는 꽤 여러 매체에 그의 부고 기사가 실렸다. 이렇게 많은

www.newstof.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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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바퀴로 가는 자동차

커피여과지 노래그림 2021. 10. 29. 22:09 Posted by 문촌수기
노래그림,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

https://youtu.be/bG41cD0NzRQ

2,600년 전의 일이다. 공자께서는 노자를 뵙고 난 다음에 제자들에게 그 만남의 소감을 이렇게 전했다. 상상해보니 극적인 장면이다.

"나는 새들이 잘 난다는 것을 알고, 물고기들은 헤엄을 잘 친다는 것을 알며, 짐승들은 잘 달린다는 것을 안다. 달리는 짐승은 그물을 쳐서 잡을 수 있고, 헤엄치는 물고기는 낚시를 드리워 낚을 수 있고, 날아가는 새는 화살을 쏘아 잡을 수 있다. 그러나 용이 어떻게 바람과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는지 나는 알 수 없다. 오늘 나는 노자를 만났는데 그는 마치 용 같은 존재였다."ㅡ<사기> 노자한비열전 中

공자가
테제의 철학자라면, 노자는 안티테제(anti-these)의 철학자이다. 노자는 역설과 반동의 철학자이다. 노자는 발상을 전환하라면서 이렇게 선언하였다.
"反者道之動(반자도지동)
거꾸로 가는 것이 도의 움직임이다."
(The movement of the Tao consists in Returning.)
이런 反과 逆의 정신을 노래한 것이 여기에 있다.
ㅡㅡㅡㅡ
역발상을 노래하다.

김광석이 부른 '두바퀴로 가는 자동차'는 밥 딜런의 <Dont think twice, It's all right> 노래(1963년)를 양병집이 번안하여 <역(逆)>이라는제목으로 내놓은 노래를 1995년에 리메이크하여 히트한 곡이다. 세상의 고정관념에 갇혀있지 말고 뒤집고 새롭게 바라보는 역발상의 메시지를 노래하고 있다.

<두바퀴로 가는 자동차> 김광석 노래/
양병집이 1974년 번안한 <역(逆)> 가사를 일부 개사함, 김광석 '다시부르기2' 수록
-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 (95.08.27)


두바퀴로 가는 자동차 / 네바퀴로 가는 자전거
물속으로 나는 비행기 / 하늘로 나는 돛단배
복잡하고 아리송한 세상위로
오늘도 에드벌룬 떠있건만
포수에게 잡혀온 잉어만이
한숨을 내쉰다

남자처럼 머리깍은 여자 / 여자처럼 머리 긴 남자
가방없이 학교가는 아이 / 비오는 날 신문 파는 애
복잡하고 아리송한 세상위로
오늘도 에드벌룬 떠있건만
태공에게 잡혀온 참새만이
긴숨을 내쉰다


한여름에 털장갑 장수 / 한겨울에 수영복 장수
번개소리에 기절하는 남자 / 천둥소리에 하품하는 여자
복잡하고 아리송한 세상위로
오늘도 에드벌룬 떠있건만
독사에게 잡혀온 땅꾼만이
긴 혀를 내두른다

독사에게 잡혀온 땅꾼만이
긴 혀를 내두른다

다이아토닉 하모니카 (HOHNER 크로스오버 G키) 연주

두바퀴로가는자동차G.m4a
3.03MB

내가 그린 두바퀴로 가는 자동차는 바퀴(輪)로 달리지 않는다. 바퀴축이 없이 360도 회전이 가능한 공(球)이다. 지금은 경기도 자동차과학고등학교가 된 나의 교단 첫담임, 나는 아이들에게 급훈으로 '자동차에 미쳐라'고 가르치면서, 바퀴대신 공 하나로 달리는 자동차를 만들어 보라며 그림을 그려주었다. 언제쯤 나올지? 하나의 바퀴로 달리는 자동차는 보았다. 언젠가는 하늘을 날으는 자동차도 나오겠지. 번개로 충전한 드론을 두 손으로 잡고 한겨울에도 비키니를 입고 하늘을 날아가는 시대가 머지않았다. 비키니 입은 사람을 여자로 봐서는 안된다. <두바퀴..>에서는 '여자처럼 머리 긴 남자'를 노래하고 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
<역(逆)> - 양병집 번안곡 1974년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 네 바퀴로 가는 자전거
물 속으로 나는 비행기, 하늘로 뜨는 돛단배
복잡하고 아리송한 세상 위로
오늘도 에드벌룬 떠있건만
포수에게 잡혀 온 잉어만이 한숨을 내쉰다

시퍼렇게 멍이 들은 태양, 시뻘겋게 물이든 달빛
한겨울에 수영복 장수, 한여름에 털갑장 장수
복잡하고 아리송한 세상위로
오늘도 에드벌룬 떠있건만
태공에게 잡혀온 참새만이 눈물을 삼킨다

남자처럼 머리깍은 여자, 여자처럼 머리 긴 남자
백화점에서 쌀을 사는 사람, 시장에서 구두 사는 사람
복잡하고 아리송한 세상위로
오늘도 에드벌룬 떠있건만
땅꾼에게 잡혀온 독사만이 긴 혀를 내민다

<스크랩> “처음엔 쓴 약 같았다”는 ‘딜런 전도사’의 고백

'포크 음악 1세대'인 가수 양병집이 노벨문학상을 탄 밥 딜런의 2집 '더 프리휠링 밥 딜런'의 레코드판(LP)을 보고 있다. 이 앨범엔 양병집이 번안해 부른 '소낙비' 의 원곡 '돈트 싱크 트와이스 잇츠 올 라이트' 등이 실려있다.

양병집은 ‘딜런 전도사’다. 한대수가 딜런의 자유롭고 저항적인 음악 세계를 모티프로 자신만의 음악을 내놨다면, 양병집은 딜런의 노래를 번안하거나 가사를 바꿔 그의 음악을 국내에 직접적으로 알렸다.
‘어 하드 레인스 어 고너 폴’을 번안한 ‘소낙비’와 ‘돈트 싱크 트와이스 잇츠 올 라이트’를 개사해 만든 ‘역’(逆)등이 대표적이다. ‘소낙비’는 가수 이연실이 1973년 불러 인기를 누렸고, ‘역’은 김광석(1964~1996)이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로 제목을 바꿔 불러 더 유명해졌다. 두 곡은 양병집이 1974년 낸 데뷔 앨범 ‘넋두리’에 실렸다.

발매 3개월 만에 폐기된 양병집의 데뷔앨범 '넋두리'. 한국일보 자료사진


양병집의 ‘역’은 딜런의 ‘돈트 싱크 트와이스 잇츠 올 라이트’와 멜로디는 같지만, 가사는 완전히 다르다. 그는 헤어진 연인에게 갈라선 이유를 고민하느라 끙끙대지 말라는 원곡의 노랫말을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 네 바퀴로 가는 자전거’란 엉뚱한 내용으로 바꿨다. 허허실실거리는 듯 하지만 풍자의 날이 매섭다. 양병집은 “원곡에 유머가 느껴져 이를 살리면서도 시대상을 녹여 국내 음악팬들에 공감대를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 곡이 실린 앨범 표지로 담배를 꼬나 문 사진을 사용하는 ‘불경’을 뽐낸다. 유신정권의 서슬 퍼런 검열이 한창이던 1974년, 그의 앨범은 발매된 지 3개월이 안 돼 ‘판매금지처분’을 받았다. 이후 양병집은 비슷한 시기 활동했던 김민기, 한대수와 함께 ‘3대 저항 가수’로 불렸다. 양병집은 “그냥 반항가수 정도로 하자”라며 손사래를 쳤다.
문단에선 노랫말은 멜로디를 위해 쓰여진 것이라, 온전한 문학이라 볼 수 없다는 비판적 목소리도 나온다. 가사가 문학이 될 수 있냐는 질문에 양병집은 “당연하지”라고 답했다. 그는 “딜런이 노랫말로 세상에 끼친 영향을 생각하면 그 어떤 작가보다 문학적 업적이 강렬하다고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딜런 수상에 대한 비판은)질투라고 봐요. 딜런은 한 두 곡 좋은 노래를 낸 게 아니라 50년 넘게 산맥을 이루듯 문학적 서사를 이어왔잖습니까.”
한국일보, 글·사진 양승준 기자 / 일부발췌

<하나이면서 둘인 노래, 하나이면서 둘인 노래>

커피여과지 노래그림~ 밥딜런의 '돈싱크투와이스 잇츠 올 라이트'와 김광석의 '두바퀴로 가는 자동차'(우)

<두바퀴로 가는 자동차, 원조>
밥딜런, 돈싱크 투와이스 잇츠 올 라이트
https://munchon.tistory.com/m/1519

Don't think twice, it's all right.

2016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밥 딜런이 선정되었을 때 세상은 신선한 충격에 빠졌으며, 각종 SNS와 매체에서는 찬반의 논란이 계속 일어났다. 나는 반겼다. 특히 미국 <시엔엔>방송의 평가에 크게

munchon.tistory.com

<反과 逆, 혁신의 자세>
https://munchon.tistory.com/m/1299

그림을 읽자, 노자 사상 픽토리텔링

노자 사상은 어렵다. 어린 학생들에게는 당연히 어렵고 말고다. 우선 두 개의 도(道, 길)를 알자고 했다. 그리고 그 길을 그림으로 읽어보고 이야기하자 했다. 이야기와 그림은 우리의 생각에 흥

munchon.tistory.com

<反者道之動>

도덕경 40장, 반자도지동 약자도지용, 천하만물 생어유 유생어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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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an Redpath / 매기의 추억 가사
https://youtu.be/xvZXeRfRuq4 /C key

커피여과지, 파스텔ᆞ붓펜ᆞ수채물감

누구나 추억의 노래 한 곡 쯤은 있다. 특히 어릴 적 불렀던 노래는 삶의 위안이 되고 일생의 친구가 되었다. '매기의 추억'은 바로 그런 노래였다.
읍내에서 두 시간이나 걸어서 갈 수 있는 고향 할아버지 댁은 산 아래 동네에서 가장 가난했다. 그래서 가장 높은 곳에 있었다. 말 그대로 초가삼간이었다. 그래도 넓은 마당과 키 큰 감나무 두 그루는 어린 나를 넉넉한 부자로 만들어 주었다.
할아버지 댁에는 어린 고모가 둘 있었다. 고모들은 백형과 중형 또래다 보니 형만 셋인 나에겐 누나와 다를 바 없었다. 먹을 것 부족한 시절에 가마니에서 고구마를 몰래 꺼내주며 날 예뻐 해주는 고모랑 노는 게 좋아서 방학 때를 기다렸다. 호롱불 아래에서 들려주는 옛날 이야기며 콩 잎따며 불러 준 노래가 참 좋았다. 그 시절에 고모에게서 배운 노래가 '역마차'와 '매기의 추억'이었다.

<'매기의 추억'>
"옛날에 금잔디 동산에 매기 같이 앉아서 놀던 곳
물레방아 소리 들린다 매기야 네 희미한 옛 생각
동산 수풀은 우거지고 장미화는 피어 만발하였다
물레방아 소리 그쳤다 매기 내 사랑하는 매기야

동산 수풀은 우거지고 장미화는 피어 만발하였다
옛날의 노래를 부르자 매기 내 사랑하는 매기야
동산 수풀은 우거지고 장미화는 피어 만발하였다
물레방아 소리 그쳤다 매기 내 사랑하는 매기야"


<커피로 그린 그림 이야기>
'매기의 추억'은 아메리카 민요로 많이 알려졌지만, 정확하게는 캐나다의 민요이다. 원곡의 제목은 'When you and I were young, Maggie'이다.(너와 내가 젊었을 때에, 매기야)

노래의 사연을 커피여과지에 그려보았다. 오른쪽의 저택은 부농의 딸인 매기네 집이다. 언덕 너머 보이는 작은 건물은 노래의 주인공인 매기가 다니는 시골 학교이다. 매기와 노래의 화자는 동네 언덕에 있는 낡은 물방아간을 자주 찾아 사랑을 언약하였다. 물방아간 동산에는 데이지 꽃이 만발하다. 반세기가 지나 백발이 다 된 화자는 신혼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간직하고 떠난 매기의 영혼과 함께을 추억의 언덕을 찾아온다.

<노래 이야기>
'매기의 추억'은 동심으로 데려다주는 아름다운 노래이지만 슬픈 사연의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다.
장소는 캐나다의 온타리오(Ontario)주, 웬트워스(Wentworth) 카운티의 글렌포드(Glanford) 시골 마을이다.
1859년. 토론토 대학(University of Toronto)을 졸업한 조지 워싱턴 존슨(George Washington Johnson)은 이 마을의 공립학교로 부임온다.
검은 색 곱슬머리에 잘 생긴 총각선생님은 금새 시골 학교의 학생들과 마을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다.
햇살에 반짝이는 금발을 가진 마가렛 매기 클라크(Margaret Maggie Clark)는 조지 존슨이 가르친 제자였다. 그녀의 밝고 명랑한 성격은 동네의 칭송거리였다. 매기는 선생님을 좋아했고 머지않아서 둘은 서로를 사랑하게 되었다. 이때에 매기는 열 여덟 살이고, 조지는 스물 한 살이었다.

존슨이 매기를 가르쳤던 글랜포드의 학교

둘은 글랜포드 마을에서 실개천을 따라 20마일쯤 떨어진 숲 속의 낡은 물방아간을 종종 찾았다. 삐걱거리며 돌아가는 물방아간 주변에는 데이지 꽃이 많이 피어 있었다. 맑고 상냥한 매기를 닮은 꽃이다. 둘은 이곳에서 노래를 함께 부르며 사랑의 밀어를 나누고 앞 날을 함께 할 것을 맹세하였다.

'매기의 추억'의 배경이 된 물레방아간, 이곳에서 조지 존슨과 매기 클라크는 사랑의 서약을 했다.

물방아간에서 실개천을 따라 1마일 쯤 내려오면 매기의 집이 있다. 그녀의 아버지, 조셉 B. 클라크(Joseph B. Clark)씨는 거농이며 마을의 중심적인 인사였다.

매기 클라크의 집

미국 웨슬리언 대학을 졸업한 매기와 신문사의 저널리스트로 있던 조지 존슨은 1864년에 결혼하였다.
클리블랜드에서 꿀보다 더 달콤한 신혼의 행복이 익어갈 무렵, 돌발적인 비극이 찾아왔다. 결혼 1년도 되지않은 1865년 5월 12일에 급작스런 병으로 매기가 죽고 말았다.
슬픔에 잠긴 조지 존슨은 사랑하는 매기의 유해를 화이트 처치 묘지(Whitechurch cemetery)에 묻고 글랜포드의 옛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조지 존슨은 교직을 재개하기 위해 캐나다로 돌아왔다.

조지 존슨이 결혼한 해인 1864년에 쓴 '단풍나무 잎새(Maple Leaves)' 시에 맞춰 제임스 버터필드(James Butterfield)가 1866년에 가락을 붙여 '너와 내가 젊었을 때, 매기' 노래를 지었다.
글랜포드의 물방아간은 지금은 무너지는 폐허가 되었다. 개울의 물은 많이 줄었다.

조지 존슨은 존스 홉킨스 대학(Johns Hopkins University)에서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 코넬 대학교(Cornell University)의 라틴어 교수를 지냈다. 교직을 은퇴하고 어린 아내를 잃은 지 반세기가 넘어서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살다가 1917년에 죽었다. 그의 유해는 캐나다로 옮겨져 해밀턴 묘지(Hamilton Cemetery)에 묻혔다.

조지 W. 존슨의 시 '단풍나무 잎새(Maple Leaves)'는 이렇게 전한다.

"At the eve comes darling Maggie,
Who unto my youth was given,
More than all things else to love me.
And is now a saint in Heaven

With a slow and noiseless footstep.
Comes this messenger divine.
Takes the vacant place beside me,
Lays her gentle hand in mine.

And she sits and gazes at me.
With those deep and tender eyes.
Like the stars so still and saint-like.
Looking downward from the skies.’’

"전야에 사랑하는 매기가 온다.
내 청춘을 누구에게 주었는가?
나를 사랑한다는 것 그 무엇보다도.
그리고 이제 천국의 성자가 되었다.

느리고 소리 없는 발걸음으로
신의 사자가 찾아온다.
내 옆의 빈 자리를 차지하고서
그녀의 부드러운 손이 내 안에 놓인다.

그녀는 앉아서 나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그 깊고 부드러운 눈망울로.
언제나 그랫듯이 별들처럼 성인처럼
하늘에서 내려다 본다."

매기의 비석에는 아래와 같이 새겨져 있다.

"마가렛, 조지 W. 존슨의 아내
1865년 5월 12일 사망. 향년 23세."

(MARGARET, Wife of GEORGE W. JOHNSON Died May 12, 1865 Aged 23 Years)

<이야기 주인공> 조지 존슨과 매기 클라크

조지 W. 존슨
매기 클라크

<poem lylicᆞ시>
ㅡWhen you and I were young, Maggie ㅡ
(매기 ! 그대와 내가 젊었던 때에)

I wandered today to the hill, Maggie
To watch the scene below
The creek and the creaking old mill Maggie
As we used to long ago!
The green grove is gone from the hill, Maggie
Where first the daisies sprung
The creaking old mill is still, Maggie
Since you and I were young !
동산아래 모습들을 보고싶은 마음에 오늘 언덕에 올랐다오
그 옛날 우리가 같이 앉아 놀곤했던 시냇가와
낡고 오래된 물방앗간은 지금도 여전히 그곳에 있었다오
언덕 주위의 푸른 숲은 사라지고 없었다오
사랑하는 그대여!
귀여운 데이지꽃이 처음으로 피어났던 바로 그 숲 말이오
그대와 내가 어릴 적부터 있어 왔던 삐그덕거리던
낡은 물방앗간은 지금도 여전히 그곳에 있었다오

Oh they say that I'm feeble with age Maggie
My steps are much slower than then
My face is a well written page Maggie
And time all along Was the pen.
They say we have outlived our time, Maggie
As dated as songs that we've sung
But to me you're as fair as you were, Maggie
When you and I were young.
아, 사람들은 말하기를 난 너무 늙었다고 그런다오
사랑하는 그대여!
지금 내 걸음걸이는 예전에 비해 너무나 느려졌다오
내 얼굴은 내가 살아온 인생을 말해주는 듯 하다오
오랜 세월이 나를 그렇게 만들었다오
사람들은 우리보고 너무 오래 살았다고들 말을 하고
우리가 불러온 노래만큼이나 시대에 뒤떨어졌다고들 한다오
하지만 내게 그대는 여전히 아름답기만 하다오
그대와 내가 어렸을 때처럼 말이오

가수에 따라서 가사가 조금씩 달리 불려지기도 한다.

'When You and I Were Young, Maggie'
George Johnson 작사
James Austin Butterfield 작곡

♡Donna Stewart & Ron Andrico 노래
가사가 원시에 가깝다. 영상이 추억을 떠올리게 하듯 흑백으로 된게 잘 만들어졌다.
https://youtu.be/R1kNXxV3Ziw
/ C key

< 1 >
I wandered today to the hill, Maggie
To watch the scene below
The creek and the creaking old mill, Maggie
As we used to, long ago.

The green grove is gone from the hill, Maggie
Where first the daisies sprung
The creaking old mill is still, Maggie
Since you and I were young.

나는 오늘 언덕을 거닐었어요, 매기
저 아래의 경치를 내려다보기 위해서
시냇물과 삐걱거리는 옛날 물레방아도 보았어요, 매기. 우리가 오래 전에 같이 앉아서 놀았던.

그 푸른 숲은 언덕에서 없어졌어요, 매기
데이지꽃이 처음 돋아났던
그 삐걱거리는 옛날 물레방아는 지금도 있어요, 매기. 당신과 내가 젊었을 그 때부터.

(Chorus)
And now we are aged and grey, Maggie
The trials of life nearly done
Let us sing of the days that are gone, Maggie
When you and I were young.

그리고 이제는 우리도 늙었어요, 매기
인생의 시련도 거의 다 지나갔어요
지나간 시절을 노래불러요, 매기
당신과 내가 젊었을 그 때를.

< 2 >
A city so silent and lone, Maggie
Where the young and the gay and the best
In polished white mansion of stone, Maggie
Have each found a place of rest.

Is built where the birds used to play, Maggie
And join in the songs that were sung
For we sang just as gay as they, Maggie
When you and I were young.
(Chorus)

도시는 너무도 조용하고 쓸쓸해요, 매기
젊음과 기쁨과 최고만 있던
아름답던 그 흰색 대리석 저택에서, 매기
각각 안식처를 찾아갔어요.

새들이 놀던 곳에도 집을 지었어요, 매기
그들이 지저귈 때 같이 따라부르고
그들처럼 즐겁게 노래했지요. 매기
당신과 내가 젊었을 그 때는.
(후렴)

< 3 >
They say I am feeble with age, Maggie
My steps are less sprightly than then
My face is a well-written page, Maggie
But time alone was the pen.

They say we are aged and grey, Maggie
As sprays by the white breakers flung
But to me you're as fair as you were, Maggie
When you and I were young.
(Chorus)

사람들은 나도 나이가 들어 약해졌다고 해요, 매기
내 발걸음은 그 때보다 힘차지 못해요
내 얼굴은 잘 쓰여진 노트에요, 매기
오직 시간만이 기록할 수 있는.

사람들은 내가 늙고 머리가 희어졌다고 해요, 매기
마치 흰 색으로 스프레이한 것처럼,
그러나 당신은 나에게 언제나 똑같아요, 매기
당신과 내가 젊었을 그 때와 같이.
(후렴)

♡Rob Mashburn의 노래
매기가 죽기 전에 조지 존슨이 지은 시에 가까운 가사이다. 컨츄리풍으로 흥겹게 따라 부르고 싶을 만큼 좋아하게 된 노래이다.
https://youtu.be/gEOWAY18vqc / D key

The violets were scenting the woods, Maggie
Their perfume was soft on the breeze
When I first said I loved only you, Maggie
And you said you loved only me
The chestnut bloomed green through the glades, Maggie
A robin sang loud from a tree
When I first said I loved only you, Maggie
And you said you loved only me

A golden row of daffodils shone, Maggie
And danced with the leaves on the lea
When I first said I loved only you, Maggie
And you said you loved only me
The birds in the trees sang a song, Maggie
Of happier days yet to be
When I first said I loved only you, Maggie
And you said you loved only me

I promised that I'd come again, Maggie
And happy forever we'd be
When I first said I loved only you, Maggie
And you said you loved only me
But the ocean proved wider than miles, Maggie
A distance our hearts could not foresee
When I first said I loved only you, Maggie
And you said you loved only me

Our dreams. they never came true, Maggie
Our fond hopes were never meant to be
When I first said I loved only you, Maggie
And you said you loved only me.

크로매틱 하모니카(C키) 연주로 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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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여과지 그림, imagine

노래듣기> https://youtu.be/Mu_lhMgrv8w

평화를 상상하며 그 그리움을 그려본다. 그리고 노래 불러본다.
(호너 다이아토닉 하모니카 밥딜런 시그니처 C key)

imagine.mp3
1.42MB

누군가가 말했다. 인생(Life)은 love(사랑), imagination(상상력), fun(재미), evolution(진화)이 있어야 행복하다고. 그렇다. 가난한 나의 청춘도 상상이 있었기에 살 맛 났다. '아름다운 사람' 간판을 내건 의상실 안의 마네킹을 보고 반하여 '나타샤'라 이름지어 부르고 피그말리온 처럼 짝사랑하고, 베버의 '무도회에의 권유'에 맞춰 그녀와 함께 상상의 월츠를 춘다. 누가 미친 소리라해도 뭐 어때? 돈 드는 일도 아니고, 남에게 폐 끼치는 일도 아니다. 상상은 자유요, 창조의 씨앗이다.

비틀즈를 좋아했지만 존 레논은 별로 호감이 가질 않았다. 일본 여자랑 결혼했다고, 생긴거나 목소리가 남자답지 못하다고, 폴 매카트니랑 비교해서 한 수 아래 같다고, 어쨌던 젊을 때는 그랬다.
이제와서 생각하면 미안하다.
아니?, 일본 여자를 사랑했다고 별로 마음에 안든다니? 그래 그건 내가 속이 많이 좁았다.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데 아름답지 않은가? 목소리나 생긴 것을 평가하는 것도 내가 어린 탓이다. 타고 나는 것인데, 그것이 나와 다른 것이 또한 아름답지 않은가? 폴 매카트니랑 비교하는 것도 아니다. 재능은 제각기 다르고 쓰임새가 다를 뿐이다. 제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또한 아름답지 않은가?
어쨌거나 나는 그의 <이매이진ᆞimagine>, 이 한 곡의 노래 만으로도 존 레논을 무척 좋아할 수 있다.

'천국이 없다고 상상해보라'니, 시작부터 대단하지 않은가? 인류는 삶은 천국과 지옥을 상상하며 시작되었는데 그것이 없다는 것을 상상해보라니? 그것 자체가 대단한 도발적인 상상이지 않은가?
그래, 천국이 없으면 지옥도 없을거고 다만 머리 위에는 이고 있는 하늘 뿐이다.
우리 모두는 오늘을 살아갈 뿐이다. 어제는 지나 간 것이기에 되돌려 살 수 없다. 내일은 오지 않았기에 당겨 살 수 없다. 백년을 살고 수만년을 산다해고 살아가는 것은 지금 뿐이다. 당연한 것인데도 존 레논을 오늘을 위해 살아갈 것을 상상하라고 한다. 사람들은 오늘을 저당 잡혀 어제를 후회하며 살고, 내일을 희망하며 살아가기 때문이다. 엄밀히 말해 어제도 없고 내일도 없는데도 말이다. 오늘 행복해야 인생이 행복하다. 이 한절 만으로 충분하다. 선지자의 예언이요, 성현의 경전이다. 칼린 지브란의 <예언자>를 읽었고, 노자의 <도덕경>에 한 장을 더한 것 같다. 나도 더해 본다.

沒有天堂 卽沒有地獄 / 只有天空 爲今天而活
(몰유천당 즉몰유지옥 / 지유천공 위금천이활)
~ "천당이 없으니 곧 지옥도 없다. 오직 하늘만 있을 뿐, 오늘을 위해 살라."

'이매이진'을 내 나름대로 해석하여 상상한다. 해와 달이 동시에 떠 있다. 해와 달 속에 '오늘'이 있다. 'Living for Today(오늘을 위해 살라)'는 쬐금 마음에 걸린다. 왜 오늘을 위해 살아야 할까? 오늘이 목적은 아니다. 차라리 '오늘을 살아야(Living Today)' 한다. 삶이 목적이다.
천국과 지옥도 없지는 않다. 여기에 있고, 오늘에 있고, 내 마음에 있다. 미워하면 지옥이고 사랑하면 천국이다. 천사와 악마도 따로 없다. 삶 속에 함께 있고, 내가 곧 천사고 악마이다.
국가는 발 아래 묻혔다. 그 전에 죽고 죽이는 무기부터 폐기되어 광물처럼 묻혔다. 종교는 없어도 성현들은 남아있다. 다르게 해석하여 종교가 생겼고 다툼이 일어나지만, '서로 사랑하며 평화 속에서 살아가라'는 가르침은 하나의 길이다. 인류의 성현들이 아이들과 함께 즐겁게 놀 뿐이다. 말뚝박이놀이에서 아이들이 또 이겼다. 누가 방귀를 뀐걸까? 천사는 코를 막고 재밌어 한다.
아이들의 노는 소리, 웃음 소리가 없는 세상을 상상해보라. 지옥이 따로 있나? 엄마들과 아이들과 성현들이 함께 노는 세상, 나도 아이가 되어 함께 노는 평화로운 세상을 상상한다. 악마가 낙서한 걸까? '개 조심'를 지우고 돼지(豚) 머리를 그려, '돈 조심'하란다. '변'자를 지우고 'U' 자를 그렸다. '소변 금지'가 아니라, '소유 금지'하란다. "안 그러면 어쩔건데?" 악마에게 물어 본다. 쥐 구멍에도 언젠가는 볕들 날이 온다.
"오늘에 살고 평화 속에 살자." (Vivamus hodie, Lets 'vivere in pace)

<Imagine 노랫말 해석>
Imagine there's no heaven
It's easy if you try
No hell below us
Above us only sky
Imagine all the people living for today

Imagine there's no countries
It isn't hard to do
Nothing to kill or die for
And no religion too
Imagine all the people living life in peace, you

You may say I'm a dreamer
But I'm not the only one
I hope some day you'll join us
And the world will be as one

Imagine no possessions
I wonder if you can
No need for greed or hunger
A brotherhood of man
Imagine all the people sharing all the world, you

You may say I'm a dreamer
But I'm not the only one
I hope some day you'll join us
And the world will be as one

(1절)
천국이 없다고 상상해 보세요.
하려고만 하면 쉬운 일이랍니다.
우리 아래 지옥도 없고
위에는 그저 하늘 만이 있죠.
모든 사람이
그저 오늘을 위해 살아가는 것을 상상해 보셔요
(2절)
나라란 게 없다고 상상해 보세요.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랍니다.
누군가를 죽여야 하고,
무엇인가를 위해 죽어야 할 이유도 없는
그리고 종교란 것도 없는
모든 사람들이
평화롭게 사는 모습을 상상해 보세요.
(후렴)
당신은 내가 몽상가라고 말할 지 모르지만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나 혼자 만은 아니랍니다.
언제가 당신도 동참하길 바래요.
그러면 세상은 하나가 될 거에요.
(3절)
아무 것도 소유하지 않는다고 상상해 보세요.
당신이 그럴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욕심을 부릴 일도, 배고플 이유도 없는
한 형제처럼
모든 사람들이
함께 나누며 사는 세상을 상상해 봐요.
(후렴)

+더하기♡♡♡♡
제주 소년이 부르는 이매진
https://youtu.be/YcOfpBrs-FM


[팝송으로 배우는 영어] 존 레논의 ‘Imagine (상상해보세요)' -
https://www.voakorea.com/archive/35-2007-06-06-voa14-91263689

[팝송으로 배우는 영어] 존 레논의 ‘Imagine (상상해보세요)'

안녕하세요? 팝송으로 배우는 영어, Pops English(팝스 잉글리시)의 부지영입니다. 지난 시간에는 Paul McCartney (폴 매카트니)의 ‘Silly Love Songs’의 가사에 관해 전해 드렸는데요. 한심한 사랑노래나

www.voakorea.com

[강헌의 히스토리 인 팝스] [22] 소유냐 삶이냐 | 다음뉴스 -
https://news.v.daum.net/v/20200803031240812

[강헌의 히스토리 인 팝스] [22] 소유냐 삶이냐

“소유가 없는 삶을 상상해 보세요/상상하긴 힘들겠지만/탐욕도 굶주림도 없겠죠/온 인류가 형제애로 충만한 세상을/모든 이들이 세상의 모든 것을 공유하는 것을 상상해 보세요/당신은 내가

news.v.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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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9 일을 잘 할려면, 연장을 다듬어야

카테고리 없음 2021. 10. 24. 10:12 Posted by 문촌수기

책상 머릿 맡에 붙여 놓고 자기 최면을 걸었던 ,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아이들한테도 원효 스님의 '해골 바가지 물' 이야기를 들려주며, '모든 것은 마음이 지어낸 것'이라 했던 유심론(唯心論). 세월을 살다보니 꼭 그런 것 만은 아니더라.
'군자는 자신에게서 구하고, 소인은 남에게서 구한다.' 고 하신 공자님 말씀. 그렇다고 해서 모든 걸 '내 탓' 만으로 돌릴 것도 아니더라.
너무 그렇게 자신을 들추거나 책망하지 말자. 세상 만사가 내 뜻대로, 내 마음대로 되는 것도 아니더다. 세상 탓도 있고, 환경 탓도 있고, 연장 탓도 있고, 남 탓도 있더라. 너무 그렇게 애쓰지 말자.

15 10 子貢問爲仁.
子曰: “工欲善其事, 必先利其器. 居是邦也, 事其大夫之賢者, 友其士之仁者.”
(자공문위인. 자왈: “공욕선기사, 필선리기기. 거시방야, 사기대부지현자, 우기사지인자.”)

자공이 인(仁)의 행함을 묻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工人(장인)이 그 일을 잘하려면 반드시 먼저 그 기구(연장)를 예리하게 만들어야 하니, 이 고을에 살면서 대부의 어진(仁한) 자를 섬기며, 선비의 仁한 자를 벗 삼아야 한다."

Tsze-kung asked about the practice of virtue. The Master said, ‘The mechanic, who wishes to do his work well, must first sharpen his tools. When you are living in any state, take service with the most worthy among its great officers, and make friends of the most virtuous among its scholars.’

공욕선기사, 필선리기기

초계 선생님께서 써 주신 일체유심조

모든 것은 오직 마음이 지어낸 것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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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8 고디바의 나신성인(裸身成仁)

논어와 놀기 2021. 10. 22. 14:03 Posted by 문촌수기

앗? 애마부인 누드화?
아니, 귀족 부인의 나신성인(裸身成仁)을 이야기 하려한다.

John Maler Collier, Lady Godiva, 1898, Oil on Canvas, 141 x 181 cm, Courtesy of the Herbert Art Gallery&amp;amp;amp;amp;amp;amp;amp;amp;amp;amp;; Museum, Coventry

천년도 더 묵은 옛날 이야기이다. 그림 속의 주인공은 고디바(Godiva, 990년경~1067년). 중세 머시아 왕국(현재의 잉글랜드 코번트리)의 백작 부인이다. 전설에 의하면 레오프릭 영주의 무리한 세금징수로 인해 농노들이 고통을 받자, 영주의 부인인 고디바는 세금을 낮춰 줄 것을 영주에게 부탁하였다. 이에 영주는 어린 부인에게 "너의 마음이 진실되다면 알몸으로 동네 한 바퀴 돌고 오라. 그럼 그러겠다"고 조롱하였다. 고심하던 고디바는 영주의 제의를 받아들였다. 이 소문은 그날 밤에 동네로 퍼져 나갔다. 소문을 들은 마을 주민들은 부인이 마을을 돌 때 아무도 내다보지 않기로 하였다. 아름다운 몸과 정결한 영혼을 지켜주기 위해서였다.
드디어 이른 아침에 고디바 부인은 전라(全裸)의 몸으로 말을 타고 성 밖으로 나갔다. 마을 사람들은 부인의 고귀한 영혼과 용기에 감동하여 모두 집안으로 들어가 문과 창을 닫고 커튼을 내려서 고디바 부인에게 경의를 표했다.
그렇게 고디바 부인은 마을을 돌고 성으로 들어 왔다. 흉년이 들어 추수한 것도 별로 없었던 늦가을 날씨였다. 레오프릭 영주는 부인이 설마 그러겠냐며 농담을 던져겠지만, 그래도 뱉은 말이니 그 약속을 지킬 수 밖에 없었다.
'뜻 있는 선비와 어진 사람은 자기 몸을 죽여 인(仁, 사랑의 실천)을 이룬다.'고 하였다. 고디바 부인의 자기 희생적인 나신 또한 살신성인과 다를 바 없다.
고디바 부인은 仁한 사람임에 틀림없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1509 子曰: “志士仁人, 無求生以害仁, 有殺身以成仁.” (자왈: “지사인인, 무구생이해인, 유살신성인.”)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지사와 인인는 삶을 구하여 인을 해침은 없고, 몸을 죽여 인(仁)을 이루는 경우는 있다."
The Master said, "The determined scholar and the man of virtue will not seek to live at the expense of injuring their virtue. They will even sacrifice their lives to preserve their virtue complete."

살신성인

안중근 의사의 옥중 휘호 ~ 삶과 글이 일치한다.

더하기> 고디바(고다이버, Godiva)부인 이야기에서 유래된 말이 있다.
고다이버이즘(godivaism)~전해 내려오는 관습과 상식을 깨는 파격적인 정치 행동을 뜻하는 것. 그러나 여러 영어사전에서 찾아봐도 이런 단어는 등록되어 있지 않았다. 하지만 SNS상에서 두루 번져 있다. 사전에 없다고 말이 없다고 해선 안되겠지.
피핑 톰(Peeping Tom) ~ 훔쳐보는 톰,
엿보는 사람, 관음증 환자 (=voyeur)
이 단어는 영어사전에 등록되어 있다.
비밀은 드러나고, 약속은 깨어져서 이야기 거리가 된다. 영주 부인이 알몸이라는 매혹적인 말에 이끌린 코벤트리의 양복 재단사 톰은 아무도 보지 말 것을 약속했음에도 불구하고 커튼을 살짝 들어 고디바 부인의 나신을 보려 했다. 그 순간 톰은 눈이 멀어 버렸다. 숭고한 고디바의 뜻을 성적 호기심으로 더렵혔기에 신이 벌을 내렸다고 한다.

고디바 초콜릿
ㅡ"한국 고디바 초콜릿 공식몰"에서 옮김
https://www.godiva.kr/basic/ourstory/brand

「GODIVA」 초콜릿에 깃든 사랑의 마음
고디바 창립자인 조셉 드랍스(Joseph Draps)와 그의 아내 가브리엘 (Gabriel)은 레이디 고디바(GODIVA)의 용기와 깊은 마음에 감동을 받아 1926년 "고디바(GODIVA)"라는 브랜드 명을 짓게 되었습니다.
고디바는 레이디 고디바의 사랑의 정신을 초콜릿에 담아 오고 있습니다. 고디바 초콜릿을 맛보는 순간 입안 가득 퍼지는 초콜릿의 달콤함이 모두를 행복하게 하고 사랑을 느끼게 해줍니다.

고디바 공식몰

Our Story 고디바의 브랜드명은 영국의 코벤트리 지역 영주의 부인인 레이디 고디바에서 유래하였습니다. 그녀의 아름다운 뜻과 감성을 담은 초콜릿을 제작하여 고디바라는 브랜드명을 사용하기

www.godiv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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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win' in the wind, 커피여과지, 파스텔, 수채물감

https://www.youtube.com/watch?v=LvPswUuOSi4 /E key

밥 딜런은 '위대한 미국의 가요 전통 속에 시적인 표현들을 새롭게 창조해냈다'는 이유로 스웨덴 한림원으로부터 2016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대중 가수가 노벨 문학상을 받는 것은 이 상이 생긴 1901년 이래로 처음이다. 그는 50여 년을 꾸준히 시를 노래하였다. 그의 노래들은 단순한 대중 가요가 아니라, 인간 삶을 이야기하는 한편의 시였다.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Bob Dylan(밥 딜런)이 쓴 노래라면 모두 노벨 문학상 작품아닌가?
사실 난 그의 노래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중얼거리며 노래하니 가사이해도 어렵고 따라부르기에도 어려웠다. 그나마 내가 가장 좋아하는 포크송 중에 하나는 그의 ‘Blowin’ in the Wind’였다. 오늘은 특별히 노벨문학상 작품상을 노래한다는 의미를 두고 평화의 바람을 그려본다.
시적이면서 철학적인 노래 ‘Blowin’ in the Wind’는 1970년대 대표적인 반전노래, 시위노래로 널리 불려졌다. 우리나라에서는 ‘바람 만이 아는 대답’이라는 제목으로 번안되었다.
3절로 된 이 노래는 모두 9개의 질문을 던지고 있다. 그 질문들은 전쟁과 평화, 구속과 자유에 관해 묻고 있다. 그러나 꼭 9개여야 하는 이유는 없다. 다만 삶은 '끝없는 문제의 여정'이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질문에 대한 답도 없다. 다만 '바람 속에 있다(Blowin' in the wind)'고 힌트를 준다.
인생의 해답이 '바람 속에서 불어오는' 것이라면, 그것을 알 수 있다는 것인가 알 수 없다는 것인가?
바람은 언제나 어디에서나 불어오는 것이라면,
문제투성인 인생살이의 해답도 언제나 우리들 가까이에 '있다'는 것이다.

어느 선생님이 내게 물었다.
"그 대답은 불어오는 바람 속에 있다 했는데, 왜 제겐 바람이 불어오지 않죠?"
내가 말했다.
"일어나 달려 보십시오. 그러면 바람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처음에 만난 그 바람이 맞바람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포기하지 말고 달려 보십시요. 그 맞바람이 머지않아 신바람이 될 것 입니다. 거기에서 대답을 들을 수 있겠지요."

길과 바람을 그린 반 고흐, 길과 바람을 노래한 밥 딜런. 그래서 난 이들을 좋아한다. '바람과 나'를 노래한 한대수도 좋고, '바람이 불어오는 곳'으로 노래하며 떠난 김광석도 참 좋아한다. 내가 걸으면 길이 되고 바람이 불어온다.

♡그림으로 감상하는 노벨문학상,
밥딜런의 Blowin' in the Wind
https://youtu.be/uQAVMqv3yaI /
하모니카 연주 산책

+ Hohner Diatonic, 'Golden Melody' D key

♡ 'Blowin' in the wind' 노랫말 ~ 9개의 질문
(1절)
How many roads must a man walk down
사람은 얼마나 많은 길을 걸어야
Before you call him a man?
사람이라고 불리울 수 있을까?
How many seas must a white dove sail
흰 비둘기는 얼마나 많은 바다를 건너야
Before she sleeps in the sand?
모래밭에서 편안히 잠들 수 있을까?
How many times must the cannon balls fly
얼마나 많은 포탄이 날아가야
Before they're forever banned?
영원히 포탄사용이 금지될 수 있을까?

The answer, my friend, is blowin' in the wind,
친구여, 그 대답은 바람결에 흩날리고 있다네
The answer is blowin' in the wind.
그 답은 불어오는 바람 속에 있다네

(2절)
How many years can a mountain exist
산은 얼마나 오랜 세월을 서있어야
Before it's washed to the sea?
바다로 씻겨갈 수 있을까?
How many years can some people exist
도대체 얼마나 많은 세월을 살아야
Before they're allowed to be free?
자유로와질 수 있을까?
How many times can a man turn his head,
도대체 얼마나 여러 번 고개를 돌려야
And pretend that he just doesn't see?
보이지 않는 척 외면할 수 있을까?

The answer, my friend, is blowin' in the wind,
친구여, 그 대답은 바람결에 흩날리고 있다네
The answer is blowin' in the wind.
그 답은 불어오는 바람 속에 있다네.

(3절)
How many times must a man look up
사람은 얼마나 여러 번 올려다 봐야
Before he can see the sky?
하늘을 볼 수 있을까?
How many ears must one man have
도대체 얼마나 많은 귀가 있어야
Before he can hear people cry?
사람들이 울부짖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How many deaths will it take till he knows
도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어야
That too many people have died?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희생됐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까?

The answer, my friend, is blowin' in the wind,
친구여, 그 대답은 바람결에 흩날리고 있다네
The answer is blowin' in the wind.
그 답은 불어오는 바람 속에 있다네.
The answer is blowin' in the wind.
그 답은 불어오는 바람 속에 있다네.

♡더하기
한 때 이 노래의 원작자가 누구인가를 두고 논란이 일어 났었다. 이 노래를 작사, 작곡한 사람이 밥 딜런이 아니라 어떤 고등학생이었다는 이야기 때문이었다.
1963년 미국의 시사전문 주간지인 ‘Newsweek (뉴스위크)’는 Lorre Wyatt (로리 와이얏)이라는 고등학생이 이 노래를 썼을 지도 모른다는 기사를 실었다. 밥 딜런이 와이얏의 곡을 몰래 베껴서 자신의 이름으로 발표했거나, 아니면 와이얏에게 돈을 주고 곡을 샀을 지도 모른다는 내용이다. 이같은 소문은 와이얏이 다니던 고등학교 학생들이 ‘Blowin’ in the Wind’ 노래가 유명해지기 훨씬 전부터, 그러니까 밥 딜런의 앨범이 나오기 1년 전 부터 와이얏이 학교 음악회에서 이 노래를 부르는 걸 들었다고 주장하면서 나왔다.
와이얏 학생 본인도1천 달러를 받고 밥 딜런에게 노래를 팔았다고 교사에게 얘기하면서 소문이 거의 사실처럼 굳어 졌다. 그러나 그 소문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노래가 유명해지기 전부터 와이얏이 이 노래를 부른 건 사실이지만 몇몇 노래책에 이미 밥 딜런 이름으로 가사와 악보가 나온 뒤의 일이었다.
밥 딜런이 노래를 쓰고 나서 거의 1년이 지난 뒤에야 앨범이 나왔기 때문에 이같은 일이 벌어진 것이다. 와이얏은 10여 년 뒤인 1974년에 가서야 자신이 거짓말을 했다고 고백을 했다.

밥 딜런은 1962년 4월 16일 단 10분 만에 이 노래를 썼다고 한다. 밥 딜런 자신은 이 노래를 그렇게 높이 평가하지 않는다고 했다. 노예들이 불렀던 ‘No More Auction Block’이라는 곡에서 멜로디를 따왔다면서 일할 때 부르는 노래일 뿐이라고 말했다.
또한 그는 1962년 Blowin' in the Wind를 처음으로 관중들 앞에서 부르기 전에 이런 말을 했다.
"이 노래는 저항가요나 그와 같은 부류의 것이 아닙니다. 저는 그런 노래를 쓰지 않습니다.
(This here ain’t no protest song or anything like that, ’cause I don’t write no protest songs)" 그러나 세상은 그를 그냥 두지 않았다. 반전과 평화를 위한 저항 가수로 앞세웠다.
어쨌든 이 노래 덕분에 밥 딜런은 평화를 사랑하는 반전 음악가로 전세계적으로 추앙받게 되었다.

♡No More Auction Block
(흑인들을 더 이상 노예경매대에 세우지 말라)
https://youtu.be/GZVRz6TyPX4 /F key

https://youtu.be/lqQBc76Abj0 /C key

https://youtu.be/XEdPqYCMxXU

연인 사이였던 Joan Baez (조안 바에즈), Peter, Paul and Mary (피터 폴 앤 메리), Elvis Presley (엘비스 프레슬리), Neil Young (닐 영) 등 수많은 가수들이 이 노래를 불렀다.
Tom Hanks (탐 행크스) 주연의 영화, ‘Forest Gump (포레스트 검프)’에서 주인공 포레스트 검프의 여자 친구 Jenny (제니)가 기타를 치며 이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나오는데, 존 바에즈의 목소리였다.

♡ 조안 바에즈 2020
https://youtu.be/DfFwuO0ZPvY

♡Peter, Paul and Mary
https://youtu.be/Ld6fAO4idaI

♡Elvis_Plesley
https://youtu.be/_anTXgrdOkI

♡포레스트 검프 OST, blowin' in the wind
https://youtu.be/1UfD4aKFhL0

https://youtu.be/YfK9MV8HkNQ

https://youtu.be/oho_DejDTjQ



♡No more auction block 가사
* auction block : 노예물건 경매대
*pint : (중량ᆞ용량단위)파인트, 약 0.5리터
*lash : 채찍질

No more auction block for me,
No more, no more.
No more auction block for me,
Many thousands gone.
No more pint of salt for me,
No more, no more.
No more pint of salt for me,
Many thousands gone.
No more driver's lash for me,
No more, no more.
No more driver's lash for me,
Many thousands gone.
No more auction block for me,
No more, no more.
No more auction block for me,
Many thousands g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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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의 길과 자세

카테고리 없음 2021. 10. 18. 14:19 Posted by 문촌수기

혁신이 대세다. 혁신은 무엇이며 혁신의 길은 어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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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 김정희의 유배길과 의문당

카테고리 없음 2021. 10. 18. 13:39 Posted by 문촌수기

제주도에서는 고증에 따라 추사 유배지를 조성하였다. 그리고 그 옆에 세한도의 당우를 모방하여 제주추사관을 건립하였다. 그 안에 세한도사본과 이야기를 비롯하여 대정향교 의문당현판, 기증받은 추사 김정희와 친인척의 관련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대정향교는 제주추사관에서 자동차로 10분 거리에 있다. ‘의문당(疑問堂)’ 당호는 의문을 묻는 집으로 제자들로 하여금 의문을 많이 품고 도를 연마할 것을 주문한다. 다산은 아들들의 공부방에 서향묵미각(書香墨味閣)’이라는 당호를 지어 주었다. 부지런히 공부하며 책향기를 맡고, 글맛을 보라는 아버지의 바람이 담겨있다. 학교 도서관에도 이런 류의 청고(淸高) 고아(古雅)한 당호를 붙이면 어떨까? 단지 책을 보관하는 집이라는 공간이 아니라, 독서와 사색으로 의문을 품고 진리를 탐구하는 활동의 장으로 이름을 불러주는 것도 의미 있겠다.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아이들에게 꽃이 되는그런 도서관이 되었으면 좋겠다.

제주도 대정향교
추사의 글, 대정향교 의문당 현판

제주도에서는 올레길과 같이 추사의 유배길을 집념의 길, 인연의 길, 사색의 길로 세 개의 코스를 개발하였다. 그 중 집념의 길이라 명명된 1코스는 서귀포 김정희 유배지를 시작하여 송죽사터, 첫 번째 유배지 터, 드레물, 동계 정온 유허비, 한남 의숙 터, 정난주 마리아 묘, 남문지 못, 단산, 세미물, 대정향교, 서귀포 추사 유배지를 순환한다.

제주도에서는 올레길과 같이 추사의 유배길을 집념의 길, 인연의 길, 사색의 길로 세 개의 코스를 개발하였다. 그 중 집념의 길이라 명명된 1코스는 서귀포 김정희 유배지를 시작하여 송죽사터, 첫 번째 유배지 터, 드레물, 동계 정온 유허비, 한남 의숙 터, 정난주 마리아 묘, 남문지 못, 단산, 세미물, 대정향교, 서귀포 추사 유배지를 순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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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 김정희 제주도 유배 생활

카테고리 없음 2021. 10. 18. 13:20 Posted by 문촌수기

유배지 제주에서 피어나는 추사의 인문향기

이미 10년 전에 종결된 윤상도의 옥사(獄死)’ 사건이 다시 재론되면서 당시 집권 세력들의 탄핵을 받은 추사는 1840(헌종6)에 제주도까지 유배되어 왔다. 추사의 유배길은 충청도 천안, 전라도 완주, 해남의 대흥사와 일지암을 지나고 완도에서 배를 타고 제주도에 들어온 후 유배지인 지금의 서귀포 대정읍으로 들어왔다. 1848(헌종14) 해배될 때까지 8년 남짓을 육지에서 멀리 떨어진 제주도에서 외로운 유배생활을 하였다.

제주도의 유배 생활은 그의 삶에 있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시기였다고 볼 수 있다. 추사는 예로부터 전해지는 여러 서체를 익히고, 그에 대한 연구를 바탕으로 독창적인 추사체를 유배 생활 중에 완성하였다. 추사는 자신의 서예 필법을 다음과 같이 강조하였다. “가슴 속의 맑고 고상하며 예스럽고 우아한 뜻은 가슴 속에 있는 문자향과 서권기가 아니면, 능히 팔 아래의 손끝으로 발현시킬 수 없다. 또한 이것은 흔히 보는 해서(楷書) 같은 것에 비할 바가 아니다. 그리하여 모름지기 가슴속에 문자향과 서권기를 갖추고 나서야 예서법의 근본이 되며 예서 쓰는 신통한 비결이 된다(胸中淸古高雅之意又非胸中文字香書卷氣不能現發於腕下指頭.....須於胸中先具文字香書卷氣爲隸法張本이요 爲寫隸神訣이라)”. 한마디로 청고고아한 뜻(淸高古雅之意)과 문자향 서권기(文字香書卷氣)가 있어야만 글을 쓸 수 있다 하였다. 많은 독서와 사색을 통해 인문적 교양이 그 사람의 몸에 배었을 때야 비로소 가능하다.

추사는 우리 문인화의 최고봉으로 평을 받는 세한도(歲寒圖)(국보 제180)도 이곳에서 그렸다. 추사가 유배 생활 중 남긴 5181수의 시와 가족과 친구들에게 보낸 많은 서신이 현재까지도 전해지고 있다. 예술가로서의 추사는 무려 제자가 삼천 명에 이른다고 할 정도로 교육 활동에도 왕성하였다. 흥선대원군을 비롯하여 우선 이상적, 소치 허련 등이 있으며, 제주도 유배 중에도 대정현 훈장 선생인 강사공(姜師孔) 등 지역의 수많은 제자들이 그로부터 학문을 전수받았다. 추사의 내종사촌 민규호는 추사가 머물고 있는 제주도를 두 번이나 방문하였다. 그때의 추사 유배지 상황을 이렇게 기록하였다.

귀양을 사는 집에 머무르니 멀거나 가까운 데에서 책을 짊어지고 배우러 오는 사람들이 장날 같이 몰려들었다. 겨우 몇 달 동안에 인문이 크게 피어나 문채 나는 아름다움은 서울풍이 있게 되었다. 곧 탐라의 거친 풍속을 깨우친 것은 공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유배지에서 피어나는 추사의 인문향기

이미 10년 전에 종결된 윤상도의 옥사(獄死)’ 사건이 다시 재론되면서 당시 집권 세력들의 탄핵을 받은 추사는 1840(헌종6)에 제주도까지 유배되어 왔다. 추사의 유배길은 충청도 천안, 전라도 완주, 해남의 대흥사와 일지암을 지나고 완도에서 배를 타고 제주도에 들어온 후 유배지인 지금의 서귀포 대정읍으로 들어왔다. 1848(헌종14) 해배될 때까지 8년 남짓을 육지에서 멀리 떨어진 제주도에서 외로운 유배생활을 하였다.

제주도의 유배 생활은 그의 삶에 있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시기였다고 볼 수 있다. 추사는 예로부터 전해지는 여러 서체를 익히고, 그에 대한 연구를 바탕으로 독창적인 추사체를 유배 생활 중에 완성하였다. 추사는 자신의 서예 필법을 다음과 같이 강조하였다. “가슴 속의 맑고 고상하며 예스럽고 우아한 뜻은 가슴 속에 있는 문자향과 서권기가 아니면, 능히 팔 아래의 손끝으로 발현시킬 수 없다. 또한 이것은 흔히 보는 해서(楷書) 같은 것에 비할 바가 아니다. 그리하여 모름지기 가슴속에 문자향과 서권기를 갖추고 나서야 예서법의 근본이 되며 예서 쓰는 신통한 비결이 된다(胸中淸古高雅之意又非胸中文字香書卷氣不能現發於腕下指頭.....須於胸中先具文字香書卷氣爲隸法張本이요 爲寫隸神訣이라)”. 한마디로 청고고아한 뜻(淸高古雅之意)과 문자향 서권기(文字香書卷氣)가 있어야만 글을 쓸 수 있다 하였다. 많은 독서와 사색을 통해 인문적 교양이 그 사람의 몸에 배었을 때야 비로소 가능하다.

추사는 우리 문인화의 최고봉으로 평을 받는 세한도(歲寒圖)(국보 제180)도 이곳에서 그렸다. 추사가 유배 생활 중 남긴 5181수의 시와 가족과 친구들에게 보낸 많은 서신이 현재까지도 전해지고 있다. 예술가로서의 추사는 무려 제자가 삼천 명에 이른다고 할 정도로 교육 활동에도 왕성하였다. 흥선대원군을 비롯하여 우선 이상적, 소치 허련 등이 있으며, 제주도 유배 중에도 대정현 훈장 선생인 강사공(姜師孔) 등 지역의 수많은 제자들이 그로부터 학문을 전수받았다. 추사의 내종사촌 민규호는 추사가 머물고 있는 제주도를 두 번이나 방문하였다. 그때의 추사 유배지 상황을 이렇게 기록하였다.

귀양을 사는 집에 머무르니 멀거나 가까운 데에서 책을 짊어지고 배우러 오는 사람들이 장날 같이 몰려들었다. 겨우 몇 달 동안에 인문이 크게 피어나 문채 나는 아름다움은 서울풍이 있게 되었다. 곧 탐라의 거친 풍속을 깨우친 것은 공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이미 10년 전에 종결된 윤상도의 옥사(獄死)’ 사건이 다시 재론되면서 당시 집권 세력들의 탄핵을 받은 추사는 1840(헌종6)에 제주도까지 유배되어 왔다. 추사의 유배길은 충청도 천안, 전라도 완주, 해남의 대흥사와 일지암을 지나고 완도에서 배를 타고 제주도에 들어온 후 유배지인 지금의 서귀포 대정읍으로 들어왔다. 1848(헌종14) 해배될 때까지 8년 남짓을 육지에서 멀리 떨어진 제주도에서 외로운 유배생활을 하였다.

제주도의 유배 생활은 그의 삶에 있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시기였다고 볼 수 있다. 추사는 예로부터 전해지는 여러 서체를 익히고, 그에 대한 연구를 바탕으로 독창적인 추사체를 유배 생활 중에 완성하였다. 추사는 자신의 서예 필법을 다음과 같이 강조하였다. “가슴 속의 맑고 고상하며 예스럽고 우아한 뜻은 가슴 속에 있는 문자향과 서권기가 아니면, 능히 팔 아래의 손끝으로 발현시킬 수 없다. 또한 이것은 흔히 보는 해서(楷書) 같은 것에 비할 바가 아니다. 그리하여 모름지기 가슴속에 문자향과 서권기를 갖추고 나서야 예서법의 근본이 되며 예서 쓰는 신통한 비결이 된다(胸中淸古高雅之意又非胸中文字香書卷氣不能現發於腕下指頭.....須於胸中先具文字香書卷氣爲隸法張本이요 爲寫隸神訣이라)”. 한마디로 청고고아한 뜻(淸高古雅之意)과 문자향 서권기(文字香書卷氣)가 있어야만 글을 쓸 수 있다 하였다. 많은 독서와 사색을 통해 인문적 교양이 그 사람의 몸에 배었을 때야 비로소 가능하다.

추사는 우리 문인화의 최고봉으로 평을 받는 세한도(歲寒圖)(국보 제180)도 이곳에서 그렸다. 추사가 유배 생활 중 남긴 5181수의 시와 가족과 친구들에게 보낸 많은 서신이 현재까지도 전해지고 있다. 예술가로서의 추사는 무려 제자가 삼천 명에 이른다고 할 정도로 교육 활동에도 왕성하였다. 흥선대원군을 비롯하여 우선 이상적, 소치 허련 등이 있으며, 제주도 유배 중에도 대정현 훈장 선생인 강사공(姜師孔) 등 지역의 수많은 제자들이 그로부터 학문을 전수받았다. 추사의 내종사촌 민규호는 추사가 머물고 있는 제주도를 두 번이나 방문하였다. 그때의 추사 유배지 상황을 이렇게 기록하였다.

귀양을 사는 집에 머무르니 멀거나 가까운 데에서 책을 짊어지고 배우러 오는 사람들이 장날 같이 몰려들었다. 겨우 몇 달 동안에 인문이 크게 피어나 문채 나는 아름다움은 서울풍이 있게 되었다. 곧 탐라의 거친 풍속을 깨우친 것은 공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제주도 대정읍 추사유배지
세한도 당우를 모방한 추사기념관
추사기념관 내부로 들어가는 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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