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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0/183

혁신의 길과 자세 혁신이 대세다. 혁신은 무엇이며 혁신의 길은 어디인가? 2021. 10. 18.
추사 김정희의 유배길과 의문당 제주도에서는 고증에 따라 추사 유배지를 조성하였다. 그리고 그 옆에 ‘세한도’의 당우를 모방하여 ‘제주추사관’을 건립하였다. 그 안에 ‘세한도’ 사본과 이야기를 비롯하여 대정향교 ‘의문당’ 현판, 기증받은 추사 김정희와 친인척의 관련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대정향교는 제주추사관에서 자동차로 10분 거리에 있다. ‘의문당(疑問堂)’ 당호는 ‘의문을 묻는 집’으로 제자들로 하여금 의문을 많이 품고 도를 연마할 것을 주문한다. 다산은 아들들의 공부방에 ‘서향묵미각(書香墨味閣)’이라는 당호를 지어 주었다. 부지런히 공부하며 ‘책향기를 맡고, 글맛을 보라’는 아버지의 바람이 담겨있다. 학교 도서관에도 이런 류의 청고(淸高) 고아(古雅)한 당호를 붙이면 어떨까? 단지 ‘책을 보관하는 집’이라는 공간이 아니라, 독.. 2021. 10. 18.
추사 김정희 제주도 유배 생활 ■ 유배지 제주에서 피어나는 추사의 인문향기 이미 10년 전에 종결된 ‘윤상도의 옥사(獄死)’ 사건이 다시 재론되면서 당시 집권 세력들의 탄핵을 받은 추사는 1840년(헌종6)에 제주도까지 유배되어 왔다. 추사의 유배길은 충청도 천안, 전라도 완주, 해남의 대흥사와 일지암을 지나고 완도에서 배를 타고 제주도에 들어온 후 유배지인 지금의 서귀포 대정읍으로 들어왔다. 1848년(헌종14) 해배될 때까지 8년 남짓을 육지에서 멀리 떨어진 제주도에서 외로운 유배생활을 하였다. 제주도의 유배 생활은 그의 삶에 있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시기였다고 볼 수 있다. 추사는 예로부터 전해지는 여러 서체를 익히고, 그에 대한 연구를 바탕으로 독창적인 추사체를 유배 생활 중에 완성하였다. 추사는 자신의 서예 필법을 다음과.. 2021. 10.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