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 생애 그림이야기

논어와 놀기 2020. 10. 31. 20:53 Posted by 문촌수기


공자성적도 공자성적도(孔子聖蹟圖)
~중국 유학의 시조인 공자의 행적을 여러 장면으로 도해한 그림.성적도·공부자성적도·성적지도.

개설
공자는 중국 고대의 사상가로서, 공자와 그의 제자들에 의해 확립된 유학사상은 지난 수천 년 동안 동아시아의 정치와 사상, 문화 등 다방면에 영향을 미쳤다. ‘공자성적도(孔子聖蹟圖)’는 공자의 일생과 행적에서 의미 있는 사건을 뽑아 도해한 일종의 고사인물도(故事人物圖)이며, 성적도(聖蹟圖)·공부자성적도(孔夫子聖蹟圖)·성적지도(聖蹟之圖) 등으로 지칭되기도 한다. 성적도의 원천 자료가 되는 최초의 공자전(孔子傳)은 전한(前漢)의 사마천(司馬遷)이 쓴 『사기(史記)』의 「공자세가(孔子世家)」이며, 같은 책에 실린 「중니제자열전(仲尼弟子列傳)」도 보조자료로 활용되었다. 초기에는 공자와 노자(老子)의 만남과 같은 특정한 사건이 단편적으로 그려지다가 시대가 내려오면서 생애의 주요 사건과 일화를 수십 폭에 도해한 공자성적도가 만들어졌다.

중국의 공자성적도
공자성적도에 앞서 공자영정(孔子影幀)이 제작되었음이 문헌기록과 현존 유물로 확인된다. 동진(東晋)의 고개지(顧愷之)와 당(唐)의 염립본(閻立本)이 공자상(孔子像)을 그렸다고 하며, 당대 오도자(吳道子)의 석각화상탁본(石刻畵像拓本)은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공자의 일생을 여러 장면에 나누어 도해한 공자성적도는 원대(元代) 왕진붕(王振鵬, 1280~1329)에 의해 처음 그려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어서 명대(明代)부터 본격적으로 도상화(圖像化)된 성적도가 제작되었고, 화가가 직접 그린 육필본 외에도 목각본, 석각본이 등장했다. 1444년 장해(張楷)는 29장면을 선정해 시각화하고, 각 장면에 『사기』의 내용에서 추출한 설명문과 찬시(讚詩)를 곁들였다. 1497년에도 하순(何珣)에 의해 하정서본(何廷瑞本) 혹은 홍치본으로 불리는 성적도가 제작되었는데, 장해본에 9장면을 추가한 38장면으로 구성되었다. 하지만 이들 작품은 현재 전하지 않으며, 홍치본 계통의 사본(寫本)으로 1506년에 쓴 발문(跋文)이 있는 등문질(鄧文質)의 성적도가 알려져 있다. 마찬가지로 홍치본을 계승한 ‘선성소상(先聖小像)’이라는 제목의 성적도가 1598년에 제작되었다.

한편 동시기 최고의 인물화가로 꼽히는 구영(仇英, 약 1509~1551)이 그림을 그리고, 문인 서화가 문징명(文徵明, 1470~1559)이 제사(題詞)를 쓴 작품이 전해지고 있다. 두 권의 화첩에 총 39장면이 실려 있는데, 대다수 명대 성적도와 달리 일부 장면이 새로운 장면으로 대체된 상태이다. 화첩의 말미에는 각각 1538년과 1540년에 쓴 문징명과 허초(許初)의 글이 수록되어 있다. 또한 『곡부현사(曲阜縣史)』권30 ‘통편(通編)’에 의하면, 1592년 하출광(何出光)이 성적도를 돌에 새겼다고 하는데, 현재 산동성(山東省) 곡부(曲阜)의 공자묘(孔子廟)에 마멸이 심한 상태로 남아 있다. 제1석에 새긴 “성적지도(聖蹟之圖)”라는 표제에 이어 제3석~제8석에 관련 기문(記文)이 새겨져 있고 나머지 제20석까지 총 112장면의 성적도가 새겨져 있다. 이외에 만력연간(萬曆年間)에는 석각본에서 유래한 목각본도 생겨났다.

청대(淸代)의 공자성적도로는 1826년 고원(顧沅)이 간행한 『성묘사전도고(聖廟祀典圖攷)』에 실은 작품이 있다. 고원은 당시 전승되는 본들을 널리 수집해 비교한 다음 오류를 바로잡았고, 기존에 산발적으로 쓰인 각 장면의 제목과 설명문, 찬시 등을 그림과 조합하였다. 1874년에도 만력본의 중간본(重刊本)으로 보이는 성적도가 간행되었는데, 후에 대만(臺灣)의 영역(英譯) 성적도의 저본으로 활용되었다. 이상과 같이 공자성적도는 원대 이후 내용이 증감되면서 지속적으로 제작되었다.

한국의 공자성적도
우리나라에 공자와 제자들의 초상화가 유입된 시기는 통일신라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수십 폭으로 유형화된 사례는 조선시대에야 알려진 듯하다. 더욱이 현존하는 유물은 모두 18세기 이후에 제작된 것으로 육필본과 목각본, 인쇄본으로 나뉜다. 그 중 가장 시기가 올라가는 작품은 원대 왕진붕의 성적도를 모본으로 삼아 1700년(숙종 26) 화원 김진여(金振汝)가 비단에 채색하여 그린 10폭의 『공자성적도』(국립전주박물관 소장)이다. 또 다른 육필본으로는 국립중앙박물관 동원기증품 『성적도』55폭과 성균관대학교박물관의 『성적도』6폭이 있다. 이들 작품은 1741년(영조 17) 이익정(李益炡)이 사행 길에 구해온 공자성적도를 화원이 베껴 그린 모사본(模寫本)의 일부로 생각된다. 그리고 1742년 1월에 완성된 『공자성적도』는 총 104폭이었고, 원본은 청대 여성부(呂聖符)의 그림을 목판에 새겨 찍은 채색목각본이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밖에 목각본으로 화성 궐리사(闕里祠)의 104폭짜리 성적도와 성균관대학교 존경각의 『공부자성적지도(孔夫子聖蹟之圖)』 등이 있고, 20세기 이후에 제작된 인쇄본들이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과 국립중앙도서관, 성균관대학교 존경각 등의 소장품으로 전하고 있다.

공자성적도의 내용
공자성적도의 내용은 공자의 탄생에 얽힌 일화를 비롯해 공자의 인품과 외모와 관련되는 일화, 공자의 가르침을 담고 있는 장면, 공자가 성인으로서 혜안을 드러낸 일화, 유학자이자 교육자로서 공자의 풍모를 보여주는 장면 등으로 구분된다. 전체 장면의 수나 구성, 각 장면의 제목 등은 본에 따라 차이가 있다. 사실상 원대 왕진붕본에 이어 38장면으로 제작한 명대 하정서본이 도상(圖像)의 근간이 되었다고 볼 수 있으며, 하출광본에 이르면 112장면으로 증가하기에 이른다.

하정서본에 실린 38장면의 공자성적도는
·선성소상(先聖小像)·니산치도(尼山致禱)
·기린옥서(麒麟玉書)·이룡오로(二龍五老)
·균천강성(鈞天降聖)·조두예용(俎豆禮容)
·직사위리(職司委吏)·명명영황(命名榮貺)
·직사승전(職司乘田)·학금사양(學琴師襄)
·문례노담(問禮老聃)·재제문소(在齊聞韶)
·안영저봉(晏嬰沮封)·퇴학시례(退學詩禮)
·심행동거(心行同車)·협곡회제(夾谷會齊)
·귀전사과(歸田謝過)·예휴삼도(禮隳三都)
·의주정묘(義誅正卯)·인번거로(因膰去魯)
·광인해위(匡人解圍)·추차동거(醜次同車)
·송인벌목(宋人伐木)·미복과송(微服過宋)
·적위격경(適衛擊磬)·서하반가(西河返駕)
·진정준집(陳庭雋集)·영공문진(靈公問陣)
·자로문진(子路問津)·재진절량(在陳絶糧)
·자서저봉(子西沮封)·작가구릉(作歌丘陵)
·행단예악(杏壇禮樂)·궤수적홍(跪受赤虹)
·서수획린(西狩獲麟)·몽전양영(夢奠兩楹)
·치임별귀(治任別歸)·한고사로(漢高祀魯) 등이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공자성적도(孔子聖蹟圖)


1_ 선성소상先聖小像
2_ 니산치도尼山致禱
3_ 기린옥서麒麟玉書
4_ 이룡오노二龍五老
5_ 균천강성鈞天降聖
6_ 조두예용俎豆禮容
http://weekly.chosun.com/client/news/print.asp?ctcd=&nNewsNumb=00225510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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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육      홍익대 한국회화사 석사, 동국대 박사 수료, 성신여대·동국대 대학원 강의, 저서 ‘그림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조선이 낳은 그림 천재들’ ‘그림공부, 사람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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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_ 입평중학入平仲學
8_ 직사위리職司委吏
9_ 명명영황命名榮貺
10_ 직사승전職司乘田
11_ 학금사양學琴師襄
12_ 논목공패論穆公覇
13_ 태묘문례太廟問禮
14_ 대부사사大夫師事
15_ 문례노담問禮老聃
16_ 방악장홍訪樂?弘
17_ 관주명당觀周明堂
18_ 금인명배金人銘背
19_ 재천관수在川觀水
20_ 엽각종노獵較從魯
21_ 주식고금晝息鼓琴
22_ 관향인사觀鄕人射
23_ 태산문정泰山問政
24_ 경공존양景公尊讓
25_ 안영저봉晏?沮封
26_ 퇴수시서退修詩書
27_ 수희분혜受?分惠
28_ 사확상포射?相圃
29_ 무우종유舞雩從游
30_ 궤식흔수?食欣受
31_ 관상지우觀象知雨
32_ 보유수사步游洙泗
33_ 슬경유비瑟儆孺悲
34_ 농산언지農山言志
35_ 사자시좌四子侍坐
36_ 과정시례過庭詩禮
37_ 관기론도觀器論道
38_ 분양변괴?羊辨怪
39_ 배조우도拜?遇塗
40_ 화행중도化行中都
41_ 경입공문敬入公門
42_ 주소정묘誅少正卯
43_ 협곡회제夾谷會齊
44_ 귀전사과歸田謝過
45_ 예타삼도禮墮三都
46_ 사부자송赦父子訟
47_ 인번거노因?去魯
48_ 의봉앙성儀封仰聖
49_ 영공교영靈公郊迎
50_ 적위격경適衛擊磬
51_ 광인해위匡人解圍
52_ 영공문진靈公問陣
53_ 추차동거醜次同車
54_ 서하반가西河返駕
55_ 탈참관인脫?館人
56_ 송인벌목宋人伐木
57_ 충신제수忠信濟水
58_ 호시관준?矢貫?
59_ 미복과송微服過宋
60_ 오승종유五乘從游
61_ 자로문진子路問津
62_ 능양파역陵陽罷役
63_ 지노묘재知魯廟災
64_ 자문금간紫文金簡
65_ 재진절양在陳絶糧
66_ 수어치제受魚致祭
67_ 제계찰묘題季札墓
68_ 초광접여楚狂接輿
69_ 과포찬정過蒲贊政
70_ 자서저봉子西沮封
71_ 산량탄치山梁嘆雉
72_ 명사존로命賜存魯
73_ 자공사행子貢辭行
74_ 자고인서子羔仁恕
75_ 방추지덕放?知德
76_ 무성현가武城絃歌
77_ 작의난조作?蘭操
78_ 행단예악杏壇禮樂
79_ 극복전안克復傳顔
80_ 효경전증孝經傳曾
81_ 독역유감讀易有感
82_ 위편삼절韋編三絶
83_ 금음맹단琴吟盟壇
84_ 망오문마望吳門馬
85_ 평실통요萍實通謠
86_ 상양지우商羊知雨
87_ 골변방풍骨辨防風
88_ 부대전부不對田賦
89_ 시석노군侍席魯君
90_ 유복유행儒服儒行
91_ 귀서천도貴黍賤桃
92_ 관사론속觀?論俗
93_ 세업극창世業克昌
94_ 성문사과聖門四科
95_ 서수획린西狩獲麟
96_ 궤수적홍?受赤虹
97_ 목욕청토沐浴請討
98_ 공자연의孔子延醫
99_ 몽전양영夢奠兩楹
100_ 삼농식해三壟植楷
101_ 치임별귀治任別歸
102_ 애공입묘哀公立廟
103_ 한고사노漢高祀魯
104_ 진종사노眞宗祀魯

과정시례

[그림으로 읽는 공자] ㅡ과정시례 /조정육
공자는 아들을 어떻게 가르쳤을까 - http://m.weekly.chosun.com/client/news/viw.asp?ctcd=c09&nNewsNumb=002265100021

공자는 아들을 어떻게 가르쳤을까

주간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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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macmaca 2020.12.14 02: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추운 겨울인데, 몸조심 하십시오.공자님은 하늘이 내려보내신 성인. 성인임금이시자, 인류의 위대한 스승. 이 점이 가장 중요합니다.

    유교는 인간이 민물의 영장이며, 하늘의 기품과 땅의 형상을 가장 고귀하게 부여받은 중간적 존재. 하느님이 인간창조(天生蒸民).

    하느님(天)을 최고신으로 하여,상고시대숭배 五帝(하늘로승천,계절주관)를 하위신으로 모시며,오제이전 초월적 자연天(태극과연계)이 함께어우러져 형이상학적 天숭배하던 공자 이전의 始原유교.요순우탕등 성인임금도숭배.불교는 나약한 부처Monkey가 창조신보다높다며 인도창조신 브라만내리깔고 항거.

    고조선의 기자조선은 은나라 왕족의 후손으로, 지배층이 공자님이전의 始原유교문화에서 사용하던 한문성씨를 사용. 이후 기자조선 지배층은 삼한등의 지배층으로 이어짐. 삼한은 제천의식인 상달제.시월제, 단오절을 거행. 삼한의 영토에서 가야나 백제.신라등이 발생.



    한국 세계사 교과서나 역사 교과서로 볼 때, 한국은 한나라 때 동아시아(중국,한국,베트남,몽고)지역에서 세계종교로 성립된 유교국가로 이어짐. 한국 국사는 고려는 치국의 도 유교, 수신의 도 불교라고 가르침. 고려시대는 유교 최고대학 국자감을 중심으로, 고구려 태학, 백제 오경박사, 통일신라 국학의 유교교육을 계승하여 유교교육 실시함. 유교사관 삼국사기가 정사(正史)이던 나라 고려.한국사와 세계사의 연계가 옳음.한나라이후 세계종교로 동아시아의 정신적 지주로 자리잡아온 유교전통.

    공자님이후 한나라때 성립된 세계종교 유교는 하느님(天),五帝(조상신에서 승천,하느님의 하위신이 되심),지신,산천신,오사(五祀, 조상신계열).공자숭배.부엌신(火관련)도 제사하는 다신교.불교는 Chimpanzee,부처(인도창조신 브라만에항거 후발Monkey부처가 창조신내리깔고덤빔)계열로,성씨없는賤民점쇠(점쇠가 한국에 마당쇠賤民.불교Monkey서울대 전신 경성제대설립)를 천황옹립,하느님보다높다하다 원자탄패전.일본 항복후, 미군정때 조선성명복구령,전국민이 조선 유교 한문성명.본관을 의무등록해야 하는 행정법.관습법 유교한국. 5,000만이 유교도임. 일제강점기 강제포교된 일본 신도(불교),불교,기독교는 한국영토에 주권없음.

    헌법(대한민국 임시정부 반영중)중심으로 해야함. 패전국 불교Monkey일본이 강점기에,유일무이 최고교육기관 성균관(해방후 성균관대로 복구)격하,폐지.해방후 성균관대로 복구. 강점기에 세계종교 유교국일원 한국유교(공자나라)를 종교로 불인정.최근 다시 주권.자격.학벌없는 일제 강점기 잔재 패전국 奴隸.賤民,불교 Monkey서울대와 그 하인.奴卑들이 한국 최고대학 성균관대에 대중언론에서 항거해온 습관으로 유교에도 도전중. 중국의 문화대혁명이후, 세계종교 유교가 위기를 겪고 있지만, 교과서자격은 유효하므로 한국사와 세계사를 연계하여 세계종교 유교, 가톨릭의 유구한 역사를 계승하고, 세계 최초의 대학인 한나라 태학[그 이후의 국자감, 원.명.청의 국자감은 베이징대로 계승됨], 볼로냐.파리대학의 교과서 자격을 이어가면서, 교황성하 윤허의 서강대와 2인삼각체제로 정사인 한국사와 세계사를 연계하고자 함.

    한국사와 세계사의 연계가 옳음.한나라이후 세계종교로 동아시아의 정신적 지주로 자리잡아온 유교전통.

    해방후 유교국 조선.대한제국 최고대학 지위는 성균관대로 계승,제사(석전)는 성균관으로 분리.최고제사장 지위는 황사손(이원)이 승계.한국의 Royal대는 성균관대. 세계사 반영시 교황 윤허 서강대도 성대 다음 국제관습법상 학벌이 높고 좋은 예우 Royal대학.경성제대 후신 서울대는 한국영토에 주권.자격.학벌 없음.일본항복후 한국에 주권없었음.현행헌법 임시정부 반영,을사조약.한일병합무효.국사성균관자격 Royal성균관대(조선.대한제국 유일무이 최고교육기관 성균관승계,한국 最古.最高대).Royal서강대(세계사반영,교황윤허,성대다음예우)는 일류,명문.주권,자격,학벌없이 대중언론항거해온 패전국奴隸.賤民불교Monkey서울대.주권,자격,학벌없는 서울대.추종세력 지속청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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