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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동과 문학, 김광섭 집터

by 문촌수기 2026. 5. 12.

한성대입구역에서 길상사를 찾아 걸어가는 초입에 성북동 주민센터와 성북동 교회 길건너 맞은 편에 시인 김광섭 집터가 있다.
이곳을 지나 좀 더 걸어가면
한국 근현대사의 문인들의 마을인, 성북동을 안내하는 <성북동과 문학> 조형물이 있다. 앞 뒤를 돌며 잔잔히 읽어보고 그들이 살았던 시대와 장소를 상상하며 산책을 시작하면 좋겠다.

김광섭 집터
Site of Kim Gwang-seop

시인 김광섭(1905-977)은 1961년부터 1966년까지 성북동 168-34 번지의 자택(건축가 김중업 설계)에서 살았다. 성북동 시절 그는 월간 문학잡지 <자유문학> 발행인으로 있으면서 많은 문학 신인들을 배출하였다. 시 <봄>, <생의 감각>, <성북동 비둘기> 등은 그가 성북동에서 쓰거나 구상한 작품들로 1969년에 출간한 제4시집 <성북동 비둘기》에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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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섭과 성북동 비둘기

성북동 시 산책, 종점이다.북정마을 비둘기 쉼터김광섭의 '성북동 비둘기'가 벽에 붙어었다.스크랩)[애송시 100편 - 제 75편] 성북동 비둘기정끝별·시인조선일보, 2008.04.04.성북동 비둘기 김광섭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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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집'이라니? 카페 이름이 곱다.
가로에 꽃집이 많다. 꽃가게에서 내놓은 꽃들은 여행객들에게 행복한 선물이 되었다. 참 감사한 일이다. - 물망초

■ 성북동과 문학

■ 성북동과 문학


성북동은 문학과 관련이 깊은 마을이다.
조선후기 마을이 생기며 김정희, 이덕무, 채제공 등이 성북동에 와서 시를 지어 자연을 노래했다.
근대에는 사대문안과 가까우면서도 사골의 정취가 남아 있는 성북동에 많은 문인들이 모였다. 1930년대 초반 이미 김기진, 김일엽 등 많은 문인들이 모여 살아 '문인촌'이라는 말을 들었다. 1933년 이태준이 성북동으로 이사를 온 뒤, 문인단체인 구인회(九人會) 회원들은 이곳에 드나들며 교류했으며, 박태원은 성북동으로 이사를 오기도 했다. 1933년 성북동에 들어온 만해 한용운은 입적할 때까지 떠나지 않았다.
해방이후에도 교류는 계속되었다. 구인회 회원이었으며 돈암동에 살았던 정지용의 추천으로 등단한 세 명의 시인, 조지훈, 박목월, 박두진이 밤새 청록집"의 발간을 논의한 곳은 성북동 조지훈의 집이었다. '청록파'가 태동한 것이다.
국가가 주도한 예술원에 반발하여 만든 '자유문인협회'의 초대 회장은 '성북동 비둘기'의 김광섭이었다. 그는 성북동에 살며 자신이 사는 마을의 변화를 시로 써내려갔다.
이밖에 염상섭, 김기진, 김일엽 등 수많은 문인들이 성북동에서 교류하며 살았다. 이 성북동 문인들은 김환기, 김용준, 윤이상, 채동선 등 다른 예술분야의 사람들과 교류했다. 화가들은 문인들의 책 표지를 꾸몄고, 음악가들은 시에 곡을 붙였다.
성북동, 이곳에는 아직 문인들의 삶과 교류의 흔적이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