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섬길, 행복한 섬길
섬이 어딨다고? 섬길이 뭐지?
아항 '한섬길'인데, 앞에 행복을 붙였구나. 그러니
행복 한섬길이네.
한섬해변굴다리 공영주차장(천곡동 1090-14)에 주차를 했다. 주차장은 작다. 그리고 큰길에서 오른쪽 골목으로 들어올때 속도를 줄이지 않으면 지나쳐 버릴 수 있다. 한참을 유턴하고 유턴해서 다시 찾아와야 했다.

<한섬길>
예로부터 냉천 즉 찬물래기에서 내려온 물은 한섬을 지나 바다로 나아갔다. 지금의 천곡동굴에서부터 내려온 지하수라서 여름에도 얼음물처럼 차가워 '寒'섬이라고 하였다. 감추사에서 한섬, 고불개, 가세마을 까지를 한섬의 범위라고 할 수 있다. “육지에 있는 섬! 그러나 "바다 한가운데 있는 섬 만큼이나 풍경이 아름다운 곳." 이곳 행복 한섬길의 멋진 해안절경을 보면서, 관해정과 몽돌해변에서 추억을 쌓는다.
오른쪽으로 더 넓은 동해 바다, 넓은 한섬해수욕장이 펼쳐졌다. 저 멀리 육지 끝에 섬 하나가 서 있다. 바위가 우뚝 서있다.



안내 간판에 '제임스본드' 섬이란다. 그 이름이 마음에 안든다. 왜 굳이 남의 것을 빌려서 부를까? 하대암이라는 우리 이름이 있다. 제임스본드 섬(하대암)
하대암은 감추사 앞산 해변에 자리하고 있다. 천곡마을에서 남쪽으로 아래쪽에 있다고 하여 하대암이라고 하였고, 그 생김새가 촛대처럼 생겼다고 하여 촛대바위라고도 불렀다. 하지만 최근 이곳을 찾는 사진작가들 사이에서는 제임스 본드 주연의 007시리즈 촬영지인 세계 3대 절경 태국 푸켓 팡아만의 바위를 닮았다하여 제임스본드 섬이라 부르기도 한다.

세븐일레븐 편의점을 지나 바다를 오른쪽에 두고 데크길을 걸어가니 왼편 언덕으로 올라간 길 끝에는 관해정(觀海亭) 정자가 있고, 오른쪽으로는 몽돌해변으로는 내려가는 계단이 있다. 계단에서 잠시 멈춰 바다를 내려다보면 멀리 하대암을 다시 볼 수있다.
군데 군데 몽돌을 쌓아 소원을 빌은 듯 돌탑이 서 있다. 설령 파도에 스러질지라도 사진 속에서 남는다.











관해정(觀海亭)
정면 3칸 측면2칸의 정자에는 오언절구의 주련이 걸려있고 정자 안 왼편에는 '유천희해(遊天戱海)', 오른편에는 '호정(湖亭)' 현판이 걸려있다.
'관해(觀海)'는《맹자(孟子)》 진심장구 상(盡心章句 上)에 나오는 구절로 "바다를 본 자는 웬간한 물은 물같이 보지 않는다(觀於海者 難爲水)"라는 구절에서 유래했다.

(오언절구 주련을 나름 해석해본다.)
心寬忘地窄 (심관망지착)
마음이 너그러우니 땅 좁은 줄을 잊고
亭小得山多 (정소득산다)
정자는 작지만 산을 많이 얻었네.
水氣侵階冷 (수기침계냉)
(바닷)물기운에 (정자)계단은 차갑고
松陰蔽座閒(송음폐좌한)
소나무 그늘에 앉은 자리는 한가롭네


관해정 계단밑, 연화대석과 옆으로 치워진 비석은 예사롭지 않다.

'유천희해(遊天戱海)'현판은 추사 예서체를 닮았기에 찾아봤다.
그렇다. 추사 김정희의 글씨를 임서한 것이다.

산숭해심 유천희해(山崇海深 遊天戱海)는 '산은 높고 바다는 깊나니, 하늘에서 놀고 바다에서 노니네'라는 뜻이다.
이 문구는 추사 김정희의 말년 과천 시절 대표작 중 하나로 꼽히는 명작이다.


그렇다. 소나무 그늘에 덮인 관해정에 한가로이 앉아 세븐일레븐 카페에서 올라온 커피를 마시며 동해를 내려다보며 논다.
집으로 돌아와 오랜만에 책꽂이에서 유홍준의 <산숭해심> 책을 찾아 다시 펼쳐본다.


이하 글은 유홍준의 <산숭해심>에서 가져왔다.
<산숭해심 유천희해〉
추사 과천시절의 대표작 중 하나로 반드시 꼽히는 <산숭해심(山崇海深) 유천희해(遊天戲海)>는 과연 불계공졸(不計工拙)의 명작이다. 이 작품은 높이 42센티미터, 길이 420센티미터로 은해사의 ‘불광(佛光)' 현판을 제외하면 현존하는 추사 작품 중 가장 크다. 여기서는 전서·행서·예서가 함께 어우러져 보는 이의 눈을 사로잡아 홀리는 듯한 귀기(鬼氣)까지 느껴진다.
'산은 높고 바다는 깊네'라는 뜻의 '산숭해심'은 옹방강이 실사구시 정신을 풀이한 글의 한 구절이다. 당시 함흥 지락정(知樂亭)에도 누군가가 쓴 '산해숭심'이라는 편액이 있었는데 이 글씨 또한 기괴하기로 유명했던 모양이다. 추사는 북청 귀양에서 돌아오는 길에 이 글씨를 보고는 권돈인에게 다음과 같은 소감을 말했다.
함흥을 지나다가 지락정에 올라 <산해숭심> 액을 쳐다보니 글자가 심 히 기걸하고 웅장하더군요. 예전에 연지(蓮池)의 박정숭이 구태여 해(海) 자를 지적하여 말을 했으나 이는 전혀 예서법을 깨치지 못한 것이니 아연히 크게 웃을 수밖에 또 있겠소.
(전집 권3, 권돈인에게, 제27신)
'유천희해', '하늘에서 놀고 바다에서 노닌다'는 이 글은 원래 '운학 유천(雲鶴遊天) 군홍희해(群鴻戲海)', 즉 '구름과 학이 하늘에서 노닐고 갈매기 떼가 바다에서 노닌다'라는 구절에서 나온 것으로, 양무제가 종요(鍾繇)의 글씨를 평한 말이다. 특히 이 구절은 [삼희당법첩(三希堂法帖)]의 맨 첫머리에 실려 있어서 서가들이 즐겨 써왔다.
<산숭해심>과 <유천희해>는 본래 한 작품이던 것인데, 1957년 3월 대한고미술협회가 주관한 경매전에서 <산숭해심>은 애호가인 심상준이 55만 환에, <유천희해>는 소전 손재형이 121만 환에 낙찰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산숭해심>은 낙관이 없어서 반값이었던 셈이다. 그리하여 이 작품은 오랫동안 이산가족이 되었다가 뒤에 두 점 모두 삼성미술관 리움에서 소장하게 되면서 다시 상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