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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동마을, 포항시 기북면

by 문촌수기 2026. 9. 7.

어릴적 내 고향 친구들과 고향에서 가까운 포항 기북면 덕동마을을 찾았다.
그 마을의 전통문화체험관에서 1박하고 회재 이언적의 후손, 여주 이씨의 집성촌인 덕동마을을 관광했다.

전통문화체험관, 잠자는곳

<덕동마을>
400년의 풍습과 따뜻한 정이 넘치는 곳!

덕동은 자금산(紫金山) 남쪽 산기슭에 형성된 유서깊은 마을로 신라때 죽장부곡(竹長部曲)과 성법이부곡(省法伊部曲)이 형성된 이래 조선조에 이르기까지 제철과 연관된 철물기구와 무기 생산 공장들이 있었던 곳으로 벼슬재는 관인이 아니면 통행을 못했다고 전해오며 이강(李壇) 호(號) 사의당(四宜堂)의 후손이 400여년 집성촌으로 살고 있다.
대표 문화유산으로 명승 81호 '용계정과 덕동숲', 국가지정 문화유산 보물 용계정, 경상북도 문화유산자료 덕계서당, 경상북도 민속문화유산 애은당·사우정·여연당, 국가 등록문화유산 오덕리 근대한옥이 있다. 덕동민속전시관이 있으며 전시관에는 경상북도 문화유산자료인 덕동 여강이씨문중 고문서 67점이 소장되어 있고 세덕사의 250여년전 문서를 모두 볼 수 있다.

+ 300여년 이어온 여강 이씨 자손들의 영원한 고향 https://share.google/LOzSuUehVzBiCu6nf

300여년 이어온 여강 이씨 자손들의 영원한 고향

덕동마을은 포항에서 가장 오지라 할 정도로 깊숙한 곳에 있다. 이곳에서는 토기, 옹기, 기와 조각이 발굴되고, 사기장골, 쇠부리터(대장간터)란 지명도 남아 있다. 임진왜란 의병장 박의장이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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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동마을의 자랑
1. 덕동문화마을 지정 (문화부 1992,06,02,)
2. 덕동민속전시관(경상북도 2004.05.05,)
3. 아름다운 숲 대상 수상 (산림청 2006,10,19.)
4. 국가 자연유산 명승 지정 '용계정과 덕동숲' (문화재청 2011.08.08)
5. 기록사랑마을 지정 (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 2011.08.20.)

국가지정 문화유산 보물
龍溪亭ㆍ용계정

용계정의 봄
용계정의 겨울
용계정 뒤 배롱나무

경관이 수려한 벼랑 암벽 위에 계천을 굽어볼 수 있도록 세워진 정루(亭樓)로 1687년(숙종 14년)에 세우고 정각 이름을 사의당이라 했으니 이는 사계절 변함없는 만상의 조화를 뜻한다. 정각에는 반드시 울창한 송림의 그림자를 밟고 들어와야만 정루에 이를 수 있고 앞쪽 계천 건너편에는 푸른 이끼에 감싸인 석벽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어 가관이며 그 바위에는 연어대(鳶魚臺)라고 음각되어 있는데 '마치 고기가 연이 되어 날아오르는 곳'이라는 의미이다. 고종 5년(1868) 서원 철폐시에 용계정을 세덕사지와 분리하기 위해 밤새도록 담을 쌓아서 세덕사만 철폐되고 용계정은 화를 면 였다고 한다. 방위에는 다락이 지붕과 이어져 있으며, 마루 끝에는 난간을 달았고 부연과 난간 천장 마루의 기법이 훌륭하다.

용계정 뒤 세덕사지 배치도
세덕사지 비로자나불상
용계정 방 천장
용계정 사의당 현판 ㅡ '네가지 마땅함'으로 운신하는 집이란 뜻
용계정 앞 연어대 숲과 계곡
연연루(淵淵樓), '깊고 고요한 연못가에 자리한 누각'
연어대 - 鳶飛魚躍(연비어약) '솔개가 날고 물고기가 뛴다'는 뜻으로, 온갖 동물이 生을 즐김을 이르는 말.
세덕사지 표지석과 주춧돌

■ 호산지당 護山池塘

이 곳은 덕동의 산강 수약이라 산새는 강하고 물이 적어서 인물이 배출되지 않는다 전해 오기에 현위치에 물을 가두어 주위의 경관도 살리고 우리의 바람인 후새 인물이 많이 나도록 친환경 차원에서 순환로 300m와 400여 년 전의 회나무 우물을 축조하였으며 호산지당이라 호칭한다.


호산지당(護山池塘) 시

山强水弱築斯池
산이 강하고 물은 적어서 못을 만드니
洞壑風光復有奇
동리의 경치가 다시 또 기이하구나!
積歲經營成宿志
오랜 세월 경영한 뜻을 이루니
將來餘慶也應期
장래 남은 경사를 또한 기약하리라.

■ 애은당고택ㆍ愛隱堂古宅
경상북도지정 민속문화유산 제80호


이 건물은 임진왜란 때 의병장이었고 길주목사를 역임한 농포(農園) 정문부(鄭文孚, 1556~1625)의 가족들이 임진왜란 때 피난처로 사용 했던 가옥이다. 애은당고택이 위치한 지형은 거북형으로 거북 앞발 위치에 각각 별당과 방앗간을, 머리부분에는 잠실이, 꼬리부분에는 화장실이 있다.

■ 사우정고택ㆍ四友亭古宅
경상북도지정 민속문화유산 제81호

이 건물은 임진왜란 때 의병장 농포 정문부의 조부인 정언각이 청송 부사로 재직할 당시 풍수지리에 밝은 청지기가 일러주는 길지(吉地)에 건립한 것으로 전한다. 사각형의 담장으로 둘러싸인 바깥마당을 들어서면 '-'자형의 사랑채가 있다. 사랑채는 1m가량의 자연석을 쌓아 기단을 세웠고, 간결한 수법의 3량가 납도리집이다.

■ 여연당고택ㆍ與然堂古宅
경상북도지정 민속문화유산 제158호

이 건물은 조선 선조때 길주목사를 역임한 농포 정문부가 임진왜란 후 손녀 사위인 이강에게 양도한 가옥이다. 이강은 다시 차남 덕령에게 물려주어 후손들이 거주하게 했다. 정면 4칸, 측면 6칸의 목조와가인 이 가옥은 'ㅁ'자형으로 배치되어 있으며 조선중기 주택으로 당시의 시대상 및 생활상을 잘 보여주고 있다.

■ 오덕리근대한옥ㆍ吾德里 近代韓屋
국가등록문화유산 제373호

사우정 고택 바로 오른쪽억 있다.
1947년 2월에 상량된 전통한옥과 근대한옥의 특징을 갖고 있어 20세기 중엽 사회변화에 따른 민가의 변화과정을 잘 보여주고 있는 대표적인 가옥이다. 일반적인 형태는 전통한옥의 특징을 따랐으나 안마당을 중심으로 집약된 배치형식, 평면구성, 수장공간의 발달 등 에서 근대한옥의 특징을 읽을 수 있다.


덕계서당ㆍ德溪書堂
경상북도지정 문화유산자료 제639호

덕동마을에 위치한 여강(江) 이씨(李氏)의 서당이다. 건물은 덕계 서당과 강의재가 있다. 덕계서당은 정면 3칸, 측면 1칸의 북동향 건물로 맞배지붕에 홑처마이다. 좌측의 1칸이 마루이며 나머지는 방이다. 강의재는 정면 2칸, 측면 1칸인 남동향 건물로 맞배지붕에 홑처마이다. 지붕의 좌우로 방풍판이 있다.

■ 덕동민속전시관(德洞民俗展示館)

400여 년 동안 집성촌으로 세거하던 덕동마을의 주민들이 가지고 있던 옛 물건 들을 초대 민속전시관 관장(이동진)이 수집하여 협소하나마 덕연관(德淵館)을 건립해 한자리에 모아 전시하여 오던 중 1992년 덕동마을이 문화마을로 지정 되면서 오랜 세월 동안 흩어져 버렸을지도 모르는 귀중한 유물들의 중요성을 인식한 경상북도청과 포항시의 도비와 시비를 지원받아 2004년 5월 5일 현 위치에 민속전시관을 건립하고 소중한 유물들의 전시를 지속해오고 있다. 전시관에는 여강이씨 덕동문중 소장 경북 도지정 문화재 552호 67점이 있다.

경북도지정 문화재 552호 67점 지정 (고문서)

■ 다산 유배지, 사의재
사의재(四宜齋)는 조선 후기 실학자 다산 정약용 선생이 1801년 전남 강진으로 유배되었을 때 가장 먼저 머물렀던 주막집의 골방이다.

강진, 사의재

'사의재'는 "네 가지를 올바르게 하는 이가 거처하는 집"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정약용 선생이 절망적인 유배 생활 속에서도 스스로 마음을 다잡기 위해 세운 네 가지 원칙은 다음과 같다.

사의(四宜)'라는 단어의 직접적인 출전은 다산 정약용이 1804년에 지은 <사의재기(四宜齋記)>이다.
- 사의담(思宜澹): 생각은 마땅히 담백(맑음)해야 하니, 맑지 못함이 있으면 곧바로 맑게 해야 한다.
- 모의장(貌宜莊): 용모는 마땅히 엄숙(단정)해야 하니, 엄숙하지 못함이 있으면 곧바로 엄숙해지도록 해야 한다.
- 언의인(言宜訒): 말은 마땅히 과묵(적음)해야 하니, 말이 많다면 곧바로 그치도록 해야 한다.
- 동의중(動宜重): 행동은 마땅히 진중(무거움)해야 하니, 진중하지 못하다면 곧바로 무겁게 해야 한다.

신유박해로 인해 '대역죄인'이라는 누명을 쓰고 강진에 도착했을 때, 마을 사람들은 그를 외면하고 두려워했다. 이때 동문 밖 주막인 '동문매반가(東門賣飯家)'의 주모가 그를 따뜻하게 맞이하며 방 한 칸을 내어주었다. 정약용 선생은 이 작은 골방에서 약 4년 동안 머물며 아동용 한자 교재인 《아학편》을 집필하고 후학들을 가르쳤으며, 실학 사상의 체계를 다지기 시작했다.

■ 용계정의 사의당(四宜堂)과 이강

포항시 북구의 오래된 마을인 기북면 오덕리에 위치한 ‘덕동마을’은 경주의 양동마을과 맥이 닿아 있는 곳이다.
경주의 양동마을은 아시다시피 회재 이언적 선생의 족적을 느낄 수 있어 유명하다.
회재 선생은 조선시대 유학을 대표하는 ‘동방 5현’의 한 사람으로 정여창, 김굉필, 조광조, 이황과 함께 성균관 문묘에 위패가 봉안돼 있는 대유학자이다.
덕동마을의 입향조인 사의당 이강은 회재 이언적 선생의 동생인 농재 이언괄(聾齋 李彦适 1494~1553)선생의 후손이다.
즉, 덕동마을은 이언적 선생의 아우인 농재 이언괄 선생의 후손이 이주해 여강이씨 집성촌으로 형성됐다.
이언괄의 호는 이언적의 편지에서 비롯했는데, ‘일체의 시사(時事)에 대해 어리석은 사람처럼 귀먹은 사람처럼 하라’는 가르침에 따라 호를 귀머거리 농(聾)자를 써서 ‘농재(聾齋)’라 했다.

포항 용계정에 걸려 있는 '사의당(四宜堂)' 편액은 "네 가지 마땅함(올바름)을 실천하는 집"이라는 뜻이다.
'사의당'은 용계정을 처음 조성하고 가꾼 조선 시대의 학자 사의당 이강(李 Giang, 1621~1688)의 호이기도 하며, 그가 남긴 삶의 철학과 수양의 방향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한자의 구체적인 의미와 전형적인 선비 정신에 따른 '네 가지 마땅함(四宜)'의 의미는 다음과 같습니다.
1. 한자 풀이
四 (넉 사): 숫자 네 가지를 뜻함
宜 (마땅할 의): 도리에 맞다, 올바르다, 마땅히 행해야 함
堂 (집 당): 선비들이 학문을 닦고 거처하는 격식 있는 건물을 뜻함

2. '네 가지 마땅함(四宜)'의 본질
조선 시대 유학자들이 당호(집 이름)나 호로 삼았던 '사의(四宜)'는 주로 전통적인 선비의 내면 수양과 처세에 대한 다짐을 나타낸다. 대표적으로 다음과 같은 덕목들을 마땅히 지키고 실천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1. 말을 마땅히 올바르게 하는 것 (言宜正): 늘 정직하고 도리에 맞는 말을 함
2.행실을 마땅히 곧게 하는 것 (행의방 行宜方): 행동에 거짓이 없고 의로움을 지킴
3. 용모와 태도를 마땅히 엄숙하게 하는 것 (모의장 貌宜莊): 흐트러짐 없이 단정하고 진중한 태도를 유지함
4. 마음을 마땅히 맑고 고요하게 하는 것 (심의청 心宜淸): 욕심을 버리고 깨끗한 마음으로 학문에 정진함

즉, "언어, 행동, 태도, 마음가짐의 네 가지 측면에서 언제나 유학자로서의 도리와 마땅함을 잃지 않겠다"는 스스로의 다짐을 담은 이름이다.

연연루

용계정이 완공되고 80년 정도 지나 후원에 이강의 5대 조부와 농재 이언괄을 배향할 사당인 세덕사(世德祠)를 건립했다. 그리고 용계정인 사의당 본채를 세덕사 문루로 바치고 ‘연연루’라 이름을 바꾸었다. 그러다가 고종 5년(1868)때 대원군의 서원 철폐시 훼철하라는 명이 있게 되자 연연루로 변경된 현판을 ‘사의당’과 ‘용계정’ 옛 현판으로 바꿔달고, 하루 밤 사이에 후원에 지어졌던 다른 건축물과 구분되게 그 사이에 담장을 축조해 마치 사당인 세덕사와는 구분되는 독립된 건물로 보이게 해 사의당 건물은 훼철되는 화를 면하게 됐다.

용계정 현판
연연루 세덕사 명여당 현판(우에서 좌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