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체해부실험실에서-1

삶과 죽음 이야기 2013. 1. 3. 09:00 Posted by 문촌수기

(7)시체해부실험실에서-1

내가 대구에서 공부하던 고등학교 일학년 때였습니다. 그때도 아마 지금 이 맘 때처럼 가을 낙엽이 우수수 떨어질 때였습니다. 대구백화점에서 중앙도서관으로 그리고 계속 그 길을 따라 올라가면 경북대학교 의과대학과 부속 병원이 나옵니다. 의과 대학과 병원은 서로 좁은 포장도로를 하나 두고 마주 보고 있습니다. 길가에는 플라타나스 나무가 그늘을 지우고 물들어 있습니다. 고목 가로수와 낡은 대학건물은 늙은 것의 운치와 멋을 드러냅니다.

거기에 누가 먼저 가자 했는지, 어떻게 들어갈 수 있었는지, 그때 그 친구들은 정확히 누구인지 지금 생각해도 아련하여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시험을 끝내고 일찍 파한 날인가 봅니다. 같은 학급의 친구 둘과 함께 우리는 의과대학 해부 실험실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으시시 가을비는 내리고 바람은 애써 매달려 있는 플라타나스 넓은 잎을 떨어뜨립니다. 의대의 정문 왼쪽 정원은 고목이 우거져 있고 한 낮인데도 가을비바람과 그늘에 어둠이 짓게 내려있었습니다. 그 한 가운데 히포크라테스의 흉상이 세워져 있었고, 낯선 글씨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그게 라틴어였던가 봅니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Life is short, art is long]

우리 셋은 해부실험실 건물로 들어갔습니다. 수위아저씨도 없고, 의대생도 없었습니다. 그냥 썰렁하게 우리뿐이었습니다. 낡은 건물로 들어서 오른쪽 복도 끝으로 가니 문이 하나 가로막고 있었는데 그곳이 해부실험실이었습니다. 정말 기분 나쁘게 낡은 복도에 낡은 문이었습니다. '드르럭' 열고 들어간 해부실험실은 도서관 강당처럼 넓었고 알콜 냄새와 역겨운 냄새를 물씬 풍겼습니다. 도서열람실의 큰 책상 같은 목재침대가 9갠가 12갠가? 개수가 중요하진 않겠지요. 그걸 헤아릴 경황은 아니었습니다.
해부책상 위에는 미라처럼 피고름에 축축히 젖은 붕대로 칭칭 감겨진 해부용 시체가 뉘여져있고 그위에 넓은 비닐을 덮어 두었습니다. 얼어붙은 몸을 가까이 가져가 바라보니 비닐 속은 김이 서려 물방울이 맺혀 굴러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적막한 해부실험실에 들리는 소리라고는 김이 서려 흘러내리는 물방울 소리뿐입니다.

'누구일까? 죽어 여기에 누워 찟겨지고 기워지고 감겨지고 벗겨지고 그래도 죽지못해 여기 남아 있는 이들은 대체 누구일까, 누구일까?'

해부실험실 가장자리로는 허리만큼 높이의 선반이 둘러져 있고 선반위에는 큰 알콜병이 놓여져 있습니다. 고등학교 과학 실험실에 가면 토끼도 있고, 개구리도 있는 것은 많이 보았지만 이곳에서는 모두 사람의 것이 알콜병속에 들어가 있었습니다. 태아가 있고, 영아가 있고, 반으로 갈라놓은 두개골이 있고, 반으로 잘라놓은 여인의 가슴이 있고, 하반신이 들어가 있었습니다. 모두다 알콜에 색이 바래고 썩어 문들어질 듯한 것들입니다.

'이것이 사람인가? 이것이 사람의 것인가?
이것이 누구의 것이길래 여기에 있는 것일까?'

나의 발을 떼는 소리조차도 여기 잠든 사람들을 깨울까봐 두렵습니다.
얼어붙은 이성과 육체를 어렵게 움직여 뒤를 돌아보니 함께 들어왔던 친구들이 보이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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