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같이 죽자.

삶과 죽음 이야기 2013. 1. 3. 08:59 Posted by 문촌수기

(5) 우리 같이 죽자

토요일은 금방 다려 입은 와이셔츠처럼 가볍습니다.
아내랑 딸아이와 함께 가벼운 아침 식사를 나눕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식탁대화의 주인은 딸아이입니다. 뜬금없이 딸아이가 말을 던집니다.

"아빠, 아빠가 여기서 제일 나이가 많지?"

나는 무슨 말을 하려나 의아해 하면서 이렇게 되물었습니다.

"여기 우리 셋 밖에 없는데 새삼 나이는 왜? "

"그러니까 아빠가 제일 먼저 죽지?"

"그건 꼭 그렇지 않단다."

갑자기 뜨끔해하면서 난 나의 죽음 일순위를 거부했습니다. 비겁하게.

"그래. 그럴 확률이 높다는 거야."

어디서 '확률'이란 말을 다 배워가지고 써는지 많이 컸구나 싶어 기특했습니다.

"그런데...... 먼저 죽지 말고 기다려. 우리 다같이 죽어."

이건 대체 무슨 말입니까? 가벼운 아침 다감한 식사시간에 웬 이런 소리를 하는지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습니다. 이제 여덟살. 참으로 묘한 나이가 아닐 수 없습니다.

"대체 무슨 소리를 하려고 그래? 너 오늘 아침 이상하구나."

제 엄마가 웃으면서 끼어듭니다.

"아빠가 먼저 죽으면 슬퍼.
엄마가 먼저 죽어도 슬퍼구. 그러니까 같이 죽자는 거야."

가슴이 뭉클해져오면서 가벼운 토요일 아침은 죽음이라는 사색으로 금새 침잠해집니다. 죽음이 슬픈 까닭은 아마도 남아 있는 이의 그리움 때문인가 봅니다. 죽음이 그토록 두려운 것은 아마도 사랑하는 이와 헤어짐 때문인가 봅니다.

같이 죽자던 딸아이와 거짓 약속(?)을 하며 빨간 볼에다 뽀뽀를 해주고 학교로 출근합니다.
사랑하는 이를 그리다가 그리움에 지쳐 노랗게 물들어 버린 낙엽을 밟으며,
애타게 기다리다 못내 속이 상해 붉게 타버린 단풍을 바라보며 출근합니다.

'낙엽따라 가버린 사랑'이라는 옛 노래를 흥얼거리며 길을 갑니다.

'찬바람이 싸늘하게 얼굴을 스치면
따스하던 너의 두뺨이 몹시도 그립구나.
푸르던 잎 단풍으로 곱게 곱게 물들어
그 잎새에 사랑의 꿈 곱이 접어 가버렸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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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 11. 4 가벼운 토요일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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