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그의 정의로운 전쟁
1909년(31세) 3월 2일 안중근은 김기용, 강기순, 백남규 등 11인과 동의단지(同義斷指)동맹을 결성하였다. 3월 5일에는 총기를 휴대한 약 300명의 의병을 이끌고 수청 방면으로부터 합십마 부근으로 이동하는 등 의병활동을 하다 이튿날 일진회 회원 박모를 응징하였다. 그해 4월 10일 이토 히로부미는 한국 병탄안을 찬성하였으며 7월 10일에는 일본 정부 각의에서 의결되고 일본 국왕은 그날로 재가하였다.
그해 10월 9일 이토는 일본 국왕을 만나 3, 4주간 예정으로 만주를 여행한다는 계획을 알리고 18일 중국 다렌에 도착한다. 블라디보스톡에 머물던 안중근은 이 소식을 듣고 우덕순을 만나 이치권의 집으로 함께 돌아와 이토 히로부미 처단 계획을 합의한다. 10월 22일 안중근, 우덕순, 류동하는 하얼빈에 도착하였다. 이때 이토는 아침 뤼순을 출발하였다.
드디어 역사적인 날. 10월 26일 아침 6시 30분경, 안중근은 새 양복과 모자를 쓰고 묶고 있던 집을 나선다. 7시경에 하얼빈에 도착하여 이토가 오기를 기다린다. 9시경 이토를 실은 열차가 하얼빈역에 도착하여 약 15분간 열차 안에서 코코프체프와 환담하였다. 9시 15분에 이토 히로부미는 하차하였다.
9시 30분경 러시아 의장대를 사열하고 일본인 환영단으로 향하던 이토에게 당당하게 다가가 ‘저자가 필시 이토일 것이다. 라고 생각하고 권총 세발을 발사하여 명중시켰다. 이후 곧장 그를 수행하던 사람들에게도 부상을 입혔다. 안의사는 죄 없는 수행원들까지 부상을 입힌 것에는 비통한 일이라고 재판장에서 말하였다. 그러나 이토의 얼굴을 확실히 알지 못하여 혹시라도 잘못 쏘았다면 일이 낭패가 되기에 그 주변인들이 이토라 여겨서 총을 발사하였다고 하였다. 그는 냉혈한 테러리스트가 아니다. 그는 정의로운 선비였다.
러시아 헌병이 안중근을 덮치자 그는 쓰러지면서 권총을 땅바닥에 떨어뜨리고 만국인들이 알아들을 수 있게 러시아 말로 “코레아 우레”를 외친 다음, 하늘을 향해 “대한 만세”를 목이 터져라 세 번 외쳤다. 10시에 이토는 하얼빈 역에서 절명하였다. 그는 뜻을 이루었다. “일을 도모하는 것은 사람에게 달려 있고, 완성하는 것은 하늘의 뜻에 달려있다(謀事在人, 成事在天)”이라 하였는데, 하늘의 뜻도 안의사와 함께 하였던 것이다. 본시 이 글은 《삼국지연의》에서 제갈량이 사마의의 군대를 화공(火攻)으로 물리치려 했으나 소나기가 내려 뜻을 이루지 못하고 탄식하며 했던 말이다. 그러나 안중근은 자기의 의거는 하늘의 뜻이었음을 밝히고 정당성을 부여하며 뤼순 옥중에서 먹을 갈아 이 글을 썼다.
러시아 당국은 안중근을 일제에 인도하기로 결정하였다. 11시 55분에 거사를 함께 했던 우덕순 조도선도 피체되었다. 11월 1일 뤼순으로 압송되고 11월 3일 오전 10시에 연루 혐의자 9명과 함께 뤼순 감옥에 수감되었다.
1910년 2월 7일부터 14일까지 중국 여순(뤼순)의 관동도독부 고등법원에서 안중근 의거에 대한 여섯 차례 공판이 열렸다. 2월 7일 1회 공판장에서 안중근은 “3년전부터 대한의군 참모중장의 자격으로 이등을 포살코자 했으며, 이 의거는 개인적인 원한이 아니라 한국의 독립과 동양평화를 위해서 독립전쟁의 일환으로 결행한 것이다”라고 진술하였다.
2월 9일 오전 9시 50분 제 3회 공판이 개정되었다. 여기서 안중근은 ‘이토 히로부미의 죄악’ 15개조를 설명하였다. 그러나 재판장에 의하여 중지 당하였다.
1. 대한제국 민황후를 시해한 죄
2. 대한제국 황제를 폐위시킨 죄
3. 을사 5조약과 정미 7조약을 강제로 체결한 죄
4. 무고한 대한인들을 학살한 죄
5. 대한제국의 국권을 강탈한 죄
6. 철도, 광산, 산림, 천택권을 강제로 빼앗은 죄
7. 제일 은행권 지폐를 강제로 사용하게 한 죄
8. 대한제국의 군대를 해산시킨 죄
9. 한국인들 교육을 방해한 죄
10. 대한인들의 외국유학을 금지시킨 죄
11. 교과서를 압수하여 불태워 버린 죄
12. 대한국인이 스스로 일본인의 보호를 받고자 한다고 세계에 거짓말을 퍼트린 죄
13. 대한제국과 일본 사이에 분쟁이 쉬지 않고 살육이 끊이지 않는데, 대한제국이 태평무사한 것처럼 위로 천황을 속인 죄
14. 동양평화를 깨뜨린 죄
15. 일본 천황폐하의 아버지 태황제를 죽인 죄
2월 10일 오전 9시 40분 제4회 공판에서 검찰관으로부터 각자에 대한 형량이 구형되는데 안중근은 사형, 우덕순과 조도선은 징역 3년, 유동하는 징역 1년 6개월이 구형되었다. 2월 12일 오전 9시 30분 제 5회 공판이 개정되었다. 두 일본인 관선 변호사의 변론이 행해졌다. 변론이 끝난 후 피고인들의 최후 진술에서 안중근은 일제의 침략상을 규탄하면서 한국의 독립과 동양의 평화를 위하여 이토를 척결했다고 당당하게 진술하였다.
“이토의 죄상은 천지신명과 모든 사람이 다 아는 일인데 무슨 오해란 말인가. 더구나 나는 개인 원한으로 남을 죽인 죄인이 아니다. 나는 대한국 의병 참모중장의 직무로 전쟁을 수행하다 포로가 되어 이곳에 온 것이다 .지방재판소와는 전연 관계가 없는 일인 즉, 만국 형법과 국제 공법으로서 재판하는 것이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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