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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온 듯 다녀가소서. (15)아니 온 듯 다녀가소서. 지난 여름 몇몇 선생님들과 고창 선운사 도솔암을 올랐습니다. 본시 도솔암을 찾은 까닭은 도솔암 위에 동학비기의 전설이 스며있는 마애불상이 있다기에 그 현장을 직접 만나보기 위함이었습니다. 바쁜 걸음으로 오르는 도솔암의 계단 위에서 나를 깜짝 놀라게 하는 짧은 경구의 말씀을 하나 보았습니다. "아니 온 듯 다녀가소서." 주지스님의 입장에서 이해한다면 내방객의 방문이 자칫 스님들의 수행에 방해가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조용히 다녀 가십사하는 뜻을 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이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찡해오는 희열을 느꼈으며 '마애불상의 배꼽'도 잊은 채 이 말씀만 입속과 마음속에서 되뇌었습니다. 내려오는 길에서도 그러했으며, 이 한 여름은 온통 이 한마디 말씀을 화두.. 2013. 1. 3.
어디로 가는 걸까? (14)어디로 가는 걸까? 무서운 꿈을 꾸었다며 한밤중 제 방에서 엄마, 아빠 방으로 건너와 잠을 잔 딸아이는 이제 10살입니다. 아침 햇살에 눈을 비비며 이부자리에서 일어나지도 않은 채 꿈 꾼 이야기를 합니다. " 아빠, 나 무서운 꿈 꿨어. 아빠랑, 엄마랑, 내가 높은 기둥을 올라가고 있는 거야. 그렇게 힘들진 않았어. 근데 참 이상했어. 어디로 가는지를 몰라서 엄마에게 물었어. '엄마, 우리 어디에 가는 거야?'라고 하니, 엄마는 '나도 모르겠어. 아빠한테 물어봐'라 하는 거야. 그래서 큰 목소리로 '아빠! 우리, 어디 가?'라 물었거던. 그러니 아빠도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라 하잖아. 기둥 밑에 사람들이 많이 모여 구경을 하고 있었는데..... 그 사람들도 갑자기 기둥으로 올라오잖아. 그 사.. 2013. 1. 3.
산다는 것은? (13)산다는 것은? Category: 삶과 죽음에 대하여, Tag: 여가,여가생활 09/19/2004 12:39 pm 어느 누가 말했더라. 산다는 것은 뭐....'만남'이랬다나? 아니 뭐라했는지 모르겠네... 그러면서 날 더러 '삶이 뭐라 생각하십니까'라고 묻길래, "삶. 그건 의무라고 생각해요. 세상 어느 누구도 스스로 선택해서 태어난 삶을 살진 않을 거요. 그건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라, 내게 맡겨진 것이지요. 그것을 잘 지켜 보존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보존해야 할 책임으로서의 삶, 그 삶은 '생명'으로서의 삶을 말한 것입니다. 또한 선택하는 삶이 따로 있지요. 그건, '생활'로서의 삶입니다. 그건 살아가면서 스스로가 선택하여 가는 것이지요. 학문, 결혼, 직업 그리고 가족 (어쩌면 죽음까지도... 2013. 1. 3.
무상본연(無常本然) (12)무상본연(無常本然) Category: 삶과 죽음에 대하여, Tag: 여가,여가생활 09/19/2004 12:37 pm 어제의 기쁨이 오늘의 슬픔으로 다가와 삶을 허무하다고 합니다. 어제의 해가 오늘의 해 인걸 세상사람들은 다르다 합니다. 항상 늘 그러한 것인데 세상사람들 아니라 합니다. 무상변화입니까? 항상불변입니까? 갑자을축입니까? 세세연연입니까? 그래도 세상사람들 가는 해를 보면서 한 해를 정리하고 새해를 설계합니다. 그래서 깨닫지 못한 세상 모든 사람들은 갑자을축을 나누며 내 것 네 것을 따지며, 오고감의 무상함에 덧없어 하며 감상에 젖곤 합니다. 그러나 그 무상함도 '늘 그러함'(항상)의 모습일 뿐이지 않습니까? 오고 감이 본시 그러함(본연)이며, 남과 죽음이 본시 그러함(본연)인데 '아니.. 2013. 1. 3.
아리스토텔레스의 삶과 죽음 (11)아리스토텔레스의 삶과 죽음 알렉산드로스를 가르치는 아리스토텔레스, 프랑스 화가 Charles Laplante 1867-1900작 [아리스토텔레스의 삶과 플라톤, 알렉산더와의 만남]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과는 달리 야만국 북쪽의 마케도니아 사람입니다. 그는 방탕한 젊음을 청산하고 위대한 스승 플라톤을 찾아 아테네의 아카데미아로 들어왔습니다. 윌 듀란트의 말을 빌리면 이들 師弟는 '둘 다 천재였으며, 그리고 천재끼리는 다아나마이트와 불처럼 잘 어울린다'고 하였습니다. 플라톤은 이 호방하고 기묘한 새로운 제자의 위대함을 인정하고 그를 '아카데메이아의 정신'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말하자면 '예지의 화신'이라는 뜻입니다. '청출어람 청어람 - '청색은 쪽에서 나왔지만, 쪽보다도 더 푸르다'라는 말처럼 제.. 2013. 1. 3.
플라톤의 삶과 죽음 (10)플라톤의 삶과 죽음 바티칸 궁전의 그림 가운데서는 물론, 라파엘로의 전 작품을 통해 가장 널리 알려진 그림이 바로 지금 보시는 라파엘로의 [아테네학당](바티칸 미술관,1510)입니다. 수많은 철학자이 회랑 좌우와 위아래로 흩어져 진리의 논의를 하는 가운데, 우리의 시선은 결국 계속되는 아치(arch)를 따라 그림의 중앙으로 초점이 모이게 됩니다. 이 그림 중앙에서 우리는 뭔가 진지한 논의를 하면서 한손으로는 책을 들고 안으로 걸어 들어오는 두 분의 賢者를 만나게 됩니다. 붉은 옷을 입은 왼편의 현자는 오른손으로 하늘을 가리키고, 푸른 옷을 입은 오른편의 현자는 오른손을 앞으로 뻗고 있습니다. 이분들이 바로 그 유명한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입니다. 플라톤은 바로 위대한 성인 소크라테스의 제자이며, .. 2013. 1. 3.
소크라테스의 죽음 (9)소크라테스의 죽음 프랑스의 고전주의 화가 다비드의 그림에는 스승의 죽음을 앞두고 비통에 빠진 제자들을 너무나 당당하게 위로하는 소크라테스를 볼 수 있습니다. 그의 오른손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독약이 든 잔으로 다가가고, 그의 왼손은 마치 죽음 이후의 이상세계를 그리워하듯 하늘을 가리킵니다. 철학의 성인 소크라테스는 지금으로부터 2천 4000여 년 전, B.C.399년. [아테네의 청년들을 부패시키고 새로운 神을 섬긴다]는 이유로 고소를 당하고 재판 결과 독배를 마시게 되는 사형 선고를 받게 됩니다. 그의 친구 크리톤의 탈옥 권유에도 불구하고 그는 옥중에서 태연하게 죽음을 마시게 됩니다. 그는 철학에 있어서 최초의 순교자가 됩니다. 그의 나이 70세 때 입니다. 그의 죽음을 제자 플라톤은 [대화]편.. 2013. 1. 3.
시체해부실험실에서-2 (8)시체해부실험실에서-2 [시체해부실험실에서 1- 계속]...................... 순간 가슴이 떨려오고 소름이 끼치기도 했습니다. '이 놈들이 분명 날 놀리려고 혼자두고 나갔구먼......' 그러나 이까짓 것 갖고 무서워한다면 조롱감이 될 것같아 알콜병 속의 인간(?)들을 찬찬히 바라보며 한 걸음 한 걸음 힘들게 출입문 쪽으로 발을 옮겼습니다. 출입문까지 가기에는 너무나 깊이 해부실험실 안쪽으로 들어와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고는 다리가 떨려왔습니다. 죽어 썩어가는 냄새와 썩어가는 것을 애써 막으려는 알콜냄새에 내 온몸은 젖어 무거웠으며, 어두운 적막함은 나의 발길을 붙잡았습니다. 그렇게 1-2분쯤 애써 태연한 채 출입문쪽으로 발을 옮기는 데 몇걸음 앞에서 갑자기 해부용 시신을 덮고 비닐이.. 2013. 1. 3.
시체해부실험실에서-1 (7)시체해부실험실에서-1 내가 대구에서 공부하던 고등학교 일학년 때였습니다. 그때도 아마 지금 이 맘 때처럼 가을 낙엽이 우수수 떨어질 때였습니다. 대구백화점에서 중앙도서관으로 그리고 계속 그 길을 따라 올라가면 경북대학교 의과대학과 부속 병원이 나옵니다. 의과 대학과 병원은 서로 좁은 포장도로를 하나 두고 마주 보고 있습니다. 길가에는 플라타나스 나무가 그늘을 지우고 물들어 있습니다. 고목 가로수와 낡은 대학건물은 늙은 것의 운치와 멋을 드러냅니다. 거기에 누가 먼저 가자 했는지, 어떻게 들어갈 수 있었는지, 그때 그 친구들은 정확히 누구인지 지금 생각해도 아련하여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시험을 끝내고 일찍 파한 날인가 봅니다. 같은 학급의 친구 둘과 함께 우리는 의과대학 해부 실험실에 들어가게 되었.. 2013. 1.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