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마음을 찾아, Tag: 여가,여가생활
09/18/2004 10:44 pm
♥마음 - (9) 이심전심
서로의 마음이 통하는 것을 '텔레파시(telepathy)가 통한다'라고도 합니다. 그리스 말로 '멀다'의 뜻을 가진 '텔레(tele)'와 '감정'의 뜻을 가진 '파토스(pathos)'의 합성어로서 서로 멀리 떨어져 있어도 정(情)이 통하고 마음이 통하는 것을 '텔레파시'라 합니다. 이를 한자성어로 말하면 이심전심(以心傳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곧 '마음으로써 마음을 전한다'는 뜻입니다. 멀리 떨어져 있어도, 만나지 않아도, 말하지 않아도, 눈만 바라보아도 서로의 뜻을 알고 서로의 마음을 전할 수 있는 그런 나 같은 사람이 있으면 얼마나 행복하겠습니까?
문자와 말을 빌리지 않아도 서로의 마음을 전하고 마음을 읽을 수 있는 이심전심(以心傳心)의 사이라면 석가모니 부처님과 제자 마하가섭의 염화미소(拈花微笑) 이야기가 유명합니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왕사성의 영취산에서 설법을 하실 적에 하늘에서 꽃비가 내렸습니다. 이 떨어진 꽃비 가운데 부처님께서는 범천(梵天)왕이 내린 '금비라'라는 꽃을 집어 들고 한참이나 대중들에게 보이고 계셨습니다. 제자들과 대중들은 스승의 그 까닭을 몰라 어리둥절한 눈빛으로 부처님과 서로를 번갈아 바라볼 뿐이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유독 마하가섭만이 스승이 집어드신 꽃을 바라보며 빙그레 웃고 있었습니다.
스승께서는 꽃을 집어드시고[拈花], 제자는 빙그레 웃는[微笑] 가운데에 스승과 제자간의 이심전심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의 정법(正法)은 수제자 마하가섭에게 전해지게 됩니다.
석가모니 부처님과 수제자 마하가섭 간의 이심전심은 염화미소 이야기 말고도 두 차례 더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중인도 비사리성의 다자탑에서 설법하실 적에 옷은 남루하고 얼굴은 거친 거지 행상의 수제자 마하가섭이 대중을 헤치고 부처님께 다가 왔습니다. 대중은 아무도 그를 알아보지 못하였습니다. 제자가 말없이 스승님 전에 절을 올릴 적에 스승 역시 말없이 당신의 자리를 반으로 양보하여 가섭제자에게 내어 줍니다. 마하가섭은 말없이 스승과 나란히 앉았습니다.
마지막 이심전심의 이야기는 부처님께서 쿠시나가라 성 사라수 아래에서 돌아가신 후에 나타납니다. 먼 길을 떠나 스승의 입멸을 지켜보지 못한 제자 마하가섭은 서둘러 돌아와 가까스로 스승의 다비(茶毘, '화장'에 대한 불교말)에 참여하게 됩니다. 아무리 불을 붙여도 그때까지 다비 장작더미에는 불이 붙지 않았습니다. 마침 마하가섭이 도착하여 부처님 발아래 무릎을 꿇고 엎드려 흐느꼈습니다.
"세존이시어 어찌하여 이리도 빨리 가시옵니까?"
그러자 부처님의 관이 열리며 부처님께서는 두 다리를 내보이셨습니다.
지고지순(至高至純)의 진리와 정법은 굳이 문자를 빌리지 않아도, 말을 하지 않아도 이렇게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해집니다. 불교는 바로 마음을 찾아 마음으로 전하고 결국 마음마저도 버리고 잊게 하는 종교인가봅니다.
'내 마음 아실 이, 내 혼자 마음 날 같이 아실 이'를 다시 한번 찾아봅니다. 나와 내 아내는 서로 이심전심을 할 수 있는 사이인지...........지금쯤 잠들었을 아내의 침실로 돌아갑니다.
12월 10일 (11:44)
서로의 마음이 통하는 것을 '텔레파시(telepathy)가 통한다'라고도 합니다. 그리스 말로 '멀다'의 뜻을 가진 '텔레(tele)'와 '감정'의 뜻을 가진 '파토스(pathos)'의 합성어로서 서로 멀리 떨어져 있어도 정(情)이 통하고 마음이 통하는 것을 '텔레파시'라 합니다. 이를 한자성어로 말하면 이심전심(以心傳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곧 '마음으로써 마음을 전한다'는 뜻입니다. 멀리 떨어져 있어도, 만나지 않아도, 말하지 않아도, 눈만 바라보아도 서로의 뜻을 알고 서로의 마음을 전할 수 있는 그런 나 같은 사람이 있으면 얼마나 행복하겠습니까?
문자와 말을 빌리지 않아도 서로의 마음을 전하고 마음을 읽을 수 있는 이심전심(以心傳心)의 사이라면 석가모니 부처님과 제자 마하가섭의 염화미소(拈花微笑) 이야기가 유명합니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왕사성의 영취산에서 설법을 하실 적에 하늘에서 꽃비가 내렸습니다. 이 떨어진 꽃비 가운데 부처님께서는 범천(梵天)왕이 내린 '금비라'라는 꽃을 집어 들고 한참이나 대중들에게 보이고 계셨습니다. 제자들과 대중들은 스승의 그 까닭을 몰라 어리둥절한 눈빛으로 부처님과 서로를 번갈아 바라볼 뿐이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유독 마하가섭만이 스승이 집어드신 꽃을 바라보며 빙그레 웃고 있었습니다.
스승께서는 꽃을 집어드시고[拈花], 제자는 빙그레 웃는[微笑] 가운데에 스승과 제자간의 이심전심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의 정법(正法)은 수제자 마하가섭에게 전해지게 됩니다.
석가모니 부처님과 수제자 마하가섭 간의 이심전심은 염화미소 이야기 말고도 두 차례 더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중인도 비사리성의 다자탑에서 설법하실 적에 옷은 남루하고 얼굴은 거친 거지 행상의 수제자 마하가섭이 대중을 헤치고 부처님께 다가 왔습니다. 대중은 아무도 그를 알아보지 못하였습니다. 제자가 말없이 스승님 전에 절을 올릴 적에 스승 역시 말없이 당신의 자리를 반으로 양보하여 가섭제자에게 내어 줍니다. 마하가섭은 말없이 스승과 나란히 앉았습니다.
마지막 이심전심의 이야기는 부처님께서 쿠시나가라 성 사라수 아래에서 돌아가신 후에 나타납니다. 먼 길을 떠나 스승의 입멸을 지켜보지 못한 제자 마하가섭은 서둘러 돌아와 가까스로 스승의 다비(茶毘, '화장'에 대한 불교말)에 참여하게 됩니다. 아무리 불을 붙여도 그때까지 다비 장작더미에는 불이 붙지 않았습니다. 마침 마하가섭이 도착하여 부처님 발아래 무릎을 꿇고 엎드려 흐느꼈습니다.
"세존이시어 어찌하여 이리도 빨리 가시옵니까?"
그러자 부처님의 관이 열리며 부처님께서는 두 다리를 내보이셨습니다.
지고지순(至高至純)의 진리와 정법은 굳이 문자를 빌리지 않아도, 말을 하지 않아도 이렇게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해집니다. 불교는 바로 마음을 찾아 마음으로 전하고 결국 마음마저도 버리고 잊게 하는 종교인가봅니다.
'내 마음 아실 이, 내 혼자 마음 날 같이 아실 이'를 다시 한번 찾아봅니다. 나와 내 아내는 서로 이심전심을 할 수 있는 사이인지...........지금쯤 잠들었을 아내의 침실로 돌아갑니다.
12월 10일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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