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군자, 국화 인문학 단상

인문학과스토리텔링 2017. 10. 27. 09:46 Posted by 문촌수기

가을의 군자,‘국화에서 삶의 길을 배웁니다.

국화 피면 가을이고, 들국화 지면 겨울이라는데 가을이 한창입니다. 꽃보다 아름다운 단풍에 물들어가면서 성질 급한 낙엽은 떨어지면서 조금씩 쌀쌀해지고 조금씩 쓸쓸함에 젖어가기도 합니다. 그런 가운데 교정에 노란 국화꽃이 장식되어서 학교가 환해지고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국화에게 삶의 길을 물어봅니다.

국화 이야기

* 사군자 국화의 덕국화는 매화, 난초, 대나무와 더불어 사군자라 합니다. 춘하추동 사계절의 주인공으로 국화는 가을의 주인입니다. 꽃에도 덕()이 있답니다. 가을의 꽃인 국화에서 덕이 있는 삶을 배웁니다. 모란이며 매화며 동백이며 백합이며 여러 꽃이 있겠지만 가장 덕이 있는 꽃이 국화인 듯합니다. 서리가 내린다는 상강(霜降)을 지나 겨울의 문턱에 들어서는데도 국화는 피어있답니다. 중국의 고전인 <종회부(鍾會賦)에서는 국화가 지니는 다섯 가지 덕을 이렇게 전합니다.

하나. 밝고 둥근 것이 높이 달려 있으니 하늘의 덕(天德)이오.

. 땅을 닮아 노란색을 띄니 땅의 덕(地德)이오.

. 일찍 심었는데도 늦게 피어나니 군자(君子)의 덕이오.

. 서리를 이기고도 꽃을 피우니 지조(志操)의 덕이오.

다섯. 술잔에 꽃잎을 띄워 마시니 풍류(風流)의 덕이라.

  

* 신용개의 국화 풍류조선 중종 때의 영의정 신용개는 중양절 밤에 주안상(酒案床)을 차려 내오라고 부인에게 부탁하였습니다. 손님이 오신 기척이 없어 부인이 기이하게 여겨 숨어보았더니, 여덟 그루의 국화 화분을 앞에 놓고 꽃과 대작(對酌)을 하고 있었답니다. 꽃에 술을 권하여 화분에 술을 붓고, 꽃잎 하나 따서 술잔에 띄워 주고받으며 마시기를 취하도록 하였다니 이 얼마나 멋들어진 군자의 풍류(風流)입니까?

 

국화와 중양절(, 99)

* 중양절우리 조상들은 철마다 때마다 의미를 부여하며 즐겼습니다. 이름하여 명절이죠. 지금은 명절이라면 추석과 설날만 생각하겠지만, 옛날에는 명절이 참 많았답니다. 특히 홀수 달에는 월과 일이 겹치는 11, 33, 55, 77, 99일은 설날, 삼짇날, 단오, 칠석, 중양이라 부르며 모두 명절이랍니다. 그 중에서 양기(陽氣)가 가장 크게 흥하는 날이 바로 중양절인 음력으로 99일이랍니다. ()가 겹쳤다고 해서 중구(重九)라고도 부릅니다. 음양의 원리에 따르면 홀수는 양수이고, 짝수는 음수입니다. 최고의 양수가 두 개 겹쳤다 하여 중양(重陽)이라 불렀죠.

* 풍즐거풍과 국화주 삼짇날(, 33)은 여성들의 명절이고, 중양절(99)은 남성들의 명절입니다. 삼짇날이 되면 아녀자들이 꽃바구니 들고 들로 산으로 나가 나비와 봄꽃 구경하며 진달래꽃 따다 화전 부쳐 먹는답니다. 중양절에는 여름 농사에 수고한 사내들과 열심히 글공부한 선비들이 이날만큼은 교외로 나가 국화전에 국화주를 마시며 가을 햇살과 바람 그리고 단풍과 국화와 벗 삼아 풍즐거풍(風櫛擧風)*하고 풍국(楓菊) 놀이를 즐겼답니다. 눈과 머리를 맑게 해주는 황국차는 가을 독서의 풍미를 더하기에 안성맞춤입니다. (*상투를 풀어 긴 머리카락을 빗질하듯 바람에 날리며, 아랫도리를 다 벗고 가랑이를 벌려 습한 곳에 햇살 가득히 양기를 받아들임)


오산천변 구절초 군락지

* 슬픈 이름의 구절초(九折草)지난 추석 연휴 때에 오산천을 산책했습니다. 오산천에 구절초가 한창이었습니다. 제가 참 좋아하는 들국화입니다. ‘왜 구절초라는 슬픈 이름을 가졌을까궁금했습니다. 양기(陽氣)가 가장 센 음력 99, 중양절(重陽節중구절) 즈음에 꺾어 말려서 약재로 썼답니다. 특히 부인병 치료에 좋다네요. 구절초 입장에서는 참 슬픈 이름을 가진 게 맞네요. ‘무용지용, 쓸모없는 것이 쓸모 있는 것이라는 장자(莊子)의 가르침이 맞네요.

* 무용지용(無用之用)- <장자>, ‘인간세에서

山木自寇也(산목자구야)           산 속 나무는 쓸모 있기에 재앙을 자초하고

膏火自煎也(고화자전야)                기름불은 제 몸을 불사르는구나.

桂可食 故伐之(계가식 고벌지)          계수나무는 먹을 수 있기에 베어지고

漆可用 故割之(칠가용 고할지)          옻나무는 쓸모가 있어 쪼개지네.

人皆知 有用之用(인개지유용지용)       사람들은 모두 유용함을 알 뿐,

而莫知 無用之用也(이막지무용지용야)   무용이 쓸모 있다는 것을 모르는구나.

 

* 그렇게 구절초 곁에서 들국화를 검색해보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전 여태껏 무식한 놈이었네요. 그 많은 들국화에도 제각기 이름이 다르다는 것을 알았답니다. 쑥부쟁이, 구절초, 벌개미취, 데이지, 감국, 산국 그리고 국화. 그리고 모든 들국화가 가을에 피는 줄 알았는데 흰 쟁반 위에 담겨 나온 반숙의 계란 프라이처럼 탐스럽고 예쁜 데이지는 봄에 핀다네요.

* 안도현 시인이 저를 '무식한 놈'으로 만들었답니다. 뭘 그리 대단한 일이라고? 알아도 그만, 몰라도 그만인걸. 그냥 무식하게 살까 봅니다.

"쑥부쟁이와 구절초를

구별하지 못하는 너하고

이 들길 여태 걸어왔다니

나여, 나는 지금부터 너하고 절교다!"

- 안도현의 시, <무식한 놈>


 윤동주 시인의 언덕

* 인왕산 자락에서 하숙을 했다던 윤동주 시인의 하숙집에서 수성동 계곡을 지나 인왕산 숲길을 걷다보면 윤동주 시인을 기리는 서시정시인의 언덕윤동주 문학관이 나옵니다. 그 언덕에도 구절초가 한창이었습니다. 더욱 애절미를 느끼게 됩니다.

 

국화와 시()

* 충절을 귀히 여긴 선비들이 특히 국화를 좋아하여 시를 많이 읊고 그림도 그렸답니다.

* 송순의 시조 - 명종이 옥당에 황국을 하사하시며 노래()를 지어 올리라 했을 때 옥당관 대신이 지은 바친 시조랍니다.

풍상이 섯거친 날에 갓 픠온 황국화를

금분에 가득 다마 옥당에 보내오니,

도리야 꽃인 체 마라, 님의 뜻을 알괘라.

* 풍상(風霜) : 바람과 서리로 세상살이의 고생과 역경을 비유한 말
* 옥당(玉堂) : 조선시대 홍문관(弘文館)을 말함. 홍문관은 경서와 사적과 문한의 처리 및 왕의 자문에 응하는 관아
* 도리(桃李) : 복숭아꽃 오얏 꽃을 말함

  * 이정보의 시조 - 조선 영조 때의 문인으로 시조 78수를 남겼으며, 성품이 엄정하고 바른 말을 잘하여 여러 번 파직을 당하였습니다. 한송재(寒松齋)에서도 선비의 절개가 있죠. <논어>의 세한연후지송백지후조(歲寒然後知松柏之後凋)에서 가져온 이름이겠습니다.

국화야, 너는 어이 삼월 춘풍 다 지내고

낙목한천에 홀로 피었나니

아마도 오상고절은 너 뿐인가 하노라.

* 낙목한천(落木寒天) : 나뭇잎 다 떨어진 추운 겨울
* 오상고절(傲霜孤節) : 서릿발이 심한 추위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홀로 꼿꼿하다는 뜻으로, 충신 또는 국화를 말함

* 정몽주의 국화탄(菊花嘆) - 구차한 목숨보다 일편단심을 지킨 절개의 선비입니다.

꽃은 비록 내 말을 알아듣지 못하지만 花雖不解語(화수불해어)

나는 그 꽃다운 마음을 사랑하나니 我愛其心房(아애기심방)

내 평생 술잔을 들어본 일 없으나 平生不飮酒(평생불음주)

오늘은 너를 위해 잔을 들어 보리라 爲汝擧一觴(위여거일상)

내 평생 입을 벌려 웃어본 일 없으나 平生不啓齒(평생불계치)

오늘은 너를 위해 크게 한번 웃어 보리라 爲汝笑一場(위여소일장)

오직 나는 국화를 사랑하나니 菊花我所愛(국화아소애)

도리(桃李)는 번화하기 이를 데 없네 桃李多風光(도리다풍광)

  * 국화탄 : 국화에 감탄하며 지은 시
* 일편단심(一片丹心) : 한조각의 붉은 마음. 변치 아니하는 마음
* 도리(桃李) : 복숭아와 오얏으로 이성계 일파를 상징한 듯

 

국화도와 국화시

정조의 <국화도> - 멋쟁이 임금이시네요. (84.6×51.3cm, 동국대박물관) 

서정주의 <국화 옆에서>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하여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하여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머언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노란 네 꽃잎이 피려고

간밤에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내게는 잠이 오지 않았나 보다.

~ 학창시절 애송한 시인데, 시에서 국화는 일왕으로 상징하고 이 시를 친일시라는 논란이 있었습니다. 그에 대한 평가는 제 능력 밖입니다.

* 이 가을, 국화를 만나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를 돌아보게 됩니다.

국화에게삶을묻다.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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