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은 만물을 창조하였고 사람은 그 만물에 이름을 붙인다. 그러나 그 이름에 집착해서는 안된다. '이름을 이름이라고 하면 이름이 아니기(名可名 非常名)' 때문이다. 그래서 새롭게 이름을 붙이고 또 다른 의미를 부여한다. 새롭게 이름을 부르고, 의미를 부여하면 시가 된다.
먼저 시를 많이 읽는 것이 시를 배우는 것 아닐까?
17 09 子曰: “小子何莫學夫詩? 詩, 可以興, 可以觀, 可以羣, 可以怨. 邇之事父, 遠之事君; 多識於鳥獸草木之名.”
( 자왈: “소자하막학부시? 시, 가이흥, 가이관, 가이군, 가이원. 이지사부, 원지사군; 다식어조수초목지명.”)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어찌하여 시를 배우지 않느나? 시는 (의지를) 일으키고, (득실을) 관찰할 수 있으며, 무리지을 수 있으며(和하면서도 방탕한대로 흐르지 않으며), 원망할 수 있으며(怨而不怒), 가까이는 어버이를 섬길 수 있고 멀리는 임금을 섬길 수 있고, 새와 짐승, 풀과 나무의 이름을 많이 알게 한다.
The Master said, ‘My children, why do you not study the Book of Poetry?
‘The Odes serve to stimulate the mind. They may be used for purposes of self-contemplation. ‘They teach the art of sociability. They show how to regulate feelings of resentment. From them you learn the more immediate duty of serving one’s father, and the remoter one of serving one’s prince. From them we become largely acquainted with the names of birds, beasts, and plants.’
'논어와 놀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1719 하늘이 무슨 말을 하더냐? (0) | 2022.04.28 |
---|---|
1710 시를 배워야 (0) | 2022.04.27 |
1707 물들어도 더럽혀지지 않는다. (0) | 2022.04.10 |
1706 사랑의 기술, 仁之行五 (0) | 2022.03.28 |
1219 덕풍의 정치 (0) | 2022.03.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