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여성, 또 하나의 미술사
나혜석, 박래현, 방혜자,
이성자, 천경자, 최욱경
봉건, 남성 중심 가부장제의 질곡을 딛고 일어선 한국 여성 미술의 여정을 추적하는 섹션이다. 근대미술을 '여성'이라는 시각으로 조명한 전시는 아직 한번도 없다. 이 섹션은 남성 중심의 주류 미술사에 새로운 문제를 제기한다(2022년 베니스비엔날레 본 전시는 '여성 비엔날레'를 표방했다). 한국 근대의 여성미술은 그 존재 자체로 선구적, 이례적, 극적, 숙명적이다. 불같은 생애와 예술은 모두가 한 편의 소설이요 드라마 이상이다. 출품 작가 모두 험난한 해외 유학의 길을 걸었다. 결혼과 육아, 가사, 사회 편견 등 많은 고난과굴곡을 딛고 일어선 여성의 승리로 볼 수 있다. 근대 여성 미술사야말로 페미니즘의 맹아다.
최초의 여성화가 나혜석은 소설가, 시인, 애국지사, 신 여성운동가로 불같은생애를 살았다. 전시 출품작 파리, 스페인 풍경은 그 파란의 생의 궤적을 불러낸다. '여성=대지'의 정신으로 앵포르멜 회화 세계를 이룩했다. 마침내 우주적 기호가 춤추는 환상의 세계를 펼쳤던 이성자와 방혜자는 나혜석에 이어 파리 땅을 밟았던 재불 여성화가의 선구자다. 무한과 영원, 숭엄한 정신의빛을 노래했던 방혜자의 앵포르멜 작품이 소개된다. 전통화 베이스로는 박래현과 천경자의 존재가 언제 봐도 압권이다. 김기창의 아내 박래현은 구상에서 추상의 길을 걸으며 판화, 타피스트리로까지 조형 영역을 확장했다. 대표작 <이른 아침>(대한미협전 대통령상 수상작)이 전시에 나온다. 꽃과 여인의화가로 대중적 인기까지 구가해온 천경자는 채색화의 전통을 끝까지 지켜낸인물. 천경자 작품의 백미 <초원> 대작이 이번 전시에 나온다. 분방한 필치와강렬한 색채의 추상표현주의 양식으로 역동적인 조형을 펼쳤던 요절 화가 최욱경도 눈길을 끈다.
1) 나혜석(羅蕙錫, 1896-1948)
나혜석은 한국 초기 서양화가자, 소설가, 수필가, 언론인, 여성운동가이다.용인과 시흥 군수를 역임한 나기정(羅基貞)의 차녀로 태어나 유복한 유년시절을 보냈다. 당시 개화사상을 받아들인 부친의 뜻에 따라 진명여자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13년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여자미술전문학교 유화과에 입학하며 본격적인 미술 공부를 시작하였다. 당시 학교 기관지 편집부원으로 활동하거나 단편소설 <경희>(1918)를 발표하는 등 문필가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고, 귀국 후에는 『신여자』를 창간하며 계몽운동을 전개하기도 했다. 1920년 김우영과 결혼 후 이듬해 개인전을 개최, 1930년대까지 《조선미술전람회》, 일본 《제국미술원전람회》에 출품하며 작품 활동을 펼쳐갔다. 김우영과 결혼생활 중 세계 일주 여행을 떠나 1928년 파리 아카데미 랑송(Ranson)에 다니며 미술 수업을 받기도 했으며, 당시 유럽의 미술을 접하기도 했다. 여행 당시 만난 최린과의 관계로 인해 1930년 이혼하였다. 이후에도 개인전을 개최하거나 전람회 수상을 했으나 가족과 사회의 지탄을 피할 수 없었다. 1930년대 후반부터 절과 친정집을 떠돌던 나혜석은 해방 후인 1948년 서울 원효로 시립자제원에서 행려병자로 사망하였다.
"조선의 남성들아! 그대들은 인형을 원하는가? 늙지도 화내지도 않고 당신들이 원할 때만 안아 줘도 항상 방긋 웃는 인형 말이오.
나는 그대들의 노리개를 거부하오.
내 몸이 불꽃으로 타올라 한줌 재가 될지언정, 언젠가 먼 훗날 나의 피와 외침이 이 땅에 뿌려져 우리 후손 여성들은 좀 더 인간다운 삶을 살면서 내 이름을 기억할 것이다."
- 나혜석 -
이 작품은 옥인동 47번지 일대에 친일 귀족 윤덕영이 지은 화려한 서양식 건물이었던 벽수산장을그린 작품이다. 석재 혼입의 벽돌 2층으로 이루어진 프랑스 계통의 르네상스 양식으로 지어진 건물이었다. 당시 '한양의 아방궁'으로 불릴 정도로 유명했다. 나혜석은 이혼 후 절과 친정집을 떠돌며지내곤 했는데 이때에도 나혜석은 그림에 강한 집념을 보이며 틈틈이 작품 활동에 매진했다. 나혜석이 벽수산장을 소재로 택한 경위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당시 나혜석의 오빠인 나경석의 집이 신교동에 있었기 때문에 이곳에 머물 때 잘 보이던 벽수산장을 그린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거친 붓질로 두텁게 물감을 쌓아 올린 화면은 상당한 밀도와 완성도를 보여준다. 또한 원경의 산과 별장의 윤곽, 근경까지 이어지는 수목이 짜임새 있는구성을 보여준다. 나혜석의 화풍이 가장 원숙한기교를 발휘할 때 그려진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나혜석은 일본 유학을 통해 서양미술의 이론과 화풍을 습득하였기 때문에 초기에는 인상파 및 후기 인상파와 같은 용어를 사용하면서도 그 내용을혼동하곤 했는데, 유럽에서 야수파와 입체파 등을 직접 접하며 점점 자신이 추구하는 작품 경향을 명확히 하게 된다. 나혜석은 일본 유학 시기 습득한 자신의 화풍이 형체, 색채, 광선에만 집중해기교의 진보만 있을 뿐 정신적 진보가 없음을 괴로워 했다. 하지만 파리 유학에서 배운 표현 기법을 통해 외부 풍경을 그대로 묘사하거나 인상 표현에 치중한 그림이 아닌 개성적인 자아 표출, 예술의 본질을 찾으려 했다. 강가에 비친 파리의 건물과 나무의 풍경을 그린 <파리 풍경>(1927-28)은 나혜석이 기존에 그리던 도식적인 풍경화보다 구성적으로나 표현적으로나 자유로운 인상을 준다. 단순한 색채와 과감한 붓 터치는 당시 야수파의영향을 받은 듯 보이며, 안정적인 원경 구도와 조화로운 색채 효과에서 한층 더 성숙해진 회풍을 보인다.
2) 박래현(朴崍賢, 1920 - 1976)
우향(雨鄕) 박래현은 경성여자사범학교 재학 시절 미술교사였던 에구치 게이시로(江口敬四郎)에게 개인지도를 받으며 화가의 꿈을 키웠다. 이때 사군자를 비롯한 동양화를 배운 것은 후에 1941년 도쿄여자미술전문학교로 유학할 때 일본화과 사범과를 선택한 계기가 된다. 이 시기에 이미 명성을 얻고 있던 운보 김기창(雲甫 金基昶, 1914-2001)을 만나, 1946년 결혼하고 부부전을 지속적으로 개최하는 등 예술적 동반자로서 성장해 나갔다. 유학시기 박래현은 사실적이고 장식적인 묘사에 기반한 일본 전통화 교육을 받았지만, 박래현의 독자적인 개성이 창조되던 시기는 졸업과 해방 이후였다고 볼 수 있다. 1950년대 박래현의 작품 경향은 어느 정도 형태를 남겨두는 반추상에 가까웠으나, 1960년대에 들어서면서 점차 완전한 추상적 화면을 보여주며 조형 실험을 전개했다. 박래현은 여기에 안주하지 않고 1969년부터는 미국 뉴욕의 밥 블랙번(Bob Blackbunn) 연구소와 프렛(Pratt) 그래픽 센터에서 판화와 타피스트리를 배워 작업에 접목하기도 했다. 이렇듯 박래현은 작품의 표현 양식과 매체에 한계를 두지 않고 끊임없이 작업세계의 외연을 넓혀간 작가라고 할 수 있다.
3) 수임(樹淋) 방혜자
수임(樹淋) 방혜자는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를 졸업하고 1961년 프랑스 파리 유학길에 올랐다. 파리에 정착하여 60여 년간 한국과 프랑스를 오가며 활발한 작품 활동을 펼쳐온 방혜자는 작가가 즐겨 찾는 소재와 특유의 화풍으로 인해 '빛의 화가'로 불린다. 이미 대학 시절부터 아카데믹한 그림보다 자신만의 고유한 화풍을 찾고자 했던 방혜자는, 당시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인 김병기와 유영국이 운영하던 현대미술연구소에서 작업하며 자신의 내면을 가장 잘 나타낼 수 있는 방법론으로 추상적인 표현 방식을 시도하고 있었다. 방혜자는 화업 평생 새로운 기법과 재료를 탐구해갔다. 프랑스에서 습득한 유화, 프레스코, 판화, 이콘, 스테인드글라스 그리고 오랜 시간 수련해온 서예 경험은 작가 자신을 구성하고 있는 동양적 전통, 어린 시절 자연과의 교감, 문학적 감수성 등과 결합하여 방혜자의 고유한 작품 세계를 더욱 풍부하게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1970년대 후반부터 방혜자는 작품의 주제를 보다 단순화하는 대신, 우주 공간으로 주제를 확장한다. 보다 원초적인 자연을 상징화하고 내면으로 끌어들여 자신만의 독특한 미감으로 표현하는방혜자의 작품은 곧 명상의 시각화라고 할 수 있다. <무제>(1977)의 캔버스를 물들인 것처럼 맑은 바탕색은 자연의 색상처럼 밝고 따뜻한 인상을 준다. 그 위에 상형문자를 연상시키는 도형들은 산화된 녹과 같은 색상으로 처리되어 마치 동판에 자연 발생한 것처럼 신비로움을 느끼게 한다. 1970년대 중반부터 방혜자는 유화 바탕에 물감을 물들인 한지를 뜯어 붙이고 그 위에 다시 유화 물감을 얹거나 기름을 먹처럼 풀어쓰는 기법을개발한다. 이와 같은 재료와 기법 탐구는 방혜자의 작품을 더욱 다채롭게 만들며 동·서양의 조화를 이루고 있다.
'빛'은 방혜자의 작품 세계에서 중요한 모티브이다. 방혜자에게 빛은 생명의 근원이자, 만물의 기운그 자체를 의미한다. 이처럼 방혜자는 추상적이고 정신적인 빛의 비가시적인 속성을 탐구하는한편, 동시에 빛 자체를 가시적으로 표현하기 위해서도 다양한 실험을 거쳐왔다. <빛>(1965)은 방혜자가 1961년 도불 이후 몇 년이 지난 상태에서제작한 작품인데 이 사이 작품의 변화를 눈여겨볼 만하다. 1960년대 초 방혜자 작품은 구획된 화면 구성과 비교적 짙은 색감을 사용했다면, 도불후엔 점차 밝은 색상을 즐겨 사용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화면 중앙에 도형과 붓 터치를중첩하면서 시선을 가운데로 모으는 것도 1960년대 작품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로 인해 작지만 선명한 빛이 새어 나오는 듯한 효과를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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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이성자(1918-2009)
1918년 전라남도 광양에서 출생한 이성자는 어린 시절부터 그림에 소질을보였고, 문학에도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1935년 일신여자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한 후 일본 유학을 떠나 짓센여자대학에 입학하는데, 특기할 점은 미술이 아닌 가정학을 전공했다는 점이다. 이성자가 미술에 입문한 것은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가족들과 헤어지며 서른셋의 나이로 프랑스에 건너 가면서부터이다. 처음에는 의상 디자인을 공부했으나 이성자의 재능을 알아본 디자인 학교 한 선생의 도움으로 1953년 파리 아카데미 드라 그랑 쇼미에르(Académie de la Grande Chaumiere)에 입학해 회화와 조각을 공부하게 된다. 이성자는 당시 프랑스를 비롯해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던 추상회화 경향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특정한 매체에 얽매이지 않으며 다양한 재료와 기법을 시도하며 독자적인 작품 세계를 구축했다. 1956년 프랑스에서 첫 개인전을 개최한 이후 한국에서는 1965년 15년 만에 귀국전을 열었다. 이후 1975년 <제13회 상파울루 비엔날레>에 한국 대표로 참가하기도 했고, 프랑스와 한국을 오가며 대규모 전시를 개최하는 등 활발한 작품 활동을 펼쳤다.
<용맹한 4인의 기수>(1960)는 낭만적이고 문학적인 제목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마티에르를 살린 따뜻한 바탕 위에 직선, 사각형, 푸른색 작은 원형이 늘어진 이 작품에서 드러나는 바와 같이 이성자의 추상화는 절제되고 단순화한 화면 구성, 특히 기하학적 도형의 사용이 특징이다. 이는 이성자가 그리고자 하는 주제와 내면 세계를 표현하기위한 방법론으로 도형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성자는 회화나 판화는 물론이고, 시화집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예술 활동을 펼쳐 왔다. 이러한 활동은 각기 다른 매체임에도 창작이라는 하나의 행위로 귀결된다. 바로 창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모티브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성자의 작품은 신비롭고 감각적인 화면 너머 문학적인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지구 위의 한 지점과 그 정반대의 지점을 뜻하는'대척지'는 한국과 프랑스를 오가던 이성자가 느끼던 심리적, 물리적 차이와 거리감을 내비치고있다. 이성자는 자신의 근간인 한국이라는 뿌리, 동양 정신과 서양 미술 매체의 형식, 기법 사이에서 조화를 만들어가며 작품 세계를 성공적으로 구축해 갔으나, 늘 두 대척지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하는 개인의 삶은 훨씬 더 고단하고 어려운 것이었다. 그러나 <대척지로 가는 길, 7월N.2,80>(1980)은 쓸쓸함이나 혼란만을 보여주지 않는다. 차분한 붉은빛의 은은한 그라데이션과 그 위에 흩뿌려진 물감, 달을 연상시키는 원형은 마치 미지 우주의 신비로움을 보여주는 듯하다. 이 작품에서 보이는 바와 같이 1980년대에 이르면 이성자의 화면은 조밀한 터치와 다양한 기호의 반복이 점차 사라지고, 보다 몽환적인 화면에 절제된 도형이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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