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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길 인문학 산책

정동길 산책 - 홍난파 가옥

by 문촌수기 2023. 10. 29.
홍난파 가옥

홍난파가옥
1930년 독일계 선교사 가옥으로 지어진 이 집은 '고향의 봄', '봉선화', '퐁당퐁당' 등 주옥같은 우리 가곡과 동요를 남긴 작곡가 홍난파가 1935년부터 6년간 거주하면서 말년을 보냈기에 '홍난파의 집'이라 부른다. 1900년대 초반 부근 송월동에 독일영사관이 위치해 있었기에 이 일대는 국내 독일인들의 주거지였다. 홍난파는 이 집에서 지내면서 그의 대표작 가운데 많은 작품을 남겼다. 서쪽 도로를 통해 마당 안으로 들어와 계단을 오르면 현관으로 이어지는 이 집은 지붕이 가파르며 거실에는 벽난로가 있는 것이 특징이다. 남쪽 현관과 이어진 복도의 서쪽과 동쪽에는 각각 거실과 침실을 두고 가파른 경사지를 이용하여 거실의 아래쪽에는 지하실을 두었는데, 이는 공간을 알뜰하게 활용하던 당시 서양인 주택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1층 동쪽에 있던 두 개의 침실은 홍난파기념관 전시실로 사용하고 있다.

홍난파 상, "인생은 짧지만, 조국과 예술은 영원하다"라는 글귀에 가슴이 찌릿하다.

월암공원 끄트머리에 작고 예쁘장한 집 한 채를 찾을 수 있다. 1930년대 독일 선교사가 지은 서양식 건물을 작곡가 홍난파 선생이 인수해서 살았던 곳이다. 새롭게 복원한 한양도성의 월암공원 윗쪽에 있으며 집 앞에 홍난파 선생의 흉상이 세워져 있다. 일제 강점기에 널리 애창되며 민족의 애환을 위로한 ‘봉선화’의 작곡가이기도 한 홍난파 선생은 ‘친일파이냐, 아니냐?’ 라는 논란의 인물이 되기도 하였다. 홍난파는 1937년 독립운동단체인 수양동우회 회원이라는 이유로 검거되고서 친일음악가로 변절하였다고 한다. 나는 무엇이 사실인가에 대해 말하고 싶지 않다. 그럴만한 전문적인 지식을 가지지 못했으며 또한 그렇게 깊이 공부할 여력도 없다. 홍난파 가옥 앞에 세워진 그의 흉상 앞에서 봉선화를 불러본다. 이 노랫말에서 부르는 '봉선화'는 누구인가? 상념에 젖어본다.

울밑에선 봉선화야
네 모양이 처량하다. 
길고 긴 날 여름철에
아름답게 꽃필 적에,
어여쁘신 아가씨들
너를 반겨 놀았도다.”

2013년 봄에 이 가옥에 들렀을 때 마침 홍난파 선생의 손자이신 분(홍익표, 사단법인 홍난파의 집 이사장)을 만났다. 이 홍난파 선생님의 삶과 가옥에 대해 설명해주시고 촬영에도 응해주셨다. 그 모습이 많이 닮았다. “할아버지를 단순히 친일파로만 폄훼하지 말아 달라”는 말씀도 하셨다. 이 집에는 친일 논란이 있는 홍난파 만 살았던 것은 아니다. 항일의 역사도 서려 있다는 주장도 있다. 더 이상의 이야기는 여기서 접어두고 길을 계속 이어간다. 
경교장을 이어 홍난파 가옥을 찾을 때마다 자신에게 물음표를 던지게 된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그는 왜 그랬을까, 그때의 나라면 어떠했을까?"
역사를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우리는 역사를 너무 간단하게, 그리고 너무 쉽게 지금의 나를 위주로 해석하는 것은 아닐까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반구저기(反求諸己)를 해 볼 일이다. 돌이켜 나를 돌아본다. 세상사가 대체로 그러하겠지만 경계하고 경계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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