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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커피그림이야기

[스크랩] 김민기와 비소츠키

by 문촌수기 2024. 8. 20.

[자작나무 숲] 김민기와 비소츠키
김진영 연세대 노어노문학과 교수
입력 2024.08.19. 23:58 |

일러스트=이철원

그의 낮은 목소리는 가짜 신념과 과장으로 가득 찬 오늘의 소음과 너무 다르다. 예전엔 그 목소리를 제대로 들어보지 못했다. 그는 항상 뒤쪽 어딘가 물러서 있었고, 그의 노래가 ‘우리의 노래’였던 시대도 이제는 까마득하다. 다른 가수들이 제각각으로 소화해 인기를 얻곤 했지만, “내 노래는 내가 제일 잘 부르지”라며 자부한 김민기다. 실제로 그가 부를 때, 노래와 목소리와 사람은 온전하게 ‘하나’다.

시대가 읽는 문학처럼, 시대가 부르는 노래가 있다. 김민기 노래는 시대의 노래다. 밀실의 읊조림이 광장의 함성으로 뒤바뀐 경우다. 그런데 원래 그의 노래는 광장의 피가 흐른다. 단조로울 만큼 정직한 4/4박자 행진가 리듬, 형식과 잘 맞아떨어지는 내용은 집단 감염력이 있다. 사적인 타령과는 거리가 멀다. 사랑이란 단어도 없고, 있다면 ‘우리네 인생, 우리네 사랑’ 정도다. 가사에 등장하는 ‘나’는 ‘우리’의 일부고, 노래하는 관점도 보편적 관찰자 것이다. 공장 직공 합동 결혼식 축가였다는 ‘상록수’는 “손에 손 맞잡고/ (...)/ 깨치고 나아가 끝내 이기리라” 외치면서 끝난다. 두 남녀의 결혼 축가라기보다, 더 큰 가족(민중)의 인생 찬가다.

상록수A.mp3
4.13MB

김민기는 ‘운동가’를 자처하지 않았고, 특정 이념을 주장한 적도 없다. 그런데 그의 노래는, 전혀 의도하지 않았다는데도, 듣는 이 가슴을 뛰게 한다. 누군가 ‘나 이제 가노라’ 선창하면, 함께 따라나설 기분이 드는 것이다. 그 면에서 선동적인데, 세련되고 순수하다. 선동 목적이 분열이 아닌 통합에 있기 때문이다. 낡은 구호 하나 없이 선동하기 때문이다. 그의 노래는 갈라치며 싸우는 떼거리의 전유물이 아니라 모두 것이며, 그 안에서 사람들은 하나가 된다.

대중가요는 한때 저항 정신을 대변하는 전세계적 문화 현상이었다. 1970년대 한국의 통기타 음악은 1960년대 서구 사회의 반전·반문명 히피주의와 서로 통하고, 특히 동시대 소련의 언더그라운드 문화와 겹친다. 강압적이고 획일화된 체제에 숨 막혔던 소련 시민은 자유와 양심의 목소리를 찾아 밀실(아파트 부엌, 지하 소극장 등)로 모여들었고, 그들이 갈구한 진짜 ‘진실’은 사미즈다트(samizdat·자가 출판) 또는 마그니티즈다트(magnitizdat·자가 녹음) 형식으로 불법 제작·복제되어 비밀리에 유통되었다. 김민기가 송창식의 스튜디오에서 몰래 녹음했다는 카세트테이프 음반 ‘공장의 불빛’(1978)이 바로 ‘마그니티즈다트’ 범주에 속한다. 공권력과 시민의 숨바꼭질은 70년대 소련과 한국에서 동일하게 펼쳐졌으며, 불법의 합법화(해금)는 민주화와 페레스트로이카 시기인 80년대 후반에 앞다퉈 이루어졌다. 대중가요가 언더그라운드 문화의 한 축을 차지한 점도 일치한다.

청년 김민기와 비슷한 시기 활동했던 소비에트 대중문화의 우상 블라디미르 비소츠키(Vysotsky·1938~1980)는 ‘백야’라는 영화 속 망명 무용가 바리시니코프의 춤 배경 음악 ‘야생마’로 우리에게 잘 알려졌다가, 그 곡이 TV 드라마 ‘미생’ 주제가로 번안되는 덕에 다시 한번 유명해졌다. 작중 인물이 회사 옥상에 올라 침 튀기듯 ‘비장하게’ 원어로 내뿜는 노래다.
“협곡 벼랑길 아슬아슬한 가장자리 따라/ 채찍 휘둘러 말 떼를 몰아가네./ 숨 가빠 헐떡이며 나는 바람을 마시고 구름을 삼킨다네…”
비소츠키 역시 가래와 피 끓는 목소리로 포효하듯 불렀다.

비소츠키 자신이 소비에트의 길들여지지 않는 ‘야생마’였다. ‘기타 든 시인’이자 배우였던 그는 정치적 반체제는 아니었으나 자유분방하고, 개인주의적이고, 탈이념적이고, 따라서 결과적으로 반(反)소비에트였다. 관제에서 이탈한 방식, 거친 날것 언어로 소비에트 현실을 노래하는 그의 돌출적 개성은 해빙기 소련의 억눌린 숨통을 터주었기에, 아무리 출간·방송을 금지해도(그의 사후에야 허락된다) 대중은 비밀스러운 노래를 용케 찾아 들으며 열광했다. 술과 약물 중독으로 42세에 요절했을 때도 공식적인 애도는 없었지만, 시민의 자발적 조문 행렬은 10km(!)나 이어졌다고 한다. 스탈린의 죽음 이후 최대 인파였다.

비슷한 현상이면서도, 막상 두 ‘스타’는 대조적이다. 저음으로 속삭이는 김민기와 극대치로 절규하는 비소츠키, 김민기의 황소걸음과 비소츠키의 야생마 질주, 전자의 자기 절제와 후자의 자기 소진, ‘뒷것’ 김민기와 ‘앞것’ 비소츠키….

김민기 노래는 쉽게 따라 부르지만, 비소츠키 노래는 근본적으로 듣는 노래(시)다. ‘떼창’이 어렵다. 김민기 노래의 근원이 공동체의 연대 의식이라면, 비소츠키의 지향점은 독자적 개인자유주의다. ‘우리’ 아닌 ‘나’의 노래. 그것이 비소츠키 노래가 시대의 노래였음에도 광장의 노래는 되지 못한 첫째 이유 아닐까 싶다.

더하기, [김민기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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