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당 로비 성물방 앞에 그림 액자가 걸려 있다. 성전 올라가는 복도 오른쪽 벽에 위치하여 자주 봤지만, 오늘은 부활절 이후 첫 주일이라 더 큰 의미를 가지며 그림 앞에 멈췄다.
'엠마오로 가는 길'
나도 이 길에 동행하고 싶을 만큼 숲 속 길이 아름답다.
오늘은 그 그림을 보고 성경속으로 들어가 '엠마오로 가는 길'을 동행해본다. 지금 내 걷는 길, 언제나 어디에서나 주님께서 함께 해주시길 기도드린다.


스위스의 화가 로베르트 쥰드(Robert Zünd)의 '엠마오로 가는 길'(Road to Emmaus)은 부활한 예수 그리스도가 엠마오로 향하는 두 제자에게 나타나 이야기를 나누며 걷는 성경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인물들보다 울창하고 평화로운 자연을 풍성하게 그려 풍경화같이 아름답다.
예루살렘에서 엠마오로 가는 길
성경(누가복음 24장 13절)에 따르면 예루살렘에서 엠마오까지의 거리는 약 60 스타디온이며, 이는 현대 미터법으로 환산했을 때 약 11~12km 정도 떨어진 거리이다. 대체로 예루살렘에서 서쪽으로 하루 거리(걸어서 2~3시간)로 본다.

루카복음 24장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에게 나타나시다
13 바로 그날 제자들 가운데 두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예순 스타디온 떨어진 엠마오라는 마을로 가고 있었다.
14 그들은 그동안 일어난 모든 일에 관하여 서로 이야기하였다.
15 그렇게 이야기하고 토론하는데, 바로 예수님께서 가까이 가시어 그들과 함께 걸으셨다.
16 그들은 눈이 가리어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였다.
17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걸어가면서 무슨 말을 서로 주고받느냐?” 하고 물으시자, 그들은 침통한 표정을 한 채 멈추어 섰다.
18 그들 가운데 한 사람, 클레오파스라는 이가 예수님께, “예루살렘에 머물렀으면서 이 며칠 동안 그곳에서 일어난 일을 혼자만 모른다는 말입니까?” 하고 말하였다.
19 예수님께서 “무슨 일이냐?” 하시자 그들이 그분께 말하였다. “나자렛 사람 예수님에 관한 일입니다. 그분은 하느님과 온 백성 앞에서, 행동과 말씀에 힘이 있는 예언자셨습니다.
20 그런데 우리의 수석 사제들과 지도자들이 그분을 넘겨, 사형 선고를 받아 십자가에 못 박히시게 하였습니다.
21 우리는 그분이야말로 이스라엘을 해방하실 분이라고 기대하였습니다. 그 일이 일어난 지도 벌써 사흘째가 됩니다.
22 그런데 우리 가운데 몇몇 여자가 우리를 깜짝 놀라게 하였습니다. 그들이 새벽에 무덤으로 갔다가,
23 그분의 시신을 찾지 못하고 돌아와서 하는 말이, 천사들의 발현까지 보았는데 그분께서 살아 계시다고 천사들이 일러 주더랍니다.
24 그래서 우리 동료 몇 사람이 무덤에 가서 보니 그 여자들이 말한 그대로였고, 그분은 보지 못하였습니다.”
25 그때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아, 어리석은 자들아! 예언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믿는 데에 마음이 어찌 이리 굼뜨냐?
26 그리스도는 그러한 고난을 겪고서 자기의 영광 속에 들어가야 하는 것이 아니냐?”
27 그리고 이어서 모세와 모든 예언자로부터 시작하여 성경 전체에 걸쳐 당신에 관한 기록들을 그들에게 설명해 주셨다.
28 그들이 찾아가던 마을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 예수님께서는 더 멀리 가려고 하시는 듯하였다.
29 그러자 그들은 “저희와 함께 묵으십시오. 저녁때가 되어 가고 날도 이미 저물었습니다.” 하며 그분을 붙들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들과 함께 묵으시려고 그 집에 들어가셨다.
30 그들과 함께 식탁에 앉으셨을 때, 예수님께서는 빵을 들고 찬미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그들에게 나누어 주셨다.
31 그러자 그들의 눈이 열려 예수님을 알아보았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그들에게서 사라지셨다.
32 그들은 서로 말하였다.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나 성경을 풀이해 주실 때 속에서 우리 마음이 타오르지 않았던가!”
33 그들이 곧바로 일어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보니 열한 제자와 동료들이 모여,
34 “정녕 주님께서 되살아나시어 시몬에게 나타나셨다.” 하고 말하고 있었다.
35 그들도 길에서 겪은 일과 빵을 떼실 때에 그분을 알아보게 된 일을 이야기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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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루살렘과 엠마오 왕복
부활한 예수님이 처음 모습을 드러낸 곳은 예루살렘의 무덤 인근이었다. 안식일이 지난 주간 첫날 새벽, 마리아 막달레나를 비롯한 여인들이 천사에게서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듣고 무덤을 나서 달려가던 중 갑자기 예수님께서 마주 오시며 “평안하냐”고 물으셨다.(마태 28,1-10 참조)
지금 예수님의 무덤 자리라고 알려진 곳은 예루살렘의 구시가지로, 주님 무덤 성당이 자리하고 있다. 이곳에서 부활한 예수님의 여정이 시작됐다.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나 성경을 풀이해 주실 때 속에서 우리 마음이 타오르지 않았던가!”(루카 24,32)
예수님은 여인들에게 나타나신 후, 같은 날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과도 동행하셨다. 특히 루카복음은 이 여정을 자세하게 다룬다. 교회사 전승은 엠마오의 위치를 대략 예루살렘의 서쪽 혹은 북서쪽으로 본다. 어찌 됐든 루카복음에 따르면 예수님은 이 여정만큼은 확실히 ‘걸어서’ 이동하셨다.
루카복음은 예루살렘에서 엠마오까지의 거리를 예순 스타디온이라고 언급하는데, 1스타디온은 대략 185m 정도로 예순 스타디온은 11km를 웃돈다. 예수님은 이 거리를 두 명의 제자와 함께 걸으시며 이야기 나누셨고, 제자들의 집에서 그들의 눈을 열리게 하신 뒤 돌연 사라지셨다.
루카복음은 예수님을 목격한 마리아 막달레나와 여인들, 열한 제자, 엠마오로 간 제자들이 예루살렘에 모였다고 말한다. 갑자기 그들 가운데에 예수님이 서시어 평화의 인사를 나누고, 당신을 유령이라고 여기는 제자들을 나무라신 뒤 상처 난 손과 발을 보여주신다.(루카 24, 36-49 참조) 요한복음은 예수님이 토마스에게 옆구리를 만져보라고 하신 것도 언급한다.(요한 20,24-29 참조) 예수님은 이렇게 부활 후 만 하루 동안 엠마오와 이스라엘을 왕복하며 약 22km를 이동하셨다.

[부활 특집] 성경으로 엿본 부활하신 예수님의 이동 거리는? https://share.google/Cp49Mg9Id73qG4fPH
[부활 특집] 성경으로 엿본 부활하신 예수님의 이동 거리는?
신약성경은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의 굵직한 행적을 자세하게 담고 있다. 예루살렘의 무덤에서부터 승천한 장소로 알려진 올리브 산까지, 예수님은 40일 동안 제자들에게 여러 차례 다양한 장소
www.catholictimes.org
그림> 엠마오 가는 길(렘브란트)
바로 그 날 거기 모였던 사람들 중 두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한 삼십 리쯤 떨어진 곳에 있는 엠마오라는 동네로 걸어 가면서 이 즈음에 일어난 모든 사건에 대하여 말을 주고 받고 있었다. 그들이 이야기를 나누며 토론하고 있을 때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다가 가서 나란히 걸어 가셨다. 그러나 그들은 눈이 가리워져서 그분이 누구신지 알아 보지 못하였다.(루카 13-16)

누추함이 배어 나오는 실내 한가운데 식탁이 차려져 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엠마오로 향하는 길을 침통한 표정으로 터널터널 걷는 중 자신들에게 다가온 한 나그네의 하룻밤이 걱정되어 자신의 집으로 초대한 글레오파와 그의 친구는 손님을 가운데 두고 식탁에 앉아 있으며 소년 하나가 음식을 나르며 시중을 들고 있습니다. 음식이 차려지자마자 감사기도를 드리고 빵을 떼어 나누어주는 그 나그네의 모습에 고요한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듯한 모든 빛이 집중되어 있습니다.
바로 그제서야 눈이 열린 두 제자는 그 나그네가 바로 자신들의 스승인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을 알아보았습니다. 화면 오른쪽에 등을 보이는 제자는 화들짝 놀라 손을 얼굴에 대는 모습이고 화면 왼편의 제자는 몸을 뒤로 젖히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날 듯이 그려졌습니다. 반면 빵을 나르는 소년의 표정은 아무런 미동이 없습니다. 두 제자와 달리 반응이 없는 이 소년은 이전에 예수님을 한 번도 본적이 없다는 것을 은근히 암시하고 있습니다. 이 그림에서 예수님의 얼굴에 시선을 고정시키면 마치 그 안에 빨려 들어갈 것만 같습니다.
렘브란트는 이 예수님의 모습을 자신이 힘겨울 때 도움을 주었던 한 유다인 의사에게서 찾았습니다.미술사에서 갈채를 받는 화가 렘브란트의 위대함은 작품이 갖는 조형적인 우수함이 아니라 바로 이웃의 모습에서 예수님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는 ‘영혼의 눈’을 가졌다는 점일 것입니다. 주님, 제 눈이 열려 당신의 모습을 삶 속에서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정은진 / 기쁨을 전하는 그림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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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마오에서의 식사 (카라바지오)

카라바조의 ‘엠마오에서의 식사(Supper at Emmaus)’는 이 다양한 시도를 보여주는 걸작이다. 이 작품은 루가 복음 24장 13절 ‘엠마오로 가는 길에서’를 소재로 하고 있다. 이 성서의 이야기는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뒤 부활하시어 세상에 모습을 보이신 일화 중 하나이다. 낙심해서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가 우연히 길에서 예수님을 만나 동행하는데, 이들은 눈이 가려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다. 길을 걸으며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죽음과 부활에 대해 믿음이 적은 이들에게 성서에 나타난 자신에 관한 기사를 들어 설명하시고, 저녁식사에서는 빵을 들어 감사의 기도를 드리신 다음 이들에게 떼어 나누어주셨다. 이제야 이들의 눈이 열려 예수님을 알아보았는데, 이미 예수님의 모습은 사라져 보이지 않았다. 이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덕분에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주님의 부활에 산증인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카라바조는 이 그림 속에 강렬한 명암과 과장된 단축법을 도입하고 있다. 특히 그는 화면의 대부분을 어둡게 처리하고 있으며 예수의 머리와 얼굴을 비롯한 몇 부분만이 강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처럼 단일한 광원에 의해 화면 안 특정 부분은 선명하게, 나머지 부분은 짙은 그림자를 포함하여 매우 어둡게 표현하는 명암법을‘테네브리즘(Tenebrism)’이라 한다. 이 기법은 화면을 역동적으로 구성하기 위한 것이다.
그림을 보면, 예수는 식사의 주빈으로 빵을 축성하고 있다. 가톨릭 성찬전례 때 사제가 행하는 의식이다. 특이한 것은 예수가 수염 없이 매우 젊은 모습으로 묘사되어 있으며, 제자들은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사람으로서의 기품있고 근엄한 모습이라기보다는 실제 농부나 어부처럼 표현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런 묘사는 전통적으로 예수와 그 제자를 그리는 방식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이처럼 전통적인 방식을 왜곡시켜 표현하는 것이 바로크 예술의 특징인 바, 이는 예기치 못한 생소한 방식을 통하여 그림의 상징적 가치를 높이기 이한 수법이다. 또한 이례적으로 그리스도의 머리위에는 후광이 없다. 다만 그의 그림자가 후광을 대신하면서, 전통적인 사실주의에 대한 강한 거부감을 표현하고 있다.
왼쪽의 제자는 예수와 동행했던 글레오파이다. 그는 예수의 실체를 깨달은 순간 놀라서 자리를 박차고 있다. 반쯤 가려진 그의 얼굴은 놀란 표정을 우리의 상상에 맡기면서 그 느낌을 극적으로 몰고 있다. 그림 밖의 빛을 반사하는 팔꿈치의 구멍이 화면에 빛의 효과를 전달하고 있다. 이 구멍은 그의 거친 손과 함께 농부(어부)라는 그의 직업을 암시하지만, 당시 성자를 농부로 표현한다는 일반인의 비난을 면치 못했다.
오른쪽의 제자는 두 팔을 크게 벌리고 있다. 그 벌린 팔의 단축법이 그림에 깊이 즉 입체감을 부여한다. 특히 이 제자는 가슴에 새조개 표식을 달고 있는데, 이 표식은 순례자의 상징으로 이 제자가 곧 순례자임을 보여주고 있다.
예수의 오른쪽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는 사람은 여인숙 주인이다. 예수를 바라보는 그의 시선이 우리를 그리스도에게 인도하고 있다. 그의 평온한 모습은 그가 빵 축성의 의미를 알지 못함을 뜻하며, 두 제자의 흥분과는 대조를 이룬다. 이자는 교회를 인정하지 않는 자의 상징이다.
탁자 위에는 여러 가지 정물이 세밀하게 그려져 있는데, 정물의 대가로서의 카라바조의 면모를 보여준다. 특히 탁자 앞쪽의 떨어질 듯 아슬아슬한 광주리는 화면에 입체감을 부여한다. 광주리의 상한 사과와 쪼개진 무화과는 인간의 원죄를 의미하는 상징적 과일이며, 석류는 부활을 통해 죄악을 극복한 그리스도의 승리를 상징적으로 말하고 있다. 탁자 전경의 빈자리는 관객의 참여를 유도하는 공간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그림 속의 빵과 포도주는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의미한다. 가톨릭에서 성체성혈이라 부르는 이것은 그리스도와 일체를 이루며, 이 작품의 중심 테마를 구성하고 있다.
이처럼 카라바조는 익히 알려진 주제를 관례에 따르지 않는 획기적인 방식을 통해 왜곡시켜 표현함으로써, 그 내용을 보다 극적이며 직접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이런 다양한 조형기법은 훗날 렘브란트를 비롯한 많은 화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치게 된다.
(권용준, 한국디지털대학교 문화예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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