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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리아스, 아킬레우스

by 문촌수기 2026. 8. 19.

<오디세이>가 영웅 오디세우스의 이야기라면, 그 전편에 해당하는 <일리아스>의 주인공은 또 다른 영웅, 아킬레우스의 이야기다.
<오디세이>가 트로이전쟁 이후의 귀환의 이야기라면, <일리아스>는 트로이 전쟁의 막바지 이야기다.
'일리아드(Iliad)'는 고대 그리스어 '일리아스(Ἰλιάς)'에서 온 말로, '일리온(Ilion, 트로이 왕국 건국자 '일로스(Ilus)'의 이름에서 유래)의 노래'라는 뜻이다. 여기서 '일리온'은 고대 도시 트로이의 다른 이름입니다.
즉, 트로이 전쟁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리스로마 신화사전>의 텍스트를 중심으로 이윤기의 <그리스ㆍ로마 신화>를 펼쳐가며 아킬레우스와 트로이 전쟁을 읽어본다.

아킬레우스ㆍAchilles

<일리아스>에 등장하는 그리스 영웅들의 중심적 존재로, 아가멤논에 대한 그의 분노와, 헥토르와의 결투 등이 작품의 주요 테마가 되어 있다.

<여신과 인간의 아들>
아킬레우스는 테살리아의 프티아 왕인 펠레우스와, 네레우스의 딸이자 바다의 여신인 테티스의 외아들이다. 제우스와 포세이돈은 아름다운 테티스를 아내로 맞아 자식을 낳고 싶어했으나, 테티스와 프로메테우스가 두 사람에게, 그녀의 아들은 그의 아버지보다 더 위대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두 신은 자기보다 더 뛰어난 힘을 가진 아들을 낳는 모험을 저지르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테티스를 인간인 펠레우스와 결혼시키기로 하고 결혼식을 성대히 거행하게 했다. 이 결혼식에서 나중에 트로이 전쟁의 원인이 된 불씨가 심어졌다. 부부 사이에 불화가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해 일부러 초청하지 않은 에리스(불화의 신)가 식장에 모습을 나타내어, 일동 앞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성에게' 라고 쓰인 사과를 던졌기 때문에, 이것이 헤라, 아테나, 아프로디테 사이에 반목을 일으키게 되었다.

https://munchon.tistory.com/m/2345

황금사과, 트로이 전쟁의 도화선

펠레우스와 테티스의 결혼식펠레우스와 테티스, 낯선 이름들이다.그러나 이 둘은 아킬레우스의 부모님이라고 하면, '아 그렇구나'라며 알 만도 해진다. 아킬레우스는 오디세우스와 더불어 트로

munchon.tistory.com


<아킬레스 腱건>

테티스는 아들을 무척 사랑하고 있었다. <일리아스>에서의 그녀는, 아킬레우스가 마음으로부터 가장 큰 애착을 가지고 있는 유일한 여성으로 묘사되어 있다. 그녀는 아킬레우스가 어렸을 때, 낮이면 신들의 음식인 암브로시아를 향유로 삼아 그의 몸에 발라주고, 밤에는 아들을 불 속에 묻어둠으로써 그를 불사신으로 만들려고 했다. 그런데 펠레우스는 그녀가 아기를 불에 던져넣는 장면을 목격하고 놀랐다. 테티스는 남편의 간섭과 불신에 화가 치밀어 남편과 아들을 모두 버리고 바다로 돌아갔다.

호메로스는 아킬레우스의 불사신에 대해 알지 못하고 있었던 것 같다. 이 이야기에 따르면, 테티스는 갓 태어난 아기를 저승의 강인 스틱스에 담갔는데, 그의 발뒤꿈치를 붙들고 있었기 때문에, 그곳만은 물에 젖지 않아 불사의 힘을 얻지 못했다. 파리스가 아킬레우스를 활로 사살할 수 있었던 것은 그 발뒤꿈치를 노렸기 때문이다.

이윤기, <그리스로마 신화 2>에서

어머니에게 버림받은 아킬레우스는 켄타우로스족의 현자인 케이론에게 맡겨지게 되었다. 케이론은 아르고나우테스(아르고 선의 원정대원)들을 교육시켰던 일도 있다. 아킬레우스는 케이론에게 달리는 방법을 배워, 인간 중에서 가장 빠른 사람이 되었다. 호메로스는 그를 즐겨 포다르케스('발이 빠른 사람')라 부르고 있다. 케이론은 또한 그에게 전쟁기술을 가르치고, 용맹한 성질을 길러주기 위해 야수의 내장을 먹였다. 그는 아킬레우스에게 음악과 의술도 가르쳤다.

아킬레우스는 켄타우로스족인 케이론의 손에 자라 전쟁의 방법을 배웠다. 드라크로와 「아킬레우스의 교육」
Pompeo Batoni, 아킬레우스와 켄타우로스 케이론(Achilles and the Centaur Chiron)

그후 아킬레우스는 프티아로 돌아가, 펠레우스의 궁정에 도망와 있던 약간 연상의 젊은이인 파트로클로스와 친구가 되었다. 파트로클로스는 아킬레우스의 시종이 되기도 하고 애인이 되기도 했다. 아킬레우스는 또 한 그곳에 도망와 있는 포이닉스로부터 정치와 외교에 대한 것을 배웠다. 펠레우스는 포이닉스를 드리오프스인의 왕으로 삼았다.

+ 아킬레우스는 동성애자?


<여장하며 살았던 아킬레우스>

아킬레우스는 또한 그의 비극적인 운명을 알고 있던 테티스에 의해 스키로스 섬의 리코메데스 왕의 궁전으로 보내졌다고도 한다. 테티스가 예언한 그의 운명이란, 아킬레우스는 늙어서 명예롭지 못한 죽음을 맞거나, 아니면(이쪽의 가능성이 더 많다) 트로이 원정에 가담하여 두 번 다시 돌아 올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이었다. 리코메데스는 아킬레우스를 여자로 변장시켜 필라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성안의 여자 방에 있게 했다. 이것은 칼카스의 예언에 따라, 아킬레우스가 원정에 가담하지 않는 한 트로이는 절대로 함락되지 않을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었다. 아킬레우스는 여자로 변장하고 숨어 있는 동안, 여자들과 가까이 지낼 수 있는 기회를 이용하여 왕의 딸인 데이다메이아를 유혹해서 네오프톨레모스(별명 필로스, Pyrrhos)라는 아들을 낳았다.

<오디세우스의 지혜>
원정을 성공시키기 위해 아킬레우스의 존재를 필요로 하고 있던 그리스 군은 마침내 그를 수색하고자 오디세우스를 스키로스에 보냈다. 오디세우스는 교묘한 계략으로 아킬레우스의 변장을 알아낼 수 있었다. 오디세우스는 리코메데스의 거실에 장식품을 늘어놓고, 그 가운데에 무기를 섞어놓았다. 왕실의 여자들이 보석을 보고 황홀해져 있을 때, 위험을 알리는 나팔소리가 들렸다. 그러자 아킬레우스가 곧 무기를 들었기 때문에 정체가 드러난 것이다.

니콜라 푸생,<리코메데스의 딸들 사이의 아킬레우스>
니콜라 푸생, <스키로스 섬에서의 아킬레스>, 방울장수 오디세우스와 칼을 드는 아킬레스

그후 아킬레우스는 여장을 하고 남의 눈을 속인 계획에 가담했던 것이 부끄러웠던지, 어머니를 무시하고 원정대에 가담하여 트로이를 향해 출범했다. 그는 아가멤논에 충성을 바쳐야 할 이유도 없고, 다른 사람들처럼 헬레네의 남편인 메넬라 오스를 지키겠다는 맹세를 한 것도 아니었으나, 오직 자신의 용기에 대한 개인적 도전에 부응하기 위해 싸움에 참가한 것이었다.

<아가멤논의 재물의 된 딸>
함대가 아울리스에 집결하여 바람을 기다리고 있을 때, 아가멤논은 아르테미스 여신의 분노를 진정시키기 위해 딸인 이피게네이아를 제물로 바치지 않을 수 없게 되어, 아킬레우스와 결혼시킨다는 구실로 딸을 그 자리에 불러들이려 했다. 에우리피데스의 <아울리스의 이피게네이아>에 따르면, 이 시도를 알지 못한 아킬레우스는 이피게네이아를 구출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녀는 자기를 제물로 삼으려는 목적을 알자 기꺼이 제단에 몸을 바쳤다. 그 덕분에 그리스군은 출범할 수 있게 되었다.

아가멤논이 딸 이피게네이아를 제단에 바친다. (넷플릭스, 트로이에서)
이윤기, <그리스로마 신화 2>에서

하지만 그들은 길을 잘못 들어 트로이에서 훨씬 남쪽에 있는 미시아에 상륙했다. 이곳에는 헤라클레스의 아들이자 테우트라니아의 왕인 텔레포스가 있었다. 그는 그리스군을 배로 쫓아보냈으나, 오직 아킬레우스만이 반격에 나서서 텔레포스의 넓적다리를 창으로 찔러 중상을 입혔다. 그리스군은 트로이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것을 알고, 미시아를 떠나 아르고스로 돌아왔다. 여기에 텔레포스가 남루한 옷차림을 하고 돌아왔다. 자기에게 부상을 입힌 자만이 그 상처를 고칠 수 있다는 신탁을 받았기 때문이다. 오디세우스는, 아킬레우스에게 상처를 입힌 것이 그의 창이었다는 것을 상기시켰으므로, 아킬레우스가 창의 녹을 그의 무릎에 바르자 상처가 나았다. 이를 고맙게 여긴 텔레포스는 그리스군을 트로이로 인도했다.

트로이 앞바다에 도달한 그리스군은 우선 테네도스 섬에 상륙했다. 그런데 아킬레우스는 여기서 깜빡 잊었는지, 바다의 여신인 테티스의 경고를 무시하고 이 섬의 왕이었던 테네스를 죽이고 말았다. 그 때문에 화살의 신인 아폴론에게 복수당하리라는 말이 돌았는데, 사실 아킬레우스는 그후에 아폴론의 후원을 받은 파리스의 화살에 맞아 쓰러졌다. 테티스는 또한 그에게 트로이에 도착하거든 맨 먼저 상륙하지는 말라고 했는데, 그 말에는 따랐다.

아킬레우스의 첫 상대자는 포세이돈의 아들인 킥노스였다. 그는 무기로 살해되지 않으라는 용장이었으나, 아킬레우스는 그를 그 자신의 투구끈으로 목졸라 죽였다. 아킬레우스는 또 트로일로스도 죽였다.

아킬레우스는 트로이를 포위하거나 강공으로는 함락시킬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므로, 그는 그리스군을 이끌고 이웃 도시들을 공격하여, 그 중 12개 도시와 내륙의 도시를 공격했다. 후자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릴네소스와 소아시아의 테베였다. 안드로마케의 아버지 에에티온은 테베의 왕 이었는데, 아킬레우스는 이 왕과 일곱 아들을 죽이고 왕비를 인질로 삼았다. 릴네소스에서 아킬레우스는 처음으로 아이네이아스를 만나 그를 패주시켰다. 아킬레우스는 또 에베노스의 아들인 미네스와 에피스트로포스도 죽였다. 그가 아름다운 브리세이스를 생포한 것도 이곳이었다. 아킬레우스는 그녀를 첩으로 삼아, 다른 어떤 여자보다도 사랑한다고 단언했다. <일리아드>에 묘사되어 있는 다음과 같은 사건이 일어났다고 하는 것도 주로 그녀로 인해서였다.

이윤기, <그리스로마 신화 2>에서

<전리품을 가지고 아가멤논과 다툼>
아가멤논은 아폴론의 신관인 크리세스의 딸 크리세이스를 자기 첩으 로 삼았다. 그러나 아가멤논은 아폴론 이 분노하여 벌을 내리는 것을 피하기 위해, 크리세이스를 그 아버지에게 돌려주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화가 난 아가멤논은 크리세이스를 돌려주라고 주장하고 있던 아킬레우스의 진영에서 그 대가로서 브리세이스를 데리고 왔다.

'브리세이스를 보내는 아킬레우스'. 폼페이 유적 '비극의 집'에서 발견된 벽화. 기원전 1세기경 제작된 프레스코화. 나폴리 국립 고고학 박물관. 위키백과
이윤기, <그리스로마 신화>에서
미셸마르탱 드롤링, 1810년 작 <아킬레우스의 분노>

총사령관 아가멤논이 자신의 전리품인 브리세이스를 빼앗아 가자 아킬레우스가 격분하여 칼을 뽑아 들려한다.아테나 여신이 분노한 아킬레우스 뒤로 나타나 그의 금발 머리채를 잡으며 아가멤논과의 유혈 사태를 진정시키고 말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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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 인해 아킬레우스는 전투에서 손을 떼고, 어머니 테티스가 제우스에 대해 힘이 있는 것을 이용하여, 전황이 그리스군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전환시키도록 제우스를 설득해달라고 어머니에게 간청했다. 이 계략은 아킬레우스의 뜻대로 되었다. 그러나 나중에 아킬레우스는 아가멤논의 사죄, 아가멤논의 세 딸 중에서 원하는 한 사람과의 결혼, 첩의 반환이라는 보상의 제의를 거절함으로써 불리를 초래했다. 이때부터 아킬레우스의 계획은 빗나가기 시작했다. 즉 그의 친구이자 시종이었던 파트로클로스는 해안에 상륙한 배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우고 있는 그리스군을 동정하여, 아킬레우스에게 부탁하여 갑옷을 빌리고, 미르미돈(펠레우스가 다스리고 있는 프티아의 백성)을 이끌고 싸우겠다고 허락을 청했다. 아킬레우스는 파트로클로스에게 배를 지키는 일에 국한하라고 주의를 주었으나, 그는 이 말을 듣지 않고 일단 대승을 거둔 뒤 헥토르에게 살해되었다. 헥토르는 파트로클로스의 몸에서 갑옷을 빼앗았다.

파트로클로스에게 붕대를 감아 주는 아킬레우스.

<헥토르의 죽음>
이 소식을 들은 아킬레우스는 분노와 회한에 사로잡혔다. 테티스와 바다의 님프인 네레이스들이 조문을 왔으나, 아킬레우스는 어머니에게 자기도 죽고 싶다고 했다. 그러나 아킬레우스는 헥토르만은 반드시 죽이겠다고 맹세했다. 테티스는 아킬레우스가 헥토르가 죽은 뒤 곧 죽을 운명임을 알고 있었으므로, 그의 생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킬레우스가 성벽에 올라가 도전의 외침을 세번 지르자, 그 소리를 들은 트로이 군은 겁을 먹고 도망쳤다. 이어서 그는 아가멤논과 화해하고, 테티스의 의뢰에 따라 불의 신인 헤파이스토스가 만든 새로운 갑옷을 입고 맹렬하게 트로이군을 공격했다.

그는 무수히 많은 트로이군을 죽였으나, 강물의 신인 스카만드로스와의 싸움에 말려들게 되었다. 강물의 신은 트로이의 수호신이기도 했기 때문에 침략자를 적으로 간주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그는 아킬레우스가 수많은 트로이군의 시체를 강물에 던지는 것을 보고 격노했다. 그러나 불의 신인 헤파이스토스가 강물을 마르게 함으로써 아킬레우스를 구했다.

<프리아모스의 눈물>
트로이군이 드디어 성벽 안으로 퇴각했을 때, 헥토르만이 성벽 밖에 남아 아킬레우스와 대결했다. 아킬레우스는 헥토르를 추격하여 성벽을 세 번이나 돌았다. 여기서 헥토르는 아킬레우스를 돌아보고, 자기가 죽거든 시체를 욕보이지 말고 아버지인 프리아모스 왕에게 보내달라고 부탁했다. 아킬레우스는 이를 거절하고 헥토르를 베어 죽였다. 이에 그는 헥토르의 시체에 능욕을 가하고, 12일 동안 파트로클로스의 무덤 주위로 끌고 다니게 하여 친구의 넋을 위로했다.

프란츠 마슈, 1892년 작 프레스코화 <아킬레우스의 개선(The Triumph of Achilles)>

아킬레우스가 전차를 타고 헥토르의 시신을 질질 끌고 다니며 승리를 과시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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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시체를 그대로 방치하고 프리아모스에게로의 반환도 거부했다. 그러나 어머니인 테티스의 간청으로 아킬레우스도 태도를 완화하여, 파트로클로스를 위한 장례경기를 열고 트로이군을 희생의 제물로 바친 뒤 프리아모스에게 시체를 인도했다.

알렉산드르 이바노프, <아킬레우스에게 헥토르의 시신을 돌려달라고 간청하는 프리아모스>, 1824

트로이의 국왕 프리아모스가 적장 아킬레우스의 막사를 몰래 찾아가, 자신의 손으로 아들의 원수를 갚은 아킬레우스 앞에서 무릎을 꿇고 죽은 아들 헥토르의 시신을 돌려달라고 애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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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리아스>에 기록된 사건이 있은 후, 아마존족의 여왕인 펜테실레이아가 트로이군을 돕기 위해 달려왔다. 아킬레우스는 그녀를 죽였으나, 그 시체에 연모를 품고 있었다.

아킬레우스와 펜테실레이아

테르시테스가 이를 비웃자 아킬레우스는 그를 죽였다. 그러나 아킬레우스는 이를 속죄하기 위해 레토 및 그의 아들인 아폴론과 아르테미스에게 제물을 바치고, 또 오디세우스에게 죄를 용서받지 않으면 안되었다. 트로이를 도와주러 왔다가 역시 아킬레우스에게 살해된 또한 사람은 이티오피아 왕인 멤논이었다.

<아킬레우스의 죽음>
그 직후 아폴론의 도움을 받은 파리스가 쏜 화살이 아킬레우스에게 치명상을 입혔다. 그의 시체는 텔라몬의 아들인 대(大)아이아 스에 의해 탈환되고, 그리스군은 17일간에 걸쳐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파리스가 쏜 화살을 맞은 아킬레우스

테티스와 네레우스의 딸들이 와서 애도의 노래를 불렀을 때는 전군이 무서운 나머지 배로 도망쳤다고 한다. 뮤즈들도 와서 만가(挽歌)를 읊었다. 18일째 되던 날 아킬레우스의 시체는 화장되고, 그 유골은 헤파이스토스가 만든 황금의 가마에 넣어져 파트로클 로스의 유골과 혼합되어, 바다가 내려 다보이는 무덤에 안장되었다. 그후의 전설에 따르면, 아킬레우스와 파트로클로스의 망령은 위대한 영웅들을 모시는 레우케('흰 섬')에 이주했다고 한다.

아킬레우스의 갑옷을 누가 차지하느냐 하는 문제로 분쟁이 일어났다. 아이아스는 자기가 적격자라고 주장했으나, 다른 그리스 군인들의 추천에 따라 오디세우스의 손에 넘겨졌다. 그러자 아이아스는 자살했다. 소포크레스의 비극 <아이아스>는 이것을 주제로 한 것이다. 오디세우스는 갑옷을 아킬레우스의 아들인 네오프톨레모스 에게 주어 전투에 참가하도록 권했는데, 이는 트로이의 예언자인 헬레노스가, 그리스군이 승리하기 위해서는 네오프톨레모스의 존재가 필요하다고 예언했기 때문이다.

아킬레우스의 망령이 무덤에서 나타나, 그리스군이 귀국을 허락받기 전 에 프리아모스의 딸인 폴릭세네를 죽이도록 요구했다. 이것은 에우리피 데스의 <헤카베>의 주제가 되어 있다. 신화를 통해 나타나는 아킬레우스의 성격은 강력하고 오만하며 잔인하다. 자신의 운명이 저주스러워 걸핏하면 격한 감정을 폭발시킨다. 젊음과 힘의 심볼이며, 젊은 나이에 명예롭게 죽을 숙명을 짊어지고 있다. 그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가장 숭배하는 영웅이기도 했다.

제우스에게 애원하는 테티스

제우스에게 애원하는 테티스
아킬레우스가 죽은 직후에 테티스는 다시 한 번 신화의 무대에 나타난다. 아들을 살려달라고 제우스에게 탄원하는 테티스 여신. 앙그르의 그림.

이윤기, <그리스로마 신화>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