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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과스토리텔링

개 세마리 쯤 키워야지

by 문촌수기 2017. 9. 10.

반려견을 입양하고자 적극 고려해본적 있다. 아내를 위해서, 엄마를 위해서 나도 딸도 권했다.
아이와 강아지를 사랑하고 참 예쁘게 바라보는 아내는 이 사람 저 사람들에게 신중하게 묻고 다닌다. 애완견을 키우는 것이 어떤지......실은 나도 자신할 수 없고 책임을 다 질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아지가 주는 행복은 크지만 그래도 결론은 포기했다. 나도 아내도 강아지도 모두 힘들어 질 것이 뻔하다. 돌보는 것도 힘들지만 혼자 집에 두고 외출나가기가 미안하고 마음이 아플 것 같아서이다.
뛰어 다니고, 두 세마리 쯤 친구가 있거나 토끼 닭 고양이 하고 같이 어울릴 수 있는 마당있는 집이 있기 전에는 강아지를 키우지 말자며 결론 내렸다.
대신 개 아닌, 다른 개 세마리를 키워보자 했다.
지우개 기지개, 무지개!

하나, 지우개로 지우자.
너무 많은 것을 기억하고 있다. 쓸데 없는 걱정이고 부질 없는 생각들이다.
집착이 고통을 낳는다. 집착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바로 어제까지 쌓인 기억에서 온다. 아름다운 추억도 있지만, 미움과 아쉬움이 더 많다. 아쉬움은 후회를 낳고 미움은 분노를 쌓게 한다. 어차피 다 지나 간 일인데, 지금의 나를 무겁게 하고 힘들게 한다. 거기에다 아직 오지 않은 내일에 대한 걱정도 미리 만들어 쌓아가고 있다.
생각은 깊어질수록 쓸데 없고, 기억은 되짚을 수록 현재를 망칠 뿐이다.
너무 많은 것을 마음에 간직하고 살아가기에 무겁다.
어제도 내일도 말고 오늘에 살자.
먼 길 가볍게 가자. 그러기 위해서는 버리고 지워야 한다.


둘, 기지개를 자주 켜자.
일에 쫓기며 긴장했던 몸을 한번 쭈욱 펴보자. 두 팔을 들어 움츠린 어깨를 쭉 펴보자. 다시 기운이 솟아나고 기분이 상쾌해진다.
엄마 자궁 속에 오래 움츠리고 살았던 아기들은 어쩜 그렇게도 자주 기지개를 켜는지.....그래서 잠에서 깨어난 아기의 두 다리를 쭈욱 쭉욱 주물러 주면 제 사지를 쭉 펴며 기지개 켠다. 너무도 귀엽다. 그렇게 아기들은 기지개를 켜면서 불쑥 불쑥 자란다.
우리도 그렇게 몸을 펴고 사지 한 번 쯤 쭉 뻗어 천지사방을 향하여 나를 뻗어보자. 기 좀 펴고 살아가자.

셋, 무지개를 타고 다니자.
자동차 보험을 갱신할 때이다. 보험원과 통화하면서 내 차 번호 '13무 1OOO'를 말해주었다.
그 때 보험원이 정확한 발음을 요구하면서 "무지개할 때 '무' 맞죠?"라고 물었다.
그 무지개라는 말에 지금도 감사하다. 나는 단순히 자동차를 타고 다니는 것이 아니라 '무지개를 타고 다니는구나'라며 상상하면서 괜히 감동했다. 십년이 넘도록 그 무지개를 타고 다녔다.
그래. 나이가 들면서 쓸데 없는 것을 기억하느라, 진짜 소중한 것을 잊고 살았구나. '무지개'! 빨주노초파남보!! 일곱 색깔 무지개.
아니야, 열 세가지 색깔의 무지개를 타고 다니지. 일곱 색깔 무지개 사이가 여섯개라서 열셋 색깔 무지개 맞구나. 왜 여태껏 무지개를 일곱 색깔이라고 여겼을까? 그렇다고 하니깐 그랬나보다. 나에게 무지개는 이제부터 열셋 색깔이다.
"빨강-다홍-주황-귤색-노랑-연두-초록--청록-파랑-감청-남색-남보라-보라"
지금까지는 눈 앞에 무지개를 봤을 때 감동하면서 카메라에 담을 준 알았지만, 저 무지개를 찾아서 떠나지는 못했다. 실없는 짓인데 젊은 날에는 잡지 못할 무지개를 잡겠다며 길을 떠난 적도 있었는데.......
그래, 그 청춘의 무작정처럼 다시 무지개를 찾아 무지개를 타고 떠나보자.

어제를 치유하는 지우개,
오늘을 살게하는 기지개,
내일을 희망하는 무지개.

기지개 한 번 쭈욱 펴고 내 氣를 살리자. 지우개로 지우며 가볍게 가자. 무지개를 찾아 다시 길을 나서보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