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탐방 둘째날
구 철원시가지 노동당사

도로원표와 노동당사

구철원 시가지 조감도

노동당사과 구 철원 시가지 모형ㅡDMZ박물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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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서DMZ탐방
철원 철새도래지 관광, 철원 통일전망대,  월정리역사,
둘째날ㅡ오전

철원 평화전망대

월정리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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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라산 역에서 ㅡ독일통일 과정

통일의 시계

도라산 안보관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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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에서 동해까지 걸어서DMZ탐방
첫째날ㅡ2
신라경순왕릉

호로고루 성

승일교

승일교 모형ㅡDMZ박물관에서

임꺽정ㅡ고석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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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경기도교육청
서해에서 동해까지 걸어서DMZ탐방

임진각에서

도라산역

도라산전망대

통일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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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시도교육청 통일안보교육담당관 워크숍 >
경기 중부지역 통일안보현장 탐방

중앙정부청사-철원 철의삼각지(고석정) - 제2땅굴-철원 평화전망대-백마고지 - 경기도 연천, 김신조 침투로 - 상승전망대 -중앙정부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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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통일 안보 현장 탐방 > 경기 서부지역
임진각>도라산>판문점 -강화 덕진진-광성보 -김포 애기봉

 


<임진각 - 망배단>

판문점 [경기도 파주시 진서면(西)의 군사분계선상에 있는 취락.

널문리라고도 한다. 8·15광복 이전 행정구역으로는 경기도 장단군 진서면 어룡리이다. 서울에서 통일로를 따라 북으로 약 50km, 개성 동쪽 10km 지점으로 북위 37° 57' 20″, 동경 126° 40' 40″에 있다. 6·25전쟁 전만 해도 지난날의 의주가도()와 사천()내가 만나는 지점의 이름없는 한촌()으로 초가집 몇 채뿐이었으나 1951년 10월 25일 이곳에서 휴전회담이 열리면서 세계 뉴스의 초점으로 떠올랐다.

마침내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이 이곳에서 조인되면서 이곳 명칭은 UN측과 북한측의 ‘공동경비구역(JSA)’으로 결정되었다. 같은 해 8월부터 9월 초까지의 포로교환도 이곳에서 이루어졌다. 판문점 서쪽 사천내에 놓여 있는 ‘돌아오지 않는 다리(옛이름:널문다리)’ 부근에는 1976년 8월 18일 북한 경비군에 의한 도끼만행사건의 발단이 된 미루나무가 서 있었다.

현재, 공동경비구역 안에는 군사정전위원회 본회의장을 비롯하여 유엔측의 ‘자유의 집’ 등 10여 채의 건물이 들어서 있다. 1971년 8월 남북적십자 예비회담, 1972년 7월 7·4공동성명 등으로 판문점은 6,000만 민족의 가슴을 한때 뜨겁게 한 바 있고, 1973년 6월 남북조절위원회가 결렬된 지 6년 반만인 1980년 8월부터는 남북총리회담의 실무회담이 이곳에서 열려 8차까지 거듭한 끝에 북한측의 일방적인 불참으로 공전()된 일도 내외의 관심을 모았다.

[네이버 지식백과] 판문점 [板門店] (두산백과)

판문점 - 북측의 판문각

판문점 > 군사분계선을 지키는 유엔사

돌아오지 않는 다리

DMZ 북녘 마을

강화 덕진진 
강화 12진보()의 하나이다. 사적 제226호. 지정면적 15,018㎡. 현재 문루()·포대()와 성곽·돈대()가 남아 있다.

병자호란 뒤 강화도의 방비책을 강구하여 내성()·외성()·진보·돈대 등을 축조하였는데 12진보는 그 중의 하나로 강화도 주위에 설치되었다.

덕진진은 원래 수영()에 속하여 첨사(使)를 두고 있었는데, 1666년(현종 7) 강화유수 서필원()의 계청()으로 첨사를 통진()땅 덕포()로 옮기고 이곳에 별장()을 두었으며, 1677년(숙종 3) 유수 허질()의 계청에 따라 만호()로 승격시켰다.

덕진진은 1679년에 축조된 용두()·덕진 등 2개 돈대와 1874년(고종 11)에 축조된 남장()·덕진 등 2개 포대를 관할하는, 강화해협에서 가장 강력한 포대였다.

1866년 병인양요 때는 양헌수()가 이끄는 부대가 이 진을 통하여 정족산성()으로 들어가 프랑스군을 격퇴하였고, 1871년 신미양요 때는 치열한 포격전 끝에 미국함대를 격퇴시켰으나, 초지진()에 상륙한 미국해병대에 의하여 점령당하는 비운을 맞았다.

이 때 성첩과 문루가 모두 파괴되고 문루지()만 남게 되었다. 1976년 돈대와 성곽을 보수하였으며 홍예( : 무지개 모양의 문)를 틀고 정면 3칸, 측면 2칸의 문루도 다시 세웠다.

[네이버 지식백과] 덕진진 [德津鎭]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강화 광성보 -

조선 광해군 10년(1618년)에 고려시대의 외성을 보수하고, 1656년 광성보를 설치했는데, 이 보의 돈대는 1679년에 축조된 것이며 오두, 화도, 광성의 돈대와 오두정 포대가 이 보에 소속되었다. 1745년 완전한 석성으로 개축되어 당시 성문도 설치되었다. 광성보는 신미양요 당시 가장 격렬했던 격전지로서, 1871년 4월 24일 미국의 로저스가 통상을 요구하면서 함대를 이끌고 1,230명의 병력으로 침공하였을 때, 상륙부대가 초지진, 덕진진을 점령한 후 광성보에 이르러 백병전을 전개하였다. 당시 조선군 지휘관 어재연 장군 이하 전 용사가 열세한 무기로 용감하게 싸웠는데, 포탄이 떨어지면 칼과 창으로 싸우고 칼과 창이 부러지면 돌과 맨주먹으로 싸워 한 사람도 물러서지 않고 장렬히 순국하였다고 한다.

이 전투 후 성책과 문루가 파괴되어 폐허가 되었던 것을 1977년 안해루, 광성돈, 손돌목돈, 용두돈과 전사한 무명용사들의 묘, 그리고 어재연 장군의 쌍충비각 등이 모두 보수 정화되었으며, 이 때 세운 "강화 전적지 정화기념비"가 용두돈대 위에 서 있다. 1998년에는 해변쪽으로 넓은 휴식공간을 조성하여 관광객들에게 이용 편의를 제공할 수 있게 되었다. 광성보는 현재 사적 제 227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매년 음력 4월 24일에는 어재연 장군을 비롯하여 장렬하게 전사한 무명용사들에 대한 광성제가 11:00부터 봉행된다. 이 광성보는 당시에 사용한 대포와 포대, 성이 잘 남아 있어 아이들을 데리고 답사 오기에 좋으며, 바다를 내려다보는 전망과 돈대의 곡선 모양이 인상적이다.

* 좌 홍이포 - 포구장전식 화포로서 사정거리 700m이며 조선영조때 부터 주조하여 사용하였다. 폭발하는 힘으로 포탄은 날아가나 자체는 폭발하지 않아 위력이 약하다.
* 중간 소포 - 장전후 뒤쪽 구멍에 점화하여 사격하는 포구장전식화포로 사정거리 300m 우리나라 재래식 화포중 가장 발달된 형태를 갖추고 있다.
* 우 불랑기 - 불랑기는 프랑스군이 사용하던 것으로 임진왜란을 계기로 널리 사용된 화승포로서 포1문에 다섯개에서 아홉개의 자포를 결합하여 연속 사격 할 수 있는 발달된 화기이다.
* 광성 돈대는 광성보에 소속된 3개 돈대중 하나로서 숙종5년(1679) 함경도, 황해도, 강원도의 승군 8,000명과 어영군 4,300명이 40일만에 완공하였다 한다. 1977년 포좌 4개소와 포 3문이 복원 설치되었다.
* 손돌목 돈대 - 이 돈대는 조선 숙종(1674-1729,재위)때 축조된 돈대이다. 원래 돈대 중앙에 3칸의 무기고가 있었고 포좌 3개처가 있었다. 손돌목돈대는 성곽 길이가 108m이고 고종 8년(1871) 신미양요때 미국 해군과 치열한 백병전이 벌어졌던 현장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광성보 (대한민국 구석구석, 한국관광공사)

 

 

김포, 애기봉[ ]

경기도 김포시 하성면 가금리와 조강리 경계에 있는 산.
애기봉

애기봉경기 김포시 월곶면 조강리와 하성면 가금리에 걸쳐 있는 산으로 높이 155m이다.

위치 경기 김포시 하성면 가금리, 조강리 지도
높이 155m
문화재 문수산성(사적 139), 덕포진(사적 292), 고정리 지석묘(경기기념물 91), 한재당(경기기념물 47)

높이는 155m로, 한강임진강이 만나 서해 바다로 흘러가는 곳에 솟아 있다. 병자호란 때 평안감사가 가장 사랑하는 애첩 ‘애기’를 데리고 수도 한양을 향해 피난길에 올랐다. 그러나 감사는 바로 강 건너 개풍군에서 청나라 오랑캐에 의해 북으로 끌려가고, 애기만 한강을 건너게 되었다. 애기는 매일 북녘 하늘을 바라보며 일편단심으로 감사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다 결국 병들어 죽어 가면서, '님'이 잘 바라보이는 봉우리에 묻어 달라고 유언했다. 1966년 10월 7일 박정희 대통령이 '애기' 사연을 듣고, “애기의 한()은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오가지 못하는 우리 일천만 이산가족의 한과 같다”고 하여 애기봉이라 명명하고, 친필로 휘호를 써서 비석을 세웠다.

정상 전망대에서 망원경으로 북한의 선전마을과 송악산 등을 볼 수 있어 관광객과 실향민들이 많이 찾고 있으며 1993년에는 실향민들을 위해 망배단이 세워졌다. 크리스마스 때는 북녘을 향해 대형 트리를 세우고 성탄 축하예배를 드리며 석가탄신일에는 법회가 열리는 등 각종 행사가 열린다.

2000년 현재 군 주둔지역으로, 출입통제소에서 신고서를 작성해야 출입할 수 있기 때문에 주민등록증을 지참해야 한다. 주변에 문수산성(사적 139), 덕포진(사적 292), 고정리지석묘(경기기념물 91), 한재당(경기기념물 47) 등의 문화재가 있어 가족 나들이 코스로도 알맞다.

대중교통편은 서울특별시 신촌이나 인천광역시에서 직행버스를 타거나, 서울특별시 영등포에서 강화운수 1번 버스를 타고 월곶면 군하리에서 하차하여 택시를 타면 10분 정도 걸린다. 승용차로는 48번 국도를 따라 김포읍을 지나 군하삼거리에서 우회전하여 10분 정도 달리면 도착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애기봉 [愛妓峰] (두산백과)

 

한국전쟁 후의 한강 다리 모습

휴전협정 당시의 판문점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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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서해에서 동해까지 맨발로 걷는 DMZ 탐방

경기도교육청에서 2017년 통일시민교육의 활성화를 위해 교과서를 개발하고 선도해나갈 교원들을 양성하기 위해 DMZ현장 탐방연수 프로그램도 개발했습니다.  

민주시민교육과

 

 

근거

2017 민주시민교육 기본 계획 / 평화통일교육 활성화

2017 공감 학교평화통일교육 지원 계획

 

목적

통일시민교육의 이해와 현장 실천을 선도해 나갈 핵심 인력풀 구성

통일시민교육 선도교사 활동사례 공유 및 교사연구회 활동 지원체제 강화

 

연수개요

연수 장소

파주, 연천, 철원, 양구, 화천, 인제, 고성 등

연수 대상

초중등 교원, 전문직, NK교사

연수 일시

2017. 8. 8.() ~ 8. 10.()

연수 인원

38

연수 강사

OO(통일교육원 교수)

연수 비용

무료

  세부일정

월일

시간

일정

88()

~08:00

광화문 집결

08:00-09:00

임진각으로 이동

09:00-10:00

임진각 안내소 출입절차 / 임진각 견학

10:00-12:00

도라산역, 도라전망대

12:00-13:00

점심식사(‘통일촌 부녀회 식당’)

13:00-18:00

경순왕릉, 호로고루성지, 승일교

18:00-19:00

동송읍 거쳐 두루미펜션으로 이동

19:00-20:00

저녁식사

20:00~22:00

도교육청 평화통일교육 정책 협의

89()

07:30-08:30

아침식사(두루미펜션)

08:30-09:00

고석정 안내소 출입절차

09:00-11:30

평화전망대, 월정리역, 구철원시가지,

노동당사

11:30-13:00

화천읍으로 이동

13:00-14:00

점심식사

14:00-15:30

양구 통일관으로 이동

15:30-16:00

양구 통일관 출입절차

16:00-18:00

을지전망대, 4땅굴

18:00-18:30

한국DMZ평화생명동산 이동

18:30-19:30

저녁식사

19:30-21:00

특강

810()

07:00-08:00

아침식사(평화생명동산)

08:00-09:30

고성 안내소로 이동해 출입절차

09:30-12:00

통일전망대(금강산 조망), DMZ박물관

12:00-14:00

화진포로 이동해서 점심식사

14:00-16:00

화진포의 성, 이기붕 별장,

이승만 별장 등 관람

16:00~20:00

광화문 이동

첫째날 - 파주

1> 임진각

2> 도라산역, 도라전망대

3>경순왕릉

4> 호로고루성 지

5> 승일교

둘째날 - 철원~양구

6>고석정

7> 평화전망대

8> 월정리역

9> 구철원시가지와 노동당사

10> 양구 통일관

11> 을지전망대

12> 제4땅굴

13> 한국DMZ 평화생명동산

셋째 날 - 고성

14> 고성안내소 통일전망대(금강산 조망)

15> DMZ박물관

16> 화진포

17> 화진포의 성, 이기붕별장, 이승만 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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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안보현장 탐방

 


<임진각 - 망배단>

판문점 [경기도 파주시 진서면(西)의 군사분계선상에 있는 취락.

널문리라고도 한다. 8·15광복 이전 행정구역으로는 경기도 장단군 진서면 어룡리이다. 서울에서 통일로를 따라 북으로 약 50km, 개성 동쪽 10km 지점으로 북위 37° 57' 20″, 동경 126° 40' 40″에 있다. 6·25전쟁 전만 해도 지난날의 의주가도()와 사천()내가 만나는 지점의 이름없는 한촌()으로 초가집 몇 채뿐이었으나 1951년 10월 25일 이곳에서 휴전회담이 열리면서 세계 뉴스의 초점으로 떠올랐다.

마침내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이 이곳에서 조인되면서 이곳 명칭은 UN측과 북한측의 ‘공동경비구역(JSA)’으로 결정되었다. 같은 해 8월부터 9월 초까지의 포로교환도 이곳에서 이루어졌다. 판문점 서쪽 사천내에 놓여 있는 ‘돌아오지 않는 다리(옛이름:널문다리)’ 부근에는 1976년 8월 18일 북한 경비군에 의한 도끼만행사건의 발단이 된 미루나무가 서 있었다.

현재, 공동경비구역 안에는 군사정전위원회 본회의장을 비롯하여 유엔측의 ‘자유의 집’ 등 10여 채의 건물이 들어서 있다. 1971년 8월 남북적십자 예비회담, 1972년 7월 7·4공동성명 등으로 판문점은 6,000만 민족의 가슴을 한때 뜨겁게 한 바 있고, 1973년 6월 남북조절위원회가 결렬된 지 6년 반만인 1980년 8월부터는 남북총리회담의 실무회담이 이곳에서 열려 8차까지 거듭한 끝에 북한측의 일방적인 불참으로 공전()된 일도 내외의 관심을 모았다.

[네이버 지식백과] 판문점 [板門店] (두산백과)

판문점 - 북측의 판문각

판문점 > 군사분계선을 지키는 유엔사

돌아오지 않는 다리

DMZ 북녘 마을

강화 덕진진 
강화 12진보()의 하나이다. 사적 제226호. 지정면적 15,018㎡. 현재 문루()·포대()와 성곽·돈대()가 남아 있다.

병자호란 뒤 강화도의 방비책을 강구하여 내성()·외성()·진보·돈대 등을 축조하였는데 12진보는 그 중의 하나로 강화도 주위에 설치되었다.

덕진진은 원래 수영()에 속하여 첨사(使)를 두고 있었는데, 1666년(현종 7) 강화유수 서필원()의 계청()으로 첨사를 통진()땅 덕포()로 옮기고 이곳에 별장()을 두었으며, 1677년(숙종 3) 유수 허질()의 계청에 따라 만호()로 승격시켰다.

덕진진은 1679년에 축조된 용두()·덕진 등 2개 돈대와 1874년(고종 11)에 축조된 남장()·덕진 등 2개 포대를 관할하는, 강화해협에서 가장 강력한 포대였다.

1866년 병인양요 때는 양헌수()가 이끄는 부대가 이 진을 통하여 정족산성()으로 들어가 프랑스군을 격퇴하였고, 1871년 신미양요 때는 치열한 포격전 끝에 미국함대를 격퇴시켰으나, 초지진()에 상륙한 미국해병대에 의하여 점령당하는 비운을 맞았다.

이 때 성첩과 문루가 모두 파괴되고 문루지()만 남게 되었다. 1976년 돈대와 성곽을 보수하였으며 홍예( : 무지개 모양의 문)를 틀고 정면 3칸, 측면 2칸의 문루도 다시 세웠다.

[네이버 지식백과] 덕진진 [德津鎭]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강화 광성보 -

조선 광해군 10년(1618년)에 고려시대의 외성을 보수하고, 1656년 광성보를 설치했는데, 이 보의 돈대는 1679년에 축조된 것이며 오두, 화도, 광성의 돈대와 오두정 포대가 이 보에 소속되었다. 1745년 완전한 석성으로 개축되어 당시 성문도 설치되었다. 광성보는 신미양요 당시 가장 격렬했던 격전지로서, 1871년 4월 24일 미국의 로저스가 통상을 요구하면서 함대를 이끌고 1,230명의 병력으로 침공하였을 때, 상륙부대가 초지진, 덕진진을 점령한 후 광성보에 이르러 백병전을 전개하였다. 당시 조선군 지휘관 어재연 장군 이하 전 용사가 열세한 무기로 용감하게 싸웠는데, 포탄이 떨어지면 칼과 창으로 싸우고 칼과 창이 부러지면 돌과 맨주먹으로 싸워 한 사람도 물러서지 않고 장렬히 순국하였다고 한다.

이 전투 후 성책과 문루가 파괴되어 폐허가 되었던 것을 1977년 안해루, 광성돈, 손돌목돈, 용두돈과 전사한 무명용사들의 묘, 그리고 어재연 장군의 쌍충비각 등이 모두 보수 정화되었으며, 이 때 세운 "강화 전적지 정화기념비"가 용두돈대 위에 서 있다. 1998년에는 해변쪽으로 넓은 휴식공간을 조성하여 관광객들에게 이용 편의를 제공할 수 있게 되었다. 광성보는 현재 사적 제 227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매년 음력 4월 24일에는 어재연 장군을 비롯하여 장렬하게 전사한 무명용사들에 대한 광성제가 11:00부터 봉행된다. 이 광성보는 당시에 사용한 대포와 포대, 성이 잘 남아 있어 아이들을 데리고 답사 오기에 좋으며, 바다를 내려다보는 전망과 돈대의 곡선 모양이 인상적이다.

* 좌 홍이포 - 포구장전식 화포로서 사정거리 700m이며 조선영조때 부터 주조하여 사용하였다. 폭발하는 힘으로 포탄은 날아가나 자체는 폭발하지 않아 위력이 약하다.
* 중간 소포 - 장전후 뒤쪽 구멍에 점화하여 사격하는 포구장전식화포로 사정거리 300m 우리나라 재래식 화포중 가장 발달된 형태를 갖추고 있다.
* 우 불랑기 - 불랑기는 프랑스군이 사용하던 것으로 임진왜란을 계기로 널리 사용된 화승포로서 포1문에 다섯개에서 아홉개의 자포를 결합하여 연속 사격 할 수 있는 발달된 화기이다.
* 광성 돈대는 광성보에 소속된 3개 돈대중 하나로서 숙종5년(1679) 함경도, 황해도, 강원도의 승군 8,000명과 어영군 4,300명이 40일만에 완공하였다 한다. 1977년 포좌 4개소와 포 3문이 복원 설치되었다.
* 손돌목 돈대 - 이 돈대는 조선 숙종(1674-1729,재위)때 축조된 돈대이다. 원래 돈대 중앙에 3칸의 무기고가 있었고 포좌 3개처가 있었다. 손돌목돈대는 성곽 길이가 108m이고 고종 8년(1871) 신미양요때 미국 해군과 치열한 백병전이 벌어졌던 현장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광성보 (대한민국 구석구석, 한국관광공사)

 

 

김포, 애기봉[ ]

경기도 김포시 하성면 가금리와 조강리 경계에 있는 산.
애기봉

애기봉경기 김포시 월곶면 조강리와 하성면 가금리에 걸쳐 있는 산으로 높이 155m이다.

위치 경기 김포시 하성면 가금리, 조강리 지도
높이 155m
문화재 문수산성(사적 139), 덕포진(사적 292), 고정리 지석묘(경기기념물 91), 한재당(경기기념물 47)

높이는 155m로, 한강임진강이 만나 서해 바다로 흘러가는 곳에 솟아 있다. 병자호란 때 평안감사가 가장 사랑하는 애첩 ‘애기’를 데리고 수도 한양을 향해 피난길에 올랐다. 그러나 감사는 바로 강 건너 개풍군에서 청나라 오랑캐에 의해 북으로 끌려가고, 애기만 한강을 건너게 되었다. 애기는 매일 북녘 하늘을 바라보며 일편단심으로 감사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다 결국 병들어 죽어 가면서, '님'이 잘 바라보이는 봉우리에 묻어 달라고 유언했다. 1966년 10월 7일 박정희 대통령이 '애기' 사연을 듣고, “애기의 한()은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오가지 못하는 우리 일천만 이산가족의 한과 같다”고 하여 애기봉이라 명명하고, 친필로 휘호를 써서 비석을 세웠다.

정상 전망대에서 망원경으로 북한의 선전마을과 송악산 등을 볼 수 있어 관광객과 실향민들이 많이 찾고 있으며 1993년에는 실향민들을 위해 망배단이 세워졌다. 크리스마스 때는 북녘을 향해 대형 트리를 세우고 성탄 축하예배를 드리며 석가탄신일에는 법회가 열리는 등 각종 행사가 열린다.

2000년 현재 군 주둔지역으로, 출입통제소에서 신고서를 작성해야 출입할 수 있기 때문에 주민등록증을 지참해야 한다. 주변에 문수산성(사적 139), 덕포진(사적 292), 고정리지석묘(경기기념물 91), 한재당(경기기념물 47) 등의 문화재가 있어 가족 나들이 코스로도 알맞다.

대중교통편은 서울특별시 신촌이나 인천광역시에서 직행버스를 타거나, 서울특별시 영등포에서 강화운수 1번 버스를 타고 월곶면 군하리에서 하차하여 택시를 타면 10분 정도 걸린다. 승용차로는 48번 국도를 따라 김포읍을 지나 군하삼거리에서 우회전하여 10분 정도 달리면 도착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애기봉 [愛妓峰] (두산백과)

 

한국전쟁 후의 한강 다리 모습

휴전협정 당시의 판문점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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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안 하이웨이를 달리자 - 스토리텔링 활동지와 예시 답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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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의 이야기를 만들어 보기 > 상상하기 - 그리워하기(그려보기)
 
교수·학습 팁 > 가능한 통일한국의 밝은 미래를 전망하며 상상하는 이야기를 만들어 본다. 통일한국 시대의 모습도 좋지만 남북한이 통일을 준비하면서 평화적인 교류가 활발한 시기를 가상해도 좋다. 아시안 하이웨이 뿐 아니라 대륙횡단철도도 소개하면 활동의 효과를 더 높일 수도 있다. 이야기를 구성하는 역량을 길러간다면 금상첨화겠지만 중요한 것은 우리의 생각을 대륙과 세계로 넓혀나가며 통일한국의 밝은 미래로 확장해나가는 것이다.

 아시안 하이웨이와 대륙횡단 철도 가상의 이야기

통일(2026)이 된지 20년이 되었다. 통일한국의 자랑스러운 모습을 세계인들에게 전할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기 위해 부산 방송국에 PD로 근무하는 나는 방송장비를 나의 지프차량에 싣고 평양으로 출발한다. 1번 아시안 하이웨이[AH1]를 타고 평양에서 친구를 만났다. 친구는 평양방송국에 근무하는 나의 동창생 김OO PD이다. 이튿날 친구의 방송 장비를 내 차에 싣고 6번 아시안 하이웨이[AH6]를 타고 하얼빈으로 출발한다. 두만강 유역과 북간도 연해주 지역에서 머물면서, 안중근 의사가 독립운동을 하면서 자주 찾았던 회령과 러시아의 핫산지역을 사흘동안 촬영하였다. 이제 하얼빈역으로 달린다. 이곳에서는 모스크바에서 유학중인 아들을 만나기로 했다. 아들은 발레에 뜻이 있어 모스크바에서 발레공부를 하고 있다. 아들은 모스크바에서 열차를 타고 시베리아 횡단 철도(TSR)과 만주 횡단 철도(TMR)를 이용하여 하얼빈 역에서 만나게 되었다. 아들에게 특별히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 의거 현장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리고 안중근 의사 기념관에 들러 그의 의거 과정을 전시한 자료를 살펴보았다. 아들은 안의사의 단지한 브론즈 조각품인 거룩한 손을 마주잡고 기도하며 감격했다.

이제 아들과 함께 6번 아시안하이웨어[AH6] 타고 시베리아로 떠난다. 노보시비르스크 가까이에 있는 우리의 천연자원 개발 발전소와 러시아와 통일한국이 공동 개발한 우주탐사선 기지를 찾아간다. 우리의 우주탐사 능력은 이제 세계 3위 안에 들어간다. 우리의 뛰어난 IT기술과 로봇 산업이 우주탐사선 개발과 우리 민족의 진취적인 도전 정신과 결합된 덕분이다. 사흘 뒤에 화성으로 떠나는 통일한국 우주인을 취재할 예정이다. 아들은 화성에서의 발레를 상상하며 졸업 작품을 구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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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부산에서 유럽까지 내 차를 몰고 달릴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은 안타깝게도 그렇게 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아시안 하이웨이(AH)'
고속도로 이정표에서 볼 수 있다.
경부고속도록 서울요금소를 지나자마자 보이는 판교분기점 이정표, 판교IC와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일산 구리)가 분기되는 지점에서 확인할 수 있다.
벅찬 기대로 휴대폰 영상으로 담아보았다.

지금 이 노래를 들으면서 계속 직진, 직진하면 평양을 지나 중국으로 그리고 아시아대륙을 지나 유럽으로 가게 된다. 이정표 안내가 많이 아쉽다. 왜 북한(평양)은 적어놓지 않았을까? 그래도 일단 꿈이라도 꾸자. 언젠가는 이 길을 달릴 것이다.

"길은 언제나 어디에나 있다."   "걸어야 길이 된다."
나의 길 명언으로 주문을 외운다. 
우리나라를 지나는 아시안 하이웨이는 1호선과 6호선이 있다.

(지금 듣고 있는 음악 : 로드리고 - 4대의 기타를 위한 안달루시아 협주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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