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생생한 간화선 볼 줄이야
해외 불교학자·승려 17명, 혜국·적명·진제스님 법문을 듣다
22일 아침 충북 충주 석종사. 가파른 돌계단 위에 올라앉은 천척루(千尺樓)의 열린 장지문으로 햇빛이 은은하게 스며들었다. 모턴 슐터 아이오와대 교수가 물었다. "화두(話頭)를 깨뜨리고 나면 무슨 수행을 합니까?" 혜국 스님이 답했다. "밤에 꿈을 깨고 나면 더 꿀 꿈이 없는 거야." 슐터 교수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럼 참선은 뭐 하러 계속합니까?" 혜국 스님도 거침이 없었다. "배고프면 먹고, 졸리면 자는 거지. 그럼 깨달았다고 죽어 버려?"- ▲ 한국의 대표적 선승 세 사람을 방문한 외국 불교학자와 승려들이 22일 충주 석종사 경내 금봉선원에서 잠시 한국 승려들의 수행을 체험해보고 있다. /이태훈 기자
미국, 영국, 중국, 일본에서 온 17명의 학자와 승려들이 배석한 한국 스님들과 함께 웃음을 터뜨렸다. 지난 주말 동국대 종학연구소가 주관한 간화선 국제학술대회에 참석한 학자들은 한국의 대표적 선승 세 사람을 만나기 위해 함께 길을 나선 참이었다. 22일에는 충주 석종사 금봉선원장 혜국(慧國) 스님과 문경 봉암사 수좌 적명(寂明) 스님을, 23일에는 대구 동화사 조실 진제(眞際) 스님을 만나 법문을 듣고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다. 이들은 살아서 펄펄 뛰는 한국 간화선 수행 문화에 놀라워했고, 한국 선승들의 '깊이'에 또 감탄했다.
◆혜국 스님 "믿든 안 믿든 여러분은 이미 각자 부처다"
혜국 스님 오른손에는 손가락 세 개가 없다. 이생에서 꼭 깨닫고야 말겠다는 결의를 담아 손가락을 태우는 연비공양(燃臂供養)을 했기 때문이다. 미리엄 레버링 테네시대 교수가 "사랑하는 아이를 잃은 엄마에게 무슨 얘기를 해주겠느냐"고 물었다. 스님은 "그 어머니를 임시로 슬픔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죽음이란 원래 없다는 것, 당신과 아이의 본성은 파괴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도록 도울 것"이라고 했다.
벤저민 브로스 미시간대 교수는 "모두 비워야 한다면서 허공은 왜 비우지 않느냐"고 물었다. 혜국 스님이 답했다. "허공은 허공조차 놓아버린 자리다. 말로 하려니 허공이지, 허공조차 없는 거다."
2시간여 질문과 답변이 끝난 후 혜국 스님은 말했다. "일어나 국수들 먹어. 먹을 때 '먹는 이놈이 대체 누군가' 하면서 맛있게 자셔!"
◆적명 스님 "순일한 삼매로 가는 길목, 뒤돌아보지 말라"
경북 문경의 '근본도량' 봉암사에서는 적명 스님을 만났다. 적명 스님은 출가 후 50년 넘게 선방에서 수행에만 정진해왔다. 한 학자가 의정(疑情·강한 의문을 갖는 감정적 상태)을 일으키는 방법에 대해 질문하자 적명 스님이 답했다. "고양이가 쥐구멍 앞에 앉아서 지켜봅니다. 고양이의 관심사는 구멍이 아니라 그 속에 들어 있는 쥐예요. 고양이는 포기하지 않아요. 끊임없이 지켜보다 보면 언젠가 쥐가 튀어나옵니다. 언젠가는 의정이 반가운 옛 친구처럼 날 찾아옵니다. 깨달음의 완성을 향한 열망이 생기고, 또 남의 고통을 나의 고통처럼 느끼며 일체중생을 구제하려 하는 보살행을 하게 됩니다."
벤저민 브로스 미시간대 교수는 "중국과 일본의 이름난 선사들을 많이 만났지만 적명 스님만큼 수행의 여러 단계에 대해 구체적이고 생생하게 설명하는 사람은 처음"이라고 했다.
◆진제 스님 "깨달음의 엔진 '참의심'에 시동을 걸라"
"'부모에게 나기 전에 어떤 것이 참나이던고'. 화두를 들고 하루에도 천번 만번 의심을 밀어야 합니다. 그러다 보면 참의심에 시동이 걸립니다. 방앗간 기계도 시동이 걸려야 곡식을 찧듯, 이 일념(一念)이 지속돼야 깨달음이 열릴 것입니다." 동화사 조실 진제 스님은 '어떤 화두를 공부하셨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피터 그레고리 미 스미스대 교수에게 "선승들을 만나며 무엇을 깨달았느냐"고 물었다. 그레고리 교수가 말했다. "내가 이번 여행에서 무엇을 깨달았는지는 말로 얘기할 수 없습니다. 말로 할 수 있으면 이미 깨달음이 아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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