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문화유산, 경주 옥산서원
慶州 玉山書院
Oksanseowon Confucian Academy, Gyeongju
고향 가는 길, 고향 가까이에 세계문화유산이 있다.
옥산서원은 조선 중종 때의 문신이자 성리학자인 회재 이언적(晦齋 李彦迪, 1491-1553)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것이다. 이언적의 학설이 이황에게 계승되어 영남학파의 중요한 성리학설이 되었으며 조선 성리학의 한 특징을 이루었다. 선조 5년(1572)에 경주부윤 이제민이 지방 유림의 뜻에 따라 이 서원을 처음 세웠고, 이듬해에 옥산서원이라는 이름을 하사받아서 사액서원이 되었다. 고종 5년 1868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 때에도 유지되었던 47개 서원 중의 하나이다.
이 서원은 초기 건축물이면서도 질서정연한 형식을 갖추었다. 정문인 역락문을 들어서면 강학 공간으로 무변루와 구인당, 동·서재가 있고, 구인당 뒤편에 제향 공간으로 이언적의 위패를 모신 체인묘가 있다. 동재 오른쪽의 여러 건물들은 서원의 살림을 맡아보던 곳이고 그 뒤편 건물은 목판을 보관하던 곳이다. 현판의 글씨는 아계 이산해와 추사 김정희가 썼다. 이 서원은 2010년 7월에 '한국의 역사마을: 하회와 양동'으로 세계유산에 등재되었으며, 2019년 7월에는 서원 8곳과 함께 '한국의 서원***'으로 세계유산에 다시 등재되었다.
*사액서원(賜額壽院): 임금이 이름을 지어서 새긴 편액을 내린 서원, 편액을 내릴 때 흔히 서적, 토지, 노비 등을 함께 하사하였다.
**서원철폐령: 조선 말기 흥선대원군이 서원을 헐어 버린 일. 전국 650개 서원 중 소수서원, 도산서원, 도동서원 등 47개의 서원만 남겨 놓았다.
***한국의 서원: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9곳의 서원은 영주 소수서원, 함양 남계서원, 경주 옥산서원, 안동 도산서원, 장성 필암서원, 달성 도동서원, 안동 병산서원, 정읍 무성서원, 논산 돈암서원이다.



서원의 정문,
역락문은 <논어> 제1구,
'유붕자원방래 불역락호'에서 따온 모양이다.







문원공 회재 이언적 신도비
文元公晦查 李彦迪 神道碑
Stele of Yi Eon-jeok
경상북도 유형문화유산
Gyeongsangbuk-do Tangible Cultural Heritage
이 비는 조선 중기의 문신인 회재 이언적(1481-1553)을 기리기 위해 선조 10년 1577에 세운 신도비*이다. 원래 옥산서원 앞 용추계곡에 있던 것을 서원 안으로 옮겼다. 이언적의 묘소 앞에도 1586년에 세운 신도비가 있다.
이언적은 16세기 전반기를 대표하는 성리학자이자 사림파 관료이다. 동방오현**의 한 사람으로 꼽힌다. 김안로의 등용을 반대하다가 파직을 당하고 귀향하여 경주 자옥산 기슭에 독락당을 짓고 성리학 연구에 전념하였다. 이후 복귀하였으나, 1547년 정미사화(丁未土禍)에 연루되어 평안도 강계에서 유배 생활을 하다가 별세하였다. 조선 시대의 성리학 정립에 선구적인 인물로서 선조 원년1568에 영의정에 추증***되고 문묘와 종묘에 배향되었다.
*신도비(神道碑): 죽은 이의 평생 행적을 기록하여 묘소 앞에 세운 비석
**동방오현(東方五): 동방 즉, 우리나라 다섯 분의 매우 뛰어난 현인, 일두 정여창(一套 鄭汝昌), 사옹 김굉필(蓑翁 金宏弼), 정암 조광조(靜庵 迪光祖), 회재 이언적, 퇴계 이황(退溪 李亮)
***추증(追贈): 나라에 공로가 있는 벼슬아치가 죽은 뒤에 품계를 높여 주던 일.







옥산서원 배치도


https://maps.app.goo.gl/nQ4uRAiPCUMW1BUP9
옥산서원 · 경주시, 경상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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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락당으로 가는 세심길







독락당(獨樂堂)은 대한민국 경상북도 경주시 안강읍 옥산리에 있는 조선시대 건축물로, 여주 이씨 구암공파(求菴公派) 파종택(派宗宅)이며 파조는 이전인(李全仁)이다. 조선 중종 27년(1532년)에 건립되었다. 1964년 11월 14일 대한민국의 보물 제413호로 지정되었다. 2010년 양동마을의 일부 구성물로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독락당 옆쪽 담장에는 좁은 나무로 살을 대어 만든 창을 달아 이 창을 통해서 앞 냇물을 바라보게 한 것은 아주 특별한 공간구성이라 할 수 있다. 독락당 뒤쪽의 시내에 있는 정자 또한 자연에 융합하려는 공간성을 드러내 준다고 하겠다.
문학〈독락당〉
광해군 때 박인로가 지은 가사. 박인로가 독락당을 찾았을 때 이언적을 그리며 그곳의 정경을 노래한 것으로《노계문집》에 실려 전한다. 그 일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봉만(峯巒)은 수려하야 무이산이 되여 잇고
류수난 반회(般回)하야 후이천이 되엿나다.
이러한 명구(名區)에 임재 어이 업돗던고.
일천 년 신라와 오백제 고려에 현인군자들이 만히도 지닌마낸
천간지비하야 아선생(我先生)께 기치도다.”










https://munchon.tistory.com/m/1333
01학이편 01 배우고 때때로 익히니,
공자는 자기 만큼 배우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거라며 스스로를 호학자라 자평하였다. 어느 경전이든 가장 첫머리에 나오는 문장은 특별한 의미를 갖는데, 유학의 으뜸이 된다는 의 첫 글자
munchon.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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