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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연풍 순교성지

by 문촌수기 2026. 3. 27.

아내와 문경새재 이튿날, 시작은 연풍순교성지를 찾았다.
황석두 루카성인의 안식처이다.

신앙의 길목이요 교차로
연풍은 신앙을 지키려는 선조들이 문경새재와 이화령을 넘어 박해자들의 눈을 피해 피신하던 곳이다.
지리상의 위치로도 한양까지 연결되는 길이었는데, 최양업(토마스) 신부와 프랑스 선교사 칼래(강 니콜라오) 신부는 연풍을 거쳐 경상도와 충청도를 넘나들며 교우촌을 순방하였다.
그리하여 연풍지역은 믿음이 전해지던 길목이 되었으며, 지역 간의 신앙전파를 잇는 교차로였다.

순교터(사형장)
대형 십자가 부근의 이 장소는 순교자들이 순교한 사형장 이다. 신앙을 지키며 천주교를 믿다가 잡혀온 교우들이 형방 건물에서 갖은 고문을 당한 후 배교하지 않으면, 옥에서 끌어내어 이곳에서 처형하였다.
1859년 김요셉(68세)이 치명 순교 하였으며, 전 바오로 (23세)가 형구돌로 순교 하였다고 전해진다.
또한 이곳은 이름 모를 많은 순교자들의 피가 뿌려진 순교터이며, 소중한 신앙의 역사적 장소이기도 하다.

교수형 형구돌

교수형 형구돌

끝까지 신앙을 버리지 않는 천주교 신자들을 구멍 앞에 세운 다음, 목에 밧줄을 걸어 반대편 구멍에서 이를 잡아당겨 죽이는 잔혹한 교수형 형구.
박해시절 많은 천주교 신자들이 각처에서 체포되자, 손쉬운 처형 방법으로 고안해 낸 것이 바로 '형구돌' 이다.
이것은 연풍순교성지에서 발견된 두 번째 형구돌로서, 1미터 가량의 직경에 가운데는 각각 크기가 다른 원추형 구멍이 양쪽으로 뚫려있다.

십자가의 길을 걸으며 기도드린다.

■ 순교자들의 보금자리
연풍은 1866년의 병인박해 때에 수많은 교우들이 체포되어 순교된 곳이다. 혹독한 박해의 칼날에도 끝까지 믿음을 지키며 순교의 영광을 얻었다. 이곳 출신의 교우들은 참수와 교수 그리고 장사 등의 여러 방법으로 순교하였는데, 그중에 김 마르티노와 김 마태오는 현재 하느님의 종으로 시복대상에 포함되어 있다.

■ 황석두 루카 성인의 안식처
연풍의 병방골(장연면 방곡리)는 황석두 루카(1813~1866년) 성인의 고향이다. 그리고 연풍순교성지는 성인의 묘소를 모시고 있는 곳이다. 과거급제를 위해 한양으로 가던 중 천주교 신앙을 받아들인 성인은,
부친이 "천주학을 버리든지 작두날에 목을 맡기든지 하라"고 강요하자 "결코 진리를 버릴 수는 없습니다"라고 하며 목숨을 버릴 정도의 신심을 드러내었다.
이후 동정 부부로 살면서 언제나 기도 안에서 하느님만을 바라보았고, 복음전파와 프랑스 선교사들의 활동을 뒷받침하며 전교회장으로 일생을 교회에 헌신했던 성인은, 병인박해 때 다블뤼 주교, 오메트르 신부, 위앵 신부, 장주기 회장과 함께 충청도 갈매못에서 군문효수형으로 순교했다. 성인의 시신은 갈매못에서 홍산 삽티를 거쳐 고향 병방골로 이장되었다가, 오랜 노력의 결과 1979년 묘소가 발견되어 3년 뒤인 1982년에 노기남 대주교의 예식으로 연풍순교성지에 천묘되었다.

다섯 성인상과 반석

다섯 성인상과 반석
병인박해가 일어난 1866년 충남 보령 갈매못에서 3월 30일 순교한 안 다블뤼(안토니오) 주교, 오 오메트르(베드로) 신부, 민 위앵(루카) 신부, 황석두(루카) 회장, 장 주기(요셉) 회장 등 다섯 성인들이, 서울과 갈매못으로 압송될 때 도중에 쉬었다는 반석.
오기선(요셉) 신부가 발견한 실제 반석은 절두산 순교 기념관에 안치되어 있다.

향청(鄕廳)

향청(鄕廳)
충청북도 문화재 자료 제13호
향청은 지방 수령의 행정을 보좌하던 자치기구로서, 풍속을 바로 잡고 향리를 감찰하며 민정을 대변하는 등의 일을 했다. 숙종 17년(1691년)에 처음 지어진 이 건물은 일제 강점기 때 주재소로 사용되었고, 1963년부터는 천주교 연풍공소로 사용되었다.

현재 연풍순교성지 안에 자리하고 있으며, 200미터 떨어진 연풍동헌(현 연풍초교 내 소재)과 함께 역사와 신앙의 흔적이 담겨진 건물이다.

연풍동헌(현 연풍초교 내 소재)

괴산 연풍 풍락헌
槐山 延袋 豊樂軒
충청북도 유형문화유산

이곳은 조선시대에 연풍현의 청사로 쓰던 풍락헌이다. 연풍은 본래 상모현으로 고려 초기에 장연현으로 바뀌고, 조선 초기에 장풍현과 합하여 연풍현으로 되었으며, 1914년 행정구역의 개편으로 면이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건물은 현종4년 1663에 처음 지었다. 영조 42년 1766 에 새로 고쳐지어 풍락헌이라 현판을 걸어 일명 풍락헌이라고도 한다. 1920년에는 연풍 초등학교의 교사로 사용되었고, 1965년 중수하여 1972년에 지금의 자리로 이전하였다. 정면 5칸, 측면 3칸의 겹처마 팔작지붕집이다. 다듬은 장대석 기단위에 앞면은 둥근 기둥을 세운 이익공 5량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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