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르실료(Cursillo) 체험을 다녀왔다. 가기 전부터 선배 꾸르실리스따들의 친절한 안내나 가르침은 없었다. "가보면 안다" 식이었다. 왜 비밀에 부칠까? 그 이유를 다녀오니 이해되었다.
꾸르실료에서 비밀을 유지하는 주요 이유는 참가자들이 신비감과 기대감을 안고 체험에 임하게 하여 그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였다. 즉, 3박 4일 동안 펼쳐지는 영적 체험을 놀라움과 기쁨으로 온전히 느낄 수 있도록 하려는 의도였다.
꾸르실료의 주보 성인은 성 바오로였다.
산티아고 순례길의 주인공인 성 야고보라고 여겼는데, 뜻밖이었다.
이 사실은 설마 비밀로 유지해야할 사항이 아니겠지? 이미 웹에서 공식적으로 공개된 사항이니깐.
제2차 바티칸 공의희가 시작된 직후,
즉 1963년에 교황 성 바오로 6세께서는 복음선포를 위해 혼신의 힘을 다했던 바오로 성인을 꾸르실료의 주보성인으로 정해주시며 세상의 복음화를 위해 일하는 꾸르실료를 교회 내 신심단체로 인정해 주셨다.

사도 바오로는?
(서울대교구 꾸르실료에서 옮김)
사도 성 바오로는
킬리키아의 타르수스에서 태어났다 (사도행전 22:3)
불행히도 바오로가 언제 탄생했는지에 대한 자료는 전혀 없지만, 전승에 의하면 바오로가 예수보다 10여 년 늦게 출생했다고 한다.
바오로는 유대교 가정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철저한 종교교육과 그리스문화의 교육을 받았으며, 로마시민권을 가지고 있던 엘리트 중에 엘리트였다. 율법을 목숨처럼 지키는 바리사이파였던 바오로는 안식일을 지켜야한다는 계명을 무시하는 등 율법에 도전하던 예수를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바오로는 그리스도교 신자를 잡아 가두는 등 교회를 박해하는 데에 앞장섰다.
그리스도교 신자를 잡기 위해 다마스커스로 향하던 바오로는 "왜 나를 박해하느냐?"라는 예수그리스도의 목소리를 듣고 회심하여 (사도행전 22:5~11) 그때부터 유대인뿐만 아니라 이방인에게도 예수그리스도를 전하는 이방인의 사도로 거듭나게 되었다.
■ 바오로의 회심
바오로의 회심은 악인에서 선인으로 돌아서는 윤리적인 '회개'도 아니고 유다교에서 그리스도교로의 '개종'도 아니었다. 바오로의 회심은 '부활하신 예수그리스도를 체험하는 것', 곧 '그리스도의 성령을 모심'(로마 8, 9) 으로써 그리스도께 소속되는 것을 말한다.
바오로는 3번에 걸친 전도여행을 통해 초대교회를 만드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바오로는 초대교회 안에서 사도로서의 권위에 의심과 도전을 받았으나 그 때마다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해야 하는 사명을 주님에게 직접 받았음'을 거듭 강조하며(갈라1,1~2, 15~16, 1코린 15,9) 자신이 예수그리스도에게 임명된 사도임을 주장했다.
바오로는 3차 전도 여행 후 예루살렘에서 체포되어 재판을 받고 구금되어 로마로 압송되어 갔다. 로마시민권자였던 바오로는 가택연금상태로 재판을 받게 되었다. 바오로가 어떻게 순교했는지에 대한 자세한 기록은 없지만, 전승에 의하면 네로 황제의 박해 때 순교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미지 : 성바오로대성당 바오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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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양란, <여행자의 성당공부>에서

예수의 열두 제자를 표현할 때, 스승을 배신한 가리웃 유다를 넣기 곤란하므로 그 자리에 바울(바오로)을 넣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여기서도 그를 예수의 제자들과 함께 소개하기로 합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가 생전에 선택한 제자는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바리 사이파(Barisaini(유대교의 3대 종파 중 하나. 엄격한 율법 준수와 두터운 신앙심으로 유대인들의 존경을 받았으나, 극단적인 분리주의와 권위주의적 특권 의식에 빠져 예수로 부터 '독사의 자식들'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의 일원으로 성장하여 그리스도 교도들을 박해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그리스도교인들을 체포하고자 다마스쿠스로 가던 중에 예수의 음성을 듣고(혹은 강한 빛을 보고) 회심한 뒤 대단한 열정으로 선교에 임했다는 이야기는 유명합니다.

성당에서 만날 수 있는 작품은 아니지만, 카라바조의 그림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에 회심함>도 그 장면을 표현한 작품으로 유명하므로 함께 소개합니다.
그리스도교도라는 이유로 순교할 당시, 로마 제국의 시민권자가 아니 었던 베드로는 십자가형을 선고받았지만, 바울은 시민권자였으므로 참수형을 당했습니다. 죽는 순간까지 고통을 당해야 하는 십자가형보다는 참 수형이 그나마 덜 가혹하기 때문에 시민권 여부에 따라 차별을 둔 것입니 다. 그래서 베드로는 거꾸로 된 십자가에 매달린 모습으로 순교 장면이 그려지는 반면, 바울은 긴 칼로 참수당하는 모습으로 표현됩니다.
그가 순교할 당시 목을 베자 잘린 머리가 땅에서 세 번 튀었다고 합니 다. 바울의 머리가 닿은 자리마다 샘물이 솟았는데 이를 '세 분수'라고 했고, 그 자리에 세운 교회가 바로 세 분수의 성 바울 성당입니다. 세 분수의 성 바울 성당은 로마 외곽에 있습니다. 그리고 그의 무덤 위에 세운 것이 로마의 4대 바실리카 중 하나인 '성 밖의 성 바울 대성당'이지요.


바울이 그리스도교 신자들에게 남긴 편지가 『신약성서』에 전하는데, <로마서>, <고린도전서>, <고린도후서>, <갈라디아서>, <빌립보서>, <데살로니 가전서>, <빌레몬서> 등이 있습니다. 많은 편지글을 통해 그리스도교 신자 들에게 복음을 전했기 때문에 그는 종종 책을 들거나 글을 쓰는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그러나 주로 긴 칼을 들고 있는 모습으로 표현되는 것은 앞에서 설명했듯이 그가 참수되어 순교했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남긴 말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고린도전서> 13장에 나오는 이 말이 아닐까 합니다.
"사랑은 언제나 오래 참고 친절하며 시기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자랑하지 않고 교만하지 않으며 무례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이기적이지 않고 성내지 않으며 증오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불의가 아니라 진리를 보고 기뻐합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감싸고,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소망하고, 모든 것 을 견뎌냅니다.
믿음과 소망과 사랑은 늘 함께할 것인데, 그중에서도 으뜸은 사랑입니다."
[베드로와 바울이 함께 있는 경우가 많은 까닭]
베드로와 바울은 성화나 성상에 함께 표현되는 경우가 많고, 그들의 이름을 함께 쓰는 교회나 성당도 많습니다. 사실 베드로는 예수가 생전에 제자로 삼은 사람이고, 바울은 초기 교회 당시 그리스도교도들을 박해한 사람이기 때문에 공통점보다는 차이점이 더 많을 것 같은데 말이지요.
베드로와 바울이 함께 표현된 예를 먼저 살펴볼까요. 성화 속에 서는 두 사람이 한 장면에 등장하는 경우가 많지만, 성상의 경우는 따로 새기되 대칭되는 위치에 설치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대칭되는 위치에 있는 베드로와 바울]

이처럼 베드로와 바울을 함께 표현하는 까닭은, 그들이 같은 시기(67년)에 같은 죄목(로마 제국이 금지한 그리스도교 신앙을 포교 했음)으로 처형당했다는 공통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그리스도교를 심하게 박해한 네로 황제 시대에 체포되어 같은 감 옥에 투옥되었다가, 비슷한 시기에 처형당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그들이 투옥되었던 감옥인 마메르티눔은 로마 포로로마노에 있는데, 처형당하기 전까지 그리스도교 신자가 아닌 간수들에게 세례를 주며 선교 활동을 했다고 합니다. 그 사실이 마메르티눔 벽에 부조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로마 포로 로마노의 마메르티늄(좌)/
마메르티늄 벽의 부조(감옥 안에서 비그리스도교인에게 세례를 주는 베드로와 바울)
성당에서 열쇠를 들고 있는 베드로를 발견한다면, 대칭되는 위치에 혹시 긴 칼을 들고 있는 바울이 있지 않은지 찾아보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더읽기)
https://munchon.tistory.com/m/2111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는 짝?
베드로와 바울이 함께 있는 경우가 많은 까닭은?(신양란, 를 스크랩하여 사진을 더합니다.)베드로와 바울은 성화나 성상에 함께 표현되는 경우가 많고, 그 들의 이름을 함께 쓰는 교회나 성당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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