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오복음서에서는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은 제자들이 순서대로 기록되어 있다.
시몬 베드로와 그의 동생 안드레아 ㅡ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
<마태오복음> 4장
어부 네 사람을 제자로 부르시다
18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 호숫가를 지나가시다가 두 형제, 곧 베드로라는 시몬과 그의 동생 안드레아가 호수에 어망을 던지는 것을 보셨다. 그들은 어부였다.
19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들겠다.”
20 그러자 그들은 곧바로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
21 거기에서 더 가시다가 예수님께서 다른 두 형제, 곧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이 배에서 아버지 제베대오와 함께 그물을 손질하는 것을 보시고 그들을 부르셨다.
22 그들은 곧바로 배와 아버지를 버려두고 그분을 따랐다.

<마태오복음> 10장
1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가까이 부르시고 그들에게 더러운 영들에 대한 권한을 주시어, 그것들을 쫓아내고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 주게 하셨다.
2 열두 사도의 이름은 이러하다. 베드로라고 하는 시몬을 비롯하여 그의 동생 안드레아,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
3 필립보와 바르톨로메오, 토마스와 세리 마태오,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타대오,
4 열혈당원 시몬, 그리고 예수님을 팔아넘긴 유다 이스카리옷이다.

<마르코 복음서> 3장에서는 시몬 다음으로 야고보, 요한이 나온다.
16 이렇게 예수님께서 열둘을 세우셨는데, 그들은 베드로라는 이름을 붙여 주신 시몬,
17 ‘천둥의 아들들’이라는 뜻으로 보아네르게스라는 이름을 붙여 주신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

요한복음서에서는
세례자 요한의 두 제자(안드레아, 저자 요한 자신)가 예수를 처음 따랐다. 이후 안드레아가 그의 형 시몬을 예수님께 데려갔다. 그리고 요한사도도 그의 형 야고보를 예수님께 소개하였지만 이 부분은 기록되지 않다.
공관복음서의 전통적인 열두 제자(사도) 명단에서 제베대오의 아들이자 요한의 형인 ‘큰 야고보(대 야고보)’는 보통 두 번째 또는 세 번째로 언급된다.
일반적인 서순(마르코복음 3:16-19, 마태오복음 4:18-22, 10:1-4)으로는
'베드로 -> 야고보(큰) -> 요한 -> 안드레아'로 기록되었고 복음서 문맥상 베드로, 야고보, 요한은 예수님의 가장 가까운 핵심 제자로 항상 앞쪽에 위치한다.
예수님의 변모 현장(마 17,1-3)
그 무렵 1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만 따로 데리고 높은 산(타보르산)에 오르셨다.
2 그리고 그들 앞에서 모습이 변하셨는데,
그분의 얼굴은 해처럼 빛나고 그분의 옷은 빛처럼 하얘졌다.
3 그때에 모세와 엘리야가 그들 앞에 나타나 예수님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마 26:36-37)
36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니라는 곳으로 가셨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내가 저기 가서 기도하는 동안 여기에 앉아 있어라.” 하고 말씀하신 다음,
37 베드로와 제베대오의 두 아들을 데리고 가셨다. 그분께서는 근심과 번민에 휩싸이기 시작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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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양란의 <여행자의 성당공부>에서

사도 요한(세례자 요한과 구별하기 위해 사도 요한이라고 함)과는 형제간인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는 같은 이름을 쓰는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구별하기 위해 '큰 야고보'라고 하는데, 아마도 작은 야고보보다 뚜렷한 활동을 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그는 예수로부터 총애받은 제자 중의 한 사람이었으나, 예수가 로마 병사들에게 붙잡혀 갈 때는 겁을 먹고 달아났지요. 그러나 예수의 부활을 목격한 후에는 믿음이 깊어져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여러 지역을 돌아다녔으며, 스페인을 다녀간 일도 있다고 합니다.
큰 야고보는 44년, 그리스도교를 탄압하던 헤로디아 아그리파 1세 때 참수형을 당하여 순교합니다. 성미가 급해 예수로부터 '천둥의 아들'이라는 별명을 받았던 그는 급한 성미 때문이었는지는 몰라도 예수의 제자 중에서 가장 먼저 순교한 것입니다.
순교 뒤 그는 예루살렘에 안장되었는데, 정확한 무덤 위치를 알 수 없었습니다. 그리스도교가 박해받던 시절이라 버젓한 무덤을 만들 수 없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데 9세기 무렵에 하늘에서 신령스러운 빛이 내려와 한 동굴을 가리켜 들어가보니 그곳에 큰 야고보의 무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 후 그의 유해는 스페인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Santiago de Compostela'로 이장되었고, 당시 레온 왕국의 국왕 알폰소 6세가 그 위에 대성당을 건축하도록 명령하여 현재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실제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 안에는 그의 유골함이 안치되어 있습니다.
큰 야고보가 묻혀 있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는 중세 시대부터 순례 여행의 성지로 여겨졌습니다. 거기에 이르는 길을 '산티아고 순례길'이라 고 했으며, 현대에 와서는 도보 여행의 효시가 되었지요. 그런 이유로 그는 순례자들의 수호성인으로 여겨집니다.
그의 상징물은 책·칼·지팡이·외투·모자·자루·호리병·조개껍데기인데, 사도로서 필요했을 책과 참수형 당할 때 사용된 칼을 제외한다면, 나머지 물건들은 순례자들에게 필요한 것들입니다. 조개껍데기는 산티아고 순례길을 표현할 때 사용됩니다.

빈 카를 성당 천장화에는 순례자를 표현한 부분이 있는데, 순례자의 수 호성인인 큰 야고보의 상징물이 여러 개 보입니다.
유럽의 성당을 돌아볼 때 큰 야고보의 다양한 상징물을 찾아보는 것도 재미있을 듯합니다.
한편, 그는 스페인·과테말라. 니카라과 등에서 수호성인으로 여기는데, 스페인의 수호성인이 된 데에는 이런 이유가 있다고 전해집니다.

844년에 이베리아반도에서는 이슬람교도와 그리스도교도 간의 전쟁이 있었는데, 클라비호 전투에서 큰 야고보가 스페인 군대 앞에 나타나 이슬람교도를 무찌르는 기적이 일어난 후 큰 승리를 거두었으므로, 그때부터 스페인에서는 그를 수호성인으로 숭배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스페인의 성당에는 무어인(이슬람교도를 의미함)을 죽이는 큰 야고보 조형물이 설치된 예가 많습니다. 그리스도교와 이슬람교의 오랜 대립과 갈등을 엿볼 수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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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게 궁금했다.
<야고보서> 1장을 영어로 읽으니,
James 1장
1 James, a slave of God and of the Lord Jesus Christ, to the twelve tribes in the dispersion, greetings.
▶하느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 야고보가 세상에 흩어져 사는 열두 지파에게 인사합니다.
"야고보를 왜 제임스라 하지?"
야고보(Jacobus)가 영어로 '제임스(James)'가 된 이유는 히브리어 이름 '야곱(Ya'aqov)'이 헬라어(그리스어) '이아코보스(Iakobos)'를 거쳐 라틴어, 프랑스어, 영어로 변천되는 과정에서 발음과 철자가 변화했기 때문이다.
어원 및 변천: 히브리어 야곱(Ya'aqov)
헬라어 이아코보스(Iakobos)
라틴어 이아코무스(Iacomus)
고대 프랑스어 게메스(Gemmes)
영어 제임스(James).
음역 차이: 헬라어의 'I'가 영어 번역 과정에서 'J'로 음역되면서, 구약의 야곱(Jacobㆍ제이콥)과 신약의 야곱(Jamesㆍ제임스)가 같은 뿌리에서 나왔음에도 다르게 표기되게 되었다.
또한 야고보를 '이야고'라 부른다.
■어원과 변화: 히브리어 이름 '야아코브(Ya'aqov, 야곱)'가 그리스어(Iakobos), 라틴어(Iacobus)를 거쳐 스페인어에서 Iago(이아고), Santiago(산티아고=산트+이야고), Diego(디에고), Jaime(하이메) 등으로 다양하게 변형되었다.
■스페인어권: 스페인어에서는 야고보 성인을 'Sant Iago(성 이야고)'라고 불렀으며, 이것이 축약되어 'Santiago(산티아고)'가 되었다. 따라서 스페인어 성경 등에서는 야고보를 이야고(Iago) 또는 Santiago로 표기한다.
■문학적 배경: 셰익스피어의 희곡 《오셀로》에 나오는 악역 '이야고(Iago)'는 성 야고보(Santiago)에서 이름을 따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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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적
야고보는 제베대오(세배대)와 살로메 사이 태어난 첫째 아들로, 동생 요한과 함께 아버지를 도와 갈릴래아 호숫가에서 어부로 일하다가 예수를 만나서 같은 직업의 다른 형제인 베드로와 안드레아와 함께 부름을 받았다. 예수의 부름을 듣자 그들은 곧 배를 버리고 아버지를 떠나 예수를 따라갔다(마태 4,21-22). 마르코 복음사가는 제베대오가 일용직 노동자들을 고용했다고 말하는 것을 보면(마가 1:19-20[1]), 야고보, 요한 형제 집안은 임금노동자는 아니고, 사업장을 갖춘 중간계급으로 보인다. 김성 협성대학교 교수에 따르면, 고대 이스라엘에서 물고기는 훈제한 물고기 한 수레를 황소와 바꿀 정도로 비싼 식량이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이들은 예수의 부름을 듣고서 즉시 안정된 삶을 버렸다.
복음서에 있는 두 가지 사건이 야고보와 요한 형제의 성격을 보여주고 있다. 하루는 야고보와 요한 형제(또는 그들의 어머니라고도 함)가 예수에게 하늘 나라에서 자신들이 각각 예수의 오른편과 왼편에 앉도록 해달라고 간청했다. 이때 예수는 “너희는 너희가 청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조차도 모르는구나! 너희는 내가 마시고자 하는 잔을 마실 수 있으며, 내가 받을 고난의 세례를 받을 수 있겠느냐?” 며 물었다. 그러자 그들은 자신있게 할 수 있다고 대답했다. 이에 예수는 “죽음의 잔을 마시고 고통의 세례를 받을 수는 있다. 그러나 나의 오른편이나 왼편에 앉는 특권은 내가 줄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오직 하느님께서 미리 정하신 이들을 위한 것이다.” 라고 대답하였다. 다른 사도들이 이 형제의 야심에 분개하자, 예수는 그들에게 “너희 사이에서 높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남을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으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종이 되어야 한다. 사람의 아들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사람을 위하여 목숨을 바쳐 몸값을 치르러 온 것이다”라고 훈계하여 권력의 목적은 봉사하는 것으로서 다른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강요하거나 그들 위에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일깨워 주었다(마태 20,27-28).
또한 두 형제는 예수가 예루살렘으로 가던 길에 자신들을 영접하지 않은 불친절한 사마리아 사람들을 보고 불같이 화를 내며 “주님, 저희가 하늘에서 불을 내리게 하여 그들을 불살라 버릴까요?” 하고 말했다. 예수는 그 말을 듣고 그들을 호되게 질책하였다(누가 9,54).

이러한 타고난 과격한 성격 때문에 예수는 요한과 야고보 형제를 아울러 ‘천둥의 아들’이라는 뜻의 보아네르게스(Boanerges)라는 별명을 붙여주었지만(마르 3,17), 야고보는 베드로 및 요한과 더불어 타보르 산에서의 변모와 야이로의 딸 소생과 겟세마네에서의 피땀을 흘린 기도를 보고 사람들에게 증언할 특권을 누리며 총애를 받던 세 제자 중의 한 사람이었다(마태 7,1; 마르 1,29-31; 마르 5,37; 마르 13,3-14; 14,32-35). 그런 야고보도 예수가 이스카리옷 유다에게 배신당하여 군인들에게 붙잡혀 끌려갔을 때는 지레 겁을 먹고 다른 사도들과 함께 어디론가 도망가 숨어버리고 말았다.
성령 강림 이후 다른 사도들처럼 야고보 역시 사마리아와 유대 지역에서 복음을 전파하였으며 심지어 이베리아반도까지도 다녀갔다는 기록이 있다. 44년 예루살렘에서 그리스도인을 탄압하던 헤로데 아그리파 1세에 의하여 체포되어 파스카 축일 전날 참수형으로써 순교를 하였다.
야고보의 유해는 처음에는 예루살렘에 안장되었으나, 정확히 어디에 묻혔는지에 대해서는 행방이 묘연하여 찾을 길이 없었다. 그러던 중 9세기 즈음에 하늘에서 한 별빛이 내려와 숲 속의 한 동굴을 비추어 사람들이 그 안으로 가보니 야고보의 무덤이 있었다고 한다. 그 후 야고보의 유해는 에스파냐의 서북부 지역 갈리시아의 산티아고데콤포스텔라로 이장되어 모셔졌고, 당시 국왕 알폰소는 그 묘지 위에 150년에 걸쳐 웅대한 대성당을 건축하였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 안으로 들어가보면 그의 유골함이 전시되어 있다.
그 후 844년 이베리아반도에 세력을 뻗친 이슬람교 세력에 로마 가톨릭 세력이 대항하기 위하여 일어난 클라비호 전투에서 야고보가 에스파냐군 앞에 나타나는 기적을 일으켜 이슬람군을 무찔렀다는 말이 전해지면서 그에 대한 신심이 에스파냐를 중심으로 대폭 커져 산티아고데콤포스텔라는 금새 세계적인 순례지가 되었다. 참고로 산티아고는 야고보의 에스파냐어식 표기이다.
ㅡㅡㅡㅡ
[순례지에서 희년을 보다]
순례길의 목적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 Santiago(성 야고보) de Compo(들판) Stela(별).
제베대오의 아들이자 예수님께서 ‘보아네르게스(천둥의 아들, 마르 3,17 참조)’라 부르시던 대(大) 야고보 사도는, 그리스도의 기쁜 소식을 전하기 위해 저 멀리 ‘히스파니아(스페인)’ 전역과 당시에는 땅끝으로 알려졌던 ‘이리아 플라비아(현재 스페인 서북쪽 갈리시아 지방)’에 이르기까지 길고 먼 길을 걸으셨습니다. 야고보 사도는 44년경 예루살렘에서 ‘헤로데 아그리파 1세’에 의해 사도들 가운데 최초로 순교하셨는데, 천사들이 야고보 사도의 시신을 사도의 열정이 그대로 남아있는 이 땅으로 모시고 왔다는 전승만 남은 채 그 무덤은 잊히고 있었습니다. 814년경, 은수자 펠라히오(Pelagio)는 신비스러운 별빛이 춤추듯 내려 비치는 들판 위에서 야고보 사도의 유해를 발견했고, 거룩한 ‘야고보 사도의 길(Camino de Santiago)’의 순례가 시작되었습니다. 성지의 이름 역시 이 놀라운 사건에서 유래합니다.
야고보 사도께로 향하는 무수한 순례자들의 발걸음은 당시 이슬람 치하에 있던 스페인의 신앙을 자극했고, 가톨릭 왕국을 회복(레콩키스타 Reconquista)하자는 역사적 운동의 초석이 되었습니다. 결국 스페인은 1492년 통일 가톨릭 왕국을 이루고, 그 토대 위에서 아빌라의 데레사, 십자가의 요한, 로욜라의 이냐시오,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같은 위대한 성인들을 배출하여 중세(16세기) 가톨릭교회 영성의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1949년 시작된 꾸르실료(Cursillo) 운동 역시 순례길에서 기인합니다. 이렇듯 순례자들의 발자국으로 가득한 순례길은 1,200년의 세월만큼 많은 서사 속에 하느님의 섭리를 드러내며, 그 길 위에 있는 유서 깊은 성당들과 함께 통째로 세계문화유산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희년을 맞아 지금도 수많은 희망의 순례자들이 이 길 위에서 만날 예수님(요한 14,6 참조)을 향해, 길고 힘든 여정일 수 있지만 지치지 않는 발걸음으로 길을 걷고 있습니다.
Buen Camino~(좋은 길 되세요~)
9세기 말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착공해서 18세기 말 바로크 양식으로 완성된 ‘산티아고 대성당’은 순례자들의 목적지입니다. 대성당 중앙 제대 지하에 야고보 사도의 유해(1884년 레오 13세 교황 공인)가 모셔져 있기 때문입니다. 대성당 안에 머무는 동안 초대형 향로인 ‘보타후메이로’ 그리고 야고보 사도의 성상과 장인(Maestro) 마테오의 걸작 ‘영광의 문’ 등 많은 성유물도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2025년 8월 24일(다해) 연중 제21주일 수원주보 4면, 김태언 요한 크리소스토모(라파엘 여행사 성지순례팀 이사)]


+ <꾸르실료와 산티아고 순례>
꾸르실료(Cursillo)는 스페인어로 '단기 과정(Little Course)'을 의미하며, 1940년대 스페인에서 시작된 천주교 평신도 영성 쇄신 운동입니다. 스페인어 'Curso(코스)'와 'illo(작은)'의 합성어로, '작은 코스' 또는 '단기 교육 과정'을 뜻합니다.
○역사적 배경: 스페인 내전 후(1939년 이후) 가톨릭 신앙 재건을 위해 1948년 8월, 마요르카 섬에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성지까지의 대규모 순례를 기획하며 이를 이끌 지도자를 양성한 것이 시초입니다.
○연관성: 꾸르실료 운동은 산티아고 성지 순례자들을 안내하고 봉사하는 지도자를 육성하기 위한 '단기 강습회(Cursillo)'에서 출발했습니다.
○의미와 용어: 꾸르실료는 '단기 교육'이라는 뜻이며, 산티아고 순례길의 의미를 되새기고 삶 속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전진(Ultreya, 울뜨레아)'하자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핵심 가치: 1949년 1월 마요르카의 성 오노라또 수도원에서 제1차 꾸르실료가 열린 후, 현재는 전 세계적인 가톨릭 평신도 영성 운동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요약하자면, 꾸르실료는 산티아고 성지 순례를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해 만들어진 지도자 교육 과정에서 발전한 가톨릭 운동입니다.
+꾸르실료와 울뜨레아
https://www.catholictimes.org/article/201906130076039
[한국교회 각 단체ㆍ운동소개 무슨 일을 어떻게 하고 있나?] 5. 꾸르실료
「데 꼴로레스」(빛과 함께!)를 힘차게 외치며 교회의 활성화와 신앙쇄신운동에 주도적 역할을 담당해 오고 있는 꾸르실료.비교적 단기간내에 꾸르실료는 한국교회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불러
www.catholictimes.org
+ 명화 속의 야고보
https://brunch.co.kr/@bangjoo353/14
세베데의 아들을 부르심
중세 명화를 찾아 떠나는 그림 여행 | 한눈에 중세 명화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상단과 하단의 내용을 보면 뭔가 다릅니다. 하단에는 예수의 축복이 있는 반면에 상단에는 지극히 중세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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