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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죽음 이야기

아니 온 듯 다녀가소서.

by 문촌수기 2013. 1. 3.

(15)아니 온 듯 다녀가소서.

지난 여름 몇몇 선생님들과 고창 선운사 도솔암을 올랐습니다.
본시 도솔암을 찾은 까닭은 도솔암 위에 동학비기의 전설이 스며있는 마애불상이 있다기에 그 현장을 직접 만나보기 위함이었습니다.
바쁜 걸음으로 오르는 도솔암의 계단 위에서 나를 깜짝 놀라게 하는 짧은 경구의 말씀을 하나 보았습니다.
"아니 온 듯 다녀가소서."
주지스님의 입장에서 이해한다면 내방객의 방문이 자칫 스님들의 수행에 방해가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조용히 다녀 가십사하는 뜻을 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이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찡해오는 희열을 느꼈으며 '마애불상의 배꼽'도 잊은 채 이 말씀만 입속과 마음속에서 되뇌었습니다.
내려오는 길에서도 그러했으며, 이 한 여름은 온통 이 한마디 말씀을 화두로 삼아 그렇게 명상하고 기뻐하였습니다.

"아니 온 듯 다녀가소서."

세상사 태어나서 이름 남기고 업적 남기고 흔적을 남기고 그리고 쓰레기도 남기고 하물며 죄도 짓고 이렇게 저렇게 업(業)을 쌓으며.........그렇게 살아가지 말고, 그저 조용히 살다가 조용히 가는 것 또한 아름다운 삶이 아닐까 싶습니다.그저 아니 온 듯 살다가 아무도 간 줄 모르게 가는 것 또한 아름다운 삶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데 또 흔적을 남겼네요. 이런 이런....... 쯧쯧.

 

at 02/04/2005 06:13 pm comment

글이 너무 좋아서 허락없이 퍼갑니다. 선생님 의 건승을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