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쿨교육통신

19호> 실존 선언 - '나ㆍ지금ㆍ여기에 있다.'

by 문촌수기 2016. 10. 1.
 'I, now, am here.'

■ 사랑방 부채 서화 : ‘나ㆍ지금ㆍ여기’ 

학교 쉼터, '사랑방'에 꾸민 나의 글씨, '나 지금 여기'와 '반자도지동' 노자의 말씀

 

‘나ㆍ지금ㆍ여기’는 삼간(三間)의 일체이며 실존(實存) 선언입니다. 삼간은 인간, 시간, 공간입니다. 인간에서는 ‘나’, 시간에서는 ‘지금’, 공간에서는 ‘여기’만이 존재의 확실성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감히 실존 선언이라고 했습니다. ‘나 지금 여기에 있다’는 사실만큼은 결코 의심할 수 없는 진리입니다.

 

■ 인간 - 나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cogito, ergo sum)’ 나는 데카르트의 이 말을 의심했다. 이런 되먹지도 않은?! "존재하니 생각할 수 있지! 어떻게 생각하니 존재할 수 있다는 거야?"
그러나 나는 고교 학창시절. 이 말을 패러디하여 친구에게 궤변을 늘어놓은 적도 있다. "나는 우주를 생각한다. 고로 우주는 내 안에 존재한다. 그러므로 나는 우주보다 크다." 뭐 이런 시건방진 놈이 다 있나?
우주(공간)든 역사(시간)든 인류(인간)든, '어쨌거나 내가 없으면 아무 소용없다.' 적어도 나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래서 고타마 싯다르타는 이 세상에 오면서 최초의 일성(一聲)이 "천상천하(天上天下) 유아독존(唯我獨尊)"이라고 했다.
나를 구하지 않고서는 그 어느 누구도 구할 수 없다.’ 나를 먼저 구하라.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하지 않는가? 나를 도와라. 그래야 사람을 돕고 세상을 도울 수 있다.
 
■ 시간 - 지금
대학 입학하여 적응하지 못하고 방황할 적에 다행인지 이 나라도 시대에 적응하지 못하고 많이 아파하고 있었다. 송 교수님은 강의를 시작할 적마다 늘 안주머니에서 소중하게 갖고 온 종이를 펼치며 시를 읽어주신다. 어느 날 들려주신 시에서 큰 감흥이 일어났다. 내 인생에 좋은 길잡이가 되었다. 

지금 하십시오. ㅡ 로버트 해리
 할 일이 떠오르거든 지금 하십시오.
오늘 하늘은 맑지만 내일은 구름이 덮칠지도 모릅니다.
어제는 이미 당신의 것이 아니니 지금 하십시오.
친절한 말 한마디 생각나거든 지금 말하십시오.
내일은 당신의 것이 안 될지도 모릅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언제나 곁에 있지는 않습니다.
해주고 싶은 사랑의 말이 있다면  지금 하십시오.

 이 날 이후에 나는, ‘내일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일은 내일되면 또 내일로 물러나 있다. 내일을 기약해도 내일은 내 것이 될 수 없다는 말이다.
'지금(Now)'이야말로 내가 간절히 구하거나 애쓰지 않았는데도 내게 주어진 하느님의 소중한 선물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아이들이 도리어 나를 가르친다는 것을 알게 된다. 각자가 자신의 묘비명을 작성하고 쪽매에 새겨 모둠 친구들과 쪽매맞춤(테셀레이션)을 한 다음에, 함께 디자인하고 일언명구로 그 의미를 붙여 보았다. 한 모둠 아이들이 나에게 '걸작'을 보여주었다. 나와 아이들에게 정말 소중한 선물이 되었다. 아이들에게서 크게 배웠다.
"Present is present."
(현재가 선물이다.)

present is the present

■ 공간 - 여기
서양 속담에 이런 말이 있다.
“여기보다 나은 거기는 없다.
(There is no better than here.)”

무릎을 치게 하는 말이다. 많은 사람들은 자기 발아래 토끼풀 세 잎 클로버를 밟고 다니면서도, 네잎 클로버를 찾느라고 고개를 숙이고, 무릎을 꿇으며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 세 잎 클로버의 꽃말은 '행복'이며, 네잎 클로버의 꽃말은 '행운'이란다. 행복(happiness)는 '지금 여기에' 일어나있는(happen) 일이다. 사소한 것이라도 의미를 부여하면 행복으로 다가온다. 김춘수의 '꽃'과 같다. 이름을 불러주면 의미가 부여된다. 이름을 불러주면 내게 특별한 꽃이 되는 것이다. 어린왕자의 장미와 같아지는 것이다. 내 눈앞에 펼쳐지는 일상사의 소소한 일들에 긍정과 희망의 의미를 붙일 때 내 삶은 행복하고 아름다워진다.
돌아가신 어머니 말씀이 생각난다. “니 지금 쬐는 불이 따시데이~” 지금 있는 내 자리에 불만을 갖고, 남의 자리를 부러워하고 탐내며 함부로 내 자리를 옮겨 다니지 말라는 말씀이다.

■ ‘삶과 죽음이 있는,
지금 바로 여기’!

법보사찰인 가야산 해인사 경내에서도 가장 깊은 곳에 팔만대장경이 보관되어있는 장경각이 있고 그 뒤에 법보전이 있다. 법보전 입구 좌우 기둥에 주련 댓구가 좌우에 걸려 있다.

“원각도량하처(圓覺道場何處)
현금생사즉시(現今生死卽是)”


해인사 법보전

"진정한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도량이 어디인가?
삶과 죽음이 있는, 지금 바로 여기!"

이런 걸 ‘선문답(禪問答)’이라는 걸까? 이런 깨달음을 ‘돈오(頓悟)’라는 걸까? 무슨 해석을 따로 덧붙일 수 있을까?
오래전 여름방학, 같은 학교 같은 교과 선생님과 도반(道伴)이 되어서 해인사에서 템플 스테이하였다. 그 때 함께 깨달은 이 진리의 말씀을 새기고 가까이두고자 지금도 그 도반이 써 준 족자를 내 방에 걸어 두고 있다. ‘삶과 죽음이 있는 지금 여기’

원각도량하처, 현금생사즉시

 '여기보다 나은 거기는 없다.'는 서양 속담에 나는 문장 하나를 더했다.
'지금보다 나은 그때는 없다.'
(There is no better time than n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