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차르트 vs살리에르 (스크랩)

음악이야기 2020. 11. 30. 20:00 Posted by 문촌수기

[신문은 선생님] [무대 위 인문학] “내가 모차르트를 죽였다”… 질투 눈먼 살리에리의 고백

최여정·'이럴 때 연극' 저자
입력 2020.11.30 03:27

“내가 모차르트를 죽였어!”
세계적인 작가 피터 셰퍼의 희곡 ‘아마데우스’는 안토니오 살리에리의 고백으로부터 시작됩니다. 1979년 11월 영국의 유서 깊은 올리비에 극장에서 초연된 이 연극은 이듬해인 1980년 12월 미국으로 넘어가 1181회 공연 기록을 세웠고, 권위 있는 공연예술상인 토니상까지 거머쥐었어요. 마침 영국에 머무르고 있던 체코 출신 음악영화의 거장 밀로스 포만은 첫 시사회 무대를 보고 바로 원작자 피터 셰퍼에게 연락해 영화로 제작하자고 제안하죠. 그렇게 탄생한 영화가 1984년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비롯해 8부문을 수상한 명작 ‘아마데우스’입니다.

◇천재 음악가의 죽음
제목 ‘아마데우스’는 음악가 모차르트(1756~1791)의 이름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죠. 아마데우스는 ‘신의 사랑을 받은 자’(amare와 deus의 합성어)
라는 뜻이에요. 이름처럼 모차르트는 신의 은총을 입은 것이라고밖에 설명할 수 없는 놀라운 작품을 후세에 남겼죠. 서른다섯 살이라는 짧은 생애 동안 626곡의 걸작을 만들었습니다.

1981년 연극 ‘아마데우스’에서 살리에리(오른쪽)와 모차르트의 부인 역을 맡은 배우들이에요. /위키피디아

천재 음악가 모차르트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세간의 화제였어요. 모차르트는 그의 유작인 ‘레퀴엠’을 채 완성하기 전인 1791년 12월 5일, 당시 유행한 악성 장티푸스에 걸려 심하게 앓다가 세상을 떠났다고 알려졌어요. 그러나 모차르트의 정확한 사인은 지금도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습니다. 비극적이게도 모차르트의 유해는 빈 근교 공동묘지 어딘가에 비석도 없이 묻혀 현재 그의 무덤을 찾을 길이 없답니다. 모차르트의 후손도 끊겨버렸지만, 사람들은 천재 음악가를 위해 오스트리아 빈 인근 중앙묘지에 시신 없이 비어 있는 무덤과 석상으로 모차르트를 기리고 있죠.

◇재능 질투한 2인자의 독살설
연극은 모차르트 죽음에 독살설을 제기합니다. 모차르트 독살설이 공식적으로 제기된 것은 1830년이었어요. 러시아 문호 알렉산드르 푸시킨의 희곡 ‘모차르트와 살리에리’라는 작품이 독살설에 불을 지폈죠. 극작가 피터 셰퍼 역시 푸시킨의 희곡에서 영감을 얻었어요. 두 사람은 모두 오스트리아 궁정 작곡가 안토니오 살리에리를 모차르트 독살범으로 지목해요. 살리에리가 모차르트의 천재적인 재능을 시기해 그를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거죠. 극 중 살리에리는 모차르트의 음악을 흠모하고 경탄하면서도 자신에게는 이런 재능을 허락하지 않은 신을 원망하고, 결국 신이 선택한 모차르트를 죽음으로 몰고 가는 인물로 나옵니다. ‘천재 모차르트와 질투의 화신 살리에리’라는 이 극적인 대립은 극에 팽팽한 긴장감을 더하면서 역사상 가장 유명한 라이벌을 만들어냈죠. ‘살리에리 증후군(Salieri Syndrom)’이라는 심리학 용어까지 만들어졌습니다. 1인자의 뒤를 잇는 2인자가 느끼는 자신의 평범함, 좌절 및 무기력, 질투의 감정으로 생겨나는 심리를 설명하는 용어예요.

◇베토벤과 슈베르트의 스승

안토니오 살리에리

안토니오 살리에리(1750~1825)는 이탈리아 베네치아 공화국의 레냐노에서 태어났어요. 어려서부터 음악적 재능을 보였던 그는 열네 살에 고아가 됐지만, 작곡가 플로리안 가스만의 눈에 들어 오스트리아로 가는 기회를 얻게 돼요. 그리고 당시 오스트리아 황제였던 요제프 2세의 인정을 받아 24세 때 궁정 오페라 감독으로 임명됐습니다. 38세 때는 황실의 예배와 음악 교육을 책임지는 ‘카펠 마이스터’ 자리까지 차지하죠. 음악가로서는 오스트리아 제국 최고의 직위였어요. 이렇게 승승장구하던 살리에리의 업적 중 지금까지도 크게 평가를 받는 것은 바로 교육자로서의 면모였어요. 베토벤과 슈베르트도 그의 제자였죠. 베토벤은 그를 위해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위한 3곡의 소나타(작품 12)’를 바쳤다고 해요. 슈베르트는 많은 편지에서 ‘감사한 살리에리 선생님’으로 부르며 스승에 대한 존경심을 표현할 정도였어요. 살리에리는 살아생전 35편의 오페라를 썼고 대부분의 작품이 당대에 큰 성공을 거두며 인정받는 작곡가였습니다. 하지만 연극 속에서 모차르트의 천재성을 뛰어넘지 못한 자신의 범작들은 사라지고 모차르트만이 그 명성을 이어나갈 것이라는 자신의 예견처럼 그의 인기는 19세기 들어 사그라들었죠.

안토니오 살리에리 작곡, The Best of Salieri
https://www.youtube.com/playlist?list=OLAK5uy_muzmyImRsLxsXtnVlw4GYl46syU9_Ij7Q

The Best of Salieri

www.youtub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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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로스 클라이버 (스크랩)

음악이야기 2020. 11. 30. 19:40 Posted by 문촌수기

[박종호의 문화一流] 산속에서 바람처럼 세상을 등진 지휘자
슬로베니아의 수도 류블랴나는 겨울에도 아름답다. 밤새 눈이 내려 렌터카를 포기하고 택시를 잡는다. 호텔의 컨시어지들조차 그곳을 몰랐으며, 택시 기사들도 고개를 흔든다. 결국 내가 내미는 ‘콘시차’의 주소 하나만 보고서 한 기사가 나의 모험에 가담한다.
차는 가파른 산길을 오르기 시작한다. 숲은 짙어지고 침엽수들은 높아진다. 마을은 보이지 않고, 낮인데도 사방이 어두워진다. 그런데 오르막길에 나무가 쓰러져 있고 눈까지 쌓여 있다. 이제는 기사도 포기한다. 나는 차를 내려 혼자 산길을 걷기 시작한다. 내비게이션도 잡히지 않는다. 몇 번이나 산길을 잘못 들고 몇 차례나 외딴 집을 두드린다. 이윽고 한 아주머니가 나와 작은 교회를 가리킨다. 교회의 마당에 작은 묘지가 있다. 드디어 ‘카를로스 클라이버’라고 새겨진 비석을 찾는다. 여기까지 오는 데에 십여 년이 걸린 것이다.

오스트리아에서 아르헨티나로
카를로스 클라이버(Carlos Kleiber·1930~2004)는 지휘자 에리히 클라이버의 아들로 베를린에서 태어났다. 음악사상 부자(父子)가 모두 초일류 지휘자였던 거의 유일한 경우다. 그가 베를린에서 태어난 것은 아버지가 베를린 국립 오페라 극장의 음악감독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치가 정권을 잡자, 다섯 살의 카를로스는 아버지를 따라 부에노스아이레스로 이주하였다. 그리고 부자는 오스트리아 국적을 버리고 아르헨티나를 새 조국으로 삼았다.

아버지 에리히와 함께 시대를 풍미한 지휘자 카를로스 클라이버. 그는 진정한 예술가이자 자유인이었다. /유니버설뮤직(Gabriela Brandenstein/DG)

카를로스는 지휘자가 되기 위한 최상의 조건에서 났지만, 아버지는 아들이 음악을 하는 것을 완강히 반대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아버지는 베를린으로 돌아가 원래 자리에 복귀했다. 반면 카를로스는 아버지의 강권으로 아인슈타인을 배출한 명문 취리히 연방공대에서 화학을 전공한다.
그러나 피는 어쩔 수 없었다. 음악이 간절했던 카를로스는 아버지 몰래 뮌헨의 2류 극장에 말단으로 취직하였다. 그는 극장의 밑바닥 일부터 배웠는데, 이때의 경험은 훗날 그가 지휘하는 데에 큰 자산이 되었다. 결국 그는 아버지가 있는 베를린 부근 포츠담의 작은 극장에서 지휘자로 데뷔한다. 아버지는 그런 그를 애써 모르는 척했지만, 아들은 연이어 성공을 거둔다. 이윽고 그는 1974년에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에서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지휘하여, 전설로 남은 이 공연으로 최정상의 지휘자 반열에 오른다. 이후로 그가 녹음하는 거의 모든 음반들이 수집가들의 표적이 되는 명반이 되었다.

프리랜서 지휘자로 자유롭게 활동
이렇게 클라이버는 정상에 섰고, 독특한 개성과 거부할 수 없는 매력으로 엄청난 인기를 누렸다. 많은 극장과 오케스트라에서 그를 원하였지만, 그는 본인이 원할 때에 원하는 곡만 지휘할 뿐이었다. 그는 데뷔 초기의 잠시 동안 외에는 악단이나 극장의 직위를 가지지 않은 채로 프리랜서로 지냈다. 즉 바람처럼 떠돌다가 하고 싶을 때에만 지휘대에 올랐다. 이렇게 기분 따라 다녀도 그가 원할 때면 어디서나 일정을 내어주고 최고의 대우를 해주었다는 사실이 그가 최고임을 입증하는 예일 것이다.

슬로베니아 콘시차

그는 명성보다는 자유를 원했던 진정한 예술가였다. 지휘자 카라얀은 “그는 냉장고가 비어야만 지휘하러 나온다”고 했다. 비아냥거리는 말일 수도 있지만, 최소한의 생활로 조용히 살던 수도사 같은 자세를 칭찬하는 말이기도 하다. 그런 클라이버가 한 시즌에 한 번이라도 지휘해주기를 원했던 세계 최고 수준의 뮌헨 국립 오페라극장은 직함도 없는 그의 방까지 마련해 놓고, 그가 원할 때면 언제든지 올 수 있도록 기다리기도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세상에서 사라졌다. 모두가 정신없이 사는 동안 그는 유유자적하게 자유를 누리고 있을 줄 알았는데, 유랑 가객은 삶을 마감했다. 그렇게 많은 사람이 그의 새 음반을 갈망했지만, 그는 흔한 베토벤이나 브람스의 교향곡 전집 하나 남기지 않고, 그렇게 청중이 원했던 바그너나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오페라도 한두 작품만 남긴 채로 사라졌다.

아내 고향 슬로베니아에서 生 마감
클라이버는 자신에게 죽음의 시간이 다가오는 것을 느끼자, 어느 날 산속으로 들어갔다. 그곳이 이미 세상을 떠난 아내의 고향인 슬로베니아의 산중 마을 콘시차였다. 그는 아내의 무덤이 내려다보이는 집을 구해서 자신의 마지막 길을 준비했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의하면 그는 스스로 곡기를 끊고 죽음을 준비했다고 한다. 그리고 운명을 의연하게 받아들였다. 세상 사람들이 자신의 묘를 모르게 해달라는 말과 함께….

슬로베니아 산중 마을 콘시차에 있는 작은 교회 앞마당에 카를로스 클라이버 묘지가 있다. /박종호 대표
그러나 광적인 팬들의 화환이 그의 묘에 놓인 것은 장례가 끝난 지 두 달도 되지 않아서였다. 하지만 그들을 미워할 수는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나부터도 그의 음악을 듣거나 영상을 볼 때마다 사무치게 그가 그립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해 겨울에 나도 그를 찾아서 콘시차까지 반쯤 걸어서 눈길을 갔던 것이다. 그것은 마치 내 음악 생활에서 밀린 숙제를 마무리하는 기분이었다.
클라이버의 화려한 지휘 스타일이나 자유분방했던 생활에 그를 비난하는 얘기도 있었다. 어떤 이들은 돌출적인 행동을 못마땅해하였고, 과장되었다고 흉보기도 했다. 그러나 그렇게 그가 떠난 지금 생전의 행동이 출세나 영달을 위한 것이 아님은 자명해졌다. 도리어 그런 그를 잠시나마 오해한 우리가 부끄럽다. 그는 어디에도 속박되지 않은 채로 자신의 마음 깊은 곳이 이끄는 대로만 살고 연주하고 싶었던, 진정한 예술가요 자유인이었던 것이다.
-박종호 풍월당 대표
조선일보 입력 2020.11.30 03:00

https://youtu.be/2Sw97Nzvv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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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이 (미래가) 찾는 인재는?

교단 이야기 2020. 11. 27. 15:16 Posted by 문촌수기

대학교에서 선발하는 학생은 곧 미래 사회가 찾는 인재감들이죠.
사회를 좋은 방항으로 변화시키고 행복을 더해주며 지속 가능한 역량을 가진 인재랍니다.
4C's 역량을 가진 창의융합형 인재랍니다.

■ 4C's ㅡ 의사소통역량, 협업역량, 비판적 사고력, 창의성


■ 창의적 인재의 조건 : 하이컨셉과 하이터치
* 하이컨셉&하이터치 : 대니얼 핑크(Daniel Pink)가 ‘새로운 미래가 온다’에서 처음 사용한 개념


하이컨셉(high concept) : 서로 관련이 없어 보이는 아이디어를 결합해 남들이 생각지 못한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내는 것으로 예술적, 감성적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능력
- 6개의 창의인재조건 중, Design(디자인) / Story(스토리) / Symphony(조화)
- 두바이의 사막 위의 스키장과 세계지도 모양의 인공섬, 이어령의 디지로그, 부동이화(不同而和)의 자세

하이터치(high-touch) : 다른 사람과 공감하고 미묘한 인간관계를 잘 다루며 자신과 다른 사람의 즐거움을 잘 유도해 내고 목적과 의미를 발견해 이를 추구하는 능력
- 6개의 창의인재조건 중, Empathy(공감) / Play(놀이) / Meaning(의미)
- 집단지성(collective intelligence), 동고동락, 향약의 4대 강목, 놀이를 통한 사회성 발달
- ‘We are smarter than me.’

대한민국 교육부, 창의융합형 인재의 핵심역량

자기 관리 역량
자아정체성과 자신감을 가지고 자신의 삶과 진로에 필요한 기초 능력과 자질을 갖추어 자기주도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능력

지식정보처리 역량
문제를 합리적으로 해결하기 위하여 다양한 영역의 지식과 정보를 처리하고 활용할 수 있는 능력

창의적 사고 역량
폭넓은 기초 지식을 바탕으로 다양한 전문 분야의 지식, 기술, 경험을 융합적으로 활용하여 새로운 것을 창출하는 능력

심미적 감성 역량
인간에 대한 공감적 이해와 문화적 감수성을 바탕으로 삶의 의미와 가치를 발견하고 향유할 수 있는 능력

의사소통 역량
다양한 상황에서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효과적으로 표현하고 다른 사람의 의견을 경청하며 존중하는 능력

공동체 역량
지역․국가․세계 공동체의 구성원에게 요구되는 가치와 태도를 가지고 공동체 발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능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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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개념 이해 공부

교단 이야기 2020. 11. 27. 14:29 Posted by 문촌수기

여러분 모든 교과서 뒤쪽에는 <찾아보기>ㆍ<색인>이 있습니다. 여기 나오는 단어가 곧 개념ㆍ용어들이죠. 이걸 이해하는 게 공부 비결입니다.

공부잘하기, 시험잘치기는 결국, 개념 이해=낱말 뜻풀이랍니다. 앞서 이야기한 코넬식 노트필기에서 2.주제영역 칸에도 개념ㆍ용어를 기록하고, 1.필기영역을 가리고 개념만 보고도 내 입으로 설명할 줄 알아야 합니다.
씽킹맵 필기에서도 기록하는 것은 개념ㆍ용어 입니다. 물론, 교과서 뒤의 <찾아보기> 안에 있는 모든 개념ㆍ용어가 다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이걸 보고도 설명할 수 없다면 해당 페이지를 찾아가 다시 복습하기 바랍니다.
교과서에서 굵은 고딕체 글씨, 왼ㆍ오른쪽의 날개단에 쓰인 개념 뜻 풀이가 모두 중요한 것들이랍니다.

거듭 강조합니다. 시험 문제의 답은 숨은 그림 찾기와 같습니다. 핵심 개념은 답 속에 숨어 있답니다.
낱말 뜻풀이=개념 이해=문제 풀이

핵심 개념을 주제별로 분류하는 중요합니다.
친구와 놀이 삼아 ,교과별 핵심개념 퍼즐 맞추기를 만들어 서로 교환하여 풀이해봐요.
아래 개념분류는 씽킹맵 중, 브레이스 맵에 해당하죠.

링크로 들어가면 한글 문서ㆍhwp도 첨부되어 있습니다.
https://munchon.tistory.com/m/1317?category=430308

동양윤리사상 - 개념정리와 낱말퍼즐문제

동양윤리사상 - 개념 정리와 낱말 퍼즐 문제 1학기 1차고사 전에 동양윤리사상을 총정리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사상(가)별로 핵심 사상의 개념을 정리해보고, 이것을 낱말퍼즐로 만들어 보는

munchon.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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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생활 어떻게 해야 하나?

교단 이야기 2020. 11. 27. 11:40 Posted by 문촌수기

고등학교 생활.. 어떻게 학교생활을 할까?

고등학교 학생의 생활은 대학교 입학만을 위한 과정이 아니다. 우리 사회의 건강한 일원이 되기 위해 준비를 하는 중요한 준비 과정이다. 고등학교에서 학생은 어떤 노력, 어떤 활동, 어떤 공부를 해야 할까?

@도전하는 학생
  * 교과내용을 나만의 의미 있는 지식으로 만들자
  * 선택의 기회에서 나를 발전시킬 수 있는 선택을 하자.
  * 선생님들의 진심과 노고가 깃들여진 수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자.
@넓고 깊게 공부하고자 노력하는 학생
  * 교과서, 수업 내용을 바탕으로 더 넓고 깊게 공부하자.
  * 독서는 기본입니다.
  *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공부해 보세요.
@훌륭한 인성을 갖추고자 노력하는 학생
  * 학교생활을 더욱 즐겁게 할 수 있는 활동을 알아보고 참여하세요.
  * 학교생활을 통해 리더의 자질을 배우고 성장하세요.

※ 2021학년도 서울대학교 학생부종합전형 안내(https://www.youtube.com/watch?v=QGjOWs4o4Ks

@도전하는 학생

* 교과내용을 나만의 의미 있는 지식으로 만들자 * 선택의 기회에서 나를 발전시킬 수 있는 선택을 하자. * 선생님들의 진심과 노고가 깃들여진 수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자. 넓고 깊게 공부하고자 노력하는 학생 * 교과서, 수업 내용을 바탕으로 더 넓고 깊게 공부하자. * 독서는 기본입니다. *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공부해 보세요. 훌륭한 인성을 갖추고자 노력하는 학생 학교생활을 더욱 즐겁게 할 수 있는 활동을 알아보고 참여하세요. 학교생활을 통해 리더의 자질을 배우고 성장하세요.

@도전하는 학생

* 교과내용을 나만의 의미 있는 지식으로 만들자.

 교실에서의 수업, 교과 내용을 충분히 이해하고 내 것으로 소화했나요? 내가 선생 님이 되어 친구들을 가르칠 수 있을 만큼 내용을 이해했나요? 문제풀이 요령보다 내용 이해를 위해 어떤 노력을 했나요? * 선택의 기회에서 나를 발전시킬 수 있는 선택을 하자. 내가 원하는 과목, 현재의 나보다 발전할 수 있는 배움의 기회라면 어려운 과목, 소 수 인원 수강 과목에도 망설이지 말고 도전하여 노력하세요.

* 선생님들의 진심과 노고가 깃들여진 수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자.

단순히 내용 암기와 문제풀이 연습만으로는 지식을 확장하기에 한계가 있습니다. 정규 수업 안에서 선생님과 함께 하는 다양한 형태의 활동이 모두 의미 있는 배움 입니다. 수업시간에 발표, 토론 기회가 주어진다면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관련 자료 를 찾고 연습하는 등 준비하는 과정에서 실력을 쌓을 수 있습니다.

@넓고 깊게 공부하고자 노력하는 학생

* 교과서, 수업 내용을 바탕으로 더 넓고 깊게 공부하자.

 학교에서는 탐구활동, 모둠 수행 과제, 토론활동, 글쓰기, 다양한 교내 대회와 행사 등 여러분의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고 다양한 소양과 학업에 대한 열정, 적극성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교내 대회 참여 종류나 횟수, 수상 등급이 중요 한 것은 아닙니다. 학교에서 제공하는 수상 기회를 내가 관심 있는 분야에 대한 소 양을 정리하고 확인하는 기회로 삼아 적극적으로 참여하세요. 다양한 교내 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서로의 땀과 열정을 나누세요. 학업활동에 참여한 활동의 종 류나 개수보다 주어진 기회를 얼마큼 스스로,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노력해왔는지, 어떤 동기와 의지를 가지고 활동하여 얼마만큼의 성장을 이루었는지가 중요합니다.

 * 독서는 기본입니다.

독서는 모든 공부의 기초가 되며, 대학생활의 기본 소양입니다. 수업 활동 중 선생 님이 추천해 주시는 책이나 토론활동, 주제탐구 활동을 하다보면 도서를 만날 수 있습니다. 어떤 분야의 책이든지 읽고 또 읽어가는 사이에 생각하는 힘, 글쓰기 능 력, 전문지식, 의사소통 능력, 교양이 쌓여갈 것입니다. 수많은 책들 가운데 그 책이 나에게 왜 의미가 있었는지, 읽고 나서 나에게 어떤 변화를 주었는지 생각하기 바랍니다.

*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공부해 보세요.

여러분의 성장을 위해 펼쳐진 마당인 학교에서 마음껏 공부합시다. 선생님들께 계 속해서 묻고 도움을 청하고 때로는 귀찮아하실 때까지 매달려보세요. 

@훌륭한 인성을 갖추고자 노력하는 학생

입학에 특별히 유리한 학업 외 활동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학교생활을 더욱 즐겁게 할 수 있는 활동을 알아보고 참여하세요. 협동 활동을 통해서 공동체 의식, 배려심, 대인관계, 사회성을 익히고 성장할 수 있는 경험을 쌓으세요. 이런 과정에서 친구들 과의 관계를 맺어가며 타인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습니 다.

@봉사활동을 얼마나 해야 하나요?

시간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교실에서, 학교에서, 지역에서 내가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활동을 찾아보세요. 별 생각 없이 시작한 봉사활동을 통해서 자신이 성 장하는 것을 경험할 수도 있습니다. 학급의 회장, 부회장 임명장이 리더십을 보여주 는 것은 아닙니다. 회장, 부회장이 아니더라도 리더십을 배울 수 있는 기회는 많습 니다. 다양한 학교활동을 통해 리더의 자질을 배우고 성장하세요.

분명한 목표를 적어놓은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빠른 시간에 많은 것을 성취할 수 있다. - 브라이언 트레이시(Brain Trac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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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도와 사자성어

이런저런 이야기 2020. 11. 26. 21:13 Posted by 문촌수기

사자성어로 다도 순서 읽기
한자공부도 되고 다도도 익히고 재미도 있다.

①팽자천수(烹煮泉水 : 찻물 끓이기)
②분향정기(焚香靜氣 : 향을 피워 향로에 꽂음)
 ③오룡포진(烏龍布陣 : 다기 배열)
 ④맹신임림(孟臣淋霖 : 뜨거운 물로 다호의 온도를 높임)
 ⑤엽가수빈(葉嘉酬賓:온호시간중 다객들 차잎 감상)
 ⑥감천온해(甘泉溫海 : 다해 예열)
 ⑦감은천지(感恩天地 : 다배를 왼쪽부터 똑바로 놓음)
 ⑧오룡입궁(烏龍入宮) 또는 관음입궁(觀音入宮):차 넣기
 ⑨미인세진(美人洗塵 : 차 씻기 또는 차기운 열기)


 ⑩약침출곡(若琛出谷 : 다배의 온도 높이기 溫杯)
 ⑪현호고충(懸壺高沖 : 다호의 차에 물을 부어 우림)
 ⑫춘풍불면(春風拂面 : 거품 걷어내기 蓋沫)
 ⑬중세선안(重洗仙顔 : 다호를 다시 예열)
 ⑭원앙정중(鴛鴦情重 : 다해로 찻물 옮기기)
 ⑮관공순성(關公巡城) : 차 따루기
관우 장군이 각 성을 순시하듯이 차호에서 우려진 차를 여러 찻잔에 따른다. 가령, 네개의 찻잔에 20-40-60 -80% 양만큼 따르고 셔번째부터 역순으로 20-40-60%를 따루어 양도 고르게 하고, 우려진 정도도 고르게한다.
~ 한신점병(韓信點兵) :

회음후, 한신



 ⑯감상탕색(鑒賞湯色 : 눈<目品>으로 탕색 감상)
 ⑰희문유향(喜聞幽香 : 코<鼻品>으로 차향 감상)
 ⑱초품기명(初品奇茗 : 口品으로 吟味 후 茶 禮讚)
 ⑲재짐난지(再斟蘭芷),삼짐감로(三斟甘露):계속 우리기
 ⑳노산진면(盧山眞面 : 다시 찻잎 감상)
 ⑳①회연사명(懷緣謝茗 : 차 예찬과 팽주에게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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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주얼 씽킹ㆍ씽킹맵은 왜 해야할까요?
먼저 물어봐요, "이게 뭘까요? "

그렇습니다. 저의 집, 주방에 있는 전기 스위치입니다. 예술과 기술과 생활의 만남, 이 얼마나 친절한 스위치입니까? 이렇게 비주얼 씽킹은 일상 삶 속에 가깝게 있답니다.
논리적인 사고를 위한 씽킹맵, 창의성을 표현하며 감동을 주는 비주얼씽킹이 무엇인지, 왜 필요한지를 저의 강의 슬라이드에서 발췌하여 읽어봅시다.

"야하, 이거 놀랍지 않니?"
"이 얼마나 친절한 스위치입니까? "

저의 이 말은 질문입니까? 감탄입니까?
이걸 글로 쓰면 어떡해야 하나요?
이것 또한 비주얼씽킹 언어랍니다.

인터로뱅ㆍinter-robangㆍ물음느낌표.
미래인재역량ㆍ4C's (의사소통역량, 협업역량, 비판적 사고력, 창의성)의 비주얼씽킹 표현


씽킹맵을 비주얼 씽킹(이미지)로 표현하기.
아름다운 세상만들기 프로젝트 활동
<왼쪽그림-계획서>
ㆍ써클맵~아름다운 세상이란? (정의)
ㆍ버블맵~어떤 일을 할 것인가?(활동내용)
ㆍ플로맵~어떤 단계로 추진할 것인가?(과정)
<오른쪽그림-보고서>
ㆍ더블버블맵~어떤 일을 했는가?(투입ㆍ원인)
그래서 어떻게 변했는가?(산출ㆍ결과)

공부란? 결국 낱말 뜻풀이, 개념이해, 상징의 의미파악입니다. 의미 파악은 남의 이야기를 읽는 것이고, '의미 부여'는 남의 이야기에서 나의 이야기(my story)를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나의 이야기'로 만들지 못하면 모든 공부도 의미없습니다. 쉽게 말하자면, 나에게, 우리에게, 지금 여기에, 의미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죠. 의미를 찾읍시다.
히스토리(his story, 그의 이야기)에서 마이스토리(나의 이야기)로!

이것도 비주얼 씽킹이죠. 모든 문화의 상징, 로고, 마크, 나아가 회화 그림도 그렇죠. 우린 그 속에 담겨있는 상징성의 의미를 찾아야합니다. 그리고 이것을 내 방식대로 해석하고 풍자하며 재창조를 할 수 있어야합니다. 그래야 의미가 크다는 겁니다.

평화의 상징을 전쟁폭격기에 풍자하고, 정의의 여신을 자본주의의 횡포로 풍자한 그래피티 그림

의미부여ㆍ나의 이야기ㆍ 은유법(A는 B이다.)ㆍ유추하기
문학ㆍ국어ㆍ역사 공부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시와 수필 속에 나타나는 은유적인 표현의 의미를 찾아야합니다. 즉, "내 마음(A)은 호수(B)요"에서 호수는 무엇을 의미할까요? 이게 문제인 거죠.
또한 소설 속의 주인공을 나라고 상상하며 읽어야 합니다. 가령, 꽃들에게 희망을 그림동화의 주인공인 나비의 이야기를 나의 이야기로 유추하여(analogy)하여 해석해야 합니다.
♡중학생들ㆍ나비이야기에서 나의 이야기 유추하기ㅡ씽킹맵 중, 8. 브릿지맵


창의성ㅡ서로 다른 것을 결합하여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기발한 생각과 능력
수학과 예술과 기술의 만남 ㅡ STEAM 역량
파이(pi, π ) 자전거,
3월 14일을 파이데이라고 합니다.

파이(pi, π ) 자전거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요?
밥딜런은 Blowin' in the wind에서 이렇게 노래를 시작합니다. " How many roads must a man walk down, Before you call him a man?"
(사람은 얼마나 많은 길을 걸어야 사람이라고 불리울 수 있을까?)

이 질문을 "나는 얼마나 많은 길을 걸어야만 참된 사람이라고 불리울 수 있을까?"라고 고쳐서 나에게 물어봅니다. 이것이 의미부여, 나의 이야기 입니다.

나는 밥딜런의 이 노랫말을 커피여과지에 그림으로 그려봤답니다. 이것을 픽토리텔링이라 이름 지었어요. 그림으로 이야기하기, 이것도 일종에 비주얼 씽킹인 셈이죠.

황보근영, 커피여과지, 노래그림
하모니카 연주와 노래그림

픽토리텔링ㆍpictorytellingㆍ그림으로 이야기
이 그림도 픽토리텔링이었죠?
- 갑자기 깨달았다(돈오) 하더라도 계속하여 꾸준히 수행해야한다(점수)는 가르침을, 얼음도 물이란 것을 알지만(돈오) 얼음이 햇살에 녹아 물이 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점수)는 것을 표현했답니다.

단점에서 장점 취하기 ㅡ 감나무 이야기

다르게 바라보기 ~ 유단취장

성호 이익선생 댁 마당에 감나무 두 그루가 있었다. 한 그루는 대봉감나무지만 일년에 겨우 서너개 열렸고, 다른 그루는 많이 열리지만 땡감나무였다. 마당에 그늘도 많이 지고 장마 때면 늘 젖

munchon.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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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릉ㆍ健陵
-조선 제22대 정조선황제와 효의선왕후의 능
 정조선황제正祖宣皇帝(1752~1800, 재위 1776~1800)는 장조의 둘째 아들로 할아버지 영조英祖가 세상을 떠나자 왕위에 올랐다. '과인은 사도세자의 아들이다' 라 천명하고 아버지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영조의 탕평책을 계승하여 발전시키고, 규장각을 두어 학문 연구에 힘썼으며 장용영을 설치하고 수원 화성城을 건축하는 등 조선의 중흥을 이끌었다. 재위 24년(1800)에 세상을 떠나자 묘호를 정종正宗이라 올렸으며, 광무 3년(1899) 정조선황제로 추존하였다.
효의황후 (1753~1821)는 청원부원군高原院君 김시묵金時의 딸로 영조 38년(1782) 왕세손빈에 책봉되었고, 정조가 왕위에 오르자 왕비가 되었다. 천성이 공손하고 온화하였으며, 왕대비시절 여러 차례 존호에와 잔치를 베풀고자 하였으나 모두 사양하였다고 한다. 순조 21년(1821)에 세상을 떠나 시호를 효의왕후王后라 올렸으며, 광무 3년 1899) 효의선황후로 추존하였다.

 

 

[실록으로 엿보는 왕과 비]
“호학군주가 고하는 기막힌 반전” (정조)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정조는 온 신하들의 스승이라 불릴 정도로 학식과 덕망을 지닌
호학군주이다. 그런데 화성행궁 화령전에 봉안된 정조의 초상화는 곤룡포가 아닌 군복 차림이다. 틀에 박힌 정조의 이미지에서 살짝만 벗어나면, 우리가 익히 알던 호학군주의 또 다른 면모를 만날 수 있다. 조선시대 왕실 족보 『선원보략』에서 볼 수 있는 간략한 그림과 '우뚝한 콧마루, 네모난 입에 겹으로 된 턱을 가지고 있었다'는 「순조실록」의 기록을 따르면 정조의 실제 얼굴은 다부진 모습일 확률이 높다. 그 모습을 상상하건데, 의외로 정조에게서 늠름하고 호방한 무인의 기상이 느껴진다.

"우리나라는 문치文治를 숭상하고 무비를 닦지 않으므로, 사람들이 군사에 익숙하지 않고 군병이 연습하지 않아서 번번이 조금만 달리면 다들 숨이 차서 진정하지 못한다. 이를 장수는 괴이하게 여기지 않고 군병은 예사로 여기니, 어찌 문제가 아니겠는가. 훈련대장 홍국영과 병조판서 정상순은 이에 힘쓰도록 하라."
「정조실록』 권8, 3년(1779) 8월 3일

정조는 문치 뿐만 아니라, 무예와 군사훈련 역시 매우 중요하게 여겼다. 왕위에 오른 후 정조는 아주 의미심장한 정예부대를 육성하였는데, 국왕의 친위부대인 장용영이 그것이다. 왕궁이 있는 서울과 그 주변을 지키는 임무를 맡은 장용영은 그 훈련부터 특별했다. 정조가 친히 활쏘기 시범을 보이며 훈련을 독려하기도 했다. 실제로 정조의 활쏘기 실력은 당시에 그를 따를 자가 없을 만큼 출중했다. 정조 16년 10월 26일에 정조가 춘당대에서 활쏘기를 하여 50발(10) 중 49발을 명중시켰다는 기록이있다. 그 중 마지막 화살은 아예 쏘지 않고 두면서 "다 쏘는 것은 옳지 않다. 내가 요즈음 활쏘기에서 49발에 그치고 마는 것은 모조리 다 명중시키지 않기 위해서이다."
라고 말했다고 하니, 그의 여유 넘치는 자신감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정조의 강단 있는 모습은 8일 간의 화성 행차에서 절정을 이룬다. 「정조실록』 권42,19년(1795) 윤2월 9일, 정조는 어머니 혜경궁 홍씨와 함께 창덕궁을 나섰다. 115명 기마 악대의 웅장한 연주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6000여 명의 수행원이 그 뒤를 따랐다. 이거대한 행렬의 목적지는 수원 화성이었다. 왕위에 오른 후 '과인은 사도세자의 아들이다' 라고 선언했던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의 무덤인 현륭원(지금의 융릉)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표면적으로는 어머니의 회갑을 맞아 아버지의 무덤을 찾아가는 행차였지만, 그 이면에는 그간 다져왔던 왕권을 과시하고 정치개혁에 박차를 가하려는 정조의 야심찬 목적이 숨어 있었다. 이날 화려한 곤룡포를 벗고 군복으로 무장한 채 화성의로 향하는 정조의 모습에서 화성 행차의 감회가 어떤 것이었을지 짐작해 볼 수 있다.

한편 2009년 2월에 공개된 '정조어찰첩은 정조의 또 다른 면모를 보여준다. 당시 정치적으로 반대 입장에 있었던 신하 심환지와 주고 받은 비밀서신에서 치밀한 전략가였던 정조의 면면을 볼 수 있다. 거기에 더해 '껄껄대며 '배를 잡고 웃었
다[令人] 와 같은 가벼운 어투로 자신의 솔직한 마음을 편하게 표현한 정조의 새로운 모습도 발견할 수 있다. 정조를 온화하고 부드러운 호학군주로만 기억하는 이들에게 고하는 기막힌 반전이다.

 

반시계 방향으로 융릉 뒤로 크게 돌아 건릉 뒤로 화산을 산책하면 말그대로 산림욕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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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릉(융건릉)-정조의 부, 사도세자

카테고리 없음 2020. 11. 24. 12:34 Posted by 문촌수기

융릉(隆陵) : 추존 장조의황제(사도세자)와 헌경의황후(혜경궁 홍씨)의 능
추존 장조의황제 莊祖懿皇帝
(1735-1762, 사도세자)는 제21대 영조英祖의 둘째 아들이자 제22대 정조선황제正祖宣皇帝의 생부이다. 어려서부터 매우 총명하여 글과 시를 잘 지었고, 무예에도 뛰어났다. 그러나 영조를 대신하여 정치업무 (대리청정)를 보게 되며서 노론정권과 마찰을 빚게 되었고, 급기야 영조 38년(1762) 나경언의 고변사건으로 왕세자에서 폐위된 후 뒤주에 갇혀 세상을 떠났다. 영조는 곧 이를 후회하고 애도하는 뜻에서 '사도(思悼)'라는 시호를 내렸다. 정조는 즉위 후 존호를 장헌세자라 올렸으며, 광무 3년(1899) 장종莊宗을 거쳐 장조의 황제로 추존하였다.
헌경의황후獻敬懿皇后(1735 1815, 혜경궁 홍씨)는 영풍부원군永興府院君 홍봉한의 딸로 영조 20년(1744) 왕세자빈에 책봉되었다. 사도세자가 세상을 떠난 후 혜빈에 봉해졌고, 정조 즉위 후 혜경궁으로 칭호를 올렸다. 이후 자전적 회고록인 《한중록》을 직접 쓰기도 하였다. 광무 3년(1899) 헌경왕후王后를 거쳐 현경의황후로 추존하였다.

 

융릉, 연꽃봉오리와 연잎 모양의 인석
융릉 앞, 곤신지. 일반적으로 왕릉에서 보기 드문 원형 연못이다.
금천교
융릉, 홍살문과 정자각
융릉의 능침, 문ㆍ무석인이 한계단에 있다.
문석인
무석인
무석인의 뒷모습, 투구와 갑옷의 무늬가 섬세하다

 

혼유석과 귀면
고석의 귀면, 섬세ㆍ화려ㆍ선명하다

 

병풍석과 인석

 

장명등
망주석ㆍ세호
세호 細虎 - 이름대로 '작은 호랑이'를 닮은 듯하다.

* 인석: 병풍석의 구성요소 중에 인석은 병풍석 상단의 만석을 제자리에 있도록 잡아주는 역할을 하는데, 기다란 사각기둥 형태로 열 두 귀퉁이에 튀어 나와 그 끝에는 국화, 규화(접시꽃), 모란 같은 꽃들로 장식되어있으며, 『세종오례의』에 언급 되어 있다.
*세호(細虎): 망주석의 가운데 기둥에는 세호(細虎)가 새겨져 있다. 세호는 중국의 망주석에서는 볼 수 없는 것으로, 세호의 한자의 뜻풀이대로 하면 아주 '작은 호랑이'라는 뜻이나, 실제는 호랑이 모습과 닮지는 않았다. 세호라는 명칭이 사용된 것은 『국조상례보편』(1752)에서 인데, “세호를 조각하여 왼쪽의 망주에는 오르게 하고 오른쪽의 망주에는 내려가게 하였다”라고 언급되어 있다. 즉, 임진왜란 이후의 기록에 보이는 명칭인 ‘세호’는 그 정체나 새긴 목적이 밝혀지지 않아 상징성을 정확히 알 수 없다. 시대가 내려오면서 장식화 되었고 조선 중기부터는 구멍이 막혀 있으며 꼬리가 긴 동물이 조각되었다. 또한 세호가 동물의 형태로 바뀌며 운동성이 생겼는데, 대체로 좌승우강(左陞右降)의 원칙을 지키고 있다.

*망주석 명칭

 




융릉 곤신지에 연잎이 덮혀있다.

 

<조선왕조실록으로 엿보는 왕과 비>

"뒤주의 비극 속에 가려진 아버지의 마음”(추존 장조 - 사도세자)

"네가 자결하면 종묘사직을 보존할 수 있을 것이다. 어서 자결하라!"

영조의 노여움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격해졌다. 땅에 조아린 세자의 이마에선 피가 흘렀다. 영조가 칼을 들고 자결을 재촉하니, 세자가 눈물로 용서를 빌었다. 그러나 영조의 노여움은 누그러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살려만 달라는 세자의 절규를 외면하고, 영조는 끝내 명을 내린다.

"세자를 폐서인으로 삼고, 뒤주에 깊이 가두라!"

『영조실록』 권99, 38년(1762) 윤5월 13일의 기록이다. 역사에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사건, 뒤주에 갇힌 사도세자의 비극을 실록은 생생하게 그리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이 비극적인 역사의 현장에 사로잡힌 나머지, 간과하고 있는 중요한 사실 하나가 있다.
영조에게 사도세자는 세상 단 하나뿐이었던 아들, 더욱이 대리청정을 시켰을 정도로 기대가 크고 귀하게 여긴 아들이었다는 사실이다.
맏아들 효장세자를 일찍이 떠나 보내고 7년 간 후사가 없어 애태우던 영조는 마흔 둘에 이르러 아들 사도세자를 얻었다. 그러니 영조의 아들 생각은 각별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즐겁고 기쁜 마음을 어찌 말하랴! 내전에서 아들로 취하고 원자의 호를 정하는 일을 어찌 조금이라도 늦출 수가 있겠는가? 즉시 이를 거행해 종묘와 사직에 고하도록 하라.”
-『영조실록』 권40, 11년 1월 21일

영조는 아들이 태어난 순간부터 왕위를 물려줄 것을 결심했다. 그리하여 조금도 망설임 없이 사도세자가 태어난 이듬해 왕세자로 책봉하고 신하들에게 온 정성을 다해 교육에 힘써줄 것을 부탁했다.
세자가 3세이였던 영조 13년 '세자가 이미「효경』을 읽고 글을 쓸 줄 알았다'는 기록이 실록에 기록되어 있다. 이 때 세자가 썼던 글이 '천지왕춘' 이다. 이에 놀란 여러 신하들이 앞 다투어 나와 세자의 글을 하사하여 줄 것을 청하니, 영조는 기쁜 나머지 '네가 주고 싶은 사람을 가리키라'하며 세자의 재간을 보았다고 하고 그 후에도 영조는 여러 신하들이 모인 자리에 세자와 동행해 세자가 쓴 글씨를 신하들에게 나누어 주도록 했다. 영조 역시 아들의 재능을 세상에 알리고 싶은 여느 아버지와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세자의 대리청정은 불행의 씨앗이었다. 노론이 외면한 시도세자의 대리정정이 순탄할 리 없었고, 과도한 정신적 스트레스로 말미암아 괴이한 행동을 하던 사도세자는 끝내 영조의 미움을 사게 되었다. 결국 사도세자를 뒤주에 갇히게 한 죄목은 다음과 같다. 정신질환으로 궁녀를 죽인 것, 여승을 궁녀로 만든 것, 그리고 아무도 몰래 20여일 동안이나 관서지방을 유람했던 수상한 행동을 한것. 그러나 이는 겉으로 드러난 사실일 뿐, 그 이면에는 더욱 무서운 정치적 이유가 있었다. 그리고 자신의 손으로 아들을 처단해야 했던 아버지의 비극 또한 잠들어 있다. 왕과 세자이기 전에 부자 사이였던 두 사람의 스스럼없는 대화가 더욱 가슴 시린 것은 바로 그런 이유다.

임금이 열 살이 된 세자에게 묻기를 "글을 읽는 것이 좋으냐, 싫으냐?" 하니, 세자가 한참 동안 있다가 대답하기를 "싫을 때가 많습니다.” 하자. 임금이 말하기를 “세자의 이 말은 진실한 말이니, 내 마음이 기쁘다." 하였다.
영조실록, 권60, 20년(1744) 11월 4일

공부 더하기ㆍ조선왕릉의 석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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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릉의 석물

석물의 역사와 변화 왕릉에 석물을 세워놓는 제도는 통일신라시대에 형성되어 고려시대로 이어졌으며 14세기 말엽에 공민왕의 현릉(玄陵, 1374년)과 왕비 노국공주의 정릉(正陵, 1365년)에서 능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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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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