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이면 이사를 갑니다.

사랑하는 사람들 2013. 1. 2. 20:18 Posted by 문촌수기

내일이면 이사를 갑니다.

내일이면 이사를 갑니다.

내일이면 이사를 갑니다. 벌써, 일주일째 짐을 정리합니다. 그동안 살아온 흔적들을 지우고 버려도 끝이 없습니다. '행여 기억하고 싶을 땐 어떡하나, 행여 다시 찾고 싶어질 땐 어떡하나' 그렇게 쌓아 둔 것이 결국 짐이 되고 쓰레기가 되어 버려집니다.

아내는 과감합니다. 최근 3년 동안 입지 않았던 옷, 사용하지 않았던 주방용품 등을 아낌없이 내놓겠다며 꺼냅니다. '언제 우리가 그렇게 잘 살았나'며 말 건네면, '내놓으면 필요한 사람이라도 사용하지 않겠느냐'는 대꾸를 합니다. 하물며, 제방 가득한 책들에게도 공격(?)을 가합니다. 하긴 저도 문제입니다. 읽지도 않으면서 먼저 사놓고 책꽂이를 차지하고 있는 책들이 많습니다. 환경문제까지 들먹이며, '보지도 않는 책을 왜 껴안고 있는지'라며 저의 현학적 취미를 부끄럽게 합니다. 결혼한 지 15년 넘도록 고물 TV와 세탁기를 사용하고 있는 알뜰한 아내가 갑자기 '무소유의 미덕'과 '빔의 충만함'을 깨달았나 봅니다.

베란다에서 내다보이는 신도시의 야경은 그다지 아름답진 않습니다. 입원실마다 불이 켜진 큰 병원 건물이 보이고 그 앞에는 교회의 십자가가 무겁게 등을 밝히고 있어 사색에 잠기게 합니다. 육신을 구원하는 곳과 정신을 구원하는 곳이 마주하고 있습니다. 십자가 등이 꺼져 있는 어떤 날이면 당혹스럽습니다.
'저 병든 이들을 위해 기도하는 자들은 모두 어디에 갔나?'
절망처럼 슬퍼집니다. 그럴 때면 기도 해봅니다.

"하느님, 십자가 등은 밝게 비추시고, 병원의 불은 모두 꺼버리소서."

하나씩 버리고 비우면서 생각에 잠깁니다. 잊으라는 기억은 왜 그다지도 잊혀지지 않는지, 사양함에도 가슴아픈 기억은 다시 떠오릅니다. 5년 전, 고통의 기억에서 도망치듯 이사와 살아온 이 집에서 다시 다른 집으로 옮긴들 가슴에 묻혀있는 이 아픔은 어찌 지워지겠습니까? 비우고 버리고 지우려 해도 잊혀지지 않는 그 아픔을 가슴에 그대로 담아 내일이면 새 집으로 갑니다. 사랑하는 제 가족이기 때문입니다. 저의 슬픈 아이입니다.

2003년 06월 04일 (07:35)
유균 at 05/09/2006 08:39 pm comment

왜 이사를 할까 안 나와요

Hye-jung at 09/28/2004 12:46 am comment

내가 아무리 황보선생님을 이해하려 노력한 들 그 가슴에 담겨 있는 깊고 깊은 마음은 절대로 헤아릴 수 없을 거란 생각은 아이들이 커 갈수록 더욱 절실히 느껴집니다. 몇 년 전, Cheer up! 이란 말로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고 싶었던 그 마음이 무색해지네요. 그래도 힘내시고, 누구보다 가족을 사랑하는 황보선생님의 따뜻한 마음에 언제나 박수를 보냅니다. 누군지 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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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은 두렵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들 2013. 1. 2. 20:13 Posted by 문촌수기

생명은 두렵습니다.

갑자기 식구 하나가 더 늘었습니다.
딸아이가 오늘 태어난 아기라며 병아리를 데려왔습니다.
부리로 쪼고 다리를 뻗어 알을 깨고 태어나는 것을 다 지켜보았다합니다.
줄탁동시(口卒啄同時)라 하여 병아리가 알 안에서 알껍질 깨뜨리고 나오려 할 적에 어미닭이 밖에서 쪼아 깨뜨리는 것을 도와주는 것을 물었습니다. 어린 딸아이는 말합니다.

"누가 도와주면 안돼. 혼자서 깨고 나와야 돼. 그리고 엄마닭도 없어."

좋은 걸 배웠다 싶어서 대견스럽습니다.
그러고는 바쁘게 학원에 간다며 아빠더러 집을 만들어 주고, 모래를 담아주고, 따뜻한 방에 놓아두고, 운다고 야단치지 말며, 먹이는 아직 주지말라며....쫑알쫑알 주문을 늘어놓고 갔습니다. 무얼 먼저 해야 할지 당황스럽습니다.
잠시도 쉬지 않고, "삐약삐약"웁니다.
어린 것들은 걱정스럽기만 합니다.
이걸 어떻게 키우나? 잘먹고 잘자란다면야 무슨 걱정이겠습니까만, 엄마도 없이 이 어린 것이 어떻게 자랄 지 두려운 생각도 듭니다.
기가 찹니다. 금새 태어난 것이 들리기도 하고 보이기도 한 모양입니다. 움직이는 손가락을 따라와 쪼기도 합니다.
우선 종이박스에 담아놓고 적당한 집을 찾아봅니다.
마침 아이 곤충채집 플라스틱 통을 찾았습니다.
아파트 화단에 내려가 고운 흙을 담아봅니다. 개미가 섞여 있어 한마리 한마리씩 집어 냅니다. 병아리 귀하다고 개미집을 허물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병아리가 개미를 먹을까? 아님, 개미가 병아리를 물까?'
이것도 고민입니다.
개미 섞인 흙을 도로 붓고 어린이 놀이터의 고운 모래를 담았습니다. 저렇게 목이 쉬라 지저귀는데 물이라도 줄까 생각하다가도 딸아이의 주문이 생각나 참았습니다.
새로운 세상이 낯설고 두려워 우는지, 어미 닭을 찾는지, 배고파 우는지 도무지 알 길이 없습니다.
제법 뛰기도 합니다. 제 발에 걸려 넘어졌다 금방 일어납니다.
고참, 신기하기 그지없습니다. 서서 꼬박 졸다가 떨어지는 제 고개에 깜짝 놀라 깨어납니다. 심심해서일까 배고파서 일까? 눈 밑에 제 발가락을 쪼기도 합니다.
손바닥으로 머리위를 살짝 보담아주니 금새 고개를 숙이며 눈을 감습니다. 어미 닭의 날개품으로 생각하는가 봅니다. 그렇게 라도 잠시 두려움 없이 잠들 수 있다면 엄마날개가 되어 줘야겠습니다. 그러기를 40분 이상이 지나서야 잠이 들었습니다.
"휴우~, 이제 자는 구나." 저도 잠시 조심스레 눈을 붙입니다.
딸아이가 돌아오면, 물어봐야겠습니다.

"네가 병아리의 언니가 되는지, 엄마가 되는지..."

살아있는 것은 두렵습니다. 어린 생명은 더더욱 두렵습니다. 새 생명에 기쁨과 두려움이 교차하는 스승의 날 오후입니다.

05월 16일 (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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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조금만 기다리세요.

사랑하는 사람들 2013. 1. 2. 20:11 Posted by 문촌수기

어머니, 조금만 기다리세요.

추석입니다.

벌써 마음은 외로운 어머니께 가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하는 일이 손에 잡히지 않고 들떠 있습니다. 그래서 이 가을 저녁, 어머니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추석을 되새겨 봅니다. 사랑하는 우리 아이들에게도 이를 가르쳐 주어야겠다며 추석 글을 써 봅니다.

추석(秋夕)!, "가을(추) 저녁(석)" 이 말은 [예기(禮記)]의 '조춘일(朝春日) 추석월(秋夕月)'이란 말에서 비롯되었다는데, 직역하면 "아침 봄 햇살, 가을 저녁 달"이 됩니다. 추석을 중추절이라고 말하는 까닭은 음력 8월 15일이 바로 가을의 한 가운데 있어 붙여진 이름이고 또 추석을 "한가위"라고도 하는데, 이는 신라 때부터 비롯되었던 '가윗날'에서 유래했습니다.

한가위든, 중추절이든, 설날과 더불어 우리민족 최대의 명절인 추석은 가을 한 가운데에서 한해의 결실에 대해 조상님께 감사함을 올리는 '추수감사제'입니다.

추석이 가까워지면 전 아이들에게 과제를 냅니다. 자기의 뿌리를 알 것을 요구합니다. 본관(本貫)은 어디이며, 어떤 문화와 자랑거리를 갖고 있는 지방인지를. 그리고 시조(始祖)는 누구이시며, 어느 때 무엇을 하신 분인지. 자랑스런 선조는 누구이시며, 부모 조부모 외조부모님의 생신 또는 기일과 한자 존함을 알아오도록 과제를 냅니다. 매시간 마다 검사하여 혼을 냅니다. 손바닥도 맞습니다. 목청 높여 가르칩니다.

"제 뿌리도 모르고 무얼 먼저 배우겠다는 거야?
시조(始祖)와 조상 바로 아는 일이 역사공부의 시작이고,
본관(本貫) 제대로 아는 것이 지리공부의 시작이며,
제 부모와 부모님의 부모를 제대로 알고 공경하는 일이
도덕공부 뿐 아니라, 모든 공부의 시작이 아니더냐!"

아이들도 기특하게 제 말을 받아들입니다. 돌아서면 손바닥 맞을 놈 또 나타나지만.

오늘은 새로운 화두(話頭)를 내 주었습니다. 칠판에 큰 글씨로 써 놓았습니다.

"보름달 추석에 웬 반달 송편인가?"

그리고 말했습니다.

"추석 세고 돌아와 한마디씩 말하도록 해라."

보름달이 뜨는 추석에 반달모양의 송편을 먹는 것에 대해 각별한 의미를 붙인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나하나 만이면 반달송편이지만, 나와 네가 같이 만나, 우리가 되어 먹으면 온달이 된다고 말입니다. 이번 추석은 개체로서 존재하는 '나'보다는, 가족과 이웃으로서 존재하는 '우리'를 다시 새겨보아야 할 때입니다.

지난 수해로 전국의 많은 농촌이 힘들고 어려운 추석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한해 농사를 모두 잃고, 집도 잃고, 하물며 사랑하는 가족도 잃어버린 이웃들이 많습니다. 어려운 이웃을 생각해서라도 검소하고 차분하게 추석을 지냈으면 합니다.

어머니, 지겨우시죠? 아들 손주 기다리시느라 많이 지겨우시죠?
아들 줄 고추는 안방에서 말리시고 어머니는 찬 마루에 누워 계시진 않으신지요? 조그만 기다리세요. 곧 갈께요.
어머니, 어쩜 저흴 기다리시는 것이 더 행복하실지도 몰라요.
만나면 곧 떠나보내셔야 하는 그 마음도 이젠 제가 헤아릴 줄도 알게 되었습니다.

2002년 09월 17일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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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잘 사는 거 맞아?

사랑하는 사람들 2013. 1. 2. 20:03 Posted by 문촌수기

우리 잘 사는 거 맞아?

아침밥을 먹는 식탁에서 아내가 난데 없이 이렇게 말을 건넵니다.

"여보, 우리 잘 살아?"

어잉? 이 무슨 소리고 싶어 숟가락을 입에 물고 멍하니 아내를 바라봅니다.

"우리 지금 잘 사느냐구요?"

이때 뭐라고 말해야 합니까? 만약 당신이라면.

"난데없이 무슨 소리냐? 잘 살다니?" 라며 꽁무니를 빼듯 나무라듯 되물었습니다. 아내의 인상을 훔쳐보니 다행히도 그렇게 슬픈 얼굴은 아니었습니다. 엷은 미소지으며 아내가 말합니다.

"남들 흔히 가는 제주도 여행도 못가보고....이게 뭐야?"

오늘따라 왠 푸념일까 궁금도 하면서 달랩니다.

"가자 언제든지 가자. 당신이 가자면 언제든지 가지."

하긴 그렇네요. 이건 제주도가 아니라 어디든간에 오붓하게 아내와 함께 여행가본 기억이 나질 않으니.....뭐 땜에 이렇게 바쁘게 살았는지 참 미안했습니다. 이게 못살아서가 아닐텐데 말입니다.

이렇게 화두는 던져지고 온 종일 내 귓전엔 아내의 음성이 맴돕니다.

"우리, 잘 살아?"

뭐가 잘사는 건지? 돈이 많아야 잘 사는 걸까? 아니 마음이 편해야 잘 사는 걸까? 이렇게 사는 것이 진짜 잘사는 걸까? 혼자서는 감당하기도 어려운 화두라 수업시간에 아이들에게도 물어봅니다.

"너 잘 사니?"
"뭐가 잘 사는 거니?"
"어떻게 살아야 잘 산다고 하는 거니?"

늦은 퇴근후 저녁밥 먹고 신문을 보는 데 아내가 다가와 앉습니다. 오늘 따라 유별나게 무릎 앞에 바짝 다가앉지 뭡니까?

"여보. 우리 진짜 잘 사는 거 맞아?"

들려있던 신문지가 반으로 꺾입니다. 기가 막힌 듯, 야단을 치듯, 또 치사하게 되물었습니다.

"대체 뭐가 잘 사는건데? 이만하면 잘 사는 거지."

생활고에 찌달려 푸념을 늘어놓는 것이 아니라는 듯 아내는 밝은 얼굴로 날 달래며 말을 잇습니다.

"아니, 지금 우리가 이렇게 사는 것이 제대로 살고 있는 건지 잘 모르겠어."

'잘 사는 것'이 드디어 '제대로 살고 있는 것'으로 바뀌었습니다.
갑자기 쑥스럽고 숙연한 분위기로 바뀌었습니다.
그렇네요. 지금 우리가 이렇게 사는 것이 제대로 사는 건지, 바르게 사는 건지, 잘 사는 건지를 한 번쯤 물어보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네요. 아내가 던진 화두는 오랫동안 내 생각의 여행을 자유롭게 했습니다.
나른한 토요일 퇴근길. 세화유치원 미끄럼틀 위에 어린 꼬맹이들이 신나게 노래를 부릅니다. 대여섯살, 신비로운 나이 때의 공주님들이지요. GOD노랜가 봅니다. 잠시 멈추었을 때 꼬맹이들에게 큰 소리로 물어봅니다.

"얘들아! 너 잘 사니?"
'어라, 유괴범들이 이렇게 묻는 거 아닌가? 말해놓고 보니 나도 이상하네.'

당돌차게도 앙징맞게도 꼬맹이들은 이렇게 되받아치며 말합니다.

"몰라요!"

그러고는 또 목청터져라 노래부릅니다.
참 싱겁게 되었죠. 그렇지만 유쾌합니다. 그런거 모르는 것이 진짜로 잘 사는 것 아닐까요.
여러분들은 지금 잘 사세요?

05월 04일 (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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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지면 아파요.

사랑하는 사람들 2013. 1. 2. 20:02 Posted by 문촌수기

만지면 아파요.

================
왕벚꽃
"만지면 아파요."
OO아파트부녀회
================
살고 있는 아파트 벚나무에 걸어놓은 팻말입니다.
그 벚꽃 그늘을 걸으며 딸아이가 말합니다.

"아빠, 제가 유치원 때 이사왔잖아요. 그때 이 말을 보고 만지면 진짜로 아픈 줄 알았어. 근데 2학년 때 내가 만져 봤거든. 그런데 하나도 안 아팠어." (말을 높였다 낮추었다 그래요. 아직 서툰가봐요. 이해해야죠 뭐.)

"그런데 왜 '만지면 아파요'라고 했을까?"

"그건 나무가 아프다는 거야. 아빠, 나무에도 뇌가 있어요?"

딸아이가 말한 '뇌'를 '내'라 잘못들은 나는 일순 놀라며 되물었습니다.

"나무에도 내가 있다니? '내'가 뭐냐?"

"내 아니고 뇌 말이예요."

"으응? 뇌? 뇌가 뭔데?"

물어본 사람은 딸아인데 자꾸만 되물어보는 까닭은 쫑알쫑알 답하는 것이 예쁘기도 하고 어떤 답을 할지 궁금도 하였기 때문입니다.

"생각하는 씨 말이야. 생각하는 거."

'생각하는 씨'라는 말은 어디서 들었는지, 오늘은 딸아이가 나를 많이 가르칩니다.

'나무도 생각할까?' 내가 다시 되묻습니다.
어린 딸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생각하지 못할 꺼야. 말이 그렇다는 거지."

이건 어른인 내가 하는 말이 아닌가 의아해집니다.

"얼른 들어가자. 엄마 기다리신다."

'만지면 나무가 아파요'했더라면 딸아이의 긴 고민은 없었을 것이고, 오늘같은 대화도 없었을 것이고,
말에 맛도 없었을 것입니다. 한 줌 바람에 꽃비가 떨어집니다.

04월 17일 (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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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아이들. 요즘 어른들.

사랑하는 사람들 2013. 1. 2. 20:01 Posted by 문촌수기

요즘 아이들. 요즘 어른들.

딸아이 생일이 가까워오는지도 몰랐습니다.
며칠전 저녁밥을 먹은 딸아이가 친구에게 전화를 합니다.
언제부턴가 집 전화기는 딸아이와 아내의 것이 되어 있었습니다.

"■■이야? 나, 쇼니야. 나 생일파티를 열꺼야.
토요일 내가 3만원으로 롯데리아에서 한번 쏠꺼야.
나랑 같이 꼭 가. 으응. 끊어."

"어잉? 이 무슨 소린고? 뭐 쏜다구? 그것도 3만원으로.
그리고 누가 돈을 준댔나?"

아내랑 눈을 휘둥거리며 서로 마주보았습니다.
딸아이의 아홉째 돌이 가까워오는지 그래서 알았습니다.
이런 말을 어디서 배웠는지 요즘 아이들 참 기가 찹니다.

오늘 토요일. 출근한 아내에게서 교무실로 전화가 왔습니다.
딸아이 파티자금(?) 3만원을 식탁 위에 놓고 와야 했는데 깜빡 잊었답니다.
토요일 수업을 마친 후, 사랑하는 딸아이가 '쏜다'는 파티 자금을 식탁에 놓기 위해 잠시 짬을 내어 집으로 왔습니다. 학교 마당 앞에 집이 있으니 복(福) 중에도 큰 복(福)입니다.

쪽지도 하나 남겼지요.
"사랑하는 우리 딸. 생일 축하해요.
오늘 하루 유쾌한 파티 되세요. - 아빠가 -"

행여 딸아이와 하객들을 마주칠까봐 가슴이 괜시리 두근거리며 계단을 내려옵니다.
1층 다 내려 왔는데.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꼬맹이들 소리가 요란합니다.
대여섯 살쯤 보이는 귀여운 꼬맹이들, 유치원 갔다가 엄마께로 오는 길인가 봅니다.

그런데 이게 또 웬일입니까? 이게 무슨 소립니까?

한 머슴아이가 소리칩니다.
"죽을래?"

작은 계집아이가 똑똑한 말솜씨로 나무랍니다.
"그런 건 아빠들이 쓰는 말이야."

지지 않으려는 머슴아이 대꾸합니다.
"아빠만 쓰는 건 아니야."

어떡합니까?
키를 낮추어 그 말싸움에 끼어 들었습니다.

"그런 말 쓰면 나쁜 아이예요. 그죠?"

요즘 아이들을 생각하며 웃음 지어봅니다.
요즘 어른들을 생각하며 또다른 웃음 지어봅니다.
유치원을 가로질러 학교로 다시 돌아갑니다.
가을바람이 유쾌한 토요일 오후의 일이었습니다.

-2001. 11. 3 유쾌한 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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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이 지나 당신이 오셨습니다.

곧 이사를 합니다.
오랫동안 보지않고 묵혀가던 책들을 많이 내놓았습니다.
내놓으면 남들이 보지않겠나며 타이른 아내의 말을 들었습니다.
차마 내놓지 못한 책 무더기속에는 20여년 동안 보관하던 교무수첩들도 있었습니다.
1988년초임의 교무수첩 속에서 귀한 편지 한통이 끼어 있었습니다.
선친께서보내신 편지였습니다.
처음 고향을 떠난 아들에게 보내신 편지였습니다.
이제 돌아 가신지 7년. 그리고 편지를 보내신지 20년.
당신은 다시 제게 돌아오시어 말씀하십니다.

"가르침이란 착하고 어진이를 길러 가르침이 현저하여야 하고,
선배 선생의 장점을 내 것으로 할 것이며, 선배 교우에 순종이 미덕이다.
가르치는 일에는 터럭만큼이라도소홀함이 없도록 유념하거라."

고향 떠날 적에 하신 말씀도 생생합니다.
"학불염 교불권(學不厭 敎不倦) - 배우길 싫어하지 말며 가르치길 게을리하지 말라."

아! 아버지 잊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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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추석에는 아버지가 계시지 않았습니다.

지난 추석에는 아버지가 계셨는데.........
아니, 지난 설날 때만해도 아버지가 계셨는데..............
이번 추석에는 아니 계셨습니다.
돌아가시어 아니 계신 줄 알면서도 고향에 가면 어머니가 계시듯
아버지도 계신 것만 같았는데...................
어머니 혼자서 뒷마당 튓밭을 정성껏 가꾸어 가시고
화단에 예쁜 꽃들도 피어 있는데
꽃을 좋아하시고 사람 좋아시던 아버지는 아니 계십니다.

바다에 떠오르는 한가위 보름달님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달님에게 소원빌며 말했지요.

항시 내안에 계신 듯 그렇게 살아가게끔 아부질 살려달라구요

안녕, 친구들
아버지께 다가가서 아버지의 넓으신 가슴을 안아보세요.
그리고 말해봐요.
"아버지 사랑해요."라고.
"얘가 왜 이러지?"라고 하시면,
"그냥요"

난 한 번도 못해봤어요.
지금 그렇게 하라면 할 수 있는데........

그럼 안녕.

10월 10일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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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 (8) 나비 되셨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들 2013. 1. 2. 18:57 Posted by 문촌수기

아버지 - (8) 나비 되셨습니다.

 

다시 일상의 삶으로 돌아왔습니다.
돌아가신 아버지 곁에 머물며 100일 동안이나마 상복을 벗지않고 곡(哭)을 멈춤없이 애통해야만 자식의 도리이건만 세상사 이 죄인을 그렇게 허용치 않아 당신 곁을 떠나 일상으로 돌아옵니다.
상복(喪服)대신 상장(喪章)을 가슴에 달고 돌아옵니다.
망인이 되신 어머니는 상복의 삼베조각으로 상장(喪章)을 만드십니다. 나비모양으로 만들어 제 가슴에 달아주십니다. 적어도 사십구일재까지 만이라도 가무를 삼가며 애비를 여윈 죄 많은 상주되라며 표식으로 달아주십니다.
그렇게 부끄럽게 죄인이 되어 제자들 앞에 서서 감히 가르칩니다.

"각오한 일이었건만 이렇게 아버지를 보내고 나니 참으로 참담하기 그지없구나. 내 너희들에게 꼭 당부하고 싶은 말 있으니, 옛말에 '어버이 살아신 제 섬길 일란 다하여라. 지나간 후이면 애닯다 어찌하랴. 평생에 고쳐 못할 일이 이뿐인가 하노라'하였는데 그 말하나 틀림없구나. 공부하느라 효를 미루지 말고, 지금 너희가 할 수 있는 효를 찾아서 게을리 말며 실천하거라. 건강하고 공대하며 부모 욕되게 하지 말며, 행여 언짢은 일, 고단한 일 있어도 얼굴에 나타내어 걱정 끼쳐드리지 말며, 본분에 충실하며 ....."

참으로 아이들은 사랑스럽게 제 말을 잘 들어 주었습니다. 숙연히 눈물을 글썽거리며 애통한 내 마음을 위로해 주었습니다. "선생님 말씀대로 따르겠습니다. 그렇게 효도하겠습니다." 라는 눈빛을 보내주었습니다. 참 고맙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참으로 보람이 있습니다.

그렇게 일주일쯤 지났습니다.
교탁 앞에 서서 인사를 받으려 하는데 한 학생이 밝은 얼굴로 이렇게 말을 합니다.

"선생님, 리본이 참 멋있어요."

제 가슴에 단 삼베리본을 보고 한 말입니다. 죄인된 상주라는 표식의 상장(喪章)더러 멋있다고 했습니다. 순간 다른 아이들이 미안해하며 어쩔 줄 모르는 듯 했습니다. 저도 당황하여 무슨 말을 해야할까 망설였습니다.

"네가 내 수업을 빠진 적 있니?"라고 물으니 밝게 대답합니다. "아뇨, 한 번도 안 빠졌는데요?"
밝은 아이의 짝궁이 귓속말로 친구에게 무어라 일러줍니다. 그제서야 밝은 아이는 송구스런 얼굴로 당황해 했습니다.

"괜찮다. 공부하느라 세상일을 몰랐구나. 그러나 참다운 공부는 세상공부 아니겠는가? 대학 들어가기 위해 학교공부 교과서공부 충실하지만 어차피 대학에 들어가도 세상 잘살기 위해 공부하는 것 아니겠는가? 잘살기 위한 공부는 학교에서만 배우고 이 앞에 선 선생님에게서만 배우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 배우는 것이 오히려 참된 것이란다. 조금만 여유를 갖고 마음을 열고 눈을 떠서 세상사람들 살아가는 모습을 보도록 하거라. 이 세상이 모두 교실이고, 너희가 보고 만나는 모든 이가 모두 너희들의 스승이란다. 그렇게 가르치지 못한 내가 되레 미안하구나."

며칠이 지났습니다. 평소 밝게 인사하던 여자아이가 오랜만에 만났다며 다가와 인사합니다. 하면서 제 가슴의 리본을 보고 말을 건넵니다.

"선생님, 리본이 참 예뻐요."

옆에 친구가 뭐라 일러주니 어찌할 바를 모르며 "죄송해요. 선생님, 정말 죄송해요"라며 쩔쩔맵니다.

"그래, 괜찮단다. 내가 봐도 예쁘단다.
아버지가 돌아가시어 나비가 되어 내 가슴에 내려앉았지.
내가 봐도 꼭 나비처럼 생겼더구나."라며 달래주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영혼은 죽어 나비로 화(化)한다더니
정말 당신은 나비가 되시어 제 가슴에 내려앉아 계십니다.
노란 나비가 되시어 제 가슴을 떠나지 않고 저와 함께 계십니다.

엄마는 참 재주도 좋으시지. 어쩜 아버지를 이렇게 고운 나비로 만드셨을까?

2001. 4. 8 一如 황보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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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 (7) 아버지를 닮았습니다 : 사십구재

불교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지옥행이냐 열반행이냐 환생(還生)하느냐 심판받기 전에 `중음(中陰)'이라는 곳에 머물며 일곱번의 심판단계를 거친답니다. 7일마다 초칠심(初七審)에서 칠칠심(七七審)까지 49일간의 심판을 받는다는데 이 중음(中陰)의 심판관들은 살아있는 가족과 친지들이 어느 만큼 슬퍼하고 공양(供養)을 하며 정성껏 재를 드리느냐에 따라 인정을 베푼답니다.

불꽃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신 아버지 당신을 위해 저희들은 49일재를 올립니다.
어느 누가 허물없는 당신을 심판하겠습니까마는 지성을 다하여 재(齋)를 드리면 행여나 저희 있는 곳으로 환생하지 않으실까, 생사윤회없는 열반의 세계로 들어가지 않으실까 열망하는 기도를 올립니다.
당신께서는 유림의 전통사례를 중시여기며 일평생을 사셨는데 저희들은 당신을 위해 불교의 상례법에 따라 49일재를 드립니다. 당신 계실 적에 다 못한 효도를 돌아가신 후에나마 다하려고 유교의 예법도 따르며, 불교의 예법도 따르며, 하물며 기독교의 하느님도 불러봅니다.

49재를 올리면서 스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상주분들을 뵈오니 참 아버님을 많이 닮으셨습니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마치 여러분들 속에 살아 계신 듯 빼어 닮았습니다."

아하, 그렇구나.
'닮았다'는 것은 곧 내 속에 아버지가 '살아 계신다'는 것이구나.
당신이 내 안에 계시어 내 얼굴을 통하여 당신을 비추시는가 보구나.
하느님이 당신의 형상대로 우리를 만드셨다고 기독교 성경에서 말씀하신 까닭도 그러하겠구나.
우리가 '하느님을 닮았다'는 것은 '하느님이 내 안에 계신다'는 뜻이기도 하겠구나.

스님을 계속 말씀하십니다.

"오늘 이렇게 여러 상주분들 얼굴을 보니 참으로 아버님을 많이 닮으셨습니다.
아버지 색신은 비록 가셨지만 아버지의 법신은 여러분 속에 영원히 살아 계시니(色身雖滅 法身常住■색신수멸, 법신상주) 자아. 오늘부터 너무 슬픈 '얼굴' 짓지 마시오.
우리말의 '얼굴'이 왜 '얼굴'이라 불리는지 아십니까?
사람의 영혼을 뜻하는 '얼'이 드나드는 '굴'이 모두 이 얼굴에 모여있는 까닭입니다.
눈, 코, 입, 귀 등 이 구멍인 '굴'을 통하여 우리의 '얼'이 색신의 세계로 드나듭니다.
여러분 마음속에 법신으로 살아계신 아버지를 편안케 해드리기 위해 밝은 얼굴로 생활하십시오.
그래야만 여러분 마음도 선친의 마음도 밝아집니다."

아하, 그렇구나.
아버지는 내 마음에 계시고 내 얼굴에 계시는구나. 아버지의 '얼'이 깃든 그 모양새, 그 '꼴'이 내 얼굴이구나. '얼이 깃든 모양새' 그것이 얼굴이구나. 그렇구나. 그렇구나.

내 언제 이렇게 복된 말씀을 또 들었단 말입니까?
당신의 얼이 내 얼굴에 깃들어 있고, 내 마음 안에 영원히 살아 계신다니...당신을 떠나보낸 황망한 내 가슴에 봄꽃의 향내가 스미어 듭니다.
나는 아버지를 닮았습니다.
그래서 내 얼굴에 당신의 얼이 깃들어 있고 내 안에 당신이 영원히 사시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할렐루야! 할렐루야!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모두 찬양드리옵니다.

2001. 4. 1 一如 황보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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