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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3. 과연, 그 어머니에 그 아들 3. 과연, 그 어머니에 그 아들 사형 선고를 받은 옥중의 아들에게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가 보낸 편지를 보면 과연 그 어머니에 그 아들이요, 그 아들에 그 어머니를 알 수 있다. “네가 만일 늙은 이 어미보다 먼저 죽는 것을 불효라고 생각한다면 이 어미는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너의 죽음은 너 한 사람의 것이 아니라 조선인 전체의 공분을 짊어지고 있는 것이다. 네가 항소를 한다면 그것은 일제에 목숨을 구걸하는 짓이다. 네가 나라를 위해 이에 이른 즉, 딴 맘먹지 말고 죽으라. 옳은 일을 하고 받은 형이니 비겁하게 삶을 구걸하지 말고 대의에 죽는 것이 이 어미에 대한 효도이다. 아마도 이 편지가 이 어미가 너에게 쓰는 마지막 편지가 될 것이다. 여기에 너의 수의를 지어 보내니 이 옷을 입고 가거라. 어미는.. 2015. 10. 5.
안중근 > 2. 그의 정의로운 전쟁 2. 그의 정의로운 전쟁 1909년(31세) 3월 2일 안중근은 김기용, 강기순, 백남규 등 11인과 동의단지(同義斷指)동맹을 결성하였다. 3월 5일에는 총기를 휴대한 약 300명의 의병을 이끌고 수청 방면으로부터 합십마 부근으로 이동하는 등 의병활동을 하다 이튿날 일진회 회원 박모를 응징하였다. 그해 4월 10일 이토 히로부미는 한국 병탄안을 찬성하였으며 7월 10일에는 일본 정부 각의에서 의결되고 일본 국왕은 그날로 재가하였다. 그해 10월 9일 이토는 일본 국왕을 만나 3, 4주간 예정으로 만주를 여행한다는 계획을 알리고 18일 중국 다렌에 도착한다. 블라디보스톡에 머물던 안중근은 이 소식을 듣고 우덕순을 만나 이치권의 집으로 함께 돌아와 이토 히로부미 처단 계획을 합의한다. 10월 22일 안중근,.. 2015. 10. 5.
안중근 의사의 삶과 교훈 > 1. 그의 탄생과 군자로서의 삶 제3장 안중근 의사의 삶과 《논어》의 교훈 제1절 의사 안중근의 삶 1. 그의 탄생과 군자로서의 삶 안중근은 1879년 황해도 해주부 수양산 아래서 부친 안태훈과 모친 조마리아 사이에서 3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조부 안인수는 일찍이 진해 현감을 지내며, 자선가로서 도내에 명성이 자자했으며, 부친 안태훈은 어려서부터 재주와 지혜가 뛰어나 8, 9세에 사서삼경에 통달하였고, 13, 4세에 과거공부를 하고 사륙병려체를 익혀 선동(仙童)이라 불리며 널리 명성이 자자했으며, 18세에 과거에 올라 진사가 되고 조씨와 혼인하였다. 그해 1879년 9월 2일에 장남 중근이 태어났으니, 중근은 명문 선비 집안 출신임을 알 수 있다. 중근은 태어날 때에 가슴과 배에 북두칠성과 같이 일곱 개의 점이 있었다. 할아버.. 2015. 10. 5.
꿈을 이루기 위하여 - 1) 꿈만 꾸면 뭐해? 꿈을 이루기 위해 - 수석교사 황보근영 「‘꿈만 꾸면 뭐해?’」 여러분! 이 그림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아시죠? 유명한 이야기랍니다. 예! 맞았어요. 조각가 피그말리온이랍니다. 그는 못난이라서 그런지, 아님 세상 여인들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인지 사랑을 느끼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늘 마음으로 그리워하는 여인이 있어서 그 여인을 상아로 조각을 했답니다. 자기가 조각한 너무나 아름다운 상아 여인상을 보며 사랑에 빠졌고 날마다 입맞춤을 하며 아프로디테 여신에게 기도를 했죠. ‘이 여인과의 사랑을 이루게 해주소서.’ 간절한 기도에 감동했는지 미의 여신은 피그말리온의 기도를 들어주셨답니다. 상아조각상은 갈라테이아라는 이름을 가진 여인이 되어 피그말리온과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이 이야기에서 ‘피그말리온 효과’라는 말.. 2015. 10. 4.
사도세자와 정조의 뜰 : 융릉과 건릉 사도세자와 정조의 뜰, 융릉과 건릉 (길 위의 인문학 산책) 경기도 인문교양교육자료개발연구회, ‘인문학 길 위에서 만나다.’의 원고입니다. 매홀고등학교 황보근영 : 파일을 받아 읽어보세요. 융릉 건릉의 배치도와 관람 포인트 ① 융릉의 원형 연못 곤신지 : 원형 연못은 용의 여의주를 상징하는 것으로 정조가 아버지를 연모한 마음을 표현하였다. ② 넓은 참도 ③봉분 병풍석의 연꽃봉오리 인석 ④ 건릉에서 나오는 길 참나무 숲 길 ⑤ 재실의 향나무와 개비자나무 - 문화재청 융릉관리소 ‘융릉 건릉’ 안내지에서 융건릉의 정식 명칭은 ‘융릉(隆陵)과 건릉(健陵)’이다. 융릉은 사도세자와 그의 부인 혜경궁 홍씨의 무덤이다. 정조는 왕위에 오르면서 “나는 사도세자의 아들이다”라며 당당히 외쳤다. 역적으로 몰리며 억울하게 .. 2015. 10. 3.
신들의 뜰 - 세계문화유산 조선왕릉 (붙임파일참조) 신들의 뜰 – 세계문화유산 조선왕릉 (길 위의 인문학 산책) 경기도 인문교양교육자료개발연구회, ‘인문학 길 위에서 만나다.’의 원고입니다. 매홀고등학교 황보근영 여기보다 더 좋은 곳은 없다. 이심전심 아니랄까? 정말 오랜만에 함께하는 아내와의 휴일이다. 아내가 융건릉에 가잔다. 또 가잔다. 오늘같이 조용히 비 내리는 휴일이면 제격이다. 비 내리지 않아도 산책하기에 참 좋은 곳도 이곳이다. 지금 살고 있는 집에서 가까운 융건릉이다. 오랫동안 살아왔던 고양시를 떠나 낯선 이곳 화성으로 이사 와서도 늘 마음 한 구석에 다행이라 여기는 것도 융건릉이 있기 때문이다. 고양시에는 서삼릉과 서오릉이 있고, 가까운 파주에는 파주삼릉이 있다. 그곳은 우리 가족의 당일치기 휴양지였다. 우리 부부가 특별히 왕릉나들이를 좋아.. 2015. 10. 3.
융릉 탐방 협조 공문 발송 융건릉 관리 사무소로 협조공문 보냈습니다. - 문화해설사와 함께 융릉(사도세자 능)의 능침공간 석물배치 해설을 듣기 위해서이죠. 본래 능침공간에는 개방을 하지 않는다기에 간곡하게 부탁드려 -문화재청-조선왕릉관리소-서부지구관리소장으로 공식 공문을 발송하여 허락을 구했습니다. 14:30부터 문화해설사 대동 - 융릉 해설 탐방 ....(1시간 내) 일정으로 문화해설사 하고도 방금 예약이 끝났습니다. 융릉 이후에는 제가 인솔하여 건릉(정조 능)으로 돌아서 참나무 숲길로 돌아오는 길은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4시 30분이면 주차장으로 돌아오는 시간이 될 듯 합니다. 2015. 10. 3.
정조대왕과 함께 융릉에 제향하고 음복하였다 오늘, 정조대왕과 함께 사도세자ㅡ융릉에 제향하고 왔다. 지난 달 '길 위의 인문학 - 조선왕릉 융건릉 탐방기'의 글을 썼다. 그때 다 하지 못한 이야기가 바로 왕릉의 제향 모습이었다. 오늘 마침, "화성! 정조의 효가 꽃 피다." [2015 정조 효 문화제]에서 정조대왕의 융릉 제향이 재현된다기에 찾아 나섰다. [참조 > 세계문화유산 조선왕릉 : 사도세자와 정조의 뜰(융건릉) 탐방 글 pdf파일 다운받아 보셔요.) http://munchon.tistory.com/614 > 조선왕릉 이해 http://munchon.tistory.com/615 > 융건릉 굳이 '내가 정조대왕과 함께 융릉에 제향했다'고 표현하는 것은 자유롭게 가까이에서 전 과정을 살펴보았으며, 예필 후의 그 중요한 음복례를 정조대왕은 못 했.. 2015. 10. 3.
과연 그 어머니에 그 아들 (딴 맘 먹지 말고 죽으라) - 안중근 의사의 어머니 ◆ 과연, 그 어머니에 그 아들 1910년 2월 14일 오전 10시 중국 여순의 관동도독부 일제의 고등법원 제6회 법정. 안의사에 대한 최종 판결일이다. 안중근에게 사형을 선고하고 우덕순 징역 3년, 유동하와 조도선에게는 징역 1년 6개월이 판결되었다. 선고를 받고도 안중근은 “이보다 더 극심한 형은 없느냐”고 말하면서 시종일관 의연한 자세를 취하였다. 이튿날부터 그는 ‘동양평화론’을 설파하며 그의 뜻을 집필하기 시작하였다. 19일에는 사형 선고에 대한 항소를 포기한다. 그 이유는 어머니의 편지를 받아서 때문인지, 스스로 죽기를 각오하고 행한 정당한 의거임을 증명하기 위함인지 그 속내를 알 수 없다. 그렇지만 분명한 것은 살신성인(殺身成仁)하는 군자이며 지대지강(至大至剛)한 대장부의 모습이다. 아래에 사.. 2015. 9. 20.